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 계자 나흘째, 2006.8.10.나무날. 잠깐 짙은 구름 한 점 지나다


< 하늘 오름 >


전체 일정을 마무리하고
그간 익힌 스스로에 대한 굳건한 믿음으로 오르는 산오름,
그런데 이번 일정에는 쇠날이 아니라 하루 당긴 나무날에 오릅니다.
내일이면 IYC 식구들이 나갈 참이니
아무래도 일정을 함께 시작한 이들과
거친 호흡이 주는 시간을 보내는 게 큰 의미겠다 하고 조절한 일정이랍니다.

민주지산 1242m,
아이들과 오릅니다.
여름 산오름으로서는 이만한 산이 없지요, 워낙에 녹음이 졌으니,
거의 계곡을 끼고 오르는 데다, 긴 길을 그늘이 드리우고 있으니.
늘 아차 하는 일이 있기 마련이네요,
오늘도 청바지를 입은 녀석들이 있습니다.
소나기 아니어도 땀에 젖어 무겁기 한 없는 옷인데,
미처 챙기질 못하였습니다,
그나마 짧은 바지여서 다행이었지만.
“산은 산에 사는 것들의 집이니
남의 집을 방문할 때의 조심스러움으로!”
그렇게 떠난 산길입니다.

다시 떠나는 조우진님의 배웅을 받으며
우리들 긴 줄이 물한계곡 끝에서 산의 들머리로 접어듭니다.
산행전문가이기도 한 머뎃이 자꾸만 저 만치 앞으로 나가네요.
“어이 머뎃, 그러면 저녁 밥상이 사라지는 마술이 벌어져요.”
첫 선과 끝 선 안으로 모두가 들어가야 안전하겠기에, 아이들 위치가 확인이 되겠기에
선두자보다 앞이면 저녁 밥상이,
끝을 지키는 샘보다 뒤면 아침 밥상이 사라진다는 엄포가 있었던 터지요.
키르기즈탄은 기본이 몇 천 미터에
산 정상은 한 여름에도 눈에 덮여있다는 머뎃의 말에 모두 입이 벌어집니다.

1지점 계곡 곁에서 한숨 돌리고
2지점 역시 계곡 곁에서 다시 쉼을 하며 사탕을 나눈 뒤
3지점을 향해 오릅니다.
쪽새골을 벗어나며 만나는 능선길은
바로 150미터 앞에 정상을 두고 있지요.

“하늘이다!”
민주지산 꼭대기에서 그렇게 하늘자리를 밟고
잠시 그늘로 내려와 김밥과 사과와 오이를 나눠먹은 뒤
이제 보물을 정상 가장자리를 훑습니다.
“여기요!”
재화 목소리인가요, 한 꾸러미를 찾아서 위로 올려져 옵니다.
정록이도 찾았나 보네요.
또 한 꾸러미는 누가 찾았던가?
그런데 지난주에 찾지 못한 초코파이 가마니는 여직 소식이 없었네요.
뙤약볕에서도 아이들은 정상을 벗어나자는 말이 없습니다.
펼쳐진 저 아래가 바로 머리 위의 하늘이
그리고 뒤덮은 잠자리가 우리를 놓아주지 않았지요.
“노래 좀 들어봐요.”
하늘자리에서 칠르와 마미와 마키, 그리고 소마이에의 노래가 있었습니다.
중국 학교에서들 부른다는 노래와 이란의 전통가요,
그리고 회합의 노래를 일어로 들었지요.
소마이에는 이 노래를 부른 지점부터 확 변화를 드러냈지요.
너무나 소극적인 그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장난도 하고, 몸도 훨 가벼워진 듯 보입니다.
민주지산은 그렇게 의미롭게 우리들 시간의 한 지점이 되어주었더이다.

