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11.10.쇠날. 맑음

조회 수 1148 추천 수 0 2006.11.16 09:26:00

2006.11.10.쇠날. 맑음


“더 주문할 수 있어요?”
오늘 달골 토스트가게엔 불이 났습니다.
아이들은 참말 많이도 먹습니다.
주에 한 차례 있는 기숙사 밥상이니 더할 겝니다.
큰 접시에 잡채덮밥을 조금씩 놓고
굵은 토스트 빵을 두 조각,
게다 삶은 달걀을 하나씩 먹고도 주문이 쏟아졌습니다.
주문을 맡은 정민이는
계산을 잘못해 원성을 듣기도 하였지요.
달골에서 내려갈 적마다 주워가는 감을
오늘은 나무에까지 올라가 굳이 따 내려들 들고 갔답니다.
생명이 넘치는 아침입니다.

호숫가에 갔습니다.
‘호숫가나무’ 아래 깊은 명상을 하는 경건의 시간이지요.
오늘은 시간 반이나 걸리는 대장정이었습니다.
간밤엔 자료를 정리하느라 새벽이 올 때에야 잠이 들었지요.
‘바퀴벌레’에 대한 것들을 여러 책에서 찾았습니다.
정말 바퀴벌레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구역질나는 존재일까요?
그들이 알레르기의 원인이라는 건 얼마나 신빙성이 있는 걸까요?
(실제 알레르기가 더 빈번한 까닭은 환경오염 탓이 크다지 않던가요)
그들은 쏘지도 않고
(그들이 공격을 하려해서가 아니라
방향조절을 잘못해서 일어나는 충돌이라지요)
질병 가운데 바퀴벌레와 직접 관련이 있는 것으로 밝혀진 것은 없다는데
왜 우리는 그토록 그들을 두려워하고 미워하고 꺼리는 것일까요?
아주 작은 음식 부스러기조차 놓치지 않는다는 것이
그들이 비난받을 일일까요?
인류보다 더 오래 지구 위에 살아온 그들을 통해
인간에게 닥치고 있는 현재의 몰살위기로부터 해결법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고
뛰어난 위험 감지 능력으로부터 우리가 배울 것도 많을 것입니다.
몇 종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적도부근에 살면서
식물들의 가루받이도 돕고 쓰레기도 재활용하며
다른 동물에게 먹이도 제공하는 그들입니다.
아이들은 바퀴벌레와 깊이 교감한 이들의 실화를 들려주자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4천여 종의 바퀴벌레 가운데 말입니다,
사람과 사는 서너 종을 죽이는데 쓰이는 미국의 살충제가
전체 살충제의 4분의 1이나 된다고 합니다.”
그들이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동안
고양이처럼 자기를 핥으며 몸단장을 하고 있다는 글도 있었지요.
바퀴벌레에 대한 우리의 몰이해와 거부를 통해
우리에게 학습된 타존재에 대한 근거 없는 오해의 실체를 확인하고
다른 존재에 대해 환기하며 그들의 세계에 참여하고 싶었습니다.
진정 이 우주 속에 함께 살고 있는 것들을 깊이 이해하며
동시에 우리를 고양시키고 싶었습니다.

숲에 들었습니다.
창욱이의 안내로 ‘노박덩굴’을 보러 갔고,
‘까마귀밥여름나무’가 남겨놓은 빨간열매를 만났으며
잎 가장자리가 불규칙한 톱니에 갈라지는 눈모양을 보고
‘분꽃나무’도 찾아냈습니다.
낙엽 위에서 동화도 들려주었지요.


