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11.16.나무날. 맑음

조회 수 1108 추천 수 0 2006.11.20 12:12:00

2006.11.16.나무날. 맑음


‘겨울눈’을 보러 갔습니다.
“옥샘은 지팡이가 있어야 하는데...”
창욱이 입니다.
아이들은 늘 제 아픈 무릎을 배려해줍니다.
무릎을 굽힐 수가 없어 혼자서만 신발장에 신을 넣지 못하고 있었던 재작년에도
아이들에게만 하라 하고 자신은 하지 않는다고 어떤 어른이 비난할 적
정작 아이들이 더 이해해주던 일도 있었지요.
아이들한테 늘 놀랍습니다.
‘용서와 화해’에 어려움을 느낄 때에도
그들이 얼마나 훌륭한 스승인지...
“여기 어때요?”
“오늘은 내내 숲을 돌자.”
늘 우리들의 명상길인 ‘티벳길’의 어디메쯤에 거점을 두고 움직이는데
오늘은 숲 구석구석을 돌았습니다.
아이들 손에도 죄 대나무 지팡이가 들려있었지요.
언제들 다 마련을 했답니까.
볕 좋은 넘의 집 잘 쓴 묏등에선
들고 간 참도 맛나게 먹었지요.
늦여름부터 가을 사이에 생겼던 눈은
이 겨울을 넘기고 싹이 될 것입니다.
나뭇가지에 바짝 붙은 게 있는가 하면
아주 작아 귀엽다고 몇 번을 들여다보게 하는 게 있고
세 갈래로 갈라진 것도 있었으며
아주 커다랗게 멍울져 있는 것도 있었습니다.
“아얏!”
신기의 고함소리입니다.
앞선 아이들이 얼른 돌아서서 달려갔지요.
나뭇가지가 오른 쪽 눈에 튕겨졌습니다.
쌍꺼풀 쪽에 작은 상처를 입었지요,
다행입니다.
“눈이었으면 어쩔 뻔했누...”
또 하늘이 고마웠지요.
늪을 만났습니다.
“여기 짚어.”
창욱이는 뒤에 오는 종훈이에게 발 디딜 곳을 알려줍니다.
“옥샘, 이것 봐요.”
종훈이는 꼬래비로 가면서도 뭔가 눈에 들면 손에 들고서
꼭 뒤를 돌아보며 묻는답니다, 느릿느릿.
겨울이 오는 숲도 봄이 오는 숲 못지않게 수런거린다는 걸
우리들은 알지요...

하하, 오늘은 모두가 수영장 큰 풀에 들었습니다.
종훈이랑 신기랑 창욱이도 말입니다.
“깊은 물에서 해서 좋았어요.”
창욱이지요.
“옥샘, 봤어요?”
자랑하는 종훈이입니다.
“재밌었어요.”
뿌듯해하는 신기였습니다.
승찬이는 쉬지 않고 하는 것을 연습해 곧잘 하게 되었다 하고,
령이는 수영시간이 정말이지 짧다 아쉬워합니다.
“샘한테 매달려가기 재밌었어요.”
류옥하다가 샘한테 매달려 가는데
승찬이랑 령이도 같이 붙어 저만치 가고 있었지요.
우리 아이들에게 잘하면 그런 고마운 일이 없습니다.
다른 바깥샘들도 그러하지만,
정성을 다하는 승환샘이 너무나 고맙습니다.
돌아오는 차에선 큰 녀석들과 오랜만에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지요.
“옥샘이랑 재밌게 얘기 나누었어요.”
저도(자기도) 인상 깊은 시간이었던지
승찬이가 저녁 한데모임에서 그랬답니다.

달골에서 책 하나를 같이들 돌려 읽고 얘기를 나누기로 한 시간이
자꾸 더뎌지고 있었습니다.
“책 좀 읽어.”
“그러니까 맨날 글자도 틀리고...”
정민이가 며칠째 아직 덜 읽었더랬지요.
형아들이 한 소리를 했습니다.
“그러지 말고 읽도록 좀 챙겨주는 건 어때?”
그러며 정민이 어깨를 끌어안고 입을 앙다물며 말했지요.
“정민아, 우리 이번 겨울에 맞춤법을 잘 익혀서 저런 소리 듣지 말자.”
정민이랑 올 겨울엔 할 일이 많습니다.
얼음을 깨고 하는 낚시를 해 본 적이 없다는 그랑
빙어 낚시도 가야 하고
책도 많이 읽어야 하고...

오늘은 저녁참을 너무 푸지게 먹었나 봅니다.
아이들이 한 밤에 여러 번 해우소를 들락거리네요.
자고 있는 저 아이들이
자칫 사랑하는데 실족하는 저를 다시 세워주고 세워줍니다.
이렇게 글을 쓰고 앉은 늦은 밤, 아이들의 기척을 느끼며
저들과 같이 사는 일이 고맙고 또 고맙습니다.


어제 오신 논두렁분이 아침을 들고 바삐 떠나셨네요.
“물꼬 움직임을 다 꿰고 계신가 봐.”
손님 맞기 좋은 물날에 오셨지요.
트렁크와 뒷좌석에서 이따따만한 상자를 다섯 개나 꺼내셨더랬습니다.
“이게 다 들어가요?”
동그란 선풍기처럼 생긴 난방기였지요.
오실 때마다 이러면 오시는 걸음이 무겁지요, 맞는 걸음도.
“우리는 전기 잘 안 써요.”
다시 그러지 마시라 야박하게 말합니다.
“이미 집에서도 욕먹고 왔어요.”
첫째 그곳에 이것이 정말 필요한 지 잘 모르지 않느냐,
둘째 부담스러워하지 않겠느냐,
벌써 들을 소리 다 들었다셨습니다.
아주 오래 전 아이 옷을 사서 보내주신 적도 있었지요.
“아이 옷 사는 게 젤 아깝더라.”
모질게 말해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도 하였건만...
하지만, 마치 쌀 들여놓고 김장을 마친 겨울 살림처럼
마음 푹함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닥칠 추위에 어찌나 든든하던지요.
마침 손이 필요한 일이 있다며 묵어가실 수 있는지 여쭈었더이다.
사실은 어르신의 지혜를 얻고픈 까닭이 더 컸지요.
달골 창고동에 널려있는 가구들을 상범샘, 젊은 할아버지랑 자리잡아주셨고,
늦도록 좋은 말씀들로 길눈을 밝혀주셨습니다.
“행운아저씨!”
아이들이 이제 그리 부르기로 하였지요.
행운을 준다는 뜻도 있겠으나
사실은 당신의 호가 행운(行雲)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버님’, ‘아버님’이 뭐야? 시댁 어르신도 아니고...”
무열이와 승렬이의 아버지라 물꼬에서도 그리 부르다가
문득 잦은 만남에는 다른 호칭이 필요치 않을까 싶었는데
호를 일러주셨지요.
그리하여 논두렁 정인철님은 예서 행운님으로 불리우게 되셨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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