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9.22.쇠날.맑음

조회 수 1245 추천 수 0 2006.09.26 09:19:00
2006. 9.22.쇠날.맑음

“송장벌레다!”
큰넓적송장벌레를 보았습니다.
아이들과 숲에 들어가는 날이지요.
“암컷이에요.”
“맞아, 꽁지가 긴 것 보니까.”
갓 태어난 것으로 보이는 거위벌레도 만났습니다.
목이 긴 거위벌레.
“이게 뭐예요?”
“으름!”
선배들이 대답해주네요.
팔자 좋게 아이들이랑 멀지 않은 곳에서 도감을 펼쳐보고 있는데
벌초를 다녀오던 어르신 두 분이
아이들 손이 닿지 않는 곳의 으름을 따내려주셨습니다.
“어이구, 교장선생님!”
한 어르신은 한씨할머니네 예순 넘어 된 아드님으로
경찰서장으로 계시다 퇴직을 하신 분인데,
만날 적마다 어찌나 깍듯하게 인사를 건네오시는지
민망하기까지 하답니다.
겸손한 어르신이 인사만으로도 큰 가르침을 주시지요.
아이들이 으름을 챙겨 길로 내려설 때
저는 저 편에서 버섯을 땄습니다.
“먹는 거예요?”
“응. 피버섯이야. 반버섯이라고도 하는데...”
“봤어요.”
“우리 아까 봤지?”
피버섯과 낯을 익힌 아이들은 아까 들었던 숲속으로 들어갔지요.
그리고 한아름, 정말 한아름 피버섯을 따 왔습니다.
이런, 그런데 그건 참 많이 닮았으나 피버섯이 아니었습니다.
“잘 봐, 색이 더 붉지? 더 화려하잖아.”
두 개를 견주어놓고 나니 금새 표가 납니다.
그때 저 편에서 소동이 일었습니다.
“덫이예요.”
“누가 놓은 거야?”
쓰러진 나무 아래에다 놓은 덫에 류옥하다 팔이 걸렸지요.
다행히 빨리 알아채 풀 수 있었지만 큰일날 뻔 하였습니다.
‘티벳길’로 다시 내려와
싸온 배를 깎아 한 사람씩 다녀가라 하였는데
령이가 달려오며 버섯 하나를 내밉니다.
“이게 뭐예요?”
“지난번에 그거!”
이 마을에서 꽃바라기라 불리는 오이꽃버섯을 쥐고 왔는데
닮기는 했으나 크기가 너무 커서 자꾸 미심쩍더라지요.
“되게 많았어요.”
낙엽송 아래 지천일 겝니다.
우리는 잽싸게 그곳으로 달려가 따기 시작했지요.
된장찌개에 한 끼는 거뜬히 먹어내겠습니다.
돌아오는 길, 청미래열매를 툭치며 지나왔습지요.

‘손말’에 ‘넘의말’이 이어졌고
한 주를 갈무리했습니다.
해가 짧아져 그럴까요,
이즈음부터 산골의 해는 정말이지 짧아지지요,
한 주가 정말 빠르게 지나간다고들 했습니다.
내일 있을 축구특강에 대한 기대들도 컸지요.

포도는 서서히 내리막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맛도 떨어지고 보기도 떨어집니다.
새터는 어지간히 땄고 달골만 남았습니다.
이번 주까지만 생과로 내고,
마저 따서 포도즙을 내고나면 포도주와 효소와 쨈용만 남게 될 것입니다.

“이 자리가 참 귀한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9월을 시작해야 겨우 공동체식구모임을 이제야 한 차례 합니다만
홍정희엄마는 오며가며 하도 많은 이야기들을 해서
어제도 모임을 한 느낌이라나요.
포도랑 내내 가을들머리를 열고 있던 상범샘은
포도농사 짓는 집이라지만 포도봉지도 올해 처음 쌌고 따는 것도 처음인데
(교무행정을 맡고 있었으니까요)
9월 4일 개학하고 포도 딸 즈음 사정상 붙어야해서 긴장했고
어느새 포도선별 강의를 하고 있더랍니다.
잘 모르니까 부자연스러웠고 정신없이 붙다보니 자연스럽게 되고
때때마다 잔치라든지 저온가공을 위해 다른 곳으로 포도즙을 보내기도 하면서
해결책이 나오고 일이 되어가더라지요.
정말이지 작황이 좋아 포도가 많기도 했는데 말입니다.
사람들에 관해 별 말을 하지 않으시는 젊은 할아버지가
오늘은 벼르고 계시기라고 했는지
작년과 올해 학부모들을 견주어 말씀 하나 하셨습니다.
학교 안내하는 날(10월 22일 해날)을 앞두고
있는 이들이 잘해야 다음에 오는 이들도 그걸 보고 따른다는 말씀을 하셨지요.
희정샘은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와 좋다며
서울이 얼마나 비인간적인 환경인지를 새삼스레 깨닫고 왔다지요.
도시 안의 아파트에서 혼자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 우울증에 걸릴 수 밖에 없겠다,
여기 아이들 속에서 마당에서 아이를 키울 수 있어 좋다 합니다.
요새 저는 “마음을 쉽게” 쓰고 살고 있다 전하였지요.
의욕상실도 포기도 아닌
말 그대로 마음을 쉽게 쓰고 사는 법을 그만 알아버린 가을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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