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9.20.물날. 맑음

조회 수 1057 추천 수 0 2006.09.23 13:54:00
2006. 9.20.물날. 맑음


김상철아빠도 영양에서 들어왔지요.
오늘은 남자 어른들이 죄 붙어 새터포도밭에서 포도를 따낸답니다.
“콘티 50박스!”
노오란 콘티라는 네모난 바구니에는 30킬로그램은 족히 들어가지요.
느지막히 아침을 먹고 나가 두어 시간 만에 마흔 상자를 땄더랍니다.
“거뜬하네.”
“그러게 점심 먹고 조금만 하면 더하면 되겠어요.”
그런데 가리고 났더니 겨우 절반이더라나요.
“스무 박스는 더 해야 되겠네.”
그런데 그 스물로도 모자라 다시 가고 또 가고 또 가고...
결국은 해지도록 그렇게 쉰두 상자를 만들었답니다.
이것을 한 밤에야 유기농포도를 가공하는 곳에다 실어갔지요.
아직은 저희가 저온포장에 대한 기술이 없거든요.
저온인 만큼 덜 끓이니 영양파괴도 물론 덜하겠지요.
포장재질도 달라진다 합니다.
그래서 달골포도즙은 물꼬 안에서 즙을 내는 고온포장용과
저온포장용으로 나뉘어 돈사게 되었답니다.

돌탑이 명물이었던 학교 큰마당에
이제 새로운 것이 등장하였습니다.
겨울에 과녘판으로 쓰였던 것을 고쳐 대문 옆에 알림판으로 세우고
책방 앞으로 새로운 탁자가 놓였지요, 평상들 곁에.
대가족 식탁용입니다.
무엇보다 크게 환호를 자아낸 것은 그네랍니다.
세 명이 같이 앉아 흔들흔들하면 그만 다 졸음이 일 것 같은 의자그네이지요.
정운오아빠의 솜씨들이었네요.
바쁜 농사 짬에 언제 그 일들은 또 다 하셨는지...
아이들도 도왔다지요,
령이는 못을 빼고 하다는 입으로 망치질 하고.

아이들은 ‘스스로 공부’를 하고 있었지요.
“정민이가 새로운 ‘개’책을 주어 읽었어요. 고마웠어요.”
동희입니다.
아이들은 서로 다른 사람의 주제를 챙겨 자료를 건네기도 합니다.
“학교 둘레 가을꽃들을 살펴보고 있어요.
(봄에 피는)주름잎이 다시 피고 있고, 질경이 꽃이 피고, 고슴도치풀...”
나현이지요.
승찬이는 새가 위장하는 법을 알아보고 있다 합니다.
포도가 중심생각인 창욱이는
포도밭에서 일하고 계신 어른들 소식도 전해주었네요.

수영의 열기는 참말 뜨겁습니다.
“꾸준히만 하면 실력이 나아져가요.”
류옥하다가 깨친 체를 합니다.
“제대로 하니까 정말 재밌어요.”
령이가 그랬지요.
마침 같이 장도 보러갔습니다.
쇠날에는 달골에서 아침을 먹으니까요.
정말 한 지붕아래서 살아가는 정겨움이 와락 달려들던 걸요.

저녁, 으슬으슬 춥고 몸이 덜덜 떨리며 사지가 욱신거렸습니다.
천생 몸살기운입니다.
아직은 낮에 수업에다 밤에 기숙사까지 가는 일이 힘이 부치나 봅니다.
하다가 자신이 만든 다섯 번째 안마조정기(*)를 들고 와 안마를 시작하자
그 조정기의 재미에 다른 아이들도 흠뻑 빠져
갑자기 안마방이 차려졌습니다.
제가 CD를 누르면
아이들은 정해놓은 곡목을 차례로 부르고
제가 손가락으로 그 음량을 조절하기도 합니다.
“재밌다.”
“내일 또 해요.”
이 녀석들로 사는 게 또 한껏 즐거웠지요.

어떤 이로부터 선물을 하나 받았습니다.
뭐, 별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산을 좋아하고 그만큼 많이 타는 제게는
얼마나 요긴한 물건이던지요.
닳고 달아 구멍숭숭한 제 신음새(신은 모양새?)를 눈여겨보았던 모양입니다.
선물이란 게 그럴 때 젤 가치롭겠지요.
받는 이가 필요하던 걸 주는 이가 절묘하게 내밀었을 때!
“그에게 관심을 갖고 그에게 가장 필요하겠는 걸 줘. 네가 할 수 있는 걸로.”
아이가 다른 사람에게 줄 선물로 고민하면 그저 그리 말해준답니다.

