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해리의 아침처럼 이른 아침 해건지기로 시작합니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물꼬의 모든 일정에 어른들이 먼저 수행하며 기운을 닦듯

대배 백배로 아침을 열었지요.

오늘 만나는 얼굴들이 자연스레 영화필름처럼 지나가고

그들을 향한 기원에 기원을 담습니다.

좋은 기운은 아무리 멀어도 닿으리라 하지요.

 

행사를 준비하면 좋은 날씨가 최고의 은덕입니다.

걷기에 좋은 찬찬한 볕과 다사로운 기온이 고마웠다마다요.

어제 비 그리 내리더니...

3호선 경복궁역 고궁박물관 뜨락.

류옥하다랑 느긋하게 죽을 끓여먹고

09:50 만나기로 한 시간보다 일찌감치 닿아 사람들을 기다렸습니다.

기락샘은 부산에 걸음할 일 생겨 함께 하지 못했네요.

희중샘이 맨 먼저 닿고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지요.

이문동에서 인교샘 윤호 건호가 오고,

덕소에서 선정샘 철기샘 성빈 세현이가,

경기도 광주에서 재호가 오고,

김포에서 아리샘, 쌍문동에서 서현샘, 신림동에서 철욱샘,

일산에서 새끼일꾼 동휘가 상암동에서 현애샘이 오고,

그리고 충북 음성에서 무범샘이 한나를 부려놓고 일보러 가셨습니다.

분당에서 오는 현진이네가 더디단 연락이었으나

급할 게 없는 걸음인데다 다들 그저 얼굴 보면 좋겠다던 마음이 더 컸던지라

재촉 없이 편하게들 수런거리며 먼저 들어가지 않고 기다렸더랍니다.

바지런한 인교샘,

“(물꼬) 홈페이지에 피스캠프 얘기가 있더라구요. 또 가서 찾아봤지...

옥샘, 우리도 피스캠프해요. 옥샘이랑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렇게 또 새로운 프로그램에 대한 안이 제기되기도 하였답니다.

 

드디어, 어제 백두대간을 빗속에서 7시간 타고 겨우 일어나 도착한

김호협님, 김유정님, 현진이 등장.

아, 마침내 만났습니다, 현진이 수현이네 부모님.

아이들 어릴 적엔 계자 마친 뒤 배웅하는 샘이 따로 있었고,

아이들 자란 뒤엔 저들끼리 영동까지 오가니 어른들 뵐 일이 없었던 게지요.

메일과 홈페이지글, 그리고 통화로만 칠팔년을 만나다 실제공간에서의 만남이라니...

자꾸 배시시 웃음 나오던 걸요.

오늘의 이 나들이도, 바로 몽당계자를 왔던 현진이로부터 시작됐더랍니다.

“옥샘, 물꼬에서도 여행가요!”

그리고 그 첫걸음을 디딘 것이지요,

먼 나라로 가는 것까지 아닌데다 겨우 하루이나.

 

희중샘이 오늘의 전체 살림을 맡았습니다.

엊저녁 늦게 마침 마실거리가 생각했던 개수가 아니어

부랴부랴 그에게 전화 넣기도 했지요.

“포도쥬스 일곱 개만!”

“집에 있는 걸로 이것저것 준비할게요.”

“아니, 꼭 포도쥬스여야 해.”

여러 사람과 움직일 땐, 특히 그게 아이들이면,

공정함과 평등, 그거 아주 중요하거든요.

여름과 겨울 계자를 미리 들어와서 준비하는 그이듯

역시 서울에서도 그러하였네요.

오늘 사진은 철기샘이 맡습니다.

아시고 큰맘 먹고 장만한 사진기를 들고 오셨더랬나 봅니다.

품앗이샘들과 새끼일꾼들은 아이들을 돌보기로 합니다.

유모차를 타고 다닐 세현이는 류옥하다를 비롯해 몇몇이 돕기로 하였지요.

