117 계자 이튿날, 2007. 1.23.불날. 맑기가 시원찮은

조회 수 1308 추천 수 0 2007.01.25 20:14:00

117 계자 이튿날, 2007. 1.23.불날. 맑기가 시원찮은


< 샘과 같이 하니 >


계자 속틀(시간표)은 늘 어떤 변화를 겪습니다.
그런데 올 겨울 세 번째 일정인 이번 계자는
겨울 두 번째 계자에 준하고 있지요.
겹치는 아이들도 없고(한 계절에 두세 번 오는 아이도 있거든요)
왔던 아이들이래야 많지 않고(다른 땐 그 숫자도 제법 되지요)
지난 계자 움직임이 여유롭기도 했고,
무엇보다 재미가 있었고...

곶감집에서 남자 애들이 자고서 내려옵니다.
“왜 우리만 멀리 가요?”
태현이며 사내애들이 툴툴거렸지요.
여자 애들은 학교 안에 있는 숨꼬방을 잠자리로 쓰니까요.
“거가 더 건강에 좋아. 흙집이고 구들에 불 때는 거잖아.”
세훈이는 새벽 5시부터 배고파 죽겠다고 깼더라지요.
쓰러질 것 같은 그를 형길샘이 업고 내려왔습니다.
(형길샘은.
저녁에는 엄마 보고프다(누나 수정 왈, 엄마가 아니라 집이 보고 싶은 거예요)는
서러운 주현이를 업고 올라갔지요)
지금이 새벽이네 아침이네로 아침부터 논란들도 벌였다지요.
“8시부터가 아침이야.
지금은 7시 20분이니까 새벽인 거지.”
누가 마지막에 그리 정리하더라나요.

‘해건지기’ 첫날입니다.
가벼운 요가와 명상으로 아침을 열지요.
“다른 샘이 앉아계신 줄 알았어요.
어제랑 분위기가 전혀 달라요.”
소정이가 한참을 쳐다보며 그럽니다.
큰 여자 아이들은 역시 분위기며에 민감합니다.
아이들은 다른 계자보다 동작을 더 잘 따라하고
명상할 때도 잘 앉았데요.
날이 덜 추워 수월한 것도 있을 겝니다,
오늘 같은 출발이면
마칠 녘엔 제법 고요하게 바라보는 느낌을 좀 익혀가겠다 싶었습니다.

‘손풀기’ 또한 첫날입니다.
“명한아, 너는 왜 안 들어와?”
“저 손 풀었어요. 아까 손 운동 다 했단 말예요.”
주먹도 풀고 하였나 보지요.
“그게 아냐.”
왔던 누군가가 설명해줍니다.
아이들이 다 모일 때까지 기다리는데 먼저 앉은 상원이가 자꾸 묻더랍니다.
“뭐 그려요?”
방 한가운데 놓인 탁자는 아직 비어있었지요.
“안보여?”
상범샘이 그랬지요.
“뭐요?”
그때 준영이가 나섰습니다.
“어, 선생님 보여요. 주전자도 보이고 사이다도...”
아이들이 가진 스케치북에는
이미 지난 계자의 아이들이 손풀기 한 그림들이 있었지요.
주전자며 항아리며 그릇이며...
“샘, 저도 보여요.”
상원이도 금새 소리치데요.
“주전자랑 술병이랑...”
모두 그릇 하나를 가운데 놓고
명상하드끼 눈에 보이는 대로 하얀 종이위에 잘 옮겼습니다.

‘열린교실’.
이번 겨울에 열린 교실들은 고전적입니다.
물꼬에서 늘 하는 것들이 대부분이라는 말이지요.
그래도 다른 아이들이,
또 때때마다 다른 샘들이,
또 여러 방식으로의 접근이 가르치는 이도 배우는 이도 새롭게 하고
또 즐겁게 하지요.

