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 계자 닷새째, 2006.8.25.쇠날. 오후, 퍼붓는 비

조회 수 1200 추천 수 0 2006.09.13 17:57:00
113 계자 닷새째, 2006.8.25.쇠날. 오후, 퍼붓는 비


어제 오후 그토록 큰 작달비가 지난 산은
아직도 한참을 축축합니다.
오늘도 오후에 소나기 한차례 지난다 하는데
서둘러 갔다 돌아오지 하며 산에 오릅니다.
하늘오름!
발이 아프다는 한 아이를 뺀 마흔 셋 아이와
어른 아홉이 함께 갔지요.
가마솥방 엄마들은 5시에 도시락재료를 준비하고
6시엔 샘들이 죄 붙어 김밥을 맙니다.
떡국들을 먹고 7시 30분 대문에서 입음새를 확인한 뒤
마을로 들어오는 대해계곡 들머리인 흘목까지 달려 나가 버스를 기다렸지요.

길이 젖어 있을 것이니 아무래도 바위산은 어렵지 않겠는가,
소나기를 부딪히게 되면 더 힘들 거다,
어른들이 걱정이 많습니다.
“어느 길로 가시렵니까?”
어째야할지 모르겠을 땐 상황을 충분히 알려준 다음
아이들의 의견을 묻는 것도 방법(같이 책임지자?)이겠습니다.
지름길을 가자합니다.
바위라면 뚫고 가잡니다.
“그래, 가봅시다.”
그래서 이 여름 마지막계자도 앞의 두 계자처럼 쪽새골을 따라 오르게 되었답니다.

1지점.
용빈이는 비실비실 다리에 힘이 약하고
종수는 심한 팔자걸음입니다.
둘은 평지에서도 평형감각이 그리 좋지는 않지요.
한 샘은 아무래도 둘을 함께 데리고 정상을 오르는 게 어렵지 않겠느냐,
오른다 하더라도 내려오는 길을 감당할 수 있겠느냐,
큰 걱정입니다.
역시 아이들에게 물었습니다.
서로 받쳐주며 가보자 합니다.
그래요, 그래도 같이 오르기 시작했는데 의리가 있지...
“2지점까지 일단 갑시다.
거기서 다시 상황을 보고 얘기 하지요.”
그런데 작은 소란 둘이 있었지요.
동찬이가 그만 좀 하라는 말을 무시하고 지나치게 장난을 쳐
안내자의 말을 들을 수 없었던 여럿으로부터 큰소리를 들었고,
정욱이와 아리샘의 실랑이(?)가 있었습니다.
6학년이나 된 놈이 1학년 종수를 자꾸 귀찮게 굴어
급기야 아리샘이 화를 냈지요.
정욱이는 기어이 등짝을 한 대 맞았습니다.
“이눔의 자슥, 다시 그런 일이 있으면 가만 안두겠다!”
제가 엄포를 놓아주었습니다.
아니, 가만 안두면 어쩌겠다는 건가요,
백조가 우아하게 있으면 아래로는 파닥거려야 하는 발처럼
납작 엎어 물을 건너오게라도 해야지요, 하하.
1지점을 떠나며 정욱이에게 넌지시 물었습니다,
왜 그리 크게 혼이 났냐고.
“제가 장난이 심하다 보니까...”
“알아, 꼭 나쁜 마음으로 그랬다고는 생각지 않아.”
그런데 장난이 장난일 수 없는 상황, 처지가 있는 게지요.
예를 들어 눈이 먼 아이에게
보이지 않는 처지를 가지고 심한 장난을 치는 건 이미 장난이 아닌 거지요.
저도(자기도) 잘 알아듣다마다요.
그리고 우리는 그런 이야기 나눔 속에 성큼 친해져있는 듯했답니다.