“내리 주욱!”
각 지점마다 모두가 모여 쉬는 것과 달리
내림은 알아서 주욱 죽 물한계곡 주차장까지 가자 합니다.
지난 주에 너무 여유로와 차편을 놓치기도 했던 경험이 있어 더했지요.
그런데 1지점까지 오니
이제 버스 시간이 너무 멉니다.
충분히 쉬자 했지요.
칠르와 필근샘은 등을 서로 대고 졸고 있고
늘어지게 길게 누운 이들도 있고
계곡에서 물놀이를 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도란도란 그늘을 즐기는 이들도 있습니다.

“아무래도...”
이런, 아이 셋이 없습니다.
뒤에 오는 패들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가보지만,
없습니다.
애들이래야 몇 되지도 않으니 금새 알겠지요.
거기다 뻔하거든요, 전체 안내를 잘 안듣는 이라면.
규연이와 호연이야 한데모임에서야 안내를 잘 안들어도
삐져나가 위험지대로 갈만치 크지야 않으니.
그때 지수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네요.
“아까 세 명이 먼저 갔어요.”
아하, 정록이겠다 짐작합니다.
맞아요, 정록이와 정욱이 그리고 태관이가 없습니다.
“안내 할 때마다 잘 안 듣는 거 티내는구나?”
갈림길에서 어딘지 몰라 기다리고 있던 그네를 만났지요.
먼저 내려간대도 주차장을 벗어나지야 않겠지만,
이제부터는 그리 위험할 것도 없는 길이지만
그래도 낯선 길, 눈 안에 있어주어야지요.
만나 숨을 내릴 수 있었답니다.

아무래도 서로 더 많이 가까워지는 시간이겠지요.
거친 길은 어깨 겯게 하고
긴 길은 많은 이야기를 낳기도 합니다.
호연이와 규연이가 보글보글방에 끼는 것도 그렇고
산오름에서도 뭐 심드렁심드렁 하더랍니다.
그렇다고 재미가 없다는 표정은 아니구요.
“여기서만 그러는 거야 원래도 그러는 거야?”
엊저녁 잠자리에 들기 전 규연이한테 다가가서 물었지요,
늘 그렇게 잘 안 듣냐고.
원래도 좀 그런데요.
이뻐서 꼭 안아주었더랍니다.
아이들이 서로 얘기를 나누는 법, 노는 법들을 이제 익히고 있더라는 얘기도 나오데요.
내려오는 길은 고스란히 놀이동산길입니다.
돌이 나뭇가지가 그늘이 물이 죄 놀잇감이었답니다.
“이천 산다, 이천으로 갈려고 간 게 아니라 큰 아버지가...
아빠가 직장을 옮겼는데 IMF 때문에 짤려서 그런 게 아니고...”
예, 설명 많고 따뜻하고 사연 많은 상현이의 얘기는
샘들이 이제 다 공유하게 되었지요.
웃음도 예쁘고 말도 예쁜 형진이 얘기도 재밌습니다.
파리 쫓으며 자기는 여기 음식이 맛있다고 씨익 웃는 세훈이,
바윗돌에 넘어져 얼마나 아팠을 라나요,
그래도 씨익 웃는 그입니다.
그가 우리들에게 스승이었네요.
곳곳에서 샘들과 아이들이, 아이들과 아이들이
끈끈한 고리들을 만든 내림길이었답니다.

마지막 길,
칠르와 나란히 내려왔습니다.
지금 이 세상의 흐름과 다를 수도 있는(?) 우리들의 가치관을 나누며
너무 신이나 하이 파이브를 너댓 번은 하고
급기야 서로 얼싸안았더라지요.
생각을 나누는 힘! 공유의 힘!
(언젠가 연대의 힘도 되겠지요)
탈중심화의 길,
꿈을 지니고 산다는 것,
변화에 대한 꿈을 꾸고 그리 살아가는 것,
인간으로서 잃고 싶지 않는 ‘자유’에 대해
뜨겁게 뜨겁게 어깨 겯는 시간이었더이다.

