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9.19.불날. 맑게 개다

조회 수 1335 추천 수 0 2006.09.21 18:11:00
2006. 9.19.불날. 맑게 개다


흐린 하늘을 오래 보았더니
볕이 퍽이나 반갑습니다.
몸에 마당 빨랫줄에 내다 널린 것 같았지요.
‘사회’시간엔 우리나라 행정구역들을 살펴보았고
마침 우편권역과 우편번호에 얽힌 의미들도 풀어보았네요.
그 다음은 각 도의 큰 도시들을 훑었습니다.
지도를 세 장 펼쳐놓고 세 모둠으로 나뉘어
각 도의 큰 도시들도 살폈지요.
1학년들이 단추주머니를 들고와 관리하며
먼저 찾아낸 모둠에 쌓아주기도 했고,
먼저 찾아낸 모둠 곁에서 위치를 확인한 다음
제 모둠으로 돌아가 다시 찾아보기도 하였더라지요.

한국화도 세 모둠으로 나뉘어 했네요.
한 모둠은 능소화가 허드러지게 피고
하나는 함박꽃이 다른 하나는 연꽃이 피어오르고 있었습니다.
단소에서는 ‘도라지’꽃이 피었더라지요.
노래도 신났답니다.

오늘 ‘논밭에서’는 고래방에서 있었지요.
어제는 일을 놀이삼아 했고 오늘은 일을 일삼아 합니다.
정말 일이 일이 되게 하고 있었지요.
어제부터 분해철거하던 아지트 작업입니다.
령 동희 창욱 승찬이는 망치질로 뼈대와 이음새를 분리하고
신기와 하다는 같이 노끈이며 모든 끈들을 모아
종류별로 나누고 있었지요.
정민이랑 종훈이는 여기도 붙었다 저기도 붙고 있었습니다.
나현이는 ‘잡일’을 하였는데
온갖 흐트러진 것들을 이리 밀고 저리밀고 나누고 있었지요.
교무실을 들렀다 건너가보니
고리는 고리들로 우드락은 우드락으로 신문지는 신문지로
무데기 무데기를 이루고 있데요.

바쁜 불날입니다.
저녁 먹기 전엔 ‘우리가락’이 있었지요.
쇠 북 장구를 다 끌어다 놓고 했습니다.
계자에서야 더러 가르치기도 했지만
상설에서 쇠와 북을 가르친 건 처음입니다.
무엇보다 ‘할 수 있’겠데요, 잘 할 수 있겠습디다.
이번 학기엔 사물을 다 다뤄보려고 합니다.
구미 ‘너름새’에서 하는 공부가 당장 이렇게 큰 도움을 줍니다.
그래요, 이걸 하고 싶었다니까요.

달골에서 한데모임이 이어집니다.
우리가락의 감동을 한참 나누었지요.
저들도 뿌듯한가 봅니다.
“무거운 짐을 들고 가면 달려가 들어도 줍시다.”
“어른들이 일하면 도와드릴까요, 하고 물어봅시다.
아이들이라고 해서 노는 게 꼭 일인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사람살이에 필요한 얘기들도 나오지요.
령이는 재작년에 제가 아이들에게 읽어나가던 장편을 다시 읽고 있고
나현이는 새로 읽기 시작한 책 이야기를 하고
같이 읽기로 했던 책은 이제 동희 차례에 가 있습니다.
“작은 악마에서 점점 좋은 아이가 되어가고 있어요.”
한 아이에게 일어난 슬픈 일 행복했던 일들의 기록이라고
전체 줄거리도 말해줍니다.
하다는 이제 만화책들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만화는 너무 만화식이예요. 과장되고 유치하고...”
이 아이들 참말 잘 커나갈 것 같습니다.


한 어른과 나누던 이야기가 마음에 머물고 있습니다.
어떤 이가 하는 자원봉사수업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그게 다 무상이니까 그래요.”
자원봉사니까 성실하지 않다는 겁니다.
그럴까요, 정말 돈을 내지 않는 수업이라 그런 걸까요?
“사람들이 그런 거예요, 사는 게 그런 거라니까요.”
그럴 때 쓰는 말이 맞는 건가요?
그렇다면 저는 생이 꼭 그런 건 아니에요 라고 말하겠습니다.
저는 절대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니까요.
세상에 어떤 선생도 자원봉사를 하겠다고 생각하면서
돈을 받는 수업과 받지 않는 수업의 구분을 둔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가 교사가 맞다면.
그럴 걸 뭐 하러 자원봉사를 한다고 나섰겠는지요.
물꼬만 하더라도 그렇습니다.
서울에 있을 적 물꼬는 고아원봉사활동을 오래 하였습니다.
그때 물꼬 식구들은
대치동이며 압구정동 청담동 개포동 목동 들에서 방과후공부를 통해 돈을 벌었고
그것을 저소득층 아이들, 고아원 아이들과 나누었지요.
급한 일이 생겨 돈을 받는 수업시간을 지키지 못하는 일은 있어도
저소득층과 고아원에 가는 시간만큼은 지켜내야 한다며
서로 온 정성을 다했습니다.
아, 물론 어떤 수업이나 최선을 다해야지요.
말을 하자니 그렇다는 겁니다.
물꼬의 계자만 하더라도
돈을 내는 아이들에서부터 내지 않는 아이들까지 있는데
결코 그것이 아이를 대하는데 기준이지는 않습니다.
지난 여름 끝에 상설학교에서 빠졌던 힘을 온 신명으로 계자를 하며 끌어올리고 있을 때
혹시 돈을 받기 때문에 그런 건 아니냐 묻는 어느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참 할말이 없데요.
왜 더 정성스럽게 했느냐 굳이 해석이 필요하다면
부모가 곁에 있고 없고의 차이가 더 컸을지 모르겠다 하겠습니다.
부모는 멀리 있고, 우리가 저들을 정말 부모처럼 돌봐야 한다는,
그리고 정말 믿고 맡겨준 거니까 그런 만큼 해야 한다는.
그날 그이 앞에서는 어떤 모욕감으로 말을 잊었더라지요.
이 논리대로라면 우리학교는 무상이어서 교사들이 허술한 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허술한가?
싼 게 비지떡이란 말처럼 돈을 받지 않아 우리의 교육은 형편이 없는가?’
그것이야 말로 얼마나 자본의 논리인가요
(돈이 에너지는 될 수 있지만 교육의 질을 결정하는 건 아니랍니다).
그 논리대로 살지 않겠다고 이 산골로 들어와서 삽니다.
우리의 뜻이 돈의 논리때문에 왜곡되지 않았으면 참말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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