궁이 어디 임금의 집이기만 했을까,

그 시대가 우리가 사는 이 시대와 어떻게 닿아있는가,

한 나라의 세움이 어떤 정신을 배경으로 하고 그것을 어떻게 삶에서 구현했던가,

그런 생각들이 오늘 함께 할 겝니다,

그저 좋은 햇살,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 그것으로도 충분할 테지만.

 

광화문 안마당에 모여 흥례문으로 들어가

법궁 정궁으로서의 경복궁에 대한 이야기 전반을 훑은 다음

금천교(영재교)를 지나 근정문 들어서 바로 경회루도 갔습니다.

11시 특별관람을 예약했던 터입니다.

아, 기별청에 대해서도 잊지 않고 짚고.

 

경회루.

그예 들어왔네요.

하루 네 차례, 그것도 이 시월이 끝나면 굳게 닫혔다가

다음 하절기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혹 일정에 변화가 생겨 다시 보존을 위해 닫혀야 할지도 모르고.

휴일에 특별관람을 예약하려면

닷새 전에 9시 맞춰 인터넷 앞에서 대기하고 있다 해야지요.

휴일 관람을 위해선 여간 운이 따르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게 다행한 우리들의 입장이었더라지요.

경회루 누마루에 앉은 우리들의 가을 위로

수양대군과 단종, 연산군과 중종, 중종과 장경왕후(문정왕후인가요?),

세종과 구종직, 한국전쟁과 경회루, 이승만정권과 경회루에 얽힌 이야기들이

얼기설기 떠돌았네요.

 

다시 근정전으로 들어가 뜰에서부터 궁을 밟습니다.

처마 아래서 양쪽으로 북악산과 인왕산을 두고 사진을 찍은 뒤

근정전에 얽힌 이야기들과 차일고리를 지나

정전 안을 둘러본 뒤 월대에서 난간의 동물들을 보고

수정전으로 넘어갔지요.

(근정전 뜰로도 유모차가 갈 수 있는 길을 두면 어떨까 싶데요.

다 처지가 돼보면 생각을 더해본다니까요.

선정샘이 애 많이 먹었을 겝니다, 유모차 미느라, 여러 샘들이 도왔다 하나.)

광화문 해태상 앞에 있었던 하마비 노둣돌을 얼토당토않게 거기서 만나기도 했고,

사정전으로 가

양쪽으로 어떤 의미로 건물을 거느리고 어떻게 궁궐이 체계를 갖춰나갔는가를 보았으며

교태전 뒤란 아미산의 함월지와 낙화담의 의미,

그리고 굴뚝에 새긴 그림들과 꽃담의 장식들을 보았습니다.

자경전 뒤란 굴뚝의 십장생을 보러 가기 전

잠시 갓 복원한 동궁 자선당을 멀리서 짚어보기도 하며

잠시 평상에 걸쳐 걸음을 쉬기도 하였지요.

 

향원정을 돌아 수력발전의 첫 발원지도 보고

집옥재 지나 신무문을 나서니 청와대가 맞았지요.

궁 돌담을 끼고 걷다, 아, 가을입디다,

점심을 먹기로 한 집에 들어섰습니다.

어렵게 문을 열어 달라 미리 부탁했던 집이었더랍니다.

“진짜 물꼬에서 먹었던 것들 같네.”

비로소 소개들을 하였습니다,

물꼬랑 맺은 인연에 대해, 지금 하는 일에 대해.

김호협님과 김유정님이 사람들을 기다리게 한 죄값이라며 밥을 사셨는데,

짐작컨대 그 밥 한번 사시겠다 굳이 오셨던 걸음이지 않으셨을까 했지요.

오후에 있다는 학교 일정에 그러고서야 돌아가셨더랍니다.

고맙습니다.

떠나신 뒤에야 두 분 얼굴들이 눈에 들었더랍니다.

참 오래 궁금했던 분들입니다.

 

적선시장을 지나 사직단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그만 건호가 사라졌지요, 잠시였지만.

