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11.24.쇠날. 속리산 천황봉 1,058m

조회 수 1576 추천 수 0 2006.11.27 14:14:00

2006.11.24.쇠날. 속리산 천황봉 1,058m


달구지를 끌고 가던 소가 스님을 보고
불법을 중히 여겨 무릎을 꿇고 울었다지요.
“하물며 짐승도 저러하거늘...”하며
달구지를 탔던 이가 스스로 머리를 자른 뒤
세속(俗)을 여의(離)고 입산했다는 속리산.
거기 올랐습니다.
2006학년도 가을학기 갈무리 산오름입니다.
백두대간 11구간 21소구간.
21소구간이야 갈령삼거리에서 속리산을 거쳐 늘재에 이르는 길이나
지난 봄학기 시작과 끝에 대간 길을 밟기도 해봤으니
이번은 능선을 따르는 길이 아니라
산을 올랐다 내려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천황봉(1,058m)에서 문장대(1,054m) 능선길은 백두대간에 속하는 거지요.
“그래, 날씨가 어떻답디까?”
물꼬의 기상예보계인 젊은 할아버지께 여쭈었습니다.
큰 비가 쏟아진다 하여도 길을 떠났을 테지만
미리 요리조리 가늠은 필요하니까.
날이 말짱하다고는 하였다는데,
또 어떨지요.
법주사-세심정-천황봉-신선대-문장대-신선대-경업대-세심정-법주사,
주차장에서부터 따지자면 무려 17km.
길이 좋아 걷는 길을 어느 때보다 길게 잡았습니다.
계획대로 오늘 우리는 해낼 수 있을지요?

“일찍 출발해서...”
그렇지만 늘 막판에는 조금이라도 더 재워 떠나자 하게 됩니다.
그래서 달골에서 6시 40분에 일어나 학교를 내려가 따뜻하게 배를 채우고
정각 8시 길을 나섰지요.
김점곤아빠가 운전도우미로 더해져
차 두 대로 움직였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바로 그 소달구지,
진표율사 앞에서 머리를 조아렸다는 소가 끌었던 바로 그 소달구지를 만났습니다.
장재삼거리에 이를 즈음이었던가,
노부부가 대로를 소달구지 타고 길 한가운데로 오고 있는데
차든 뭐든 전혀 개의치 않고 한가로이,
마치 사라진 옛 시대의 어디메쯤 와 있다는 착각이 들만치,
차를 멀찍이 돌며 모두 목을 빼고 또 빼었습니다.
우리가 만난 첫 번째 기적이었지요.

속리산들머리의 한 숙소는 해마다 여름 전국교사풍물모임이 있습니다.
몇 차례 다닌 길인데 갈 때마다 다른 길로 갔고,
새로 찾아낸 오늘 길이 가장 가까운 거리로
1시간 10분이면 족할 길이었으나 쉬엄쉬엄 간 터라
9시 30분에야 속리산 들머리 주차장에 도착,
전체 개념도를 확인하고 매표소에 이르니 9시 50분입니다.
“기분 좋게 가요.”
엊저녁 잠자리에 들기 전 승찬이가 그랬지요.
‘두레상’에서 한 어른들의 걱정이 있은 뒤
정말 나서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마음이 갈래졌던 걸 염두에 둔 말이었을 겝니다.
예, 기분 좋게 가려구요.
법주사 앞에서 산림청에서 나온 직원들을 만났지요.
산불조심 홍보를 한다면 아이들에게 호루라기를 선물했습니다.
신바람들이 났지요.
우리의 올 마지막 산오름 축하 선물입니다려.

언제 우리가 법주사를 또 오려나요.
내려올 땐 어림도 없을 시각이지요.
화순 쌍봉사의 대웅전으로 쓰이든 삼층 목조탑이 1984년 불에 탄 뒤로
유일하게 조선시대 목탑, 그러니까 한국의 목조탑의 유일한 실례가 되는
팔상전을 그리하야 보게 되었더랍니다.
내부에 석가여래의 일생을 여덟 폭의 그림에 담은 팔상도가 있다하여 팔상전이던가요.
통일신라시대 석조 예술의 걸작품 쌍사자석등 앞에도 머무릅니다.
사자 하나는 입을 벌리고 하나는 입을 다물었지요.
앞은 참선을, 뒤는 염불과 경학을 상징한다 하니
꾸준히 정진하면 성불한다는 뜻이겠습니다.
앞은 양이어 근육이 불뚝불뚝하고 갈기가 있었으며
뒤는 음이어 팔뚝이 부드러웠지요.
다른 보물도 많았으나,
특히 우리 아이들이 관심 있어 하는 마애불을 보여주고 싶었으나,
더는 지체할 수 없어 훗날을 기약했습니다.

