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9.2-3.흙-해날 / 밥알모임

조회 수 1305 추천 수 0 2006.09.14 09:46:00
2006.9.2-3.흙-해날 / 밥알모임


대해골짝으로 들어오는 들머리인 흘목에서 마을로 깊숙이 들어오기 직전
마을 쉼터가 있습니다.
예전에, 오가며 던진 돌이 무데기를 이뤘거나
가지가지 천이 걸렸성 싶은 서낭나무가 있는 당산터이지요.
마을의 안녕을 예서 해마다 기원했을 겝니다.
농사를 짓던 첫해 그 쉼터 앞에 있던 쉼터포도밭을 부치다 이제 돌려주었고
그 밭 길 맞은 편의 새터포도밭은 올해 신씨할아버지네서 빈 거지요.
개울 쪽으로 쉼터를 지나면 작은 다리가 있고
그 건너 왼편엔 운동장 같은 밭뙈기가 둘 있습니다.
올해 물꼬가 부치는 밭이랍니다.
거기서 지난 유월에 그 많은 감자가 나왔고
수확 뒤 갈아엎어져서는 들깨가 뿌려졌지요.
그 아래 밭은 고구마와 옥수수밭이었더랍니다.
그런데 올해 온 동네 고구마밭을 멧돼지가 파헤쳤는데
(분노한 산골사람들이 멧돼지를 네 마리나 잡아먹었다는 후문입니다)
물꼬 밭만 멀쩡하다합니다.
“풀이 짙어서 들어나 갈 수 있었을 깐디?”
제 때 풀을 잡아주지 못해 손을 놓았는데
하도 하도 무성하여 덤불 같아
생각지도 않은 태평농법이 되었습니다.
온 동네 고구마가 전멸하자
마을 어르신들이 더러 시샘어린 우스개를 던지셨더랬지요.
고구마를 쪄서 동네에 한바탕 돌려야하는 거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오늘 그 고구마를 캤습니다.
남자어른들이 풀깎이로 줄기와 풀을 걷고
오후엔 어른들이 고구마를 캐내기 시작했지요.
고구마 껍질이 그렇게 붉고 맑은 줄을 예전엔 미처 몰랐습니다.
어린 날 할머니댁 밭에서 캐던 언덕배기 고구마가 생각나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하데요.
어르신들 세상 떠나신지 오래,
두어 해 전 여름에 갔더니 이젠 모두 큰 길이 되어버렸더이다.
고구마밭으로 아이들도 오갔지요.
나현이랑 짝이 되어 품격 있는 대화도 나누었더랍니다.
새 학기와 우리들의 공부와 물꼬에서 하는 공부라는 것들에 대해.
무릎 때문에 쪼그려 앉지를 못해, 또 교무실과 교실일로,
통 밭에는 나가는 일이 없다가
그리 같이 하니 참 좋데요.
모두 더 즐겁다 하데요.
그렇지 않아도 요새는 자꾸만 교실보다 들이 좋으니 걱정입니다요,
교실 그거 꼭 지켜야 되나 싶어.

저녁 8시에는 밥알모임이 있었습니다.
부모교육(물꼬가 들려주는 이야기)과
실무적인 이야기로 꼭지를 나누어 진행하기로 한 첫모임입니다.
“평화는 어디에서 오는가?”
제목이야 거창하지만
물꼬에서 말 그대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였답니다.
말할 것도 없이 마음이 어디로 흐르고 어떻게 흐르기 쉬운가,
평화롭게 흐르게 하려면 어찌 해야 할까 그런 얘기들을 나누고팠지요.
품위 있게 말할 수는 있겠지만 사실 많은 문제는
치졸하고 유치하고 쫀쫀한 그것에 있지 않더냐,
처지에 따라 생각이란 것이 얼마나 달라지더냐,
일이, 공간이, 어찌 돌아가나 두루 잘 살펴볼 줄 아는 것도, 다른 이를 살피는 것도
평화를 이루는 한 길이겠더라 했습니다.

