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11.27. -12. 3.달-해날 / 낙엽방학, 그리고 입양 계획


가을학기를 끝내고 하는 낙엽방학을
이틀은 특강에 쏟느라 늦었네요.

교무실에선 겨울계절자유학교 신청을 받고 있고,
상범샘과 젊은 할아버지는 동쪽 개울까지 나가서
얼어붙을 것 같은 물에서 은행껍질을 벗겼습니다.
건져 올린 것이 무려 다섯 콘티나 되었다지요.
씻는 게 영 시원찮은 공동체 식구들은
목욕탕(산골에선 겨울에 이것도 일거리지요)도 다녀오고
나간 걸음에 영화도 한 편 보았습니다.

음...
그러니까...
벅차오르는 감흥으로 마구 말이 쏟아져 나오고 있어
어디서부터 무슨 말로 운을 떼려나요.
나이 스무 살,
그 시절 어느 젊음이 그렇지 않았을까요,
화염병 뒹구는 거리가 조용해지고 난 뒤
서울 신촌 거리에서 늦은 밤 술을 마시고 나올 적
곳곳에 쌓여있는 악취 넘치는 쓰레기봉투들 앞에서
최루탄가스 아래보다 더한 눈물, 아니 통곡을 하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우리네 삶이 온통 죄구나,
우리 사는 일이 저런 쓰레기들을 만들고 있구나...’
사람이 사는데 그리 많은 게 필요치 않을 거다,
내가 많이 쓰고 살면 다른 존재가 다른 사람이 쓸게 모자라지 않겠는가,
나아가 살아 숨쉬는 것들이 갖는 경이를 찾고 싶었던 삶은
그리 살자 바라던 대로 마침내 산골을 들어오게 되었지요.
물론 다른 까닭도 많았지요만은.
아직은 많이 모자라지만 그 소망을 좇아 나날이 소중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누구나의 삶이 그러하듯이.
고마운 일이지요.

또 다른, 오랜 소망이 있었습니다.
세상에 젤 불쌍한 놈이라 하면 에미 없는(애비도 아니고) ‘애새끼’라 생각해 왔지요
(이 짙은 애정 어린 표현에 더러 반감을 갖는 이들도 있습디다만).
버려지는 아이를 단 하나라도 거두고 살 수 있다면
알고도 짓고 모르고도 짓는 이 생의 업을 덜 수 있으리라,
다른 것 다 못하고 살아도 아이 하나 거두어 에미가 되어줄 수 있다면
이 생의 소임 하나 하는 것이리라,
작은 사람이라 무슨 대단한 고아사업을 할 수는 없어도
다만 그리 살고자 뜻을 갖고 살아왔습니다.
“내 애새끼 하나 키우는 일도 보통일이 아닌데...”
“아이를 낳아 찢어지게 가난하면 가난한대로 어떡하든지 살아내듯이
그리 살아가면 되지 않을까...”
아직 벌어지지도 않은 일들에 다들 걱정들을 앞서 할 때
다만 그리 생각했더랬지요.
그리하여
내가, 혹은 우리 공동체가 받은 축복들을 나눌 수 있기를 깊이 바랐지요.
잘난 체를 하자는 것도 아니고(자랑거릴 것도 없거니와),
최근 몸이 쇠잔해지는 걸 느끼며
이제 더는 이 생에서 늦출 문제가 아니라는 위기감 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게다가, 품의 아이가 태어나던 순간, 그 아이 만 일곱 살,
그러니까 동생을 거둘만한 나이가 되면 입양을 하겠다던 시기도 지나고 있었지요.
얼마 전 공동체식구모임에서도 생각을 나눴고
우리 살림이 빠듯하나 무에 어렵겠느냐,
아이 하나는 시작해도 좋겠다 동의도 얻었던 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아름다운 낙엽방학에
그 소망에 힘을 더하는 엄청난 일이 있었습니다.
아이 다섯을 그 아이들 고교 3년까지 경제적으로 후원하겠다는 손을 만났지요
(구체적으로 일이 진행되면 그때 따로 소개를 할 량입니다).
우리가 가진 힘보다 훨씬 더 큰 거대한 힘이 우리에게 문을 활짝 열어주는,
돈 없이도 살아지는 이곳에서의 날마다의 기적이
또 그렇게 찾아왔던 것입니다.
서울도 좇아갔다 오고 평창에도 다녀온 뒤였지요.
(없이 살므로 얻는 것들이 많은 삶입니다.
LG아트센터에서 하는 뮤지컬 에비타를 VIP 좌석에서 보는 행운도 누렸지요.)
이제 거기에 한 가지를 더 간절하게 기도하고 있습니다.
무리하게 진행하다 공동체식구뿐 아니라
마을식구(물꼬에 아이를 보내며 물꼬가 지향하는 삶을 견지하는 이들로 대해리에 사는)까지
힘에 부치게 해서야 아니 되겠지요.
행복하자고 시작한 일이 그렇지 못하게 되는 짝이 날 수도 있을 것을 경계합니다.
지금 생활도 모두에게 고단한 이곳이니까요.
그래서 달골에서 함께 머물며 살림을 거들어 줄
나이 드신 보살님 한 분을 찾고 있답니다.
더러 작은 절집에 가면 오갈 데 없는 이가 살림을 해나가는 걸 보고는 하였지요.
“요새 세상이 여자 혼자 살기에도 아쉬울 게 없는데
그 산골짝까지 들어가서 살 사람이 어딨을까...”
한 어르신이 그리 걱정을 해주시데요.
“그래도 있지 않을까... 서로 의지하며 살, 선한 일에 함께 할...”
그의 내일을 위해 아주 크지는 않아도 적금도 부어드릴 수 있을 겝니다.
간절히, 간절히 그를 기다립니다.
그러면서 또 어느 이 얼굴이 떠올랐지요.
아이를 데려오면 같이 키워주겠다던 한 어머니가 계셨더랬는데
피치 못할 사정으로 떠나셨습니다.
그가 한없이 그리운 이 밤입니다.

그리고,
그지없이 고마운 이 밤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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