길을 건너는 몇 걸음 사이에 일행을 놓친 건호가

어떤 할아버지를 붙들고 전화를 걸어왔던 겁니다.

헌데 아무도 걱정을 않았지요.

우리는 어떻게든 아이를 찾아낼 거란 믿음 같은 것이었을까요?

하지만 마음은 미안함으로 조아렸습니다.

잠시라도 그런 일 있으면 안 되지요.

괜시리 건호 맡은 이쯤 되었던 동휘가 어쩔 줄 몰라 했지만

어른들 많은 걸 믿고 진행에서 보인 허점이었다마다요.

건호는 몇 분 뒤 말짱하게 나타났습니다.

워낙 속이 단단한 아이라 놀래기 덜했으리라 그리 믿지요.

 

인왕산을 향해 오르다 황학정에 듭니다.

활터가 지닌 의미며, 양궁의 태동에 대해서도 얘기 나누는데,

그때 과녁에 꽂히는 활소리.

예, 오늘을 위해 물꼬가 섭외한 궁사들입니다요.(아닌 것 아시지요?)

그렇게 적절하게 활터의 뜻을 우리에게 새겨준 곳이었지요.

“인왕산 왔으면 바위산 올라봐야지요.”

바위를 타고 등산로를 조금 오르니

택견수련장이 나오고 걸음을 다시 쉬었지요.

희중샘과 철욱샘 서현샘 그리고 새끼일꾼 동휘가

운동기구를 놀이기구 삼아 노는 아이들을 돌보고,

현애샘 인교샘 선정샘 아리샘이며는 야외용 테이블에 앉아

가을을 노래했더랍니다.

 

다시 사직단, 사직공원입니다.

운동장에 공을 던져놓았더니

남자샘들과 사내아이들은 축구하기 여념이 없습니다.

아빠랑 아주 아주 오랜만에 공을 차서 아주 기뻤다는 성빈이었지요.

그 사이 인교샘과 선정샘은 시장으로 가

간식거리를 사왔습니다.

그렇게 모두가 진행자인 몽당계자였더랍니다.

그리고,

늦은 오후의 공원에서 물꼬의 밥상머리공연이 있었습니다!

바로 바로 안성빈 선수의 리코더공연.

그런 감동적인 음악회에 우리 또 언제 만나려나요.

오늘 최고봉은 바로 거기였지요.

그러는 사이 사람들은 갈무리 글을 썼습니다.

“역시...”

그럼요,

늘 쓰는 가장자리 구멍 숭글숭글한 도트프린트지를 대해리서 가져왔더라니까요.

 

“아범이 오늘 막걸리를 한잔 사시겠다는데...”

걸음이 바쁜 이들 먼저 떠나고

아쉬운 걸음을 다시 잡아 적선시장 통영생선구이집으로

철기샘과 선정샘을 따라갔습니다; 아리샘 철욱샘 희중샘 서현샘과 류옥하다 그리고 영경.

얼마나 다사로운 자리였던지요.

성빈이네를 보낸 뒤(류옥하다도 먼저 아버지집으로 간다하고)

아직도 헤어지기 섭섭한 샘들에게 이제 아리샘이 차를 샀습니다.

쌀쌀하지 않은 저녁이라 찻집에 놓인 바깥 테이블에 앉았더라지요.

그리고 의기상투,

다음 11월의 빈들모임도 이번 몽당계자처럼 서울서 하자 한 게지요.

 

모두 떠나고 아리샘과 다시 광화문을 지나 동십자각을 스쳐 안국동까지 걸었습니다.

부슬비 내리기 시작했지요.

우리들의 젊은 날에 대해, 그리고 지금에 대해 나눈 이야기들이

이 가을 색 같았더랍니다.

어느새 십오 년여의 만남이던가요.

 

밤, 빗방울 굵어졌습니다.

나들이 동안 비켜준 비였습니다.

고맙습니다.

전주에서 광주에서 부천에서 서울에서 함께 하지 못한 이들 여럿이었습니다.

다음을 기약합니다.

 

모다 고맙습니다,

모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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