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 계자 여는 날, 2006. 7.31.달날. 장마 끝에 뙤약볕

조회 수 1628 추천 수 0 2006.08.01 18:11:00
111 계자 여는 날, 2006. 7.31.달날. 장마 끝에 뙤약볕

무너진 탑이 달포를 넘게 퍼부었던 비를 짐작케 할 뿐
말똥거리는 아이마냥 하늘은 너무나 짱짱합니다.

백열한 번째 여름 계자가 시작되었습니다.
아이들 마흔 여섯에
어른 스물(새끼일꾼 넷 포함)이 오며 가며 같이 움직입니다.

버스에서 내린 아이들이 큰 대문을 들어서기 시작합니다.
아무래도 익은 아이들이 먼저 눈에 들지요.
그들도 꼭 먼저 달려오구요.
두 달이나 학교를 비워
계자 신청기간에도 없었고 겨우 며칠 전에야 부랴부랴 돌아온 터라
누가 오나 제대로 들여다보지도 못했던 터입니다.
“아, 인혁이다!”
누구라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인혁이가
깁스를 한 동생 동근이랑 들어옵니다.
“선생님!”
저토록 다정스레 부르는 이는 은하입니다.
지난 겨울 푹했던 한 날 재를 넘어 다른 마을로 갔다가
오래 같이 어깨 겯고 돌아왔던 아이지요.
주환이가 소란하게 인사를 하고 지나고,
규리와 은영이가 계면쩍게 웃으며 들어옵니다.
“저도 아시죠?”
아이들 이름을 하나 하나 들여다보며 들이고 있는데
동휘 녀석 쓰윽 들어가며 빼꼼 얼굴 보여주네요.
현진이는 제 누나를 더 많이 빼닮아져 그같이 생긴 수현이랑 인사를 합니다.
“진호?”
“그게 아니구요, 이름이 틀려요. 준호요!”
“희주구나! 아직도 중국 살어?”
너무너무 자그맣던 그 아이도 제법 훌쩍 커서 나타났습니다.
경준이가 예전보다 연해진 느낌으로 다정하게 샘을 부르고 들어서고,
누나는 영국 보내고 혼자 온 세훈이가 여전히 곱슬한 머리로 나타났네요.
눈이 떼룩떼룩한 승호도 꾸벅 인사하며 누나 해인이랑 옵니다.
종훈이 종혁이 영운이 영우 주빈이는 저들끼리 기차를 타고 왔다네요.
날렵해 뵈는 동진, 그와 속도감은 다르게 보이지만 잘 어울리고 있는 기훈이,
정감 있게 사람을 부르며 환하게 안기는 오동통한 나혜가 줄지어 옵니다.
“네가 찬이구나?”
일곱 살 찬이와 지수도 들어오고
자그만 현지, 검은 뿔테 범순이, 웃는 반달 눈을 가진 예원이,
뭔가로 바쁜 기륜이 도현이 경중이 상범이네들,
따박따박 바른 소리 잘해서 어른들이 ‘물꼬가 심어놓은 애 아냐?’하는 수영이,
준서, 혜린, 지원, 도연이,
이름이 자꾸 헷갈리는 혜수와 수연이와 서정이, 그리고 영석이, 재관이,
어느새 친한 사이가 된 주경이와 정연이,
이들이 만드는 날들은 또 어떤 풍경일지요.
“민정!”
글쎄, 그를 알아본 건 한참 뒤입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왔다가 동생 주환이만 내내 보이더니
6학년이 되어 굵어진 모습을 드러냈으니 알아보기 힘들 밖에요.
그들을 여기 사는 류옥하다가 맞이하고 있었네요.

