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9.21.나무날. 맑음

조회 수 1251 추천 수 0 2006.09.25 12:36:00
2006. 9.21.나무날. 맑음


한 아이에게 어떤 변화들이 크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너무나 작던 손풀기 시간의 그의 그림이
이제 스케치북을 가득 채우게 되었습니다.
해건지기 시간에는 명상에 더욱 깊이 들고
아침을 여는 노래에서는 목소리가 커졌습니다.
배움방 시간에서 눈을 모으는 시간도 길어졌습니다.
어릴 때 어른들로부터 받았던 상처를 치유해가는 과정이 아닐까 지켜보고 있답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이, 이 자연이 또 고마운 아침입니다.

숲에 갔습니다.
마을길에서 만난 대추는 한가위 차례상을 준비하고 있었고
길게 매달린 벌집 하나에 벌들이 꿀을 모으느라 바빴습니다.
논가 수로엔 고마리 넘치도록 피고 있었지요.
우리들 명상의 길 ‘티벳길’은
가을 채비로 수런거리고 있었습니다.
참취가 한창이고,
산박하 잎을 따서 아이들은 서로 코에 대주었지요.
으름을 딴 아이들은 다래도 찾아보았습니다.
“도토리예요.”
덕분에 졸참 갈참 신갈, 떡갈, 굴참, 상수리 열매들이
어떻게 다를까 살펴보는 시간도 가졌지요.
“봄에도 ‘숲이랑’해요.”
그리고 내년 가을에는 중심생각공부(집단프로젝트)로 버섯을 하잡니다.
무엇을 공부해나갈까 자연스레 생각하고 의논하고 있는 아이들 배움시간이었답니다.

연극을 시작하려고 몸풀기로 고전춤을 추다가
도저히 어수선하여 계속할 수가 없었습니다.
고래방 한켠에는 지난 여름 끝에 만든 아지트를 분해하는 일이 계속되는데
그것에 애를 써서 먼저 무엇이라도 정리를 하는 게 좋겠다 했지요.
무언가를 땀 나도록 할 때 얻는 기쁨이 또 있지요.
등이 흠뻑 젖도록 아이들과 움직이고 나서
연극 한 판 무대에 올린 것만 같은 뿌듯함 찾아들었답니다.

국선도시간에 김기영교수님과 혜민샘까지 오셨습니다.
물론 종찬샘과 진우샘이 진행하셨구요.
“은혜 받은 가정이에요.”
한 가정 안에 성직자가 있을 때 꼭 하게 되는 말인데,
수련자가 있어도 그렇겠다는 생각이 들어 덕담을 드렸습니다.

어른 몇이 배밭에 갔습니다.
물꼬 밭은 아니구요,
거둔 배를 한참 나눠주신 분네 일을 도우러 간 게지요.
손이 더 있어
우리가 얻은 게 있으면 그리 품 나누는 시간이 더 많으면 좋겠다 아쉬워라 합니다.

‘두레상’이 있었습니다.
가을의 풍요가 가까이 있어서 좋다는 이웃들입니다.
종훈이네는 마을에서 얻게 된 집을 수리한다 하고
연일 학교 포도일에 손을 보태고 있습니다.
상범샘은 다른 생각을 전혀 못하고, 그리고 안하고
그저 포도일만 하는 요즘이랍니다.
포도가 좋아서 그만큼 일도 많다지요.
“배일이나 포도일이나 산더미 같은 일을 보며
돈을 위해 사는 건 재미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고...
그래서 한 가지 일만 하지 않으려고 하는데,
요새 조금 갑갑하기도 합니다.”
곽보원엄마의 요새 마음이랍니다.
아이들한테 자전거 주차, 작은해우소와 빨래터 정리에도 마음을 써달라는
큰엄마 부탁이 있었고
농기구며 여러 연장 정비를 두레상 때마다 모여서 같이 하기로 했습니다.
논 마지막 다랑이를 두더쥐들이 구멍을 뚫어
물이 새 넘의 도라지밭에 피해가 가니 아이들이 등교길에 챙기기로 하였고,
우물물을 퍼서 허드렛물로 잘 쓰기위해 준비하기로도 했지요.
몸만 움직이면 굳이 사람이 심고 거두지 않아도 자연이 준 것이 많은 가을입니다.
산 사람들이 산에 들어 먹을 걸 찾을 줄도 알아야 한다며
이번 주말에 산에 들기로도 하였답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2004년에 상설학교로 문을 열 물꼬를
아이 입학을 위해 기다리는 이들이 더러 있었습니다.
한 어머니도 그랬고
실제 입학을 위한 절차도 밟았지요.
“요새 아이들은 자기 취향이 분명해요. 우리 아이도 우유 하나를 살 때도 뼈로 가는 칼슘 우유, 무슨 무슨 어떤 우유를 사다 달라고 해요. 저는 그런 다양한 세상이 좋아요.”
그런데 재미나게도 이 다양한 종류의 경험을 쉽게 만나도록 했다는 착각을 만든 세계는
사실은 다양한 문화와 다양한 먹을 거리를 말살시키고 지역의 문화차이를 없앴습니다.
예를 들면 파는 음료수들이 지역산 전통음료들의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 있지요.
무엇이 다양함인가요?
다양함이란 것이
같은 회사에서 만들어낸 우유 가운데
어느 것 한 가지를 고르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겁니다.
오늘 어떤 샴푸를 살 것인가에 대해 조그만 얘기들이 있었답니다.
단순한 기능을 사야 한다,
결국이 무엇이 좋다라고 하는 것은 팔려는 이들이 주는 정보(광고)에 따른 거 아니냐,
그것에 귀를 기울일 일은 아니다 라는 얘기가 있었고,
머리 때를 벗기는 것에 충실한 것을 사자는 쪽으로 얘기가 모아졌네요.
정작 장을 보는 처지에서는
같은 값이라면 기능이 더 좋은 걸 사려는 것도 물론 이해하면서.
그렇다면 ‘나는 어떤 식으로 돈을 쓰며 물건을 사는가’도 살피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홈플러스 이마트 같은 곳에서는 아무리 싸도 그 까닭으로 물건을 사는 법이 없지만
길거리에서 푸성귀나 혹은 난전의 물건은 천원어치 삽니다.
개념도 없고 계통도 없고 원칙도 없는 제 경제법이네요.
대형할인점에서는 천원이 아주 미세한 크기이고 별 가치도 없는 돈이거나
혹은 표정도 온기도 없는 돈이기 쉽지만
거리에서 추위에 떨며 물건을 파는 이에겐 희망의 돈,
오늘 저녁을 준비하기 위한 돈일 수 있겠기에
꼭 필요의 유무가 구매를 결정하는 건 아닙디다.
아무튼 돈을 써서 살 수 밖에 없다면
나는 어떤 식으로 물건을 사고 있는가 ‘의식’하며 살아야겠습니다.
아, 입학을 준비하던 그이는
다양한(?) 상품이 놓인 도시에 남기로 결정하셨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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