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계자 닷새째, 2006.8.4.쇠날. 산그늘은 짙기도 하더라


< 하늘 오름 >

샘들은 아침 여섯시부터 김밥을 쌌습니다.
일곱시에 아이들이 일어났고(엊저녁 무려 열한시까지 뛰어 댕기다가),
7시 45분에 학교를 나섰지요.
산은 늘 거기 있고 그래서 우리는 오릅니다.
민주지산 1242m,
마을 들머리까지 2킬로미터를 걸어 버스에 오르고
물한계곡 들머리에서 내립니다.
산 안내지도판에 모여 산을 오르는 마음이 어떠해야할까를 나누었지요.
“산은 산에 사는 것들의 집입니다.
남의 집을 방문해서 함부로 하지 않는 것처럼
우리도 예의를 다해야겠지요.”
산에서 통 사람을 보지 못했습니다.
“아이구, 이 더운 날에 산에...”
우려 섞인 목소리로 멀리서 전화가 오기도 하였지요.

제 1지점.
계곡을 건너면서 길이 갈라지는 너른 자리에서
모두 앉습니다.
“어서와!”
“애썼어!”
뒤에 온 아이들을 맞지요.
산그늘은 짙기도 하여 그토록 무더울 거라는 날이 맞는가 싶습니다.
목도 축이고 세수도 하고 수다도 떨다가 다시 2지점을 향해 가지요.
물이 닿아 축축한 돌길이 계곡 곁으로 오래 이어집니다.

제 2지점.
역시 물가입니다.
다시 이쪽 계곡에서 저쪽 계곡으로 건너게 되는 작은 샘 같은 물가입니다.
“샘은 왜 지팡이를 짚어요?”
“수현아!”
그러면 수현이가 대답을 해줍니다.
“옥샘이 한꺼번에 다 대답해주신대.”
“사탕 또 줘요?”
“수현아!”
“옥샘이 한꺼번에...”
“진짜 꼭대기까지 가요?”
“수현아!”
“옥샘이...”
“얼마나 남았어요?”
“수현아!”
주환이는 자기 집 뒤에도 산이 있다 합니다.
“있으면 뭐해? 아들하고 가지도 않는데...”
“주환아, 나는 니네 아빠가 아냐. 왜 화를 내고 그래?”
물 곁에서 바람그늘 아래서 세상 부러울 것 없이 앉았습니다.
아이들이 하나둘 도착하고,
그러는 사이 사탕을 나누고, 수다를 떨지요.
그대는 언제가 가장 행복했는가,
죽음 앞에서 누군가 그리 물어준다면
아이들의 그 수다 안에 있을 때가 그 가운데 하나라 하겠습니다.
“얼마를 남았다는 걸 아는 게 가는 걸음을 가볍게 해주지는 않습니다.
그냥 주욱 가봅시다.”

다시 길을 잡지요.
산이 만들어내는 그늘과 물이 만드는 기운 속을 걸으면
와, 무릉도원이 따로 없는 걸.
우리는 나오고 싶지 않기까지 합니다.
우거진 나무 잡목 숲 사이로 난 길을 오르다보면
어느새 조릿대 무성한 길이고
다시 키 큰 참나무 길이 이어집니다.

제 3지점.
쪽새골을 벗어나 능선을 만나는 곳이지요.
거의 다 왔습니다.
안내판에는 0.4킬로미터라 적혀있지만 200미터가 채 남지 않았지요, 정상이.
‘거리’와 ‘고도’에 대해 저들끼리 의견이 분분합니다.
“샘!”
“옥샘!”
끊임없이 묻는 것도 많지요.
“수현아!”
“옥샘이 한꺼번에...”

마지막 아이들이 닿자 바로 정상으로 향합니다.
아주 가파른 길은, 겨울에는 밧줄을 잡을 수밖에 없는,
숨을 몰아쉬며 몇 걸음 옮기자마자 정상에 이르렀지요.
한 편으로 석기봉 삼도봉이, 다른 편으로 각호봉이 이어진 곳입니다.
인근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지요.
“와아...”
내려다보이는 풍경보다 하늘을 덮은 잠자리에 더 놀랍니다.
그늘로 찾아들어 점심부터 먹지요.
잠시 다리쉼도 하고 땀도 식히고...
“자, 찾자!”
지난주(?) 젊은 할아버지가 정상 바로 아래 나무 틈에다 숨겨놓은
초코파이를 찾아 나섰습니다.
“전에는 어디를 누르면 초코파이가 튀어나왔다면서요?”
“응.”
“하늘에서 날아오기도 했어요?”
“응.”
지난 여름 왔던 아이들을 통해 전설이 만들어지고 있었지요.
이 여름도 설화 하나가 될 겝니다.

