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11. 7.불날. 첫눈

조회 수 1064 추천 수 0 2006.11.10 13:03:00
2006.11. 7.불날. 첫눈


저것 좀 보셔요.
눈이 왔습니다.
산골에 첫눈이 내렸어요.
간밤에 교사풍물모임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 눈비 흩날리더니
밤새 온 데를 덮었습니다.

눈발을 움직이는 힘이
보이지 않는 바람이었음을 안다
그래, 눈보라는 바람의 알몸과
알몸을 불에 덴 듯 날뛰게 하는
막무가내의 마음을 보여 준다

; <직선 위에서 떨다>의 ‘첫눈’ 가운데서

“옥샘, 차가 묻혔어요!”
아직 다 타지도 않은 가을 산에 얹힌 눈이라니...
다행히 마을로 가는 길은 아침 햇살에 녹아
걸음은 수월합니다.

눈앞에 죽음이 어른거리는데도
비명 지를 수 없는 병자처럼
유리창을 움켜쥐는 바람의 손바닥들
오늘은 그가 아무리 작게 두드려도
심하게 흔들릴 것만 같다
사람 기다리는 일, 정처 없어도 깊어질 것만 같다

; 같은 시에서

첫눈이 와서 좋았다고
저녁 달골한데모임에서 아이들은 한결같이 입을 모았지요.

사회시간엔 사회과부도가 재료였습니다.
국가와 인구, 그리고 지명 찾는 법을 익혔지요.
인구밀도란 게 뭔지,
인구밀도가 높은 싱가폴과 몰타,
낮은 몽골과 나미비아, 오스트레일리아,
사회과부도에 등장하는 주요 국가들 가운데
가장 면적이 작은 몰타와 바베이도스,
인구가 많은 중국, 가장 적은 18만명의 사모아들이
주로 살펴본 나라들입니다.
눈이 왔다고 산책도 나갔지요.
골골이 돌아다니고 왔습니다.

국화시간, 선배 기수들은 산수화를 들어갔고
단소시간은 연극과 자리가 바뀌었네요.
“한국화 시간에 가지치기해서 좋았어요.”
창욱이었습니다.
무대에서는 별주부이야기를 마저 만들고 있습니다.
이(감탄사), 그런데 아이들 대사를 옮기고 있는데
우리가락을 하러 급히 가다
그만 노트북 자판을 잘못 눌러 몽땅 날려버렸답니다.
뭐 잦은 일이라 이제 실망도 잠깐입니다.
아이들이 더 아까워라 했지요.
우리가락에선 ‘길군악’을 시작했답니다.
뭐가 좀 되어갑니다요.

오늘은 달골에서 아이들 개별상담이 있었습니다.
학년 막바지를 앞두고
한풀 정리가 있어야지 않을까 했지요.
1학년들이 너무 어리고 삐지고 장난도 심하고 잘 울어 힘들게 한다는
선배들의 고충들을 호소하기도 했고,
서로 서로의 관계의 어려움이며 하소연도 있었지요.
자신에 대해서도 많은 걸 알고들 있습디다.
1층 오신님 방에서 두 시간여 상담 이어달리기를 했더니
진이 쏙 빠지데요.
그래도 얼마나 사랑스런 그들인지요,
더 많이 그들 세계로 다가갈 수 있어 기뻤습니다.
아이들이 자라는데 거름으로 잘 쓰이고 싶습니다.

아주 차가웠던 지난주의 어느 밤,
겨울을 나지 못하는 존재들의 마지막 밤일 것만 같아
근처에 사는 모든 파리들을 불렀습니다.
그들은 정말 창고동과 햇발동의 구름다리에 모였고
도란거리다 쓰러졌지요.
다음날 우리는 무수한, 정말 뒤덮힌 파리 떼를 보았습니다.
행복하게 죽어있었지요.
열심히 한 생을 살고 가는 그들을 축복해주었습니다.
또 다른 세계로 넘어가는 일에
동참해서 기뻤습니다.
새로운 세계의 경계를 넘어가는 일이 어찌 꼭 슬픔이겠는지요.
‘죽음’도 축제였더이다.

대해리의 겨울은 모집니다.
비온 뒤의 어느 시월의 하루, 찬 기운이 몰려오면서부터
겨울은 공포에 가깝지요.
그러나 올 겨울은 반갑습니다.
조금 더뎌주어서도 그렇겠고,
새로운 해(3년 상설학교를 보내고 뭔가 가닥이 잡혀가는)가
다가오는 시기여서도 그렇겠지요.
인간 존재에 대한 서글픔으로 내내 마음이 흔들리던 어둔 터널의 올 해가
다 지나가서도 또한 그렇겠습니다.
냉소 화 미움 좌절을 끝장낼 수 있는 것도 결국 자신일 수밖에 없다는
너무나 평범한 진리가 찾아든 게지요,
널려있는 귀한 줄 모르고 지내는 소중한 것들이 어느 날 눈을 채우는 것처럼.
또 희망이 이는 겁니다.
날선 추위가 사는 일을 더욱 명징하게 할 것이며
모진 추위가 되려 깊이 각성을 불러일으켜줄 것입니다.
도저히 극복되지 않는 추위에 대한 두려움으로 지레 얼어붙어
겨울을 이렇게 힘차게 맞이한 적이 없는 듯합니다.
지난 번 학교 안내하는 날
어느 이가 그랬지요, 이곳은 ‘희망’이 있지 않냐고.
네, 희망, 그것은 평생 가졌던 공포(추위)도 딛게 할 수 있답니다.

2007학년도를 앞두고 학부모면담을 시작했습니다.
선한 이들을 만나는 일은 참 즐겁습니다.
오늘은 공동체식구로 신청을 한 부모들이기도 합니다.
가난하나 착하게 살아오신 분들이었습니다.
처음에 누군들 아니 그렇냐구요?
아니요, 그이의 생에서 다 묻어나게 마련이지요.
연이 잘 맺어져 같이 대해리 바람을 맞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참, 서울의 큰 논두렁 오정택선생님이 친구분이랑 다녀가셨습니다.
긴히 의논을 드릴 일도 있었던 터에
먼저 알고 걸음을 해주셨지요.
“애들이 맨날 고구마만 먹고 이런 거 못 먹을 까봐...”
커다란 상장에 과자를 잔뜩 담아오셨답니다.
흔들리지 말고 다만 나아가라 북돋워주고 가셨습니다.
사는 일에 즐거움을 더해주고 힘겨움을 나눠주는 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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