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 계자 닷샛날, 2011. 1. 6.나무날. 소한, 눈날리던 아침


산오름 가는 아침입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김밥 싸고 옷 챙기고 하는데 산 간다는 걱정보단 내일 간다는 사실에 잠깐 우울했었다.’(새끼일꾼 윤지의 하루 갈무리글에서)
이번 계자는 여느 때보다 속틀이 느슨해서 그런지
다들 더욱 성큼성큼 날이 간다 합니다.

나흘 동안 몸과 마음 다져 눈 덮인 겨울산을 오릅니다.
눈 아니어도 없는 길을 헤칠 텐데,
눈 있다고 다를 것도 없지요.
그런데 아차, 아이들 적다고 너무 여유 부렸습니다.
다른 일정 때라면 전날 밤부터 모두 긴장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거개의 자기 준비도 미리 다해놓고 잠자리로 갔을 텐데 말이지요.
마음 좀 바빠졌지요.
김밥 싸는 샘들도 채근하고
아이들도 옷가지 단도리를 서둘자 합니다.
아침마다 늦잠을 자던 재훈샘까지
오늘은 아침밥을 먹었지요.

노박산을 갑니다.
오래전 그곳에 간 적 있습니다.
검은산 앞의 노박산,
천지에 의지할 데 없는 순하디 순한 부부,
어느 날 먹이를 찾으러 내려온 호랑이에게 물려 남편 떠나고
아이까지 덜렁 아파 누워버립니다.
꿈에 나타난 남편,
노박열매를 갈아 아이 상처에 붙이라 하지요.
그런데, 열매를 찾으러 산으로 간 어미도 돌아오지 않습니다.
화전마을의 장정들이 찾아 나서고
검은산 앞에서 손아귀에 노박열매 움켜진 어미를 발견하지요.
그때부터 그 앞산이 노박산 되었습니다.
골이 깊으니 그만큼 스며든 이야기도 많은 산골이랍니다.

눈발 날립니다.
소한입니다.
그래도 갑니다.
햇살 퍼지길 기다렸다 나섰지요.
눈발이 조금 사그라들고 있습니다.
학교 뒤란으로 동쪽 산을 향해 갑니다.
먹이를 찾으러 다닌 짐승 발자국들이 어지럽습니다.
발이 푹푹 빠지고 있었지요.
험하기도 험한 겨울산을, 이 어린 것들 끌고 왜 간단 말인가요?
숙제로 모두 안고 산을 올랐습니다.

1지점에서 우리가락에서 배운 노래를 부르며
마음들을 다잡았지요.
험난한 길이 될 것만 같습니다.
하기야 몰라도 짐작키에 어렵지 않지요,
눈 오고 또 오고 그 위로 다시 내리고 있었으니까요.
30센티미터는 족히 되겠습디다.
2지점에서는 파이 하나씩 입에 뭅니다.
그런데, 바로 뒤에서 걷고 있는 승이와 성일이,
심하게 툴툴댑니다.
문제를 긍정적으로 보기,
아주 밝고 재밌는 아이들인데,
그게 좀 아쉬웠더라지요.
말하기도 기술이 필요합니다.
그 기술을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기분 좋게 말하기, 긍정적으로 말하기,
그것도 지혜일 겝니다.
그래서 같은 내용을 전달하되 부정적 표현을 어떻게 긍정적으로 말할 수 있는가,
대체행동 가르쳐주기 잠깐 했더라지요.
뭘 가르치려않는 곳이지만
한편 옳은 것은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곳이랍니다.

산오름 때면 언제나 저 뒤에서 오던 새끼일꾼 윤지형님
오늘은 바로 등 뒤에 붙어옵니다.
아이들이 찡얼댈 법도 하련만,
그 역시 몇에 불과합니다.
고을이가 장갑을 끼지 않았음을 늦게 알았는데,
윤지형님이 기꺼이 벗어주려 할 때
새끼일꾼 현곤이가 먼저 건넸더라지요.

산오름은 아이들과 더 깊은 만남을 줍니다.
안에서 보지 못했던 다른 면을 발견하게 되지요.
세훈이랑 윤수는 배낭 하나씩 매고 오릅니다.
윤수, 모두가 모이는 자리에서 집중에 가장 느린 무리 가운데 하나였는데,
개별에는 참 강하다는 생각을 하게 하데요.
“이렇게 멋진 앤줄 미처 몰랐어.”
앞서서 올라가 1년 유빈이를 계속 챙기기도 하였습니다.
잡아주고 밀어주고 격려해주고,
서로들 그리 오르고 있었지요.
그래서도 산에 갑니다.
‘힘은 들었는데 정말 재미있었다. 아이들이랑 얘기하는 재미도. 잠깐 쉬며 받는 선물까지도. 모두 즐거운 요소였다.’(새끼일꾼 윤지)

유정샘은 훈정이랑 현지랑 걷고 있습니다.
중간에 준우 만났지요.
준우 씩씩거리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걸음은 옮기지요, 홀로 산에 남을 수야 없는 노릇이니.
“다시는 안 올 거예요.”
너무 힘이 들어서 말입니다.
세영이도 지나갑니다.
“산에 도대체 왜 가는 거야, 힘들어 죽겠는데?”
그때 세아샘이 뒤에서 그럽니다.
“건강해지라고.”
세영이 갑자기 엄청 해맑게 말했지요.
“이유를 알려줘서 감사합니다.”

