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9. 9-10.흙-해날 / 포도따기잔치

조회 수 1366 추천 수 0 2006.09.19 16:05:00
2006. 9. 9-10.흙-해날 / 포도따기잔치

< 포도가 있는 물꼬 >


“포도따기잔치가 열립니다.
이 산과 들에서 난 것들로 차린 밥상을 물린 뒤
농약과 화학비료를 쓰지 않은 포도를 후식으로 한껏맘껏 따 먹을 참이지요.
다음은 어슬렁어슬렁 물꼬를 둘러친 곳들을 찾아나서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그렇게 사람들을 불렀습니다.
뭐 별거 안 해요,
그냥 따고 실컷 먹고 사가고 쉬고 놀고 거닐고 도란거리고 그러려구요.
가까운 데서 얼마든지 좋은 것들을 사 먹을 수 있지만
물꼬생태공동체에서 아이들이랑 기른 것을 맛보고
그리고 언제 한 번 물꼬에 가야지 했던 이들이 오는 거지요.

아침에 비가 내렸습니다.
그런데 가만 보면 물꼬는 행사할 때
‘우천시’라는 안내가 없습니다.
비올 걸 생각 않는 거지요.
이런 방만함이라니...
사실은 으레 하늘이 도와주겠거니 하는 게 아니라
비가 내려도 그만이다 하는 거지요.
하기로 했으면 비가 오면 오는 대로 잔치를 하는 겁니다,
아주 큰 비가 내린다면 그 상황에 맞게
난로 피워놓고 교실에 둘러앉아도 좋겠네 하는.
다행히도 아침부터 내리던 비가 그쳐주었지요.
사람들이 올 때쯤엔 벌써 물기가 가시기 시작했습니다.

물꼬 아이들은 10시 30분에 모여 동생들에게 행동지침부터 주었습니다.
어제 달골에선 기숙사아이들이 손님을 어떻게 맞을까 의논을 했더랍니다.
1학년들에게 뭐라고 했는지야 잘은 모르겠지만
인사 잘 하자거나
오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마음을 써야할지,
그리고 저들 일나눔이 있었겠지요.
점심을 먹을 수 있도록 방마다 상을 깔고
그리고 찾아오는 아이들을 위해 놀이마당도 준비했을 겝니다.
모래놀이, 축구, 비석치기, 종이접기, 매듭방을 열 거라데요.
가마솥방에서 급히 손이 필요해
아이들은 멸치를 다듬으러 뛰어가기도 했습니다.
준비하는 어른들 쪽에서 아무래도 아침이 늦었나 봅니다.
전체 준비가 어떠한가 한바퀴 도는데
아직 방과 복도, 건물 들머리가 청소가 되어있지 않습니다.
못다 된 비질을 하고 마당가에서 휴지를 주우며
정말 ‘교장’샘이 되었다 싶었지요.

11시, 사람들이 닿고
하나둘 자연스레 축구에 몰렸습니다.
논두렁 김덕종님네,
밥값보다 더 돼 뵈는 고운 실비단 주머니에 밥값을 정성스레 담아준 낙영이네,
처음 물꼬에 걸음한 성우네, 종석이네, 상현이네, 지현이네,
종훈이네 사촌 아름이네 종님이네,
계자에 다녀갔던 규연이 호연이네, 채수 윤수네, 그리고 재성이네,
방문신청을 한 정경화님네, ...
겨우 닷새 전에 홈페이지에 공지한 것인데
사람들이 이리 많이 몰릴 줄 몰랐더라지요.
마당 한켠 물꼬장터에선 유기농산물
참기름, 감식초, 감자, 감자전분, 현미찹쌀혼합미를 팔고 있었습니다.

정오의 징소리.
70명 갓 넘는 손님들에 물꼬 식구들까지 더하니 백여 명이 밥을 먹었네요.
아이들이 키운 가지와 이곳에서 잘 키운 유기농감자호박전,
아이들이 발린 멸치볶음, 멀리서 예까지 보내져온 미역, 유기농현미밥에 비지찌개,
누구는 완전히 보식이라 하데요.
그리고 미리 따내놓은 포도를 먹고 또 먹고 또 먹었습니다.