“찾았다!”
민정이가 한 꾸러미를 찾아냈네요.
날은 더운데 아이들은 잘도 헤맵니다.
영화의 한 장면이 따로 없었지요.
긴 풀섶을 헤치는 저 아름다운 그림...
“자, 이거 먹고 힘내서 또 찾자.”
찾은 꾸러미를 먼저 풀어 먹고, 다시 찾는데
이런, 두 꾸러미 가운데 한 꾸러미만 찾았습니다.
“한 꾸러미는 다음 계자를 위해 그냥 남겨두지요?”
날도 덥고 이미 배도 채워졌으니 그런 너그러움이 일일 것도 없습니다.
사진 하나 찍고 저 아래를 향해 고래고래 소리도 질러보고
다시 내림길입니다.

승호와 도현이와 상범이가 제 바로 뒤를 이었지요.
하이고, 어찌나 시끄러운지 가다 팍 뒤로 돌아보았습지요.
“아고, 시끄럽네.”
시끄럽대잖아, 그래 그러니 조용히 해야지,
옥샘은 ‘자기’가 무릎이 아픈데도 우리만 보낼 수 없어서 오셨대잖아,
낮은 목소리가 더 크게 산을 울리고 있었지요.
그들 수다에 아주 배꼽이 빠지는 줄 알았습니다.

내려오는 길에 길이 갈라져 헤맬지도 모른다 싶으면
우리식의 표적을 남깁니다.
돌로 차근차근 화살표를 만들고 작은 쪽지를 끼워놓지요.
다시 2지점에서 다리쉼을 할 때 뒷패가 따라 붙었습니다.
성학이형이 그들을 달고 왔네요.
이제 현진 수영 영우 범순 동근 인혁 도현 준서도
같이 앞 덩어리가 되었습니다.
조잘조잘 더 큰 소리와 더 많은 얘기들이 달려오겠지요.
“우리끼리 올 때가 좋았는데...”
“응?”
“시끄러워죽겠어요.”
승호입니다.
아니, 지가 그런 말을 할 처지입니까. 여태 산이 떠나가라 떠든 게 누군데...
제 배꼽은 서너 개 되는 모양입니다.

계곡에는 사람이 넘치고 있습니다.
산에선 코빼기도 안보이던 사람들인데 말입니다.
“진짜 꼭대기까지 갔어?”“네!”
“진짜로 저 정상까지 갔다 왔다고?”
“네에!”
물가에 앉았던 어른들이 물었지요.
아무래도 믿기지 않는 듯하다가
아이들이 너무도 진지하게 하는 대답을 듣고는 놀랍니다.
“야아, 정말 대단하다야.”
이게 또 맛이지요.
누가 한마디 감탄해주는 거.
아이들 어깨가 으쓱해지지요.
힘겨움이 다 사라집니다.

먼저 왔던 이들이 버스에 올랐고
막 떠나려던 버스에 다른 패도 올랐지요.
마지막 패들은 학교차를 타고 왔답니다.
대해리 들머리 흘목에서 다시 걸어 들어올 일이 까마득합니다.
다행히 마을 길 하나 내 건너편으로 그늘을 타고 나 있지요,
울퉁거리기는 하지만.
물꼬 수영장 가운데 젤 너른 ‘태평양’을 그냥 지나칠 수 있나요.
모두 물에 풍덩 뛰어듭니다.

“하늘에 닿은 느낌이었어요.”
“그래, 그래서 거기가 하늘자리라 불리는 거야.”
“꼭대기를 밟아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감동이 있었어요.”
산행 후일담으로 말도 많았겠지요.
“민주지산 정상 하늘자리에 가니 민주지산 보다 높은 게 없는 것 같았어요.
사람이 안보일 정도로 작았어요.”
영운이가 그랬습니다.
힘들었지만 정상에 도착했을 때 초코파이도 찾고 좋았다는 경중,
산 정상에서 처음으로 잠자리를 잡았다는 지수,
내려오는 게 더 힘들더라는 준호,
사탕을 먹으면서 내려오니 기분 좋았다는 도연,
힘들어서 배가 고프더라는 기훈,
정상에서 먹은 과일이 꿀맛이었다는 주경,
정상에 있는 ‘하늘’을 밟아서 기분 좋았다는 규리,
하늘처럼 높이 정상에 오르니 정말 상쾌했다는 인혁,
하늘자리에 있었을 때 이 학교 다닐 때보다 더욱 기분이 좋았다는 영석,
정상에서 본 경치가 참 좋았다는 혜수,
꼭대기에서 먼 할머니댁을 쳐다보았다는 은하,
다 말할 수 없지만 산에 가니 많은 도움이었다는 지원,
풍경 공기 환경이 다 좋더라는 동근,
찾지 못한 한 자루가 아쉬웠다는 수연이와 재관,
정말 힘들더라는 현지와 기륜,
못 올라간다 불평했지만 샘들이 기다려주고 멈춰줘서 부모님 같더라는 서정,
어려우면서도 재밌었다는 범순,
만리장성이었다는 종훈,
산 정상에서 맞는 바람은 정말 시원도 하더라는 동진이와 예원,
‘하늘 오름’은 꼭대기에 올라서 하늘과 가까워지는 것이라고 잘 해석한 은영,...