두 번째 마당은 실무적인 얘기들이 오갔지요.
기숙사문제가 불거졌습니다.
‘6,7월 공동체살이’ 동안 아이들은 집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었고
다시 가을학기에는 기숙사로 복귀하게 되면서 벌어진 일입니다.
기숙은 입학을 할 때 이곳의 ‘원칙’인데
물꼬로서는 ‘사람이 하는 일이니 필요한 경우 의논을 하자’ 했고
들어오는 이는 그것을
자신의 뜻대로 기숙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 것이 화근이었지요.
물론 앞으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보다 명확하게 규정해내려 합니다.
“기숙을 통해 무엇을 얻으려고 하는가 하는 학교의 뜻에는 공감이 가지만
아직 1학년은 부모 그늘이 더 필요하다고 봅니다.”
1학년의 한 부모는 기숙문제를 학교에서 다시 생각해보라 강력하게 주장합니다.
“부모 그늘이 어디 천리라고 안가고 만리라고 안가나요.
물꼬 그늘에 있어도 부모 그늘은 닿지만
부모 밑에서는 물꼬 그늘이 드리워지기 힘들지 않을까요?”
“기숙사는 5학년 정도는 돼야...”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아이들이 어리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기숙사만 해도 1학년도 가능하다고 보지요.
왜냐하면 이곳의 기숙이란 것이
‘자립의 기숙’이 아니라 ‘돌봄의 기숙’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합니다.
만약 스스로 모든 걸 해야 하는 거라면
저희 역시 5학년 이상은 되어야 한다는데 동의합니다.
덧붙이자면,
물꼬에서의 ‘자립의 기숙’은 9학년에 농가에서 아이들끼리 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을 물꼬의 유연성으로 열어두시면 안될까요?”
“사실은 물꼬 아이로 내놓기가 어렵다는 거 아닌가요?
이번 해라면 3개월 남짓 남았는데,
아이들 생에 그리 긴 날도 아니예요.
더구나 주말에는 집에 가고, 늘 학교에 부모들이 와 있잖아요.
살기도 한 동네 같이 살고.”
“아니요, 저희는 그것도 길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기숙을 할 수 있는 나이를 몇 살로 보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정작 지금의 1학년들이 많이 어리다는 까닭으로
올해는 집에서 다니는 걸로 얘기가 모아졌습니다.
그런데 덕분에 학교로서는
다시 한 번 기숙문제를 원칙차원에서 정리하게 된 계기가 됐지요.

1. 상설로 들어오는 첫 해는 기숙사에 머문다(물론 주말에는 집에서 잔다.)
그러니 기숙을 수용할 수 있는 이,
혹은 기숙을 할 수 있게 마음의 준비가 된 아이가 오겠지요.
이듬해는 각 가정으로 배출한다.
만약 아이에게 기숙사가 더 필요하다 판단될 땐
(학교와 부모의 의견으로, 아이의 선택이 아니라) 더 머문다.
2. 집이 먼 아이나 부모가 없는 아이는 계속 기숙사에 머물 수 있다.
3. 장기적으로 마을공동체의 안정과 물꼬의 기반이 안정(경제적인 게 아니라)되어
부모의 호흡과 학교의 호흡이 한 흐름을 탈 수 있을 때는
굳이 기숙제도가 있을 필요는 없겠다.
그때 기숙사는 집이 멀거나 부모가 없는 아이, 혹은 집이 없는 아이
그리고 공동체 아이들이 머무는 집이 될 것이다.

기숙의 문제는 2007학년도 입학전형에도 영향을 주었습니다.
2006학년도에는 영동 무주 상주 김천을 생활반경(마을공동체범주)으로 보았으나
실제 터전을 옮겨 귀농을 해 정착한 경우는
다시 삶터를 옮기기가 쉽지 않을 것이고
거기다 교육에 관해서도
홈스쿨링이라든가 자기 철학을 너무나 뚜렷이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아
그들이 물꼬를 둘러싼 마을공동체로 들어오기보다
귀농을 준비하고 있는 도시인들이 이곳에 결합하기가 더 쉬울 것입니다.
김호성아빠의 말씀대로 그들이 훨씬 ‘유연’할 수 있겠다 기대를 해보는 거지요.
이곳에 함께 한다는 것은 물꼬의 방향(삶의 방향, 교육의 방향)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니까.
그래서 2007학년도 입학전형은 이리 쓰고 있습니다.

입학지원자격:
1. 대해리마을공동체구성원이되어야합니다.
(대해리마을공동체는 물꼬의생태적 삶의 방식을 견지하며
대해리에사는사람들입니다.
물론 같은 살림권은 아니며,직업 또한 다양할 수 있습니다)
2. 학교를 한번 이상 방문(3박4일)하셔야 합니다.

이튿날 오전은 포도따기잔치를 앞두고
이곳저곳 풀을 깎고 포도를 들여다보았습니다.
오후엔 방을 바꾸느라 어수선했네요.
홍정희엄마가 5대 가마솥방지기가 되어
달골에서 내려와 고추장집(+손님방)으로 들어갔고
우풍(외풍)이 없는 된장집(+젊은 할아버지)으로 상범샘네가 아이를 데리고 들어갔지요.
햇발동은 이번 가을학기동안 젊은 할아버지와 제가 머뭅니다.
“주말에는 기숙사를 아예 비우지요?”
그래서 주말에 공동체에 머무는 나현 령 창욱이 그리고 승찬이와 하다는
학교로 내려와 사택에서 공동체 식구들과 자기로 했답니다.

그래도 학교 행사가 있거나 밥알모임 같은 땐
주말이래도 달골을 써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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