주차장에 이르기 직전,
해마다 여름이면 만나는 상현이네 버섯시식코너가 있었지요.
“아이구, 선생님!”
상현 무현이라면
몇 해 전 한 기업의 후원을 받아 지역 아이들과 하던 공부방에서 만난 아이입니다.
버섯을 불판에 구워 된장에 찍어먹습니다.
함께 내려오던 우리 아이들 실컷 멕였지요.
‘우리 동네’가 주는 즐거움이랍니다.
복숭아 할머니도 나와 있습니다.
한 바구니에 벌레 먹은 허드렛 복숭아를 더 많이 주시는 할머니,
“남는 게 있겠어요?”
그러며 넙죽넙죽 잘 받아 아이들을 깎아 멕였습니다.
산오름의 마지막은 이렇게 해마다의 연례행사로 막을 내리지요.

대해리 들머리 흘목에서 부려진 아이들은
산그늘 따라 난 길을 오릅니다.
우리들의 수영장 ‘태평양’을 그냥 지나칠 수 있나요.
으레히 들어가겠거니 하고 첨벙첨벙 물로 드는 아이들입니다.
안하는 애들도 있겠지요.
하는 애들이 손에 물을 떠와서 앉았는 애들한테 뿌려댑니다.
첫날의 무시무시한 물싸움과는 다른
조화롭고 따뜻한 느낌의 저녁답이었다네요.

산을 다녀왔으니 무용담, 혹은 영웅담도 빠뜨릴 수 없지요.
어떤 마음들이 우리 사이를 들고 났을까요?
오른 자만이 갖는 기쁨,
포기하지 않은 자만이 갖는 느꺼움,
언제나처럼 나오는 얘기지만
새롭고도 새로운 즐거움들을 전합니다.
김은숙엄마의 포기는
오른 자만이 느끼는 것들을 더욱 자랑스럽게 하였지요.
한 명쯤 포기해주는 것도 기쁨을 배가시키겠습니다.
최정민이 몸상태가 썩 좋지도 않았는데
꾸역꾸역 끝까지 올라서 박수를 받았지요.
그러고도 아이들은 힘이 남아 대동놀이를 하잡니다.
저 간절한 눈을 하고 있는 예슬이 좀 보셔요.
거의가 고래방으로 달려가고도 남을 참입니다.

보민이와 다온이와 소연이형님이 여자 아이들 샤워를 도왔습니다.
손이 많지 않았던 이번 계자에
이 큰 누나들은 얼마나 큰 도움꾼들이었던지요.
잠자리에 가기 전, 소연이는 아이들 상처를 돌보아주었습니다.
일이 될라면 사람을 키워야 한다니까요.

달빛이 좋은 한 밤,
IYC의 지은샘과 칠르가 새벽 1시에 달골에서 내려왔습니다.
못다한 얘기를 하러 왔지요.
마침 샘들 하루재기가 끝나 잠자리로 가던 시간이라
교무실에서 얘기 마당 한참이었습니다.
유달리 물꼬에 대해 관심이 컸던 두 사람입니다.
이곳에서 아이들이 어떻게 성장하기를 바라는가에서부터
앞으로 어떤 상을 잡고 있는가,
그리고 드러나는 문제들은 무엇인가,
결국 우리 삶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 걸까 들을 나누며
남은 우리들의 생을 가늠해보았더이다.

저녁에 새끼일꾼 하림이형님이 왔습니다, 예정에 없이.
어머니 편에 왔으면 한다 전했고 오마 해서 왔지요.
초등 2년, 가회동에서 글쓰기공부를 같이 했던 그였습니다.
중 3, 이제 안으면 제가 아니라 그가 안아야 하는 180이 넘는 키입니다.
내일 IYC 식구들이 빠지는 자리에 한 몫 거들 참이네요.
자라는 아이들을 보는 즐거움의 마력으로
하고 또 하는 물꼬 일이 아닐 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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