1시 30분, 달골에 올랐습니다.
‘돌고 도는 트럭’이 학교에서 달골까지 사람들을 실어 날랐고
부려진 사람들은 창고방으로 들어섰지요.
창고동에서 세 번째 사람맞이를 합니다.
IYC(국제청년캠프), 영남사물놀이, 그리고 포도따기잔치.
그런데 그리 많지도 않은 사람들 속에 아이들이 정말이지 정신없이 소리질렀네요.
처음 오는 너른 공간과 이층으로 가는 계단, 이층 마루에서 내려다보는 강당이
퍽이나 재미도 있었겠지요.
예정에 없이 물꼬 아이들 몇이 ‘신아외기소리’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자연히 사람들이 앞으로 집중하기 시작했고,
아이들이 하나둘 내려오더니
노래가 끝나자 세상이 다 조용해졌지요.
물꼬의 꿈(2014년 생태마을, 2024년 아이골)을 나눕니다.
물꼬의 생각(사람이 사는데 그리 많은 게 필요치않다, 이곳에서 살아가는 일...)을 나눕니다.

어떻게 길렀는지, 어떻게 따는지,
정운오아빠의 안내가 있은 뒤 모두 밭으로 들어갔습니다.
미리 달골포도밭에 올라있던 김상철아빠는
안내문을 예쁘게도 붙여놓으셨지요.
‘갖지’를 ‘같지’로 잘못 쓴 것 정도는 문제일 것도 없습니다.
필요한 안내는 다 있었으니까요.
장사도 잘도 하셨지요.
덕담 한 마디에 몇 송이씩 더 담아주고....
가정마다 가위를 하나씩이라 했지만
아이들 손에 다 쥐어주는 부모가 있기도 하고
봉지를 너무 거칠게 열고 익지 않았다 팽개쳐버리는 이가 아주 드물게 있었을 뿐
준비된 곳에 준비된 이들이 와서 벌인 잔치다 싶었습니다.

지연이가 어머니랑 왔습니다, 그리웠던 이들입니다.
두어 해만이지요.
초등 2년 때 시원이랑 걸음이 아직 시원찮은 류옥하다를 데리고
계자 내내 손 붙잡고 다니며 돌보던 아이가 저리 커서 왔습니다.
빵 만드는 걸 배우고 있답니다.
엄마가 더 멋있습니다, 교과학원이 아니라 저렇게 하고픈 걸 하라고 하는.
실습하러 오라 했지요, 주말에.

달골에서 내려오는 길,
일부러 트럭은 떠나버렸습니다.
사람들은 아이들이 아침마다 등교하는 길을 따라 길섶을 두리번거리고
달골다리 위쪽 계곡을 둘러보았습니다.
거인폭포, 그런 곳에 그런 장관이 있을 줄 몰랐다지요.

4시, 물꼬축구가 한판 벌어졌습니다, 모두 모여서.
어찌나 신이 나던지
심판이었던 아버지 둘조차 어느 틈에 경기장으로 들어가 버리고 말았지요.
한쪽 편이 너무 밀린다는 게 까닭이었답니다.
나현이와 류옥하다가 주심을 보는 절 도와
춤 못 추는 사람, 춤이 안 어울리는 사람,
노래가 나왔는데도 공을 잡고 있는 이들을 끌어냈습니다.
“참 좋은 놀이예요, 모르는 사람과 한 마음이 돼서 하는 놀이여서...”
입을 모아 그랬지요, 대동놀이란 게 그런 거랍니다.

일어서기 전,
참으로 나온 고구마와 배와 우리 밭에서 수확한 마지막 토마토를
평상에 둘러앉아 먹었습니다.
그 많은 포도를 먹고 그 사이로 또 들어갑디다.