10시 30분 산행을 시작합니다.
문장대와 천황봉 길로 갈라지는 세심정께까지의 2.6km는
산길이라 부를 건 못되지요.
경치야 충분히 산이나 대로입니다.
태실 앞에서 겉 윗도리를 벗어 가방에 다 비끄러매주고
신발 끈을 고쳐 매며 단도리를 하였습니다.
본격적인 오름인 게지요.
“어!”
겨우살이가 떨어져 있습니다.
뚤레거려 보지요.
누군가 꺾어가다 놓쳤나 봅니다,
길을 오르다보면 어덴가에서 만나겠지요.
상환암에 이릅니다.
은폭동폭포를 지나며
세조의 피부병을 약사여래가 나타나 이 물로 고쳐주었다는 전설도 들려주는데
학이 살았다는 학소대는 어느새 지나쳐버렸네요.
잠시 목을 축입니다.
저들끼리 재촉들을 하네요,
이러다 정상도 못 밟아보겠다는 둥,
이왕이면 계획한대로 다 하자는 둥.
어느새 능선 길에 올랐습니다.
“상환석문!”
입이 벌어집니다.
능선 아래쪽으로 내려서니 넓은 바위에서 학소대가 보였지요.
맞은편은 장쾌하기도 한 바위절벽입니다.
비로봉과 천황봉으로 갈라지는 지점,
능선 끝에 남아 전망대를 이루는 바위,
그 위에는 또 다른 바위가 오도카니 남쪽을 향해 몸을 숙여 절을 하는
배석대가 바로 저것입니다.
이제부터 산죽군락을 지나네요.
“저기가 정상이야, 천황봉.”
헬기장에서 주봉을 쳐다봅니다.
“에게...”
저들 눈에도 여태 오른 산들의 주봉과 벌써 차이가 난단 말이지요.
"하지만 그 정상에 서 보렴."
주봉치고는 정상이 너무 옹색하다 싶지만 그게 다가 아니랍니다.

금방 정상입니다.
서쪽으로 문장대, 관음봉, 묘봉이 주루룩 한 눈에 들고
남쪽으로 형제봉 구병산이 보입니다.
백두대간 길이지요.
기기묘묘한 바위들, 사방 사방으로 끝없이 펼쳐지고 또 펼쳐지는 산...
“천황봉에 떨어진 빗물을 삼파수라고 해.”
동쪽으로 흘러내리면 낙동강을 더하고
서쪽 법주사 앞으로 떨어지면 남한강에 합류하며
남쪽으로 떨어지면 금강을 이룹니다.
선두는 두 시간 만에 정상에 닿았고
뒷패까지 다 닿은 건 12시 50분.
정상에서 밥을 먹는다는 게 얼마나 미련한 짓인 줄 모르지 않으면서도
딱히 아래에서 먹을 곳도 마뜩찮고
무엇보다 배가 고파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다고들 하여
바위 틈새로 들어가 밥을 먹습니다.
승찬이가 벌써 죽으라고 춥답니다.
“속리산 유래 들려주세요.”
그래도 이야기는 잊는 법이 없는 아이들이지요.
삼국유사의 ‘관동풍악발연수석기’에 전하는 속리산 이름에 얽힌 얘기를 들려줍니다.
원래는 구봉산이라 했다지요.
“그런데 전북 김제 금산사 고승인 진표율사가 신라 혜공왕 2년에...”
다시 짐을 꾸립니다.
마침 세 젊은 친구들이 올라왔지요.
“저희들 사진을 찍어주기 위해서 여기까지 와주신 여러분 정말 감사합니다.”
하여 모두 사진 안에 들어갈 수 있었답니다.