2007학년도를 앞둔 부모면담이 이어졌습니다.
“학습이 부족할 것이 걱정돼요.”
그가 써낸 글에서도 그러했듯 다시 그 얘기가 거론되었습니다.
물꼬가 생각하는 학습이 제도학교와 어찌 다른지,
우리는 배움을 어떻게 구현해갈려고 하는지,
물꼬가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냉정하게 들려주었고
나머지는 그의 선택의 몫으로 남겨두었지요.
입학을 위해 궁금한 것들을 충분히 물어야 하는 자리이니
아주 사적인 얘기들도 오가게 됩니다.
“뭘 먹고 사세요?”
“사람이 사는데 그렇게 많은 게 필요하지 않아요.”
지난 번 다른 분과의 면담에서도 나온 질문이었고, 역시 같은 대답을 했지요.
실질적으로 이곳에서 먹고 사는 일에 대해서도 물론 들려줍니다.
공동체식구로 들어오려는 이들이므로 더욱 궁금할 겝니다.
“농사짓고 학교살림(2004학년도부터 공동체살림과 분리)에서 같이 먹고 하지요.”
공동체식구는 재정결합이 여러 방식이 있습니다.
자기 소유를 유지할 수도 있고 절충도 있겠으며
저같이 사적소유가 없는 경우도 있겠지요.
“자기 소유가 따로 있지 않은 경우라면
당연히 공동체살림(학교살림이 아니라)으로 살아가지요.
한 집안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 같습니다.”
달마다 5만원의 용돈을 받고 의료비와 보험은 공동체살림에서 낸다,
차량유지는 학교에서 하고,
그밖에 필요한 게 있을 때는 당연 따로 돈이 있지 않으니
공동체살림에 도움을 청한다,
집안에 살림이 궁하면 제약이 있듯
공동체살림이 학교에 기숙사를 지어주면서 빚까지 안고 있는 지금이니
당연히 자신의 필요도 억제된다,
그런 대답들이 갔네요.
오늘 면담한 이는 더 나아가 덧붙인 물음이 있었습니다.
“학교에 돈이 없다고 하면서 외국도 자주 나가시고...
무슨 돈으로 하나, 친정이 부자인가...”
많은 이들이 고개를 갸우뚱하더라데요.
사람들이 그런 물음을 가질 수도 있겠구나 가벼이 받았습니다.
물으면 대답하면 될 일이지요.
2004년 개교한 이래로 공동체살림과 학교살림이 분리되면서
학교로부터 외국행을 지원받은 바는 분명히, 전혀 없습니다.
이곳 누구라도 논두렁들이 도와주는 걸 그리 쓸 사람이 있을 리 없지요.
가난한 살림을 수년 맡고 있는 상범샘의 반듯함이
굳이 감사제도를 두지 않아도 될 만치 잘 해내고 있구요.
“이번에 아이랑 미국가면서도 공동체(학교가 아니라)에서 30만원 받아갔어요.”
일본으로 간 ‘고건축과 도자공부’행은 아는 분 회사에서 지원금을 받았고,
하와이행 경비는 남편 학회에서 나왔고...
“지난 학기에도, 이번 겨울에도 학회에 같이 갈 기회가 있는데,
물론 그쪽에서 여비를 대지요, 물꼬에 묶여있으니 못가는 거지요.
그런데 돈으로는 안주데...
이번 미국행은 남편이 티켓을 끊어줬고,
태국에 위파사나 명상을 갈 때는, 그땐 공동체가 여유가 있던 때이기도 했지요,
공동체로부터 지원을 받았습니다.”
“그래도 개인적으로 필요한 것도 있으실 텐데...”
“그밖에 때마다 아이 입을 거리며 먹을거리,
그리고 필요한 것들을 보급하는 선배들도 있긴 하네요.
물꼬가 단순히 흔히 다른 대안학교처럼 부모결합체학교가 아니기에,
이곳이 지닌 ‘공공성’에 대한 지지라고 생각합니다.”
산골살이가 그닥 필요한 게 많지도 않거니와
(가진 게 없으니 무어나 요긴하긴 하지만)
필요하더라도 그게 없다 하여 힘들 것도 없는 삶입니다.
그래서 더 부하게 보이나 봅니다.
자발적 가난이라 이름 하던가요, 누가 가라고 한 길이 아닙니다.
어쨌든 학교 서무행정의 이금제엄마나 공동체재정담당 상범샘이
살림을 잘 꾸리고 그것을 공개하는 자리가 적절히 있어야겠다는 생각도 들데요,
물론 내부에서야 그런 제도가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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