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10.19.나무날. 비 머금은 하늘

조회 수 1353 추천 수 0 2006.10.20 19:22:00

2006.10.19.나무날. 비 머금은 하늘


잎을 떨군 감나무가 쪽빛 하늘을 배경으로 감을 달고 있는 모습이야말로
가을이 주는 선물의 극치다 싶습니다.
다른 나라에 머물고 있을 때도
가장 그리웠던 풍경 가운데 하나가 이것이었지요.
우리나라 어디나 그러하듯 이 골짝에도 감나무가 흔하며
영동의 가로수는 감나무이기까지 하답니다.
바로 지금 읍내를 나가다 보면
사람의 손으로는 도저히 만들 수 있는 숨이 멎는 그 풍경이 이어지고 있지요.
아이들은 달골을 내려가면서
감식초를 위해 감을 몇 개씩 주워 내려갑니다.
일손이 많이 모자라는 이 가을
따로 시간을 내서 할 것 없이 오가는 길에 아이들이 하자 맡은 일이지요.

물꼬는 8학년까지의 아이들이 한 교실(배움방)에서 공부합니다.
현재 1학년부터 6학년까지의 아이들이 아홉인데
함께 주제를 다루기도 하지만
우리말우리글(국어)처럼 같이 시작해서 자기 형편에 맞게 나뉘기도 하지요.
오늘은 배움방을 세 곳으로 아주 분리해보았습니다.
모두가 같이 모여 공부를 시작하는 곳,
그 곁에 스스로 자기 진도에 따라 공부하는 곳,
그리고 쉬는 곳으로.
그래보았자 이불 두 개가 깔리고 차 탁자가 놓이는 정도이지만.
자기 진도에 따라 공부하는 곳에서는 배움 속도가 다른 자료들이 꽂혀있습니다.
스스로 가늠을 해나가는 거지요.

숲에 들어갔다 나왔습니다.
오늘은 참나무의 잎들을 나눠보기로 하였지요.
떡갈도 있고 상수리도 있고 갈참도 있습니다.
그 구분이 어려울 땐 열매를 견주어보며 알아내기도 했지요.
눈에 익고 또 익으면 시금치와 배추를 알 듯
알아먹는 때도 오겠습니다.
떨기나무들을 살피고
가지 끝에서 잎이 모여 나는 굴참나무도 구경하고
여러 나무들의 잎꼴도 들여다봅니다.
가끔 반깁스를 한 류옥하다를 업기도 하고(승찬이가 업어주기도 했네요)
아이들이 가방이며를 나눠들고 산길을 오릅니다.
“이건 무슨 잎이예요?”
“개암나무잎 같은데, 아래 개암이 없나 살펴볼까?”
난티잎개암나무였습니다.
“아직 어려서 없나 봐요?”
“그럼 5-6년이 지나지 않은 거네. 그때부터는 열매를 단다니까...”
“나는 몇 해 뒤에 여기 와서 살펴봐야지.”
익은 청미래를 따먹기도 하였습니다.
“샘 어릴 땐 과자삼아 먹었지요?”
이름을 서로 섞어 쓰는 산초나무와 초피나무의 차이를
오늘은 확실하게 알아두자 하였지요.
흔히 잎으로 가린다지만 가시가 다릅니다.
어긋나는 건 산초고 마주나는 건 초피입니다.
산초는 열매로 기름을 짜서 약으로 쓰고
초피는 열매껍질을(열매까지도) 빻아 향을 보태려고 넣는 것입니다.
“김치에도 넣으면 잘 시지 않는대.”
지금 가마솥방에서 먹고 있는, 하다 외가에서 온 김치도
바로 제피라 불리는 그 가루가 들어가 있지요.
붉나무와 옻나무도 마침 있습니다.
잎이 붙은 줄기에 날개가 날린 건 붉나무지요.
아이들은 나무와 나무 사이들을 누비고
하다는 철퍼덕 주저앉아 비탈길을 다지며
아이들이 안전하게 밟을 수 있는 계단을 만든답니다.
그게 더 재밌어 보이는 종훈이도 개미도로라며 덩달아 흙을 파고 있고
승찬이와 동희까지도 어느새 같이 앉아있네요.

수영.
하다는 병원을 들리러 같이 가서
휴게실에서 매듭을 엮었습니다.
어느 겨울 한 어른한테 해주마하고는 내내 빚이었다가
천지사방 거스를 거 없이 쏘다니다 묶여있으니 생각이 났나 봅니다.
지난 번 같이 밥을 먹으며
이 아이들 정말 잘 키워내고 싶다던 그 열정이 전이되기라도 했는지
승환샘은 온 마음을 써서 아이들 하나 하나 붙들고
시간이 넘치도록 도와주고 있었습니다.
평영을 새로 차근차근 모두가 하고 있었지요.
그런데, 신기가 자꾸 춥다네요.
“움직이면 괜찮아져.”
유아풀에서 종훈이랑 창욱이가 키판을 잡고
날개처럼 잡아 둥둥 뜨는 걸 자랑하며 절 불러 세웠고,
신기도 불러들이고 있었지요.
“이제 배영도 할 수 있겠다. 그 상태에서 힘을 빼면 돼.”
창욱이는 신이 나서 다음 주에 가르쳐달라 합니다.
아이들은 배우는 일을 정말 좋아하지요.
그들은 이미 ‘동기’를 가지고 있는 존재들입니다.
요즘, ‘이 아이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아이들 한 명 한 명에 대해 그 어느 때보다 많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마치 처음 본 아이들처럼.
계획을 가지고 나아가던 길에서 잠시 뒷걸음을 치며
아이들이랑 어깨 겯고 가려지요.
자칫 교사의 자리가 너무 크면 아이들의 자율의 힘을 구길 수도 있으니까요.

같이 장도 보러갑니다.
쇠날마다 달골에서 아침을 먹으니까요.
“죄송해요, 제가 애가 좀 많아요.”
“평소에는 잘 멕입니다.”
시식코너의 재미를 붙여 우르르 몰려들 갑니다.
산골 소년들에게 작은 재미 하나였네요.
오페라와 판소리를 번갈아 들으며 돌아왔습니다.

오페라라는 게 한 편의 이야기이니
아직 소리가 낯설어도 재미가 있습니다.
‘아이다’의 라다메스장군 이야기에 귀를 솔깃해하며
달골의 저녁모임을 시작합니다.
달골포도즙과 유기농건빵을 야참으로 놓고.
하다는 많이 곤하다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숲도 가고 수영장도 가고
목발로 딴엔 힘들었을 겝니다.
덕분에 모두
자기 상황이 어떠하든 그 상황 안에서 즐겁게 지내려면 어찌할까 생각하게 했지요.
“우리아빠가 내가 즐겁게 살면 된대.”
그런데 거기 하나만 더하자 하였지요,
내가 이 세상에 어떻게 쓰일까도 생각해보면 좋겠다구요.
이 생에 자신의 소명이 무엇인지를 찾아보자 했습니다.
내가 찾는 최상의 즐거움이 설혹 아니어도
‘기꺼이’ 즐거울 수 있는 길을 갈 수도 있겠지요, 가치 있는 일이라면.
자라면서 어느 날엔가 가닥을 잡아갈 것입니다.
누구랄 것 없는 평생의 숙제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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