‘단추랑 놀기’.
여자 아이들이 많이 신청하지 않을까 했는데
준영이와 상원이 둘이었네요.
류옥하다가 도움꾼으로 들어왔구요.
“많이 생각하고 했는데, 막상 할 때랑 달랐어요.”
준영이는 금방 시작하지 않고 오래 고뇌한 뒤 움직였지요.
같이 한 새끼일꾼 소연이가 감탄했습니다.
“준영이랑 상원이, 하는 행동과 달리 (만든 것이) 너무 예뻤어요.”
곰돌이와 팬더를 앙증맞게도 만들었거든요,
장식장에 올려둘 수 있도록 세울 수 있게.

‘한코두코’.
수빈 나연 유진 다희 수연 지우가 뜨개질을 했습니다.
코를 뜨다 좌절한 새해는 매듭으로 떠났고
지우도 그만 시들해져 다른 교실로 놀러나갔지요.
다희는 계속 코뜨기만 하더니 완벽해졌고
수빈이는 또 겉뜨기만 해 완벽해져갔지요.
하나만 열심히 해서 서로 가르쳐주기로 했다나요.
마칠 쯤 다희는 사촌 동생 새해의 이른 좌절을 안타까워했습니다.
“조금만 하면 잘할 수 있는데...”
한편 다희는 동생한테 언니로서 갖는 부담이 있어선지
새해를 자꾸 의식하는 듯 보이기도 했지요.

‘매듭’.
현빈이가 있다가 연만들기로 가고
병완이는 또 뚝딱뚝딱교실로 가고
지인이와 새해가 남았습니다.
소수정예 엘리트집단이었다나요.
지인이가 제일 처음부터 들어와서 멋지게 해냈고
새해는 나중에 들어와 빼먹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더니
어느 순간 쉬는 시간에 다희 수빈이들을 가르쳐주고 있었다합니다.
지우 선우도 들락거렸는데
선우는 4자 매듭을 두 번 넣고 환호성을 지르더니 이내 관두고
지우랑 실을 가지고 곁에서 놀았습니다.

태현 세훈 순규 주현 현빈이는 연을 만들었습니다.
재현샘이 손풀기 시간 목공실에 가서 열심히 댓살을 준비했지요.
그런데 살이 고르지 못해
나는데도 문제가 좀 있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바람 좋으면 날겠지요.
아이들이 가기 전에 힘들지 않을 만치 바람 한 번 불어주면 좋으련...
태현이는 연에 속도를 나타내는 그림을 넣었고,
현빈이는 현빈이 같이 생긴 예쁜 꽃들을,
주현이는 손풀기에서 그렸던 그릇을,
세훈이는 불새, 순규는 가오리를 그렸습니다.
가오리는 정말 가오리 같아서 다시 쳐다보게 했지요.
그런데 실을 먼저 묶어준 아이들이 심심해하기도 하고
다른 집(교실) 애들과 다투는 일도 있었다네요.
주현이가 다들 어느새 놀러가 버린 교실에서
샘이 하는 정리를 잘 도와주었다 합니다.
“선생님, 기다릴 게요, 점심 같이 먹어요.”
친해졌다는 거겠지요.

‘뚝딱뚝딱’.
성욱 경중 기륜 명한 준석 병완이가 망치질과 톱질을 했습니다.
언제부턴가 목공실을 들어오는 첫 시간은
기초를 다지기 위해 자격증 제도를 두었지요.
망치질은 모다 통과하였답니다.
이번 애들이 힘이 좀 딸리더라지요.
작은 애들이란 게 이런 시간에 실감이 난다는 겁니다.
“그래도 그 사이에도 실력이 늘데요.”
특히 성욱이가 그렇더랍니다.
명한이 정말 적극적으로 잘하고 재밌게 했는데,
톱질을 통과하지 못해 분통을 터뜨렸지요.
톱질 자격증은 딴 사람이 없다는 게 위로가 좀 됐으려나...
글집에 통과증을 그려주었는데 명한이는
애들 앞에 그 페이지를 펴서 자꾸 들고 다니더랍니다.
“망치질은 쉬웠는데 톱질은 자꾸 비뚤어져 어려웠어요.”
기륜이가 그랬지요.
“나무로 집을 짓는 목수 아저씨가 힘들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성욱이 입니다.
그런데 교실이 끝나고 모든 교실이 모여 펼쳐보이기를 하는데
병완이가 앞으로 안나오고 있는 겁니다.
“아직 안 썼어요.”
열심히 글집에 평가글을 쓰고 있었지요.
“이것 보세요.”
경중이가 다가와 제(자기) 글집을 보여주데요.
“암호예요.”
어찌나 성실하게 썼던지요.
“읽어줘.”
“안돼요. 그러면 암호가 아니잖아요.”

