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9.14.나무날. 맑음

조회 수 1222 추천 수 0 2006.09.20 12:13:00
2006. 9.14.나무날. 맑음


오동잎을 들고 왔습니다.
그간 작은 잎들을 확대해서 그렸다면
오늘은 큰 잎을 축소해서 그리는 걸로 손풀기를 합니다.

이번학기 중심생각공부는 ‘숲이랑’이지요.
지난 학기에 너무 많은 걸 했다 여겨
이번에는 이 시간에 숨통을 좀 가지려 합니다.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숲에서
그저 보고 듣고 거닐고 놀려구요.
뭘 좀 하기로 했으면 해야지 싶어
바깥공부는 봄학기와 가을학기가 큰 변화 없이 이어집니다.
그래 틀도 거의 고대로 가게 되니
다만 이런 시간에 여유를 좀 부려 보려지요.

숲에 갑니다.
그런데, 뒤란 밤나무에서 떨어져 내린 밤이 옷자락을 잡았지요.
숲이 거기도 있는 거지요.
우리는 바구니를 들고 와 아예 자리를 잡았지요.
사내 애들은 잡목을 헤치고 밤을 주우러 들어가고
나현이와 저는 밤을 깎기 시작했습니다.
먹어가며 주워가며 던져가며...
“으윽!”
손등에 밤송이가 꽂혔습니다.
안내를 해도 꼭 그대로 하지 않는 녀석이 있지요.
다칠라 던지지 마라, 몇 차례나 말했건만
기어이 사고입니다.
곁에 있던 나현이 머리이기라도 했더라면...
아이가 아니어 참말 다행입니다.

아이들은 계속 밤을 줍고
급히 교무실로 가서 가시를 빼느라고 빼보지만
통증은 갈수록 심하고 손쓸 수 없는 곳이 아직도 많습니다.
퉁퉁 부어오르기 시작했지요.

아이들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밤과 놀고 왔으니 밤나무에 대한 관심도 커
책방에서 자료도 찾아보았습니다.
가을엔 밤을 따고 봄엔 벌을 치는 밤나무,
부서지거나 썩지 않아 써레 달구지 연자방아 거문고 절구공이 철도침묵 같은
단단해야 하는 연장들에 쓰인다네요.
그런데 왜 가구에는 쓰지 않았을까요?
아마도 위패나 장승 같은 죽은 자를 위한 것에 쓰여 와서
산 자를 위한 것에는 쓰지 않게 되었으려나요?
우리끼리 이리저리 까닭을 캐보기도 했더랍니다.
“지난 번(초여름)에 보았던 밤꽃이 수꽃이래. 암꽃은...”
“500년까지 산대.”
“3-40년 뒤 가장 많이 밤이 달린다네.”
“밤나무가요, 7년이나 십년 있어야 밤이 열린대요.
그러니까 우리가 밤을 먹으려면...”
“윗가지 밤이 굵대요.”
“밑둥이 굵을수록 더 많이 달린다네.”

오후에는 수영장에 갔습니다.
웬만큼 할 수 있을 만치는 수영을 배우려 합니다.
그간 해수풀공사를 했다네요.
그러니까 락스 냄새 풀풀 나던 수영장이 바닷물처럼 된 거지요.
“물 먹기도 좋아요.”
숨을 잘못 쉬어 물을 먹게 될 때도 기분이 그닥 나쁘지 않다나요.
아이들이 수영을 할 동안
물꼬 논두렁이기도 한 림부장님과 한참 그간 지낸 얘기들을 나누는데,
어데고 사는 일이 쉽지 않지요,
힘겨운 일 하나를 잘 넘기고 계셨더랬지요.
“어떤 일이 그렇데요, 어디 약속한 곳에 사건이 일어나나요,
수습을 어떻게 하느냐가 관건이더라구요.”

밤 가시가 너무 많아 수영장 오기 전 큰 병원 외과에도 들렀는데
거기서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며
염증이라도 생기면 오라 하였지요.
그런데 통증이 너무 심해 다시 가서 접수를 해보지만
정형외과 샘도 둘 다 진료 시간이 다 차고
피부과며 다른 과도 안 된다 하여 결국 그 병원에서 할 수 있는 게 없었지요.
그때 퇴근을 하던 한 응급실 담당의사가 좀 보자는데
벌써 염증이 생기는 데다 양이 너무 많아 안 되겠다고 응급실로 데려갔습니다.
그런데 세상에, 한 시간 반이나 서른 개도 넘는 가시를 빼느라 씨름을 하고도
물꼬 이야기를 들으며 그냥 가랍디다, 원무과 들리지 말고.
다들 귀찮아서 피하는 일을 그리 해주고 말입니다.
“진짜 좋은 사람이다.”
좋은 사람이란 게 별 거더이까,
나한테 잘하면 좋은 사람, 나한테 못하면 나뿐 놈 되는 거지요.
더구나 아이들에게야...
“우리 포도도 나눠줘요.”
그래서 다음주에 오는 길에 포도를 한 상자 드리기로 하였답니다.

그 사이 수영을 마치고 기다리는 아이들이 휴게실에 너무 오래 있을 듯하여
건널목 건너는 걸 조심시켜 보내 달라 하였는데
림부장님은 출출하다는 녀석들 떡도 사 멕이고
병원까지 데려다도 주었답니다.
아이들이 툴툴거리지 않고 잘도 기다려주었지요.

저녁이면 달골로 들지요.
전기를 아껴 쓰려면?
난방비를 줄이려면?
달골살림에 대해 두루 얘기도 나누고,
쇠날에는 대청소를 하고 그날 아침은 제가 준비하기로 합니다.
달골에서 아침을 먹고 등교를 하는 거지요.
그러면 가마솥방에서도 여유가 좀 있을 테구요.
기숙사는 이제 하루흐름이 제대로 정리가 되었습니다.

7시 일어나서 방 정리
곧 창고방으로 건너가 해건지기(요가, 국선도, 명상...)
8시 등교해서 아침밥
9시 - 12시 오전공부(배움방)
12시 - 2시 점심밥
2시 - 5시 오후 공부(일 포함)
5시 - 7시 저녁밥
7시 - 달골 한데모임(+읽고 있는 책 이야기)
방청소, 날적이(일기), 그리고 쉬고
9시 머리맡 동화 듣기
9시 30분 불끄기
* 쇠날 아침은 대청소, 달골에서 아침 먹고 등교

모두가 같이 읽기로 한 책은 벌써 세 번째 사람한테로 넘어가 있습니다.
곧 다 읽고 한바탕 이야기멍석을 깔기로 하였지요.
나현이가 지금 읽고 있는 책을 류옥하다는 지난 여름방학에 읽었다 합니다.
“영화 ‘코러스’랑 느낌이 비슷했어요.”
류옥하다의 평입니다.
“다시 읽으면서...”
령이는 다시 읽기 시작한 책이 어떻게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지를 말했습니다.

달골 삶이 아이들의 꼭 절반의 생활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1학년들이 조금 아쉽습니다.
이렇게 마음을 나누고 호흡하는 시간을 같이 누리면 좋으련...
하기야 부모가 더한 것들을 줄 테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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