산이 있었고 그래서 올랐고 그리고 내려왔습니다.
그 산은 언제나처럼 한 보따리 선물을 우리에게 주었지요.
그보다 더 큰 공부를 저는 알지 못합니다.

“하다는 산에 가는 거 정말 좋아하는데...”
동휘가 몇 차례 왔다고 뵈지 않는 류옥하다를 챙깁니다.
같이 사는 녀석이 수두를 앓는 바람에
저 역시 밤새 긁어주느라 잠을 설쳤지요.
“옥샘, 좀 쉬세요.”
학교에 닿아 녹초가 되자 그 동휘가 위로합니다.
아주 큰 녀석을 보는 듯했더랍니다.
동휘가 처음 왔던 계자가 생각납니다.
엉덩이 붙일 데 몰라 엉거주춤하던 아이였지요.
두 번째는 틱틱거리던 삐딱이었습니다.
화장실에 가는 것도 큰 일이었구요.
“똥 한 번도 못 눴어?”
“어제 눴는데요.”
계자도 상설학교처럼 이렇듯 연속성을 갖습니다.
이 녀석이 자라가는 시간을 계속 볼 수 있음 좋겠습니다.
계자, 단 며칠이지만 그 시간도 우리한테 얼마나 진한지...

아, 저녁, 강강술래로 달빛 아래를 놀이꾼처럼 밟고
그리고 장작놀이로 마당에 모였더랍니다.
가는 시간을 붙잡아 2주쯤 더 있고프다는 민정이에서부터
(그 참, 동생 주환이도 누나가 2주쯤 예 있었음 좋겠다네요)
아쉽고 또 아쉽다는 모두였지요.
여름 밤 하늘에 노래가 오래 울려 퍼졌고
작은 모닥불에 감자도 구웠습니다.
그 감자껍질 아쉬움을 달래는 놀잇감이 되어
온 마당을 뛰며 우리들의 여름밤을 채웠지요.
다시 오마 약속을 하고,
서로 고맙다고 전하고,
재밌었다 되냅니다.

샘들은 샘들대로 아이들에게 우리가 주려고 하는 것이 무엇인가,
그걸 잘 구현은 했는가,
깊도록 갈무리가 길었지요.
아이들 못잖게 어른들을 성장시키는 귀한 시간이라지요...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
976 113 계자 사흘째, 2006.8.23.물날. 해 잠깐 다녀가다 옥영경 2006-09-08 1395
975 113 계자 이틀째, 2006.8.22.불날. 비 옥영경 2006-09-05 1504
974 113 계자 여는 날, 2006.8.21.달날. 소나기 옥영경 2006-09-02 1543
973 2006.8.20.해날. 흐림 / 달골 포도, 상에 오르다 옥영경 2006-09-02 1470
972 2006.8.14-20.달-해날 / 영남사물놀이 전수 옥영경 2006-08-20 1572
971 112 계자 닫는 날, 2006.8.12.흙날. 맑음 옥영경 2006-08-17 1386
970 112 계자 닷새째, 2006.8.11.쇠날. 맑음 옥영경 2006-08-17 1441
969 112 계자 나흘째, 2006.8.10.나무날. 잠깐 짙은 구름 한 점 지나다 옥영경 2006-08-17 1438
968 112 계자 사흘째, 2006.8.9.물날. 소나기 옥영경 2006-08-17 1492
967 112 계자 이틀째, 2006.8.8.불날. 맑음 옥영경 2006-08-11 1609
966 112 계자 여는 날, 2006.8.7.달날. 하늘이야 말갛지요 옥영경 2006-08-11 1351
965 111계자 닫는 날, 2006.8.5.흙날. 기가 꺾이지 않는 더위 옥영경 2006-08-08 1532
» 111계자 닷새째, 2006.8.4.쇠날. 산그늘은 짙기도 하더라 옥영경 2006-08-07 1437
963 111계자 나흘째, 2006.8.3.나무날. 덥다 옥영경 2006-08-07 1587
962 111계자 사흘째, 2006.8.2.물날. 땀 줄줄, 기쁨도 그처럼 흐른다 옥영경 2006-08-04 1534
961 111계자 이틀째, 2006.8.1.불날. 계속 솟는 기온 옥영경 2006-08-02 1980
960 111 계자 여는 날, 2006. 7.31.달날. 장마 끝에 뙤약볕 옥영경 2006-08-01 1629
959 2006.7.30.해날 / 111 계자 미리모임 옥영경 2006-07-31 1597
958 '물꼬에선 요새'를 쉽니다 2006-05-27 3492
957 2006.5.27-6.4. / 찔레꽃방학 옥영경 2006-05-27 1671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