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9.24.해날. 맑음

조회 수 1232 추천 수 0 2006.09.27 17:32:00

2006. 9.24.해날. 맑음


어른들 몇은 버섯을 따러 산에 들었고
아이들은 마당에서 죙일 놀았습니다.
“맨날 비석치기만 해요?”
“그게요, 유행이 있어요. 길면 두 달까지도 가요.”
지난 ‘두레상’에서 아이들 놀이문화가 다양하지 않다는 어느 어른의 걱정에
류옥하다가 답변을 이리 했었지요.
걱정마라, 때가 되면 고만한다,
뭐 그런 식의 말이었을 겝니다.
무엇이나 그러하듯이 놀이 또한 생성하고 번창하고 소멸하기 마련이지요.
왜곡된 이상한 놀이가 아니라면(컴퓨터게임이라든가, 아주 폭력적인)
아이들 놀이를 그리 걱정할 일은 아니겠습니다.
그 뒤 하다는 무슨 생각에서였는지
자기 장난감 차들을 꺼내 빌려주기 시작했는데,
오늘 아이들은 그 차로 새로운 놀이판을 만들어 종일 놀았답니다.
그게 지리해질 때쯤이면
오징어달구지도 하고 땅따먹기도 하고 사방치기도 하고.


반쪽이샘의 <고물자연사박물관>전이 북촌미술관에서 지난 6월 30일부터 있었습니다.
오늘이 그 마지막이었네요.
버려진 고물과 제목과 작품이 절묘하게 일치하고 있었지요.
예를 들면 ‘로드킬’은 자동차에 치인 산짐승을 보여주면서
터널을 뚫는 기계부품 하나가 거기 쓰이고 있었지요.
만화가적 해학과 풍자, 빛나는 기지로 넘치고 있었습니다.
신화학자 이윤기샘의 망가진 자판이 쥐와 뱀이 되어있기도 하고
물꼬가 나눠드린 단추는 올빼미가,
날마다 우리들이 쓰는 숟가락과 젓가락은
400마리의 플라밍고로 날아오르고 있었지요.
전시회가 끝나기 전 얼굴 비친다고
시골 에미마냥 배 보따리(산골 선물이란 게 그렇지요)를 들고 미술관까지 갔더랍니다.
“점심 안 먹고 있었는데...”
같이 점심을 하자 기다리고 계셨으나
사인을 받으려고 길게 늘어선 줄이 언제 끝날 줄 몰라
그냥 돌아왔습니다,
모두의 연인을 따로 뫼셔나오는 것도 예가 아닌 것 같아.
전시회가 손익분기점을 넘어
언론사에 ‘만원사례’라며 소정의 답례를 한 일까지 있었다 합니다.
미술관 개관 이후 처음 이익을 낸 전시회였다 들었던 듯도 합니다.
곧 순회전도 가지신다지요.
작년이었던가요, 샘의 봉담작업실에서 봤던 것들이 대부분인데도 새로웠지요.

아, 그리고 엊저녁
친구의 좋은 선물을 받았습니다.
한때 영화평론을 써보기도 했던 경험을 아껴주는 그 친구는
산골 들어가 사니 볼일 드물겠다고 영화를 챙겨서 시디로 챙겨주기도 하는데
마침 서울 나들이 한다 하자
집에다 영화 한 편을 준비해두고 있었지요.
테리 조지 감독의 <호텔 르완다>.
후투족과 투치족으로 이루어진 르완다의 내전에서
백일동안 1268명의 난민을 지켜낸 한 남자의 얘기로
돈 치들의 뛰어난 연기나 닉 놀테의 감초 역들로도 빛나는 영화였겠으나
(결코 영웅 만들기가 아니랍니다)
정작 우리를 꼼짝 못하게 한 건 역사적 ‘사실’이었지요.
사월은 잔인한 달이라던 시의 한 구절도 미래를 내다보던 예지력이 담겼던 것일까요?
1994년 4월 7일부터 7월까지
아프리카의 아주 작은 나라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요?
코가 조금 더 높고 피부색이 조금 더 밝다는 까닭으로 투치족을 선호해
식민통치를 했던 벨기에가 떠나자
후투족은 그간의 압박의 세월에 대해 보복을 시작합니다.
정작 벨기에가 떠나면서 정권을 잡은 건 후투족이었으니...
전 인구의 8분의 1인 백만 여명이 죽어나가는 동안
힘 있는 서양은 그들을 외면했고 세계 언론은 입을 다물었습니다.
후투족 여성부장관은 투치족의 여성을 강간해도 된다고까지 선언하였고
(영화에서야 이 대사가 나오지 않지만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장면이 있지요)
씨를 말리기 위해 아이들까지 무자비하게 죽여 나갔지요.
라디오는 계속 민병대를 선동합니다.
그러니까 날마다 만 명이 죽어나간 셈이지요.
후투족 민병대가 던진 유엔평화유지군(불과 몇에 불과한)의 피 묻은 헬멧,
10센트짜리 중국산 벌초용 칼날을 길에 긋고 다니는 소리,
그것은 어떠한 참상보다 만행을 잘 그려내 주고 있었습니다.
그때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었던가요?
영화의 완성도로서도 어떤 영화에 뒤지지 않을 듯한데
지금 상영관이 전국에서 고작 여섯 곳(?),
1회 관람객 수가 겨우 2-30명이라 하였습니다.
<호텔 르완다>를 보고 권하는 것도 지구공동체의 성원으로 해야 할일 아닐까 싶데요.
큰 나라에 휘둘렸고 스스로 일어서지 못하는 한 나라가,
종족끼리의 싸움이,
증오가 어떻게 증오를 부르는지,
그리고 ‘평화’(?)를 향해가는 헌신적인 몇 사람이,
가만히 내 조국(결코 민족주의를 말하려는 게 아니라)의 현실,
그리고 우리를 둘러친 현 세계와 나를 인식하는 길잡이 하나 돼 줄 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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