“문장대까지 갈 수 있겠어요?”
“일단 신선대까지 가서 결정하자.”
우리는 뛰다시피 산을 내려갑니다.
꼭대기에서야 매웠지만 조금만 움직이면 땀이 송글거릴 겝니다.
키만 한, 밀림 같은 산죽군락이 이어집니다.
천황석문을 지나고
비로자나불의 이름을 붙인 비로봉(1,008m)을 왼쪽에 두고 스치니
깎아지른 절벽과 기암괴석들이 줄줄이 이어졌지요.
“저기 봐!”
임경업 장군이 일으켜 세웠다는 전설의 입석대라 했는데
경업대가 따로 있는 걸보면 그것이 임장군이 세운 게 아닌가도 싶더이다.
나현 령 류옥하다 선배 셋에
이제 동희 승찬을 더하고 정민이까지 어느새 따라 붙었지요.
종훈이는 오직 오르고 또 오르고 있을 게고
신기와 창욱이는 재잘거리느라 늦을 겝니다.
뒤가 처지니 앞은 여유롭지요.
“이건 정말 사진 찍어야 해.”
“입석대 경업대 청법대 중 어느 거게?”
우리말의 질감을 잘 알려면 역시 한자를 익히지 않을 수 없겠습니다,
지명 하나를 헤아리는 데도.
“입석대요!”
정말 돌이 섰습니다.
긴 직사각형 주 바위보다 그 앞의 겹쳐진 책 같은 바위가 더 눈길을 끕니다.
오래전 바로 이 자리에서 저것을 바라보던 스무 살 청년(청녀?)이
어느새 마흔이 되어버렸습니다.

땀도 식히고 뒤쪽과 걸음을 맞추느라
길을 벗어나 사이사이 삐죽삐죽 들어가 봅니다.
“와!”
속리산 대간 길은 이게 맛입니다.
그래서 예상하는 시간보다 늘 많이 걸리기 마련이지요.
장관입니다, 장관입니다.
가까이는 속리산 한 자락을 저 멀리 둘러치고 또 둘러친,
산이 그린 선은 현기증이 일기까지 하는 아름다움이었지요.

경업대쪽 갈림길에 서서
굳이 가늠 없이도 문장대를 오르기로 결정합니다.
늦게 닿은 종훈이만 그만 내려가자했지요.
“종훈아, 자, 1번, 혼자서 내려간다, 2번 같이 문장대를 다녀온다.
뭐할 거야?”
“다른 거!”
곁에 문장대를 다녀오던 무리가 땀을 식히며
우리 노는 모습을 재밌어라 보기도 하고
너들 대단쿠나, 칭찬도 해주었습니다.
걸음을 재며 얼마 안가 신선대 휴게소를 만나고
청법대를 기어오르다 문수봉을 끼고 지났지요.
곧 문장대입니다.
세 번 오르면 극락세계에 간다는 문장대!
왼편의 너른 바위에 먼저 올라 한껏 풍경을 또 즐깁니다.
정말이지 운동장 같은 바윗돌입니다.
마지막 문장대 오름을 남기고는
다시 뒤 패를 기다립니다,
마지막 감흥을 같은 순간에 가지고 싶어.
“저기 와요!”
조금 오르니 금새 문장대지요.
새김돌까지만도 딱 좋은데
위에 거대하게 우뚝 솟은 바위에 철계단이 이어집니다.
바람에 날려가겠다고 종훈이가 울먹였지요.
“넘들이 다 날려도 꽃돼지 우리 종훈이는 안 날려!”
먼저 오른 아이들이 격려해고
그예 종훈이까지 너른 반석위로 올랐습니다.
“우와!”
마치 공룡발자국 같이 움푹움푹 패인 곳에 쉬기도 하고
아이들은 난간을 돌아가며 멀리 펼쳐진 풍광에
감탄을 하다 소리를 지르다...
오른 자만이 느끼는, 오른 자만이 보는 장관이 거기 있었지요.
한 편, 문장대까지만도 사람 발길 닿을 수 있으면 됐는데
굳이 바위를 뚫어 철계단을 만들건 무엔가,
그 바위를 올려다보면서도 마음 충분히 좋겠더만,
영 마뜩찮았지요.
천하절경을 봐서 좋기도 하였습니다만.

문장대에서 문수봉이며 칠형제봉이며 비로봉을 주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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