2지점.
물가에서 다리쉼을 하고 사탕을 나누었습니다.
용빈이와 종수를 맡고 있는 샘한테 물었지요.
어찌 하고픈가 하구요.
“저는 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아무튼 교장샘 뜻에 따르겠습니다.”
가자 했습니다. 모두가 그랬습니다.
거기엔 길이 늦어져 혹여 우리가 겪을 수도 있는 어려움을
같이 견뎌낼 거라는 동의가 들어있었지요.
우리는 마지막까지 함께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런데 3지점에 닿았을 때
처음 줄과 끝줄이 그리 먼 간격이 아니데요.
모두 같이 오기로 결정하길 잘했다고들 했지요.
더구나 이 풍광을 같이 볼 이가 하나라도 더 있어 좋구말구요.
3지점을 지나 금새 약 1,242미터의 민주지산 정상을 밟았습니다.
“수월하지요?”
이번 여름 계자 세 차례를 같은 길을 따라 산에 오른 젊은 할아버지
(다른 해엔 갈 때마다 길을 달리했지요),
구름이 껴있으니 오르기가 싶다십니다.

“이 둘레 바위, 여기가 하늘자리야.”
그렇지 않아도 하늘에 닿은 것 같았다 합니다.
산 이쪽, 그러니까 영동 쪽은 구름에 온통 가렸고,
저 편 무주 쪽으로는 멀리까지 풍경이 펼쳐져 있습니다.
바람은 구름을 계속 밀고 있어
조금만 늦었어도 우리는 구름 더미에 둘러싸여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내려갈 뻔하였지요.
그랬다면 오른 자만이 느낄 수 있는, 볼 수 있는 것이 줄었겠지요.
하기야 그건 그것대로 맛이었겠습니다만.
꼭대기에서 밥을 먹고
하늘자리에서 보물도 찾았습니다.
낱개로 놓인 걸 찾아 먹기도 하고 꾸러미를 찾아 사람들과 나누기도 한, 초코바.
이젠 포도를 따야지요.
“이바구 때바구 강때바구
옛날도 옛날에 먼 옛적, 먹을 게 그리 많지 않았던 시절...”
이웃들과 풍성함을 꿈꾸던 이가 민주지산 꼭대기에 올라
하늘로부터 받았던 세 개의 씨앗,
그것이 포도로 주렁주렁 열렸고
그 포도가 번져 아래로는 김천으로 영천으로
위로는 옥천으로 입장으로 갔노라 전해주었지요.
“그 뒤로 사람들은 이곳을 하늘로부터 선물을 받은 자리라 하여
하늘자리라 불렀지요.”
전설 따라 삼천리입니다.
이제부터 여기는 정말 아이들 입소문을 타고 ‘하늘자리’가 될 게고
우리들의 이야기는 전설이 되겠지요.
그래서 언제는 이야기를 시작한 이곳으로
이 전설이 다시 전해지게 되는 날도 올 겝니다.
“바로 그 포도를 우리가 저어기 따러 내려가려 합니다.”
이제 포도를 따기 위해 내려가는 셈이지요.

다시 2지점.
빗방물이 떨어집니다.
넓은 잎사귀 사이로 떨어져 당장 그 크기가 머리에 고스란히 닿진 않으나
굵습니다, 셉니다.
번개가 번쩍번쩍 하고 천둥은 또 온 산이 흩어질듯 큽니다.
시계는 2시 40분을 지나가고 있었지요.
”가자!”
바로 다음 덩어리사람들까지 기다렸다 갈까 망설이다
안전지대까지 지금 있는 아이들을 먼저 데려다 놓자 싶었지요.
이제부터 계곡을 세 지점 건너야 안심할 수 있습니다.
물이 부는 걸 눈으로 바로 보는
승엽 류옥하다 고주완 경민 정욱이들이 걱정을 쏟기 시작합니다.
계곡이란 것이 얼마나 삽시간에 불어날 수 있는가는
이미 산 들머리에서 크게 주의를 주었던 터이니
지금 이 산에 든 모든 아이들 또한 그럴 테지요.
물길을 끼고 내려와 내를 하나 건너고
다시 내를 이편으로 건너고
이제 1지점에 놓인 마지막 내를 건너면 일단 마음을 놓을 수 있습니다.
“옥샘, 이제 저희들끼리 갈 수 있어요.
샘은 다시 올라가셔야하니까...”
승엽이랑 하다는
다시 다른 아이들을 위해 산을 거슬러 올라갈 저를 걱정해줍니다.
"가방도 주세요, 짐 되니까."
그렇지만 마지막 계곡물이 가늠되지 않으니
건너는 것까지 확인해야지요.
그래도 올라 가라, 가라 하는 아이들.
드디어 1지점에 놓인 계곡.
마음이 바쁩니다.
이미 물은 눈 깜짝할 사이에 불어있습니다.
“됐다. 여기서부턴 길이 안전하니까...”
이곳을 아홉 차례 오른 류옥하다에게 아이 일곱을 부탁합니다.
“주차장으로 들어서면 왼편에 식당이 있어,
아줌마한테 말씀드리고 거기서 다른 사람들이 올 때까지 기다려.”
가는 길에 혹 다른 가게에서 친절을 베푼다고 불러도
곧장 가라 이릅니다,
다음 패가 그곳을 지나쳐 서로 행방을 몰라 걱정하는 일이라도 생길까봐.

