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11.14.불날. 큰 바람

조회 수 1254 추천 수 0 2006.11.20 12:10:00

2006.11.14.불날. 큰 바람


지도에도 잘 없는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들을 살펴보는 사회시간이었지요.
바티칸 씨티에서부터 모나코, 나우루, 투발루, 산마리노...
“리히텐 슈타인은 그 이름에서 벌써 어디쯤에 있을지 짐작가지 않아요?”
마셜제도, 세인트크리스토퍼 네비스, 세이셜, 몰디브, 몰타...
신생독립국들이 몰려있는 중앙아메리카에 위치한 나라가 아무래도 많았지요.
그레나다, 세인트빈™V트 그레나딘, 바베이도스, 앤티가다부다, 안도라, 팔라우...
사회과부도에서 어디쯤에 있나도 살펴보고
그 나라는 무엇으로 먹고 사는지도 알아보았습니다.
사회시간이 어떤 시간보다 재밌다는 아이들에게 다행이라고 하였더니
큰 녀석들이 입을 삐죽이며 남의 학교 샘들을 싸잡아 슬쩍 비난했지요.
“재미없게 가르치니까 그렇지.”
사회가 어려운 과목일 수 있다는 언질을 너무 강하게 주었던가 봅니다.
괜히 다른 학교 샘들을 의도하지 않게 욕먹인 꼴이 되고 말았지요.
“지리는 원래 재밌어.”
다다음 학기에 다가올 ‘정치’는 아무래도 쉽잖을 텐데...

국화시간엔 한 쪽에선 작품을 다듬느라 정신이 없고
또 다른 쪽에선 다 마친 능소화였으나 너무 상투적이어 다시 그려보고 있었으며
한 편에선 먹으로 가지치기를 익히고 있었습니다.
단소랑 시간이 바뀐 연극놀이에선
극본 만들기가 이어졌지요.
오늘 우리가락은 ‘길군악’을 들어갔습니다.
영남사물놀이 가락 가운데 처음 등장하는 것이지만
우린 차례를 좀 바꾸어 익히기 쉬운 것부터 하고 있었지요.
“입장단이 되면 악기도 돼.”
신기가 거침없이 입장단으로 가락을 외워
모두의 박수를 받았습니다.
짝드름도 조금 더 진도를 나갔지요.
지난 시간, 우리가락이 끝난 뒤 6학년 둘에게 따로 좀 익히게 하였더니
오늘 그 둘을 보며 다른 아이들이 금새 가락을 이해하였답니다.
“은행을 좀 주울까?”
해가 짧으니 ‘논밭에서’도 시간이 길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우두두 나가서 한 바가지씩 후두둑 해치우고 들어왔지요.

1학년들은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고
기숙사 아이들은 가마솥방 저녁밥상 앞으로 몰려갔습니다.
연습을 하던 고래방을 정리하고 나오는데
저 앞에서 신기가 부릅니다.
“옥샘, ‘덩 따쿵따쿵 덩’, 맞지요?”
“덩따따 쿵따따 덩다쿵딴데...”
“아니, 앞에요, 덩... 맞지요?”
“아, 응.”
대답을 듣고는 옆에 서있는 종훈이에게 그러데요.
“봐.”
조막만한 녀석들이 그러고 있는데,
그 예뿐 놈들을 누군들 그냥 지나칠까요,
달려가 꼬옥 안아주고 보냈답니다.

달골에 올라와 저녁참을 놓고 둘러앉았습니다.
2층에서들 내려오기 전 정민이가 무언가 실수를 하고
여느 때처럼 또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지요.
“아이 참, 너 정말 문제 있어.”
승찬이가 정민이를 향해 한 소리를 하자
너도나도 무슨 포탄세례를 퍼붓듯 하였습니다.
“어느 때고 집중을 안 해.”
동희도 퍽, 한 소리 보냅니다.
“자기가 해놓고도 자기는 상관없다는 표정이고...”
나현이도 한마디 더했지요.
주위를 둘러볼 줄 모른다,
너무 많이 싸운다,
다른 사람 생각을 안 한다...
(이러니 우리 정민이가 대단히 문제가 있는 양 들릴 수도 있겠습니다.
아니요, 다만 오늘 도마에 오른 물고기였을 뿐입니다요)
정민이랑 툭하면 티격태격하는 류옥하다도 가만 안 있습니다.
“맨날 시비 걸고...”
그러자 이제 화살은 류옥하다한테로 갑니다.
“하다 너도, 아무리 옳은 말을 해도 그렇게 짜증내면서 말하면 짜증나.”
곁에 있는 승찬이부터 한 소리 했지요.
그런데 이 아이들 너무 잘 말하고 너무 잘 받고 있었습니다.
정민이도 하다도 자신들의 문제를 스스로 잘 알고 있었고,
아이들도 그저 비난이나 하자고 덤빈 게 아니라
다른 이들을 불편케 하는 그들의 한 면을 잘 말하고 싶었던 거지요.
내가 그렇구나, 하고 고개 주억거리고 있었습니다.
보기 좋습디다.
어른들이 하는 잔소리보다 더 귀에 닿았을 겝니다.

자기 전 읽어주는 동화 대신에 오페라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푸치니의 ‘라보엠’을 먼저 들려두었던 터라
무슨 이야기가 들어있는 걸까 잔뜩 기대하고 있었지요.
‘그대의 찬 손’이나 ‘내 이름은 미미’가 어느 대목에서 나오는지 알고
다시 들려달라고도 하였습니다.
미미의 죽음에 얼마나들 안타까워하던지...

어제 마을 식구들이 곡성 길농원에 갔습니다.
물꼬에 귀한 유기농 사과를 나눠주는 곳이지요.
길이 머니 하룻밤은 묵어야 일이라도 도울 수 있겠다 하고
오늘들 늦게 돌아온다 하였습니다.
‘아차...’
늦은 밤 베란다에 나가 별을 보고 들어오는데,
그제야 아궁이가 생각났습니다.
이렇게 바람 거친 날,
어둔 집 식은 방에 곤한 몸을 들이며 얼마나 서글플까요...
누구라도 불을 지펴주었음 좋겠는데,
다들 정신없이 보내느라 챙겼으려나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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