“왜 이렇게 더워요?”
“여름은? 더워!”
“선풍기 없어요?”
“응. 대신에...”
여름은 덥습니다. 그게 자연입니다.
잠자리 날고 파리가 귀찮게 달겨들고 모기가 맴도는.
그래서 나무 그늘이 있고 숲이 있으며 도랑물이 있어 또 견디는 여름입니다.
그게 자연이 차린 계절입니다.
선풍기와 에어컨이 땀내 나는 여름을 잊히게 했던 삶으로부터 벗어나
아이들은 금새, 오래전부터 그리 살아왔듯이 원시적 상황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건 실화예요.”
아이들에게 이야기 한 편을 들려주며
이곳에서 생활하는데 필요한 안내를 시작합니다.
“약 이십여 년 전 아이들에게 아름다운 우리말글을 가르치던 사람들이 있었어요.
서울의 부촌에서 번 돈으로 시흥동 골짝과 난곡 꼭대기,
그리고 고아원에서 아이들과 나누며
자연을 닮아가는 아이들을 키워내고 아이들이 행복한 학교를 만드는 꿈을 꾸었지요.
1994년, 그들이 처음 그 학교를 연습해요, 이렇게 계절학교처럼.”
물꼬가 걸어왔던 길과 생각을 나눕니다.
이 불편함의 의미들이 무언지, 이곳에서 먹는 거친 음식들,
왜 빈그릇 운동을 하는지, 이 곳 공간공간은 어떻게 쓰는지...
숨이 턱턱 차오르는 더위에도
아이들은 어느새 이야기 속에 빠졌고,
더위는 더 이상 불평거리가 아니라
이 여름의 당연한 우리들의 외적조건에 불과하게 됩니다.
저렇게 가득한 기대를 안고 잘도 듣고 있는,
자꾸만 웃음 머금게 하는 저 아이들은 또 어디서들 왔대나요, 글쎄.
하늘 말나리와 원추리도 꽃밭에서 교실을 자꾸 넘겨다보고
상사화는 넘어오는 아이들 목소리에 히죽이죽 웃고 섰습니다.

점심을 먹은 아이들은 알아서들 놀 곳을 찾아듭니다.
큰 마당으로 쏟아져 나온 사내애들은 새끼일꾼 무열이형과 기표형을 중심으로
코미디축구중이고, 차는 재미보다 보는 재미가 더한 듯하니까요,
책방에 우르르 자리를 잡기도 했고
여자 아이들은 두런두런 얘기를 하거나
모여서 실뜨기를 하고 있습니다.
작은 녀석들은 바둑판을 갖다놓고 알까기가 한창이네요.

‘큰 모임’을 통해 서로 얼굴도 익히고 이곳에서 쓸 자기 공책표지도 만들고
간단한 인사들도 하였지요.
벌써 며칠을 부대낀 이들처럼 화기애애합니다.
땀을 삘삘 흘리면서 덩어리를 이뤄 그림을 그리고
또 그것을 서로 보여주고 덕담도 얹습니다.

“물놀이 가요!”
갔습니다.
들일 데 없어 둘러친 산과 들, 그리고 우리들의 수영장.
마을 앞 계곡에는 깊디깊어 검은 계곡이라 불리는 곳에서부터 달골 계곡,
그 흐름 따라 위치 따라 폭 따라 이름도 많지요.
오늘은 ‘태평양’에 갔습니다.
좁은 계곡에서 드문 너른 데겠지요.
마을길을 따라 내려걷다 쉼터를 막 지나 있는,
이 골짝에서 젤 너른 수영장입니다.
물에 둘러 앉아 369놀이를 하기도 하였는데,
틀리면 그에게 물을 끼얹는 벌칙이지요.
상처가 있는 아이들이라도 계곡에 발 담그고 놀았지요.
여자 아이들은 작은 물장구를 치며 놀았네요.
벌한테 쏘일 뻔한 녀석들도 있었구요.
도 닦는다며 약간 층이 얕은 폭포 같은 곳에 내려앉아
수련중이라던 도연이는 류옥하다를 자꾸 꼬드깁니다.
“너 수제자 할래?”
“아니.”
럭비선수같이 너른 어깨를 달고 온 기표형아는
놀이를 할 때마다 사람들이 상범샘한테 당했던 것을 되갚게 해주었습니다.
“힘이 세져서 이제 잡아 먹을라 한다.”
기표형이 상범샘을 꽉 잡아 버티고
나머지들이 물을 다 끼얹었거든요.
정말 이제 힘으로는 기표형을 당해낼 재간이 없습니다.
물을 피해 얌전하게 앉았던 혜정샘과 은지샘,
기표형과 재신샘의 꾐에 기어이 물에 흠뻑 몸을 적시고야 말았지요.
아이인지 어른인지 구분도 안 되게 놀다 돌아오는 길,
별 멀지도 않은데
따가운 해는 젖은 옷을 학교에 닿기도 전에 말릴 듯하였답니다.

물놀이가 싫은 아이들도 꼭 있지요.
동휘, 상범, 주환, 범순이는 알까지를 하고
동진이랑 영운이는 책방에서,
그러다 동진이도 알까기에 합류하며 학교에 남았네요.
새끼일꾼 수진이형이 그들과 같이 놀았습니다.