‘한땀두땀’.
지민 수정 은결이는 바느질을 하였습니다.
지민이는 매듭을 아주 잘 묶어요.
“잘하는구나.”
“엄마한테 배웠어요.”
지민이와 수정이는 작은 쿠션을 만들고,
은결이는 망사재질의 천으로 작은 주머니를 만들었지요.
“엄마 한복에 달아줄 거예요.”
자기가 만든 것을 다른 아이들 앞에 나와 펼쳐 보이는데
상범샘이 구경하다 그랬지요.
“저걸(쿠션을 가리키며) 엄마 한복에?”
주머니가 다른 이에 가려 안보였던 겝니다.
“상범샘은 엄마 한복에 쿠션을 단다네!”
그런 것도 다 재미가 되데요.
아이들이고 샘들이고
바느질 하며 친해져 잘 때까지 가까웠더라나요.

윤하 선호 소정 경이는 ‘다 좋다’에 들어갔습니다.
“달골 계곡에 가요.”
윤하와 경이가 제안했지요.
가는 길에 소정이는
떨어진 밤송이를 볼 때마다 까보려 해서 핀잔을 들었습니다.
다 쭉정이였으니 말입니다.
“너 자꾸 먹을 것 밝히면 돼지 된다.”
친한 친구 선호가 그랬지요.
“이미 돼지야.”
소정이 여유롭게 받습니다.
“그 다음엔 멧돼지로 진화해.”
경이의 말에도 소정이 웃으며 되받았지요.
“이미 멧돼지야.”
가서 얼음을 지치고 놀다
나뭇잎과 나뭇가지며를 주워왔답니다.
“그냥 나무뿌리 뽑으면 안 될까요?”
소정이는 게으름이 좀 일었던 걸까요?
돌아와 구멍 셋 난 벽돌 가운데에
위가 두 갈래로 갈라진 나뭇가지를 꽂고
갖가지 자연에서 얻어온 것을 잎으로 붙였지요.
멋있습디다.
형길샘은 어느 해 나무로 조각을 해서 물꼬에 남겼고,
어느 해는 장승을 만들어 대문 앞에 세우기도 했지요.
올 때마다 이곳을 장식하는 그입니다.

‘우리가락’.
아이들은 두드리는 걸 좋아합니다, 무지 좋아합니다.
민요 하나를 아카펠라로 금새 배우고
몸을 써서 풍물 장단을 익힌 뒤 엄청 두들겨댔지요.
‘말근 북소리’의 병완이가 현애샘이랑 징을 맡았는데,
징채가 망가졌더라나요.
말짱한 징채는 글쎄, 형길샘이 작은 징 안에 넣어두었단 걸
자정에 모여앉아 아이들 얘기를 할 때에야 알았지요.
“하지만 언제나 큰 감정 기복이 없는 병완이,
별 상처 없이 씩씩하게 칼싸움하러 갔습니다.”
현애샘이 하루 갈무리글에서 그리 쓰고 있었습니다.
내려가지도 않고 올라가지도 않고
딱 고만큼 즐거움을 표현하는 병완이지요.
“걔가 동생을 둘이나 거느린 장남이랩니다.”
역시 한 집안의 장남의 무게입니다요.
북을 든 아이들이 좀 무거워도 했지만,
덩덕궁이를 치며 진도 만들어보고
짧은 판굿도 해보지 않았겠어요.
그 놀라운 흡인력이라니...
그런데 이번 아이들이 저들은 아주 신나라 하는데
보기에는 큰 소란함이 아닙니다.
아마도 그것 역시 아이들이 잘아서 그런 모양입니다,
환호성을 질러도 질러도 넘치지가 않는.

