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9.25.달날. 참 좋은 가을볕

조회 수 1156 추천 수 0 2006.09.27 17:34:00
2006. 9.25.달날. 참 좋은 가을볕


가을은 전령들의 시간입니다.
벌레 우는 밤이면
인간과 신, 혹은 인간과 우주의 소통을 위해 온 존재들이 거기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가을이
더 깊이 자신의 심연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는 계절이 아닐는지요.
요즘은 한참 벌레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게 참 희안합니다.
어젯밤에는 욕실에서 낯선 벌레 한 마리를 만났는데
손으로 올라오면 무사히 밖으로 내보내준다 하였지만
몇 차례의 오랜 시간에도 그는 제게서 고개를 돌려버렸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 차 안에 있던 파리에서 맴돌고 있어
가만히 손을 내밀었더니 손바닥에 앉아 밖으로 내보내주었지요.
그래요, 어제는 제게 그니에 대한 적대감이 있었던 것입니다.
낯선 것이 주는 두려움,
혹 내 손을 물지도 모르고 그래서 독이 퍼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같은 것이
스물스물 일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니면 그가 징그럽다던가 하는 식의 편견이 가진 거부감도 껴 있었을지 모릅니다.
“어떻게 말을 해요?”
아이들은 자주 묻습니다.
어떻게 얘기를 나누냐구요?
마침 오늘 동화책을 읽어주고 있는데
노린재 한 마리가 방바닥을 기어가고 있었습니다.
제게로 오라고 했지요.
그는 가던 방향을 바꾸어 제 치마에 와서
마치 고양이처럼 재롱을 부렸습니다.
“이제 일어나야 해. 아이들이랑 공부를 시작해야하거든.”
곧 그는 손에 올라왔고,
밖의 담쟁이잎사귀에 얹어 주었지요.
“우리들도 할 수 있어요?”
“나도 해봐야지.”
“그러면 나무들이랑 다른 것들하고도 대화가 가능하겠네요.”
아이들에게 어떤 일들이 일어나게 될까 궁금합니다.
이런 소리도 애들하고 하고 있으니 알아듣지
어데 가서 하면 미친 사람 취급받기 딱 십상이겠지요.
아이들과 사는 세계는 전령들과 가까워서도 참말 좋습니다.

우리말글 시간 아이들은 시집을 뒤적였고
다른 이들을 위해 낭송을 하기도 했습니다.
한 사람씩 나와 귀 닦고 손톱도 깎으며
주말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도 변함없이 있었지요.

오늘 김천에는 전국가족연극제가 문을 엽니다.
연극 한 편 보여주고 싶은 마음 간절하였는데,
마침 잘 되었다 하였지요.
그런데 개막작이 극단 목화의 ‘로미오와 줄리엣’.
아이들이 보기에 적절한 극이라고 하기는 어렵더라도
극단 목화의 작품이라면 볼 만할 겝니다.
한 장면 한 장면이 그림엽서 같다고 이름나 있기도 하고
오태석표 연출이라면 내용이 좀 어렵더라도
연극을 만난다는 목적만으로 충분할 수 있을 테지요.
식전행사로 준비된 미에르바라는 러시아 여성3인조의 일렉 현악 연주는
밖에 앉아 차를 마시며 귀로만 듣고,
캉캉 살사 쌈바 러시아민속무용을 추는
러시아 민속무용단 ‘노취’의 공연도 보았습니다.
곧 막이 올랐지요.
아니나 다를까, 색감, 상징, 전통과의 조화들은 연출 오태석이란 설명 없이도
딱표였답니다.
연출의 기발함이야 말할 것도 없고
우리 가락 우리 호흡 우리 소리를 잘 녹여내고 있었지요.
오태석 작품마다 느끼는 거지만
그는 정말 색을 참 잘 씁니다.
오색천을 날리며 장례식을 표현한 거며
무대 바닥을 하얀 천, 또는 빨간 천으로 깔아 보여준 상징과 은유는
참으로 절묘했더랍니다.
아래 학년만 곁에 앉히고 조금 도와주었을 뿐인데
다들 줄거리를 잘도 꿰고 있데요.
“엄청 재밌었어요.”
“연기가 대단했어요.”
“연극이 자연스러웠어요.”
끝나고 연극을 좀 설명해준 게 도움이 되어서 더 그랬을까요,
의외로 아주 재밌다 하였습니다.
저는 구미로 움직여야 하는 달날인데
아이들을 학교로 도로 실어가야 해서 홍정희엄마가 왔고,
서로 차를 바꿔 몰았습니다.
새삼 우리에게
쏘렌토가 있는 것이 고마웠지요
(차 이름이 이탈리아 나폴리 건너의 도시를 가리키는 건지 새삼 궁금하네...).
거기 운전하는 이를 빼면 꼭 아홉의 아이들이 다 탈 수 있으니까요.
젤 큰 녀석이 가장 어린 녀석을 안고 앞좌석에,
가운데는 넷, 뒤에는 셋이 오르는 거지요.
“한 줄에 한 사람씩 더 탄 거예요.”
내일은 차를 보내오셨던 어머니께 전화라도 드려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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