저녁, 준호와 현진이랑 같이 마주앉아 밥을 먹었지요.
“파리가 왜 이렇게 많아요?”
“파리가 많다는 건...”
준호의 질문들에 제가 한마디쯤 꺼내면
곁에서 현진이가 이곳에 대한 옹호와 지지와 자랑의 말들을 늘여놓습니다.
얘깃거리는 또 좀 많나요.
“누나가 너무 챙겨요.”
현진이가 누나 수현이한테 투덜대는 소립니다.
“제가 다칠까봐 그래요.”
아니, 누가 뭐랬나, 자기 혼자 또 이해 한다는 말을 보탭니다.
“오줌 누고 와두 돼요?”
“야, 준호야, 오줌은 누고 싶어 하는 너한테 물어봐야지 왜 나한테 물어?”
아이들과의 수다는 참말 즐겁습니다.
세상 모든 시름이 날아갑니다.
다가오지 않은 날들에 대한 걱정조차 별일이 아닙니다.
그 준호는 오늘 물꼬의 호구조사를 다 끝냈다지요.
아이들이 몇 명? 어른은? 닭은? 염소가...
“덕분에 무척 즐거운 식사 시간이었어.”
먼저 일어나며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했지요.

대동놀이의 열광이야 언제고 식던가요.
마음은 30여분만 진행하고 땀 쫘악 흘린 뒤 다들 샤워한 다음...
그러나 1시간을 그만 놀아버렸지요.
‘노랑이’와 ‘파랑이’가 붙어 아주 으르렁거리며 놀았더랍니다,
이 더위에 이어달리기도 하고
몸이 붓인 양 쓰며 노는 놀이도 하고
전래놀이도 하며.

잠자리에 들기 전
한 줄로 서서 상처를 확인하러 온 녀석들이 나래비입니다.
규리 나혜 은하 도연 도현, 범순 승호 세훈 종훈.
주환이는 엄지발가락 발바닥 쪽이 갈라졌던데,
괜찮은지 오지도 않았네요.
하기야 그래도 온 고래방을 달리는 그 녀석이지요.
이미 다쳐서 온 아이도 있고, 물가에서 운동장에서 다친 이도 있습니다.
여름이니 상처를 다 열어두었지요.
그리 심각하지 않으면
아침 저녁 소독 말고는 이 산골 바람에 맡겨두려 합니다,
약의 힘이 없이도 새 살이 차오를 수 있도록.
아무래도 얼굴 상처에는 민감하게 되는데
팔다리는 마음이 더 여유롭기도 하고.

한바탕 다들 씻고 하루를 정리한 아이들이 잠자리로 가고
머리맡에서 책을 읽어준 샘들도 가마솥방에 모였네요.
“**은 물꼬를 다녀간 뒤 굉장히 좋아졌다고 해요.”
약간의 장애를 앓는 아이들이 이곳을 다녀간 뒤 꼭 받게 되는 전화이기도 하지요.
이번에 온 아이 하나도 그러했습니다.
그래서 이곳에 다시 보내게 되었다지요.
“그런데 사람들이 참 우매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아이 아주 많은 돈을 주고 하는 치료가 있는 모양입니다.
“뭔가 자연적인 방법이 있을 거다,
그런데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자본과 결합하여 (치료의 방식을)팔고...“
간단하고 가까운 곳에 길이 있는데
멀리들 돌아간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상범샘입니다.
수련원 같지 않아 좋다는 예원이처럼
어릴 때 캠프도 많이 다녀보았다는 은지샘은
정말 자유스럽다며 환하게 웃네요.
기표형은, 여기서 샘들한테 하듯이 하면 학교에서 맞아죽을 거라 합니다.
무슨 소린지, 원...
그렇다고 기표형이 샘들한테 함부로 구느냐 하면 그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저녁 밥 때 두 사내애가 싸웠는데 그 문제를 곁에서 다루는 샘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했지요.
밥부터 멕였어야 했다,
설명이나 설득이 중요했을 수도 있다,
아이들 만나는데 정석이 어딨냐,
잘 살피는 것과 지나치지 않는 것의 경계를 민감하게 알아채가는 게 교사겠다,...
“연수를 다니며 어느 순간은 아이들 문제를 넓게도 보고
그러다 한 측면으로만 보게도 하고
그게 다시 다각도로 보는 과정으로 가기도 하더라구요.”
영진샘이 그런 경험을 나눠주기도 하셨지요.
가마솥방지기들은 야채튀김을 부엌에서 만들면서 잔치집 같더라 합니다.
보면서도 그러했는데 하면서도 같은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데요.
정말 푸짐한 저녁밥상이었답니다.

‘젊은 피’들은 이 밤도 수다로 범벅한 야참을 먹더니
새끼일꾼들은 밤산책까지 나갔다 돌아들 옵니다.

북적이던 긴 하루가 접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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