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9.18.달날. 비

조회 수 1111 추천 수 0 2006.09.21 18:10:00
2006. 9.18.달날. 비


“너라고 불러보는 내 조국아!”
그렇게 뜨겁게 외쳤던 젊은 날 아니어도
<백범일지>는 고교 때 숙제처럼도 읽던 책입니다.
1997년 학민사에서 일지 출간 50주년 기념으로 친필본 완역해설판을 냈고
덕분에 그 해 빨간 표지의 책을 다시 잡았더랬지요.
요새 식구 가운데 누군가 보는 모양이어
책상에 최근에 나온 백범일지가 있어
책방으로 가 옛적 그 책을 들춰보았지요.
마흔 문턱에서, 그리고 산골 삶에서 보는 백범일지는
예전만큼 그리 뜨겁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일지의 가치가 떨어질까만.
자유란 무엇인가, 사람들은 자유를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
‘자유’학교도(敎徒)가 아니어도 언제나 깊이 천착(穿鑿)하는 문제이니
어데고 자유 어쩌고 하면
귀녀겨(이건 순전히 제가 만들어 쓰는 말인데요) 듣거나 눈여겨보게 됩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 때 역시 밑줄을 긋고 있습디다.
“나의 정치이념은 한 마디로 표시하면 자유다. 우리가 세우는 나라는 자유의 나라라야 한다. 자유란 무엇인가. 절대로 각 개인이 제멋대로 사는 것을 자유라 하면 이것은 나라가 생기기 전이나 저 레닌의 말 모양을 나라가 소멸된 뒤에나 있을 일이다. 국가생활을 하는 인류에게는 이러한 무조건의 자유는 없다. 왜 그런고 하면 국가란 일종의 규범의 속박이기 때문이다. 국가생활을 하는 우리를 속박하는 것은 법이다. 개인의 생활이 규범에 속박되는 것은 자유 있는 나라나 자유 없는 나라나 마찬가지다. 자유와 자유 아님이 갈리는 것은 개인의 자유를 속박하는 법이 어디서 오느냐 하는데 달렸다. 자유있는 나라의 법은 국민의 자유로운 의사에서 오고 자유 없는 나라의 법은 국민 중의 어떤 일 개인 또는 일 계급에서 온다...” ; (p.372)

자유와 자유 아님의 갈림이라...
개인과 국가의 관계 속에서 살펴본 자유를 통해
나와 세상, 나와 우주하고 맺은 관계에서의 ‘자유와 자유 아님의 갈림’은
정녕 어디에서 오는가, 새삼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거리가 되었네요.
그대, 자유로우소서.


아무리 말해도(아니, 그렇다면 말을 안 하기도 해얄 것, 이놈의 어른이란 게...)
제(자기) 수다를 어쩌지 못하는 어린 아이 같은 고학년 녀석 하나가 있습니다.
알지요, 이해하지요.
얼마나 할 말이 많겠어요.
저도(자기도) 어디 그러자고 저럴까요,
하지만 어느 순간 그만 잊어버리고 마는 거지요.
통합교과를 하는 교실이 주는 긍정성 하나는
학년이 다르고 수업 진도도 다른 아이들이
교사가 이 책상에 가 있으면 저쪽 아이들이 기다려주거나
저 책상에 가 있으면 이쪽이 목소리를 낮추어 주는,
자연스레 서로에 대한 배려를 익혀간다는 겁니다.
사실 그 아이가 처음 이곳에서 생활을 시작하던 것에 견주면
칭찬을 저기 산만큼 해주고도 남지요.
저(자기)는 저대로 애를 어찌나 쓰는지요.
그런데 오늘도 1학년들과 그림동화책으로 글자를 익혀가고 있는데
어느 틈에 또 목소리 높여 옆의 아이에게 말을 걸고 있었지요, 아주 한참을.
오늘 하루에도 벌써 네 차례 일어난 일입니다.
짜증이 슬그머니 일었습니다.
나이대에 대한 제 기대치 때문이었지요.
아니, 그게 짜증이 날 일이란 말입니까.
어쨌든, 부끄럽지만, 짜증났습니다.
그런데 순간 눈을 드니 거기 하늘이, 나무가, 가을이 서 있는 겁니다, 변함없이.
스스로 변하고 사라지는 자연 말입니다.
저 생명의 길 말입니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가 싶데요.
‘생명의 길이란 게 자연스러울진대
그 길을 가고, 또 그저 길눈이나 밝혀주고자 한다면서
뭘 자꾸 만들려고 하고 있는가...’
순간 평화가 되데요.
이제 엄포를 놓더라도 그건 화가 아니라 다만 환기(換氣)입니다,
“뭐하니?” 하며 가벼이 등짝 한대 때려주는 식의.
어제 본 영화에 대해 느낌글을 쓰던 ‘우리말글’시간이었지요.

