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9.4.달날. 가라앉은 맑음 / 가을학기 첫날

조회 수 1262 추천 수 0 2006.09.15 11:29:00
2006.9.4.달날. 가라앉은 맑음 / 가을학기 첫날


가을학기 첫 아침,
아이들 흐름이 너무나 순조로왔습니다.
그간 큰엄마가 오래 애쓰셨겠습니다.
어제도 아이들은 현관을 들어서며 신발 정리부터 해두던 걸요.
일어나 이불을 개고 씻고
어제 알려준 대로 구름다리를 건너 창고(노래 부를 창 / 북 고)동으로 건너갑니다,
조금은 낯설어하고 좀은 기대에 찬 얼굴로.
대해리의 서라벌(해가 젤 먼저 닿는 곳)인 달골의 창고동에서
요가로 명상으로 ‘해건지기’를 하지요.
참 복 받은 아이들입니다.
창으로 하늘이 가득 들고 둘러친 산이 건너다보이는 곳에서
저 커다란 호두나무 그늘 아래서 아침을 열고 있습니다.

아이들과 골짝을 내려갑니다.
이번 학기엔 학교 가마솥방에서 아침을 먹습니다.
기숙사 움직임이 좀 익어져야
아이들 아침도 해서 먹일 수 있을 겝니다.
산박하향도 맡고
온 도랑가를 뒤덮은 물봉선에 취하다가
넘의집 포도도 들여다보고 밤나무와 호두나무 아래 수다도 떨고
메밀꽃에 흠뻑 눈을 적셔도 봅니다.
“전에는 옥샘이 저기서 손을 흔들어주셨는데...”
아침마다 아이들이 달골을 내려올 때
맞은 편 마을 지킴이 느티나무 아래서 아이들을 맞았던 지난 봄학기였습니다.
이제 아이들이 보는 곳에서 같이 그곳을 바라봅니다.

“수건도 챙겨 갈까요?”
해질 무렵 빨래를 걷어줄 이가 달골에 따로 없으니
이번 학기는 양말과 팬티는 손수 빨고
나머지는 학교 빨래통으로 보내기로 하였지요.
각자 자기가 벗어둔 옷을 넣어가자며 챙겼는데,
6학년 나현이는 제 물건 말고도 같이 쓰는 것을 챙깁니다.
원래 가진 좋은 풍성에다
물꼬 상설 3년째 접어드는 큰 아이의 훌륭한 한 모습이겠습니다.

상설학교로 출발하던 첫 해,
학기마다 잡는 ‘중심생각공부(흔히 ‘프로젝트’라고 일컫는)’가
대해리 마을을 익히는 것이었는데
일상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배우는 시간으로 바꾸었더랍니다.
비질하는 법, 걸레질 하는 법, 양말 빠는 법, 세면대 청소하는 법,
욕실 정리하는 법, 바느질하는 법(특히 단추달기와 작은 찢어짐 꿰매기), ...
그때 조릿대집에서 함께(그것도 주말까지) 기숙한다고는 하나
겨우 잠만 그곳에서 자고 모든 생활을 학교에서 했더랬지요.
지금은 기숙사가 마련되었으니
이제 그런 일상훈련은 기숙사에서 해나가야 할 것입니다.
아마도 지난 학기 달골 사감이었던 큰엄마 또한 그것을 하셨을 테구요.
하지만 기숙사를 벗어난 공동체살이 두 달과 긴 방학이 있었으니
많이 늘어지고 잊혀진 부분도 있을 겝니다.
차근차근 또 익혀나가야겠지요.

곶감집과 조릿대집에서 1학년들도 일찌감치 등교를 하였습니다.
이번 주는 여유로이 방학으로 늘어진 몸을 다듬는 기간이고
주말의 포도잔치를 어른들 속에서 같이 준비도 하려 합니다.
이번학기는 음악활동과 독서활동을 많이 할까 하고 있고,
‘아침을 여는 노래’로 시작해서 어느 때보다 노래가 많은 학기가 되지 싶습니다.
제주도에서 밭을 매며 부르는 노래 하나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젊은 국악인이 채보하여 편곡을 하여 불렀던 노래로
일찍이 계절자유학교에서 가르쳐
아이들의 어깨가 들썩이게 하고 한껏 목을 열어젖히게 했던 경험이 있답니다.
“아아 아아아아 아아아아야아아아아 ...”
처음 가사를 보고는 뭐가 이래, 하더니
조금 맛을 보고는 곧잘 부릅니다.
뒷소리만을 가르쳐주고 앞소리는 제가 부르는데
어느 순간 앞소리도 한 소절씩 흥얼거리고 있네요.
“부르면 부를수록 재밌어요.”
그러게 말입니다.
이번 가을학기 주제곡쯤 되겠습니다.
저 역시 비로소 신명이 돌아와서인지, 목이 짱짱해지데요.
가을학기 움직임을 의논하고
더러 설명도 하며 속틀(시간표)을 짭니다.
그걸 또 젓가락패와 숟가락패가 크게 그려 배움방과 가마솥방에 붙였지요.

점심을 먹은 뒤 내내 비석치기를 지치도록 하던 아이들이
오후엔 방학 정리를 위해 들어왔습니다.
제가 시카고에 머물고 있던 ‘6-7월 공동체살이’에서 어찌 지냈나도 꼼꼼히 듣고
아이들이 방학 때 보낸 시간을 글과 그림으로 돌아보기 하는 동안
‘날적이(일기)’를 통해 그간 하루하루를 어찌 살았나 들여다봅니다.
글씨가 많이 예뻐져 있습니다.
1학년부터 6학년까지 글씨공부를 하고 있었지요.
아이들의 성장사에 부재했던 아쉬움을
가을학기에 흠뻑 젖어 채우고 싶답니다.

젊은 할아버지가 햇발동 1층의 ‘오신 님’방을 주로 쓰게 되셨습니다.
된장집의 막장방을 쓰고 계시는데,
기숙사 소사일도 해주느라, 제 도움꾼도 하느라
주로 달골에서 머물기로 하셨지요.
아이들을 학교로 내려 보낸 뒤 뒤라도 좀 돌아보려면
또 아이들을 달골로 올려 보낸 뒤 뒷정리라도 좀 하려면
아이들과 같은 걸음으로 다니기는 어렵지 했는데
기꺼이 당신을 또 그리 써주십니다.
꼭 오르내리는 짐 때문 아니어도
무릎앓이로 천생 차로 움직여야 하는 것도 해결이 된 게지요.

오늘 저녁부터
잠자리로 드는 아이들의 머리맡에서 긴 동화를 읽어나갑니다.
북극의 한복판에서 길을 잃은 한 이뉴잇(에스키모) 아이가
나날을 살아나가는 이야기랍니다.
그런데 왜 그는 동경하던 샌프란시스코를 포기하고
대자연에 남게 된 것일까요?
거기에는 물꼬가 생각하는 ‘배움’이 들어있답니다.
사람에게 배움이란 정녕 무엇일까요...

새로운 아침, 새로운 한주의 시작 날, 달을 시작하는 초하루, 새해 첫날,...
새로이 시작할 수 있는 지점이 있다는 건 얼마나 고마운 일이던가요.
그래서 처음처럼 살아지고 또 살아지는 걸 겝니다.
새 학기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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