점심에 원일이와 은영이가 다녀갔습니다.
올 겨울 첫 번째 계자를 함께 한 그들이지요.
보름샘이 아주 반가워라 합니다.
이번 아이들이 자잘한데, 크고 또랑또랑 하니(고학년들) 반갑더라나요.
그런 일도 있었더라지요.
마당에서도 누군가 싸웠는데 보름샘이 원일이에게 그랬대요.
“어떻게 좀 해봐.”
“막대기를 뺐죠.”
그러면서 막대기를 앗아 보름샘한테 넘겼다합니다.
“얘들은 어떡해?”
곁에서 또 어찌 어찌 도움을 주더라나요.
어제도 오늘도 저녁답에
똥을 지린 녀석, 오줌 한 판 싸는 녀석 뒷바라지가 수월치만은 않았던 보름샘한테
위로의 시간이었더라지요.

‘보글보글방’으로 넘어갑니다.
김치부침개는 새끼일꾼들 지윤 혜진 소연이 진행했는데
윤하 수정 현빈 순규 주현이가 들어갔습니다.
아이들이 잘 도와 쉽고 빠르게 끝났다지요
특히 주현이가 샘들을 많이 도왔답니다.
하도 말을 잘 들어주어 인상 깊기까지 했다나요.
먹고 배도 부르고 방도 따듯하고
둘러 앉아 얘기하니 재미도 있고 친해도 지고...
애들이 애들을 데리고 재미가 났던 게지요.

준영 상원 지인 수빈이는 김치수제비를 만들었지요.
누구라도 예뻐하지 않을 수 없는 수빈이지요.
나서서 뭐든 잘 도왔습니다.
말끝마다 도와 드릴까요 였지요.
한데모임이고 대동놀이고 모두가 모이는 자리에서 안내를 할 때
가장 크게, 그러나 시끄럽지 않고 예쁘게 대답하는 아이가 또 그 아이입니다.
열심히 듣고 열심히 하고,
저런 딸을 둔 부모는 또 얼마나 복일까요?
“그래도 동생한테는 막 대하던데요...”
“아무렴요. 그게 균형이지요. 어디 다 잘하기가 쉬운가요.”
준영이는 또 다른 면을 보였다나요.
“부탁도 잘 들어주고, 진지했어요.”
다른 방에서 만든 호떡이 배달되어 왔지요.
준영 상원이 앞에는 꿀호떡이,
수빈 지인 김치호떡이었습니다.
그런데 준영네는 김치호떡이, 수빈네는 꿀호떡이 먹고 싶었지요.
아, 그러면 바꾸면 되지,
별 게 다 말거리이고, 또 그게 재미인 아이들입니다.
아이들은 정말 끊임없이 재밌는 존재들이지요.
아니, 사람살이가 또한 그러하다마다요.

김치떡볶이는 선호 소정 경이 지민이 신청했습니다.
“말 잘 듣는 여자 애들이랑 같이 하니 좋던데요.”
상범샘이 그러데요.
소정이 너무 즐거이 보내서 곁에서 보기에도 좋았답니다.
별로 가볍지도 않은 그가 춤추듯 다닌다지요.
참 무던한 아이입니다.
이 방은 내내 샘들 나이를 짐작하고 알아맞히는 재미도 곁들여
떡볶이를 젓고 있었지요.