오늘은 고래방에서 춤을 춥니다.
오랜만에 제가 가르치게 되었네요.
박계숙샘이 하는 춤이 제가 가능하대면야 복습을 한다지만
지난 주 시작한 거라 저도 아직 익지가 않아
그냥 편하게 얻은 시간이다 하고는
고래방이 들썩거리도록 음악을 틀어놓고 안무를 하였지요.
애들이야 저들 집에서 저들 익숙한 선생이랑 하고 있으나
더 신날 밖에요.
어찌나들 즐겁게 춤을 추던지요.
되게 재밌어 합니다.

읍내로 오가는 시간을 벌었으니
오후가 한가합니다.
춤이 끝나고 일을 ‘놀이삼아’ 하자 했지요.
지난 여름 마지막 계자에서 아이들이 지어놓은 아지트 분해에 들어갔습니다.
재개발지역 철거반원이었지요.
그간 잘 놀았고
이제 돌려줄(아지트에 쓴 물건들) 때도 되었습니다.
더 이상 고래방을 차지하고 있어 비워야도 되겠고.
뼈대가 잘 빠지지 않으니 고무망치를 들어야 하고
묶여있는 끈을 풀자니 묶었던 것을 거꾸로 풀어가야 하고...
그게 또 하나의 좋은 건축공부가 되네요.

구미 ‘너름새’에 다녀왔습니다.
풍물 첫 강좌였지요.
‘바로 이걸 하고 싶었어.’
마치고서 한 생각이었답니다.
가르치는 사람의 단정함과 성실함, 실력이야 감히 말할 처지가 못 되고,
그동안 이래저래 어깨너머로 듣고 본 것의 도움도 컸습니다.
당장 내일 ‘우리가락’에 쓸 수 있을 것입니다.
같이 하시는 다른 학교 샘들도 뜨거운 시간인 듯 보였습니다.
뒤풀이에서 한 특수학급샘은 기효샘이랑 십여 년 전의 첫 만남을 들려주었지요.
정서장애 지체장애 뇌성마비를 포함한 장애학급에
특히 농아들이 많았답니다.
소리를 듣지 못해 말하지 못하는 친구들 말입니다.
풍물 공연을 보러 갔는데 아이들이 너무 신나하며 저거 하고 싶다했다지요.
그래서 아무것도 모르면서 아이들 풍물을 가르치겠다고 나섰답니다.
그때 옆 학교에 기효샘이 계셨다지요.
“되지도 않는 애들을 데리고 공연을 했는데, 너무나 잘 했어요.
그런데 아이들이 그러는 거예요.
수화로 노래를 부르고 있으면 사람들이 불쌍한 듯이 쳐다보는데
풍물을 하고 있으면 같이 즐거워해요 라고.”
훨씬 더 길고 훨씬 더 감동이 깊은 이야기였는데...
“안타까운 건 모든 사람들이 들을 수 있는 소리를
정작 자신들은 못 들어요.”
그리 말하고 싶었지요, 아니라고, 그들도 듣는다고.
사실은 그 샘도 알고 계셨을 거고
당신의 말뜻은 듣지 못하는 아이들에 대한 안타까움이란 걸 아다마다요.
저도 아이들과 그런 신바람의 풍물, 자기를 한껏 풀어내는 풍물을 하고 싶습니다.
마침 너무나 훌륭한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하늘은 늘 물꼬에 꼭 필요한 분들을 보내주신다지요.
이리저리 가르치며 좀 더 준비가 있으면 좋겠다 하고 있었는데 말입니다.
잘 배워 잘 가르치리라,
굳게 다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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