이 산골 작은 학교에도 참으로 많은 이들이 오고 그리고 갑니다.
어떤 이는 그리움으로 남지요.
젊은 할아버지가 달골에 같이 올라오게 되면서
아이들이 잠자리로 간 뒤 자주 식탁에 마주 앉습니다.
오늘 밤은 그 그리운 이들 얘기를 했지요.
몸이 불편한 아이가 있었는데
그니의 부모는 학교가 늘 그 아이에게 애쓴다고,
아이가 (다른)학교에서 그런 대우를 받은 적 없다며 고마워했더랍니다.
그런 그가 고마웠고 저리 믿어주는구나 싶어
그 아이를 위해 마음을 더 냈던 듯합니다.
뒤늦게 참 아름다운 관계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교장샘한테는 정말 잘했지요.”
서로 서로 잘했습니다.
고마운 일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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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모님 어깨, 언제 주물러드렸나요?
- ‘안마 조정기’ 발달사

2006년 7월 14일 쇠날, 비 내리다 갬

덥습니다.
무지 덥습니다.
한바탕 비가 내렸는데도 기온이 내려갈 줄을 모릅니다.
지구 저 편은 물난리로 시름에 겹다는데 정말이지 짱짱한 날입니다.
도서관이든 서점이든 아니면 까페라도 시원한 곳을 찾아 감직도 하나 숨이 턱턱 막혀 한 발자국을 옮기지 못하겠어서 죙일 아이랑 집에서 뒹굽니다.

“어깨 아퍼.”
“‘안마 조정기’ 가져올게요.”
관절이 안 좋은 어르신이라도 계신 집이라면 안마기 하나쯤 있기 마련이지요. 그 종류도 참 많습니다. 방망이처럼 두두두두둑 하며 아픈 부위에 대면 저 혼자 움직이는 것도 있고, 의자에 앉으면 등이며 허리를 두들겨주는 것도 있으며 누워서 전신마사지가 가능한 것까지 있지요.

관절 앓이에 어깨 앓이도 하는 환자가 있는 저희 집에도 안마기가 있습니다. 안마 조정기로움직이지요.
그 조정기엔 무려 마흔 아홉 가지 안마방식이 있습니다. 주먹으로 하는 방식 넷, 봉화모양 넷, 손가락으로 하는 것 다섯, 손등으로, 주먹등으로, 몸 부위별로 누르고 돌리고 치고 쓸고 털며 하는 방법들입니다. 아, 등 긁는 기능도 있답니다. 기계는 굽은 곳도 잘 갈 수 있어서 사방팔방 닿지 않는 곳이 없지요.

그런데 이 조정기는 카드가 있어야 합니다. 발급받은 카드를 대면 동작에 들어가는 거지요. 예약 버튼을 누르고 안마 강도와 빠르기 조절 단추를 누른 다음 엔터를 칩니다. 물론 어떤 식의 안마를 원하는지 결정하여 단추를 누르는 게 다음 할 일이지요.
“이건 뭐야?”
“설명 버튼을 누르셔요. 그러면 설명을 해드려요.”
설명은 또 얼마나 친절한 기계인데요.
“‘주먹 2’는 주먹을 쥐고 세워서 아랫면으로 두드리는 것으로 척추 뼈를 따라 움직이기 좋은 방식입니다.”
그런데 안마를 받다가 방향을 움직이고 싶으면 역시 그 기능도 갖추고 있습니다. 물론 위, 아래, 사선, 어디든 갑니다.

이 안마기의 더 탁월함은 바로 라디오 기능과 시디기능입니다.
“비 내리는 호남선 남행 열차에...”(노래, ‘남행열차’)
“감자씨는 묵은 감자 칼로 썰어 심는다...”(노래 ‘씨감자’)
시디는 그 수록곡이 얼마나 많은 지요.
“조용한 노래를 원하시면 시디가 좋고, 춤추고 싶은 음악은 라디오에 담겨있습니다.”

이 안마기 회사는 최근 2년 동안 신기술에 힘을 모았고 기술개발에 성공하여 다섯 차례나 신제품을 내놓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고객 사은잔치를 통해 이전에 썼던 안마조정기를 반납하기만 하면 무료로 새 기계를 제공받을 수 있었지요.

이쯤 되면 어디 산인지 궁금해지시겠네요. 하나쯤 구입하고 싶으시지요? 그런데 그게요, 저희 집에만 있는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안마조정기(안마기 포함)랍니다. 바로 같이 사는 아홉 살 사내아이!

미국에서 보내는 6-7월, 나이 마흔께에 쉽지 않은 결정 하나를 남겨놓고 마음이 무거운 날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에 짓눌려진 시간을 자주 벗어날 수 있었던 건 그 무엇보다 아이 덕이었답니다. 나도 여전히 이렇게 환하게 웃을 수 있구나, 아이랑 사는 일이 더없이 고마웠지요.
“아이들이 없었으면 이놈의 세상 열두 번도 더 망했을 거야.”
언젠가 선배한테 그랬던 적이 있었답니다.
“열두 번만 망했겠어?”
어른인 우리들도 저리 유쾌하게 살 수 있지 않을 런지요...

; 지난 여름 시카고에 머물고 있을 때 인터넷뉴스매체에 올렸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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