재훈샘, 훈정 세영이들과 노래 부르며 재미있게 오르기도 하였습니다.
아직 힘이 들진 않는다는 게지요.
‘열심히 올라갔는데 자꾸 굴러서 제자리에서 계속 올라가질 못해서 너무 힘들었다.’
서서히 힘이 드는 재훈샘입니다.
그래도 유빈이며 준수며 도움을 청하니
어찌 어찌 힘을 써봅니다.

“옥샘, 몇 지점까지 있어요?”
“열두 고개이니 12지점이지.”
“으악...”
암벽등반처럼 기어올라야하는 지점에 이릅니다.
시간이 지체됩니다.
몇 번이나 구르며 겨우 올라서니 사탕이 기다리고 있었지요.
뒤따라오던 민재가 말합니다.
“산에 온 이유를 알았어요!”
뭐일까요?“자기 마음을 다스릴 줄 알게 하기 위해서. 그렇죠?”
그런가요?
“힘든데 왜 또 오고 싶지?”
그 재민이 나아가며 자꾸 고개를 갸웃갸웃하였더랍니다.

세아샘이 아주 더딥니다.
희중샘이랑 현우가 도와주고 해온이도 도왔지요.
현우, 자기도 작은 몸집인데
비탈길에서 애들을 끌어올려주고 있었습니다.
“제 깊은 걱정이 뭐라구요?”
“샘들요.”
아이들에게 물으면 그들이 이리 대답합니다.
네, 그렇습니다.
샘들이 더 걱정이라지요, 특히 산은.
‘나를 챙긴다고 다른 아이들을 보살피지 못하고 산을 올라갔다 내려왔다.’
새끼일꾼 현곤도 그리 아쉬워했더랍니다.

큰 능선 하나 넘어 점심을 먹습니다.
눈 내내 내린다더니 날 갰고
흐리겠다더니 볕 났습니다.
바람 많겠다더니 심하지 않고
소한이라고 젤루 춥겠다더니 그것 또한 그렇지 않습니다.
고맙습니다.
한나는, 이번 계자의 마스코트,
정상에게 큰 애들도 지쳐있는데 해맑게 웃고 있었지요.
저렇게 환하게 웃을 수 있다니,
장갑이 다 젖어 있어도 웃는 그이고,
양말이 다 젖어 갈아줄 때도, 내복 발목이 다 젖었는데도...
모두 오들오들 떨면서도
또 하나의 파이를 먹고 김밥을 먹고 따뜻한 물을 마시고
사과즙을 더해 마십니다.

“내려가는 방법 안내하겠습니다.”
엉덩이를 다리 삼기로 하지요.
눈밭에서 굴러 내리기 혹은 미끄러져 내리기를 시작합니다.
저 속도들 좀 보셔요.
머잖아 경사지 양지쪽 무덤가에 눈 녹은 유일한 곳을 만납니다.
거기 엉덩이를 붙이고 쉬어가지요.
그 순간조차도 아이들은 바로 미끄럼을 타기 시작합니다.
거기 새끼일꾼 인영이도 섞여있었지요.

그리고, 숨겨진 보물,
청둥오리들 다리에 달려가던 얼어붙은 호수가
툭 떨어져 만든 대해못.
우리들의 아이스링크입니다.
짐승들 발자국이
동양화 화폭의 먹처럼 그림을 그려내고 있었습니다.
소리 지르며 뛰어들어 뒹굴고 뛰고...
돌아오겠다던 낮 3시에 이르고 있었지요.
다섯여 시간 눈바다를 헤쳐 왔네요.