멀리 좇아가는 아이들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보고는
서둘러 다시 오릅니다.
물은 어느새 길로 콸콸콸콸 넘쳐나고
창대비의 기세는 수그러들 줄을 모릅니다.
꿈자리가 사납다며 시작한 계자였습니다.
노인네처럼 그리 말을 뱉어놓고
뭐 지나는 꿈이려니 하면서도
내심 내내 긴장을 가지고 있던 계자였지요.
넘의 새끼를 데리고 뭔가를 한다는 게 그런 것입니다.
울어도 아파도 싸워도 거친 일이 일어나도 철렁 하는 거지요.
(나중에 꿈에 나타났던 돌아가신 집안의 큰 어르신을
납골당으로 이장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네요.
참 신기하게도 저승에서도 ‘이사’한다고 꿈에 보이셨던가 봅니다.)
이 나라가 어떤 나라인가요,
혹여 무슨 사고라도 나게 되면
과정이 아무리 아름다웠어도 허술했다느니,
이런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었다느니 하며 비난부터 하지요.
그리고 자기는 의식 있는 앎의 소유자이고 독립된 인간이며 앞뒤를 잘 판단하므로
언론이 주는 정보에 부하뇌동하지 않는 양 하다
결국 같이 통탄의 이름으로 비난을 해대는 것이 세상인심입니다.
그간 아이들을 위해 얼마나 애썼던가, 얼마나 사랑했는가 따위는 없이
한바탕 도덕성까지 질타당한 뒤에야
에구, 우리가 너무 심했나 할 즈음
이젠 도로 상처 치유에 들어가는 게 또 대중이지요.
아니다, 우리 자성하자, 냄비 끓듯 이렇게 비난할 게 아니다,
그래도 그 어려운 상황에서 그들이 어떻게 살아왔고, 무엇을 위했는가,
그리고 계자에 얼마나 많은 헌신적인 일꾼들이 함께 하는가,
뭐 이야기는 이런 식으로 흐르겠지요,
그러나 그 모든 게 무엇이란 말입니까,
오직, 오직, 얘들아 미리 걱정 말아라, 우리는 모두 살아 돌아갈 것이다,
한 발 한 발 옮길 때마다 외쳤습니다.
몸의 기온이 떨어지고 무리하게 오르기 시작하니
무릎이 당장 문제가 생깁니다.
어떻게 든 다 (산 아래로)내리마,
주저앉아말고 겁먹지 말고 꾸역꾸역 내려오고만 있거라,
다른 샘들이 같이 있으니까,
그래 별일은 없을 거다,
그렇게 산을 오르고 있었습니다.

앞 패가 워낙 속도를 내서 내려오고 있었기에
한참을 올라도 아이들이 뵈지 않습니다,
그때 울음소리!
네발로 기어가다시피 달려 오릅니다.
“채현아!”
안아줍니다. 경태가 곁에 있었지요.
경태한테 채현이를 마저 부탁합니다.
“1지점이 지금 속도라면 아직 위험하진 않을 거다.”
하지만 돌아섰다가 다시 그들 뒤를 좇습니다,
아무래도 안전지대로 나서는 걸 눈으로 확인을 해두어야겠기에.
뒤에서 좇아가며 경태가 저 아래서 채현을 데리고 무사히 건너고 있는 걸 보고야
다시 돌아섰지요.

