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복이다. 여름이 떠나가네.

저녁 내내 번개 번쩍거린다.

머잖은 곳에서 비가 퍼붓고 있는 모양이다.

 

해건지기.

물꼬의 아침이 너무 평화로워 신비스럽기까지 하다고들 한다.

이번 우리끼리 계자에서는 팔단금을 혼자 할 수 있도록 차례와 동작을 익히기.

호흡을 같이 붙여서.

대배 백배, 이어 좌선.

다른 생각이 끼어들면 얼른 알아차리고 호흡으로 돌아오라고 안내하는데,

오늘 윤지샘은 다른 생각이 끼어들면 몸이 앞으로 기울어지더란다.

생각이 몸을 지배하게 되는 거다.

몸에 집중해주는 시간! 결국 우리 생각을 이어나가는 건 이 몸이잖은가.

물꼬는 너무 평화로운데 밖은...”

그렇지도 않다. 여기도 사람 살고, 사람살이 문제들이 다 있다.

다만 그것에 휘둘리지 않고 찬찬히 바라보며 살려하는.

그러자고 수행하는.

 

수행방을 나와 가마솥방으로.

가지구이, 감자구이, 토스트와 잼, 그리고 샐러드와 드레싱과 차.

밥 한 끼도 챙겨먹기 쉽잖다는 청년들을 실하게 멕이기.

그리고 산오름 도시락으로 삶은 달걀이며 오이며 빵이며들을 배낭에 넣고.

 

버섯의 나라-버섯 산오름’.

앞선 아이들 계자에서 못다 한 산오름을 한다.

풀섶을 헤쳐가며 산에 다가가 참나무와 솔숲으로 들어간다.

무덤가에서 참취꽃과 고사리 잎들이 먼저 반겼네.

자주도라지꽃이 보여 한 뿌리 캐담고,

북쪽으로 난 비탈길을 헤맨다.

참나무 낙엽들 사이를 헤치며 버섯 따기.

주황빛 이꽃바라기버섯이 맞았다. 그때 못 보았으면 이번 산오름에서는 보지 못했을.

비가 여러 날이라 녹아내린 버섯들이 많았다.

민자주방망이버섯(가지버섯)도 한 꼭지, 그리고 온통 싸리버섯이었다.

접시끌끌이그물버섯, 붉은그물버섯, 붉은점박이광대버섯,

갈황색미치광이버섯, 좀환각버섯, 파리버섯, ...반가웠네.

흰가시광대버섯은 집에까지 데려왔더랬네. 독버섯이지만 눈사람 같아서.

더덕은 마을 사람들이 내내 몇 kg을 했느니 소문 많더니

아주 씨가 말랐더라.

달골 기숙사 뒤란에도 어린 것들 많기도 하였는데 한 뿌리도 보지 못했다.

몇 해 전 휘령샘과 캐다 창고동 앞에 심어둔 걸 한 뿌리 파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래고,

도라지밭에 들어 찬거리로 먹을 몇 뿌리 캐오다.

돌아와 싸리버섯을 데쳐 물에 담가둔다. 독기 빼기. 내일 버섯찌개 해먹으려.

 

산에서 다리를 쉴 적이면 아이들 계자 후일담이 이어진다.

역시 초등대상 56일 일정에 대한 의견들이 또 나오는.

소화가 안 되거나, 역량이 안 되는 거나 뒷심이 딸리거나

56일 캠프를 하는 곳을 찾기가 쉽지 않다.

교사도 어렵고, 아이들 역시 바빠져서 그만큼 날을 빼기가 어려운.

가족여행이라든지 가족 문화의 변화도 또한 영향을 미쳤을.

“56일은 23일의 배가 아니야.”

다시 그 말이 나오기 마련이다.

이틀 친절하기는 쉽지는 그 이상은 어려운 일이라고.

첫날, 이튿날로 가며 그 힘듦이 배씩 증가하는 게 아니라 제곱으로 간다고들.

그걸 물꼬 품앗이샘들이 해낸다, 24시간 전면적으로 아이들을 만나며!

 

가시달린 하얀 줄기가 궁금했다던 지윤샘,

그거 복분자야!”

버섯 이름들도 알고 싶어졌다고.

그렇게 또 한 세계로 확장되는 우리 삶.

지윤샘은 자연과 가장 가까운 길이었다, 태초의 상태 같은, 속세의 끝 같은 느낌이었다고.

등산로가 아닌 야생의 숲이 주는 즐거움이 있다.

윤지샘은 능력이 하나 더 생기는 기분이라고, 성취 이상의.

버섯과 나무들에 관심이 더 생겼다지.

 

콧바람’.

아이들 계자 이어 끼리끼리 계자를 하는 중이라

젊은 사람들이 바깥 음식을 그리워할 만.

그래서들 다저녁에 샘들 읍내 나갔다 오다.

엄마, 갔다 올게!”, 그런 기분이었다지.

영화는 시간이 안 맞아 못 보고.

자극적인 바깥음식을 한 끼 사먹고,

치킨, 치즈볼, 칩스, 에그타르트, 피낭시에, 더해 사이다와 오렌지주스들을 들고 왔네.

잘 먹고 있다는 답례로 화장지를 한 꾸러미 사들인 샘들.

일상적인 건데 몇 배로 크게 와 닿더라구요.

맨날 하는 건데 커피 마시고, 물건 사고,

물꼬의 일상도 소중하지만, 평소 보내는 내 일상도 당연한 게 아니라 소중해지는...”

윤지샘이 그랬다.


하루재기가 끝나자마자 오늘은 고단해서 쓰러지듯 모둠방 잠자리로 가는 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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