나연 유진 수연 성욱 지우가 김치볶음밥을 볶았습니다.
“아주 적극적으로, 모두 함께, 맛있게!”
한마디로 그랬답니다.
지우는 항상 누군가 이름을 써주었지만 오지 않았지요.
틈틈이 놀러만 옵니다.
와서는 손이 먼저 가지요, 젓가락보다.
그래도 보는 이도 유쾌하고 그도 즐거이 함께 하지요.
그런데 곁에서 핏자를 만들고 있었는데,
아이들이 늦어진 핏자가 왜 배달되지 않나 물으러 왔지요.
“왜 핏자 안줘요?”
“우리 배달 갈 사람이 없잖아. 하다 정신 없어서 놀러 보냈거든.”
핏자에 배달꾼이 없다하자
일찍 일을 끝낸 나연이와 유진이는
손을 번쩍 들고 나서 주었습니다.

준석 세훈 병완 명한 태현이는 김치핏자를 구웠지요.
류옥하다가 도움꾼으로 들어왔습니다.
오븐에 넣진 않았지만 우리식으로 만들어먹었지요.
“핏자법을 알게 되어 행복해요. 집에서도 살 수 있게 되어서.”
세훈이의 ‘행복’덕에 덩달아 행복해집니다.
그는 그런 아이이지요,
곁에서도 기분이 좋아지는.
일곱 살이던가, 처음 왔을 적 엄마 그립다고
신발장 앞에서 울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지요.
참말 많이 컸습니다.
준석 세훈 병환 명한 태현이는 상 하나를 차지하고 칼질을 하는데
다지라는 야채는 깍두기처럼 해놓고
서로 하는 양을 보고 말로 다지던 걸요.
병완이는 마주 앉은 하다형아 못잖게
잘게도 썰고 있었습니다.

김치호떡에는 새해 다희 기륜 경준 은결 지우가 들어갔지요.
반죽이 질어서 손에서 떨어지질 않아 애를 먹었습니다.
1학년 기륜이와 경중이는 끊임없이 투덜대고
일곱 살 은결이가 그걸 또 조용조용 잘 받아치고 있는데
그런 구경거리가 없었지요.
은결이는 혼자 왔어도 어찌나 씩씩하게 잘 지내는지,
이곳에서 오래전부터 살았던 아이처럼 보내고 있답니다.
하기야 어디 가서라도 그럴 아이지요.
“(이러저러해서) 맛없겠다.”
기륜이와 경중이가 그렇게 말하면 바로 은결이 말이 이어집니다.
다구지거나 공격적인 어투가 전혀 아니라
자분자분 큰 누나가 말하듯 말입니다.
“그렇지 않아. 이건 우리가 만들었으니까...”
그 은결이, 자그만 지우도 잘 챙겼지요.
근영샘은 6학년이 없음을 뼈저리게 느낀 시간이었다 합니다.
그럼 기륜이랑 경중이, 둘이 그리 정신을 쏙 빼놨단 말인가요.
나머지는 새해랑 다희 은결인 걸...
“보글보글방이나 열린교실을 하면
제가 요리 쪽을 관리하고 아이들 관리는 6학년들한테 맡기는데...”
초등 최고학년인 6학년 형님 말은
아이들에게 샘들보다 더 잘 먹히기도 하지요.

열린교실과 보글보글방을 하고 보면,
어쩜 그렇게 끼리끼리 모이게 되는 걸까요.
자기 성격 따라, 친한 아이들 따라 찾아들게 되니까요.
그런 아이들을 바라보는 일,
낯설게 만났다가 조금씩 서로를 읽어가는 그 느낌도 참 좋습니다.

오늘도 저녁 밥을 먹은 뒤
남자애들은 열심히 대나무 막대로 칼싸움을 했습니다.
그 칼, 집에도 가져간다지요.
지난번에도 버스에, 기차에 실려 갔더랬습니다.
영동역에 섰는데 예제 죽창이 삐죽삐죽 솟았더라나요.
집에 가서는 쓰일 일 없을 것들인데,
여기 두면 무엇에라도 잘 쓰일 것을...
그런데 대반란이 있었습니다.
첫날 큰 형아라고 태현이가 대장으로 추켜세워지더니
그래서 그 아래로 총사령관 장군 무사 같은 계급서열이 만들어지더니만
대장이 부하를 너무 함부로 대했던 겝니다.
“딴 데다 성을 쌓기로 했어요.”