다시 오릅니다, 한참을 오릅니다.
비는 더욱 굵어집니다.
“세이샘!”
아이들이 줄줄 딸려있습니다.
빗물이 타고 흘러 누가 누군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이들도 홀딱 젖어있어 누군가 싶습니다.
무엇보다 일일이 눈을 맞추고 있을 수가 없었지요.
주차장 가게로 보내며
혹 다른 사람들이 도착하지 못하더라도 5시 10분 버스에 오르라 합니다.
앞에 여덟, 그리고 둘, 이제 아홉.
상범샘을 만납니다.
“모두 샘들을 중심으로 아이들이 나눠져 있어서 안전할 겁니다.”
위의 상황을 전하고 지나갔습니다.
1지점에 무사히 아이들을 데려다 주고 그도 다시 올라오네요.
아이들이 노란 비옷을 입고 내려오고 있습니다.
“다 있어요.”
모두가 함께 있습니다, 길게 퍼져있지만 한 눈에 다 들어옵니다.
‘열아홉이 내려갔으니 스물넷이 있으면 된다.’
맞습니다.
올라온 상범샘한테 다시 셈해보라 하였지요.
“맞아?”
“하나 없어요.”
이런, 누구인가, 누가 없는가?
“전체가?”
“마흔 넷!”
“아냐, 승찬이가 안 왔어.”
“아, 맞다.”
휴우, 이제 계곡을 벗어나면 됩니다.
2지점에서 1지점까지의 길은
이제 계곡물 못지않게 물이 넘칩니다.
승현샘이 물 지점에 먼저 달려가 아이들 걸음을 도왔지요, 젊은 할아버지도.
아프다고 무거운 걸 못 드는 어깨로도
이런 것 저런 것 따질 제 형편도 못됩니다.
기현이며 상욱이며 조은이며 아예 어깨에 메고 다른 샘한테 전달을 하였지요.
누가 누군지 불러볼 새도 없이 온 힘으로 아이들을 메고 날랐습니다.

아직도 물을 두 차례 더 건너야 합니다.
물소리가 온 산을 울리는데
아이들은 다만 타박타박 한 발 한 발 내려갔지요.
그렇게 정성들여 내려오고 있습니다.
마음은 바쁜데
뛸 수 있는 곳도 아닌 줄 아니까
그저 아이들 걸음을 보고 또 볼 뿐입니다.
빗물이 타고 흘러 제대로 보이지도 않고
게다 안경조차 끼고 있을 수가 없었지요.

자원이를 건네다 둘 다 그만 같이 나동그라집니다.
물살에 겨우 몸을 버티고 섰는데,
자원이가 미끄러지며 저까지 주체할 수가 없었지요.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비를 맞아 몸 어디고 물을 머금지 않은 곳이 없는데,
풍덩 담그는 물은 또 다른 물입니다.
재혁이도 건너오다 균형을 잃고 넘어집니다.
거긴 물이 얕으니 저가 혼자 잘 일어날 것입니다,
이제 그 정도는 사건도 아닌 급박한 시간입니다.

1지점.
여기만 건너면 안전합니다.
그런데 엄청난 크기의 종아리를 자랑하는 승현샘 몸조차 물살에 흔들거립니다.
바위에 몸을 기댔는데도 물 가운데서 중심을 잡지 못하고 비틀비틀합니다.
이쪽 끝에서 물에 몸을 담고 이쪽 바위에 기대 버팅기며
승현샘이 안아 나른 아이가 마지막 바위를 잡고 오를 수 있도록 돕고 있는데
체온은 떨어지고
앓는 무릎이 서서로 굳어가고 있었습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사람도 그렇게 버텨주고 물도 조금만 더 주춤해주길...
그러나 물은 바로 눈앞에서 높이가 쑥쑥 다릅니다.
영주샘 지선샘 아리샘 젊은 할아버지 상범샘,
그리고 마지막의 종수와 용빈이까지 모두 건넜습니다.
조금만 늦었어도 우리는 공중파 뉴스시간을 장식할 뻔했지요.
물은 한 동안 불어날 것입니다,
산이 머금은 물을 한참 내려 보낼 테니까.
긴장감이 풀려 겨우 겨우 몸을 움직이고 내려오다
버스가 떠나기 전 상황을 한 번 더 확인하자며 급히 걷는데
혼자 산길을 거슬러 올라오는 하다를 만났지요.
“하다가 엄마를 구하러 가야겠다고,
눈이 뒤집어져 이 손 놓으세요, 하는데 도저히 말릴 수가 없었어요.”
애를 사지(?)로 보내고 안절부절 못하던 세이샘이었습니다.
그 와중에도 하다는 학교에 남아있는 승찬이형을 위해 남긴 사탕 하나,
지팡이를 넘겨준 정욱이형에게 줄 사탕을 두개 남겨왔노라 자랑하데요.