살아 돌아온 아이들의 무용담 못잖게
샘들도 갈무리시간 할 말 많습니다.
눈 많기도 했고, 춥기도 추웠고,
가파르기도 가팔랐던 산오름이었으니
힘은 또 얼마나 들었을라나요.
“뒷산이라고 해서 쉬울 줄 알았는데...”
새끼일꾼 창우입니다.
‘겨울 눈산행은 처음이었습니다. 어린 아이들이 산을 정말 잘 타서, 힘들었지만 열심히 올라갔습니다. 예림이, 가을이가 옆에서 저를 믿고 함께 해서 책임감이 컸습니다. 물꼬 와서 특별하게 잘하지 못해서 새끼일꾼들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미안했는데 겨울산행 때 조금이나마 저의 임무를 실행한 것 같아서 마음이 가벼웠습니다. 겨울산은 구르고, 넘어져도 아프지 않아 좋습니다. 중간중간 간식과 이야기들로 피로가 크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즐거운 산행이었습니다.’
경미샘 하루 갈무리글에서 그리 쓰고 있었지요.
아이들 발이 젖을 때면 경미샘이 수습을 해주고 있었지요, 희중샘과.
“제가 좀 마음이 평소에 들떠 있잖아요. 갔다 오면 좀 조용해지는 게...”
새끼일꾼 가람형님 말처럼 그래서 또 이 아이들을 끌고 산을 가는 것일 테지요.
‘처음에 뒷산에 간다고 해서 정말 짧은 줄 알았는데, 물꼬 뒷산은 달랐다. 눈이 많이 온 겨울에 가파른 산을 올라가기란 쉽지 않은데 이번엔 정말 좋은 경험을 한 거 같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의지력과 나 자신에 대한 인내심이 많이 길러진 거 같아서 너무 행복하고 기쁘다.’(가람)
‘여름의 민주지산보다 훨씬 서로의 도움이 많이 필요한 겨울산을 드디어 떠났다. 가파르고도 험한 길이였지만 별로 길게는 느껴지지 않았다. 산을 오르면서 일상에서의 내 정신적지침, 마음의 갈등을 다 산에 놔두고 오겠다는 마음을 다졌다. 공기도 맑고 하늘도 청정한 기분 좋은 오전이었다. 소한인데도 불구하고 ‘물꼬의 기적’이였다. 정말!
물꼬..... 항상 고마운 공간입니다! 이 넓은 세상 속에서 물꼬라는 좋은 공간을 만나 오래오래 만날 수 있어 고맙습니다. 사랑해요.’(인영)
‘진짜 어떤 날씨든 어떤 상황이든 누가 있든 같이 가는 게 물꼬라서 아이들이라서 가능한 거라 느꼈다. 만약 이렇게 어른들이랑 갔다면 의견충돌도 마낳고 재미도 덜 했을 거 같다. 진짜 물꼬라 가능한 일이다.’(윤지)
‘산을 오르고 내려왔는데 소한이라 그런지 많이 추웠다. 눈 쌓인 벼랑길에서 헤매느라 아이들을 많이 챙기지 못했다. 그리고 돌아왔는데 몸이 땅 속으로 꺼지듯이 노곤해 한껏맘껏 때부터 계속 누워있고, 강강술래에 참여하지 못했다.’(현아샘)

오르라, 가라, 오직 걸어라,
오늘 길이 그러하였습니다.
산, 공부하기에 이만한 현장이 어딨을까요.
어려운 일 만나면 그리 설컹 넘어가라,
오늘 우리 길이 그러했듯
우리 살아가며 닥치는 벽 앞에서도
그리 오르자 합니다.
장작을 패며 산에 오른 이들을 기다리던 무범샘,
“부엌샘이 그러던데, 어른들도 힘들 거라고...”
그런데 의기양양 돌아온 아이들 보며
물꼬에서 하는 이런 경험이 얼마나 중요한가 생각해보게 되셨다 합니다.
여기는 아이들을 보는 기준이 다르구나,
여기에서 바라보는 아이들에 대한 믿음,
그런 걸 생각하셨다지요.

저녁을 먹고 한데모임을 하며 왜 굳이 산에 올랐던가,
찬찬히 되짚어보는 시간 있었습니다.
그때 가마솥방의 무범샘, 종대샘,
호떡을 배달해오셨지요.
어제는 곶감을 먹었더랍니다.
새끼일꾼 윤지의 표현대로
‘샘들이 더 흥분해서는 쉰 목소리로, 쩍쩍 갈라지는 목소리로 아주 열심히’
노래도 불렀습니다.
풍성한 노래는 우리 마음을 또 얼마나 위로하던가요.

강강술래.
놀이는 해도 해도 재밌습니다.
마지막엔 동애따기로 고래방 떠나갈듯 뛰었지요.
저리 재미가 날까요.
본관으로 건너와 촛불잔치.
지난 닷새를 돌아봅니다.
효정이가 울기 시작하더니 곳곳에서 울먹입니다.
새끼일꾼들도 아쉬워, 아쉬워...

물꼬의 인연들이 왜 이리 깊은가 보면...
사람관계 그냥이야 나쁠 게 뭐 있나요, 이권이 개입되지 않는 한.
그냥이야 좋기 쉽습니다.
하지만 같이 일을 나누면서 좋기는 쉽잖지요.
그런데 이곳에선 모든 일상을 나누며 지독하게 서로 만나야 합니다.
그러니 관계가 단단할 밖에요, 깊을 밖에요.
아이고 어른이고 서로 그러하답니다.
그래서 물꼬의 인연들은 오래 만나고, 의지가 되고, 자극이 되고,
건강하게들 도반, 혹은 동행자가 돼 간단 말이지요.
만나 고맙습니다, 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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