이튿날,
두가정만 온다 했지요.
그래도 마음먹고 나서려던 걸음인데
오지마라 할 건 아니겠다며 편히 다녀가시라 했습니다.
그런데 행사를 취소하지 않기를 참말 잘했지요.
재혁이네와 원일이네만 온댔는데
어제 작은 사고가 있어 못 왔던 구미의 기효샘네와
산소에 다녀오던 가정,
그리고 오랜 물꼬의 품앗이 식구 윤희이모네까지 더해졌습니다.
“시집 간 딸이 온 거 같네.”
윤희이모네는 아이를 걸리고 뱃속에 든 아이까지 셋이 왔네요.
"어떻게 군부대에 모기장이며 그런 걸 쳐달라는 생각을 해!”
물꼬의 지나간 역사를 고스란히 기억하는 그는
행정사무를 배운 적 없지만 어깨너머로 배운 것으로 지금 일을 잘하고 있다 합니다.
여성기금 같은 걸 받아 연극을 하고 있다지요.
물꼬로부터 배웠다 합니다,
그렇게 말하는 겸손이 더 빛나더이다.
포도밭 그늘에 들앉아 도란거리기도 하고
정말 정말 더는 들어가지 못할 만치 포도를 먹고 내려왔더랬지요.
곧 평상에 배와 고구마와 토마토가 참으로 놓여있었답니다.

품앗이 승현삼촌과 일식삼촌이 장작을 패서 쌓았고
동완삼촌과 연문삼촌이 상범샘이랑 작은해우소 남자칸 구조를 바꾸는 공사를 했습니다.
밥 먹기 전 몇 되지 않은 손님들과 축구도 한 판 했지요.
나현이랑 창욱이가 소나무에 올라가서 생중계를 하지 않았겠어요.
우습다고 말하는 저들이 더 뒤로 넘어갑니다.
무엇이나 놀이이고 즐거움인 이곳이지요.
그리고 아이들은 지치도록 비석치기를 하는 오후였네요.

해날이야 아는 이들이 놀러왔다 가네 하는 가벼운 포도따기였지만
흙날이야 큰 잔치였지요.
평화롭고 따뜻한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는 말들을 주고 떠나셨습니다.
마치고 물꼬식구들끼리 갈무리가 있었지요.
모두 집안의 우환으로 대구에 나가있는 농사부 열택샘을 그리워했습니다,
그가 애쓴 것들을 우리가 거두고 있으니.
“오시는 분들 평화롭게 시간을 즐기는 구나...
자연스럽게 보내고...”
달래 그리 할 일도 없는 이곳이지요, 자연을 마주하는 일 말고.
산 건 별로 없다며 돈 들이지 않고 차린 밥상이었다,
작년에 지은 벼농사에서부터 웬갓 가지 먹을거리를 이곳에서 얻어 풍성한 밥상이 되더라는
가마솥방의 소회도 있었지요.
끈 하나를 묶어주는데도 사람들이 크게 받아 주더라며
찾아온 이들이야말로 물꼬에 대한 많은 이해와 마음씀을 가지고 있더라지요.
일이 순조로와 누구도 말하지 않은 것이겠지만
아무리 작은 행사일지라도 일찍부터 구석구석 준비를 해두는 긴장은 있어야겠지 싶습디다.
그리고, 아이들 땅그림 한 장이 분위기를 돋운 것도 잔치에 흥이 컸다 하였습니다.
“동화 속에 나오는, 피터팬이 사는 동네 같은...”
하기야 결코 객관적일 수 없는 내부의 눈들이지만 말입니다.
그렇더라도 쳐다보면 볼수록 우리 사는 골짝이 좋기만 하고
실제 그곳에 뛰노는 아이들이 싱그럽기만 하지요...

뭐라 뭐라 해도
가난한 산골살이에서도 나눌 게 있어 더 없이 고마웠습니다.
함께 귀한 시간 만들어주신 모든 분들,
다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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