머릿속은 버스 시간에 가 있습니다.
‘절반쯤은 버스를 탈 수 있겠다. 나머지 절반은?’
젖어있는 몸으로 쉽지는 않겠으나
먼저 닿은 이들은 걸어들어 가라 한다,
학교 안에서도 따뜻한 것들로 맞을 준비를 하고 있을 거다,
나머지는 물한 마을 트럭을 섭외하여 대해리까지 들어가자, 합니다.
주차장이 저기네요.
무사하다면 만나자던 식당이 보입니다.
5시 10분 버스도 보입니다.
“막 출발할 시간인데...”
먼저 닿은 이들이 10분만 늦도착 시켜 달라 부탁했네요.
시골버스는 이런 게 참 좋습니다.
그러니 남은 이들은 10분 안에 닿아야하는데...
아이들은 버스에 오르거나 아직 식당 쪽에서 머리를 마른 수건으로 닦고 있었지요.
그런데 제 모습이 아이들 편에서 보기에 제대로 드러날 무렵
승엽이가 빗속을 그대로 뛰어와 안겼습니다.
이 진한 연대감, 살아주어 고마움, ...
우리는 말없이 끌어안았습니다.
“무사했군요, 고마워요.”
“그래, 고맙구나.”
말을 했다면 아마도 이렇게 나누고 있었겠지요.

상범샘이 맨 뒤에 선 아이들을 서둘러 걷도록 도우러 가고
정류장에선 승현샘이랑 버스기사가 한참 전화기를 들고 있습니다.
공동체를 드나들어 이제 대해리 마을식구들보다 더 여기 사정에 밝은 승현샘,
대해리에 하루 세 차례 들어오는 버스 가운데 막차를 어떻게 잘 이어 타면
학교 앞까지 내리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냅니다.
그래서 기사 아저씨가 저쪽 기사한테 전화를 하고 있는 거지요.
대해리 버스는 이미 마을을 나왔으나
흘목에서 방향을 틀어 우리를 기다렸다 다시 들어가 주기로 하였답니다.
물한에서 나오는 버스를 타고 오다
흘목 환승역(?)에서 다른 버스로 갈아타고 마을로 들어왔지요.
그런데 사투를 벌이고 돌아온 아이들답잖게
버스에서 아이들을 보니 그냥 가벼운 산보를 갔다 온 느낌이더랍니다.
‘평정심을 가지고’ 말입니다.
산을 빠져나온 게 그리 별일이 아닐 지도 모를 일입니다,
아니면 너무 큰 고생을 하고 와서 어느새 까마득한 옛일처럼 느껴지거나.
창대비가 퍼붓는 걸 보며 학교에서는
마을 식구들이랑당장 대책강구에 나섰더라 합니다.
버스를 타고 오면 실어 나를 트럭 두 대를 끌고
정운오아빠와 김점곤아빠가 흘목에서 대기하고 있었지요.
따뜻한 모과차를 준비하고,
찬물로 샤워하던 남자 씻는 곳까지 물도 데우고 온기를 채워놓았더이다.
거기다 아이들 대신 포도까지 따 놓았더랬지요.

혹여 다치기라도 하는 아이들을 위해
물한 주차장에 세워두었던 승용차를 끌고 마지막으로 학교로 돌아오자
복도에서 채현이가 맨 먼저 반겼지요.
옥샘, 하고 부르며 덥석 안겨버립니다.
저녁을 먹으려고 줄섰던 종수도
엄지를 치켜들며 소리쳤지요.
“선생님, 우리가 했어요, 최고예요!”
그러며 애썼다 인사를 합니다.