‘대동놀이’ 하러 고래방에 건너갔지요.
어제도 오늘도 보름샘은 지우를 데리고 화장실을 다녀오느라
대동놀이를 처음부터 끝까지 같이 못해 안타까워했습니다.
크게 하나 되어 노는 놀이는
우리의 맺힌 무언가를 한껏 풀어내주는 기제가 되거든요,
애고 어른이고.
하지만 지우의 따름을 받는 걸로 위로한대지요.
아이들은 동물적인 감각으로 자기를 받아주는 이를 찾아낸답니다.

집을 멀리 떠나온 어린 아이들은
산골의 화장실을 가장 어려워합니다.
그런데 이곳의 샘들 정말 대단하지요.
오줌 싼 아이, 똥 지린 아이,
갈아입히고 씻기고 기꺼이 합니다.
계자를 통해 그런 어른들을 만나 자극을 받습니다.
계자를 사랑하는 또 한 까닭이지요.
이곳에 모이는 어느 누구도 계자를 통해 돈이라든가 하는 댓가를 받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이 자원봉사자지요.
기꺼운 헌신을 통해 아이들을 만나며
우리가 더 깊이 배우는 것이 가장 큰 보상이랍니다.

다음 ‘한데모임’이 있었습니다.
앞에 한 올 겨울 두 계자에서 가장 크게 아쉬웠던 건
노래가 풍성하지 못했던 것이었습니다.
계자는 노래들이 주는 질감만 해도 두툼하거든요.
그래서 이 겨울이 다 하기 전 노래 좀 부르려지요, 이번 계자는.
노래도 부르고, 손말도 배우고(아이들이 손말을 참 재밌어 하고 열심히 합니다.),
잃어버린 물건도 찾고 다른 이에게 하고픈 말도 하고
서로에게 필요한 일을 의논도 합니다.

겨울 밤하늘에도 별이 많기도 하지요.
“밤에 화장실에 가려고 숨꼬방에서 나왔을 때...”
경이는 쏟아져 내린 별로 벅하게 행복했던 모양이었습니다.
그 별이 오늘 밤도 쏟아지고
저 서쪽 하늘엔 초승달이 곱게도 나타났지요.
아이들이 잠자리로 가고 어른들이 모이면 불가에서
아침부터 계자 하루를 다시 살 듯 찬찬히 지나간 시간 속의
아이들을 하나 하나 짚어봅니다.
“아이들과 점점 친해지구 그러는 동안 시간이 빠르게 가요.”
“시간이 너무 빨리 가요.”
“이상하고 신기한 점이 집에서는 (아침에) 떠지지 않던 눈이
물꼬에 오니깐 자연스레 떠져요, 비록 힘들긴 하지만.”
새끼일꾼 소연 지윤 혜진이입니다.
현애샘의 얘기는 오늘도 많은 생각을 달게 하네요.
5학년 실과 과목에 계란 삶기와 감자 삶기가 있습니다.
그런데 실습실은 가고 싶어 하지 않는 공간이라지요,
잘 쓰지 않는 창고 같은 느낌이라.
거기 있는 그릇도 지저분하고,
그래서 아는 샘들은 아이들에게 집에서 그릇을 가져오게 하여 교실에서 한다네요.
“그래서 물꼬 생각 많이 났어요.”
유진이가 학교에서 하는 것보다 재밌다더랍니다.
“샘이 같이 해서 좋았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아이들한텐(5학년 담임이지요.) 미안하더라지요.
“불 때문에 잔뜩 긴장하고, 사고날까봐,
누가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나 앞에서 지켜보기만 해야 하는데...”
여기랑 다른 뭔가 위험이 따르는 다른 상황이 있는가 했더니
꼭 같은 재료인데 말입니다.
“여기야 샘들이 많잖아.”
그래요, 도움샘들이 있어야 합니다!
단지 이것이 계자, 그러니까 일시적으로 하는 캠프이기 때문이 아니라
학급당 서른의 규모라면 일상적으로도 도움샘이 늘 함께 해야
장애통합수업도 할 수 있잖을지요.