저녁 먹고는 산오름 갈무리가 있었지요.
간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것들이 다 쏟아져 나오기 마련입니다.
정말 하늘이 거기 있더라,
꼭대기에 가니 왜 사람들이 산을 가는지 알겠더라,
그런 풍경 태어나서 처음 봤다,
진짜 산에서 비가 내리니까 금방 물이 차더라,
정말 무섭더라,
서로 도와서 살아올 수 있었다, ...
“애들 내려오는 모습에 감동받았어요.
평소에는 볼 수 없는,
그 상황에서만 볼 수 있는 (아이들의)모습들을 만날 수 있었지요.”
어느 샘이고 그랬을 겝니다.
사람이란 존재가 얼마나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는지요,
우리가 어찌 ‘그’를 안다 하겠는지요.
그런 한 편, 그래봤자 ‘사람 하나’에 또 불과하지요.

“그냥 자면 긴장했던 몸이 병난단다.”
그래서 강강술래 한 판합니다,
그게 아니어도 마지막 밤에 하기 마련인.
하도 말이 많아(그 험한 길에서 살아 돌아왔으니까요)
놀이는 계속 툭툭 끊어집니다.
게다 마을에 놀러온 종훈이네 삼촌이 취기로
친구와 함께 성큼 들어와 큰 소리로 아이를 부르는 겁니다.
얼마나 황당해들 했던지요.
그리고 촛불잔치.
스무 여남은 개의 촛불이 우리가 방으로 들어서기 전에 놓여있었습니다.
샘들이 고래방에서 미리 건너와 자리를 잡고
아이들의 침묵을 도왔지요.
모두가 돌아왔을 때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이 불리운 이가
닷새의 시간을 돌아보았습니다.
촛불 앞에 섰는데 너무 아쉽고
지난 시간들이 막 밀려오더랍니다,
그동안 다가오지 못한 것들이 다 다가오더랍니다.
그런 영주샘의 마음이 모두의 마음이었을 겝니다.
“미리모임을 하며 걱정이 되더니 애들이 가지고 있는 것이 크구나,
깊게, 내가 하는 게 아니라 아이들이 할 수 있는 걸 만들어주면 되겠구나,
정도 많이 들고 편안하게 보냈어요...”
샘들이 더 좋은 모양이데요.

모둠 하루재기였습니다.
1모둠 연호가 아이들에게 그랬지요.
“친구가 날마다 점점 없어져 섭섭해요.”
엥? 자기는 친구가 될 준비를 다하고 있는데 아무도 안 온다 합니다.
그래서 모두가 친구가 되기로 했지요.
“저도 그래요, 친구가 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는데 안와요.”다른 아이들은 또 다른 아이들대로 그러던 걸요.
그 얘기를 들은 연호 또한 친구들에게로 다가가기로 했습니다.
‘마음꺼냄와 나눔’은 얼마나 귀한 시간인지요.
“돌아봅니다!”
이곳에서 계자를 시작하며
꼭 지키겠다고 약속하는 세 가지 가운데 하나가 그러하지요.
오늘 샘들의 하루재기는 이번 계자 갈무리(총평)였다 하겠습니다.
지선샘,
“대동놀이로 몸 풀고 자는 게 좋더라구요.
기현이는 모둠하루재기에서 내내 강강술래 노래를 했어요.
한데모임, 대동놀이, 이런 걸 작게 봤는데, 계속 되니까
정리하고 말하는 게 작은 게 아니었구나,
아이들도 학과(학습? 공부?), 다른 데에서 재미없었는데 재밌다고들 하고...”
장애통합과정을 보며 ‘공동체’에 대해 참 좋은 생각들이 들었나 봅니다.
“돌산, 내가 너무 힘든데 애들이 어찌 가나?
그런데 끝까지 가고, 기특하고,
경태가 연호 기현 동찬 채현을 챙기고,
‘저 오늘 고생 많이 해서 많이 먹어야 해요.’ 그러더라구요.”
샘이 열(명)이었다 합니다.
“애들 내려오며 넘어지면 툭툭 털고,
내려오는 길이 꼭 탐험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하늘자리에서 포도 얘기도 재밌었고...”
웃었더니 “진실 아니예요?” 되묻습니다.
다른 샘들도 덩달아 묻네요.
“원래 있던 얘기 아니었어요?”
한바탕들 웃었습니다.
아이들과 하는 일이 그렇지요,
환상을 끊임없이 넘나들어 때론 동화 속에 갇혀버리기도 하고.
영주샘한테도 (계자같은 경험이)‘처음’이었고,
애들한테도 귀한 시간이었을 거라 합니다.
“내려왔던 고생으로 채현, 탁 안기는데...”
피곤하지만 감동적인 시간들이었다는 현우샘입니다.
홍정희엄마는 내려온 이들이 들어서는데
죽음을 딛고 함께 온 이들이 가지는 진한 연대와 기쁨을 보았다네요.
이 안에서 행복했던 계자 날들이었다,
올 여름일정을 돌아보며 갈무리말도 하였습니다.
아리샘은 낼 영동역에서 샘들 전체갈무리를 못하고 바로 기차를 타야 해서

오늘 밤에 그간의 얘기를 다 하려나 봅니다.
“‘나도 건축가’가 내용은 참 좋았지만 마무리가 약했어요.
(이곳에서)소위전문가 지원이 새로웠는데
여유를 가지고 남의 집(서로 만든 아지트) 방문도 하고
지신밟기에 집들이 , 그래서 그 집들이 선물을 준비해가고
그런 잔치를 해도 좋았을 텐데...
외부에서 올 때 그 도움이 빛이 날려면 내부인들과 조율과 이해가 있어야겠습니다.
산오름, 우리 무모하지 않았나, 그런데 물꼬여서 가능하지 않나...
책방, 아이들이 젤 편하게 생각하는 듯 했고 저도 그랬어요.
학교의 중심이 도서관이 되고 그 모습 보는 것만도 행복하더라구요.
아이도 적고 선생도 적고 일반적이면 오붓한데,
이번 아이들이 참 산만했지요.
그런데 이런 분위기를 보완하고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는 게 또 상설아이들일 텐데,
상설 아이들에 대한 기대 같은 거지요,
많이 아쉬웠습니다.
이번 (물꼬 상설아이들)기수가 고작 3개월 학기를 보냈을 뿐이지만
(6-7월은 담임교사도 없었고)
될만한 여건, 상황이 안 되었다 하더라도
오는 이들도 사실 그런 기대를 다 할 것입니다.
그런데 전혀 받쳐주지 못하더라구요.”
“시간이 필요하겠지요.
또 이런 시간에 앞서 그 아이들도 반짝준비모임이라도 했어야 했는데...
공간에는 익숙하다고는 해도
계자를 많이 온 아이들이 또 계자를 온 것 정도에 불과할 것입니다.”
품앗이로 십년이 넘었으니 그가 이곳의 역사이기도 하겠습니다.
“제 때 밥 먹고 잘 먹고, 고맙습니다.
시간에 종종거리지 않아 안정적이었어요.
일정이 느슨해서(예전에 비해. 지금도 처음 온 샘들은 벅차하지요) 충분히 쉬어가며 하고
예전엔 모둠마다 밥해 먹는 게 너무 큰일이었거든요.
그래서 다른 건 언제나 시간에 밀리고...”
아리샘이 계자에 다녀간 것도 무려 세 해가 넘지 싶네요.
그 사이 정말 물꼬는 계속 흘러가고 있었지요.
정적인 활동(일상적 명상이라든가)이 많아지고
또 그것이 전체일정 안에 잘 녹여져있는 것도 큰 변화이겠습니다,
일상에 스민 명상도 그 한 예일 테지요.
결코 고여있지 않음, 그것이 썩지 않는 비결이겠습니다.

오늘을 겪어서 더 그런가 봅니다,
이번 계자를 시작한 날이 멀고 멀어요.
“오늘(사툭을 벌인?)을 지나서 더 그런가, 계자 첫날이 까마득해요.
경찰대생들 일곱이 있다 빠져나가고,
건축교실을 진행한 민건협 식구들이 들어왔다 나가고...”
그러게요, 복잡다단했던 계자였네요.
“여름계자일정 대단원의 막을 내리다!”
내일 마지막 하루가 있긴 하지만 말입니다.
산을 나오는 게 조금만 더 늦었더라면,
비가 더 많았더라면,
날은 우리가 감동할 만큼의 물만을 예비해주었고,
위험 앞에서 보호막을 쳐주는 것으로
여름 대단원을 무사히 갈무리 해주었습니다.
물꼬에선 늘 절묘하게 돕는 하늘을 이리 만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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