물꼬 일을 해오는 동안
제 아이도 많이 자랐습니다.
천기저귀를 썼으므로 계자를 올 때면 배낭이 몽땅 기저귀이기도 했지요.
계자 하루 일정을 새벽 두시쯤 끝내면
그제야 아이 기저귀를 빨아 널고는 하였습니다.
지금은 그래도 여기 사니 불편하더라도 살림꼴은 갖추었지만
서울에 살면서 이곳으로 계자 때마다 올 땐 추위도 더했지요.
차편도 원활하지 않아 저기 흘목에서부터 배낭을 지고
아이를 앞에 매고 샘들이 하나씩 꺼내주는 옷으로 아이를 감싸가며
2킬로미터가 다 되는 길을 걸어오고는 하였습니다.
참 오래된 얘기지요.
두어 개의 기억 말고는 한 것 없이 얻어 먹는 밥처럼
애쓴 것도 없이 아이가 열 살에 이르렀습니다.
오늘 그 아이가 젖어 쌓여있던 그릇들을 행주로 닦고 있었지요.
계자를 하는 동안 아궁이에 불이 다 잘 마무리 되었나 살펴 놓고
저(자기) 혼자 챙겨서 불 끄고 잡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커갑니다.
멋있고 괜찮고 자랑스런 아이는 아닐지 몰라도
이곳을 둘러싼 것들이 보여주는 생명의 길을 잘 좇아가고 있지요.
자랄수록 나아집니다.
아이들, 그리 걱정할 게 아닙니다
(물론 그를 둘러싼 ‘환경’은 너무나 중요한 문제이겠지만).
갈수록 아이들이 걱정이 안 됩니다.
미운 건 미운 거고 못마땅한 건 못마땅한 거지,
그게 그 존재에 대한 전면적인 부정인 것도 아니고.
아이들, 저들이 큽니다.
제발, 믿고 있으면 됩니다.
그래서 갈수록 아이들과 만나는 일이 즐겁습니다.
그냥 같이 잘 있으면 되니까요,
그들이 낭떠러지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지키기만 하면 되니까요.
무엇을 가르친단 말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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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8 117 계자 나흗날, 2007. 1.25.나무날. 맑음 옥영경 2007-01-30 1363
1127 117 계자 사흗날, 2007. 1.24.물날. 맑음 2007-01-27 1284
» 117 계자 이튿날, 2007. 1.23.불날. 맑기가 시원찮은 옥영경 2007-01-25 1308
1125 117 계자 여는 날, 2007. 1.22.달날. 흐리더니 맑아지다 옥영경 2007-01-24 1397
1124 2007. 1.21.해날. 맑음 / 117 계자 미리모임 옥영경 2007-01-23 1407
1123 2007. 1.19-21.쇠-해날. 청아한 하늘 / 너름새 겨울 전수 옥영경 2007-01-22 1422
1122 2007. 1.16-18.불-나무날. 맑았던 날들 옥영경 2007-01-20 1308
1121 2007. 1.15.달날. 맑음 옥영경 2007-01-19 1151
1120 2007. 1.14.해날. 맑음 옥영경 2007-01-19 1177
1119 2007. 1.13.흙날. 맑았다데요. 옥영경 2007-01-19 1099
1118 116 계자 닫는날, 2007. 1.12.쇠날. 흐려지는 저녁 옥영경 2007-01-16 1237
1117 116 계자 닷샛날, 2007. 1.11.나무날 / 바우산 옥영경 2007-01-16 17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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