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 계자 닷새째, 2006.8.11.쇠날. 맑음

조회 수 1440 추천 수 0 2006.08.17 00:03:00
112 계자 닷새째, 2006.8.11.쇠날. 맑음


요가와 명상으로 연 아침,
해건지기의 셋째마당으로 달골에 올랐습니다.
창고동에 머무는 IYC 식구들을 들여다보기도 했지요.
시설 좋은데 있다고 부러워도 했네요.
“아니야, 이네들은 아침 저녁 오르내려야 하잖아.”
그러니 또 금새 부러움은 측은함이 됩니다.
너른 콩밭과 포도밭 사이 원두막에서
물꼬의 꿈을 나누었지요.
꿈꾸는 것에 대해
꿈을 잃지 않고 지켜가는 것에 대해
조용히 서로를 격려했습니다.

밥 먹었고 손 풀었지요.
“규연이 그림은 되게 작아요.”
기계적으로 꼭 그런 거야 아니겠지만
그림은 그 아이의 마음을 반영하기도 하지요.
규연이가 한껏 나래 펴기를 바래보았습니다.

그리고 나눔!
IYC에서 돌아가는 이들과 남은 우리들의 마음을 나누는 시간이었지요.
아이들은 저마다 편지를 썼습니다.
IYC 식구들은 아,
곰 세 마리를 우리말로 그리고 손말로 불렀지요, 한국어로 말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작은 편지와 몇 선물을 내밀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그들의 온 몸에 그리고 옷에 낙서를 하였습니다.
물론 서운함과 섭섭함이겠지요.
다행히도 모두 웃어주었습니다만
썩 반길 일은 아니었던 듯합니다.
IYC 식구들과 아이들이 이메일과 주소 혹은 인사말을 주고받는 틈에
마침 품앗이샘들이 잠깐 부엌으로 가거나 해서 자리가 비었던 틈이라
벌써 한참을 벌어진 일이고 말았지요.
흔히 캠프를 가면 아이들 얼굴에 혹은 옷에
낙서를 하는 게 통과의례처럼 여겨집니다.
물꼬에서는 거의 없던 일인데,
어젯밤 다른 곳의 캠프를 다녀본 6학년 아이가 한 아이 얼굴에 시도한 적이 있었지요.
마치 억눌린 시간에 대한 해방의 도구처럼 쓰이던 시절의 문화를
생각 없이 따르는 것만 같아
예서는 말리고는 한답니다.
왜냐하면 즐거움을 표하는 방식도 해방의 놀이도
유쾌하고 기분 좋은 다른 것들이 많으니까요.
이런 식의 인사는 꼭 불편을 일으키게 하는 일이 영락없이 따라붙는데
필근샘의 바지가 그러했답니다.
다른 사람 걸(게다 그게 또 뭐 얼마짜리라나요...) 빌어 입었던 겁니다.
이미 지난 일이라고 손사래를 치며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있어주었지만
참 곤란하지 않았을 지요.
죄송합니다.

그들 손이 컸던가 봅니다.
그들의 자리가 참으로 컸기도 했던 모양입니다.
IYC 식구들이 떠나고 나자
당장 종종거리고 다녀야했지요.

보글보글방이 이어졌습니다.
동화를 한 편 같이 읽고 시작합니다.
덩어리가 작은 느낌의 아이들이어서 그런지
그림 책 하나 만으로 모두가 집중하여서 따뜻하게 읽었더랍니다.
“만두에 대해서 옥샘의 동화가 무더운 날씨 속에서도 귀에 쏙속 들어왔습니다. 아이들을 훠이 둘러보니 모두 눈망울이 똘망똘망하여 쳐다보고 있는데, 지금 이 공간 같이 하는 것에 감사함을 느꼈습니다.”
승현샘은 이 시간을 그리 쓰고 있었네요.
예쁜 만두, 잘생긴 만두, 똑똑한 만두, 귀여운 만두,
그리고 마음 넓은 만두피 방이 있었습니다.
만두 잔치였지요.

엊그제 먹은 중국만두랑 우리 만두 견주기도 하면서
지윤 지원 예지 다온 은비는 예쁜 만두를 빚어 쪄냈습니다.
자유롭게 만들다 먹다 기다리다 놀다 놀다 했다지요.
예쁜 만두답게 하려고 무지 애썼다는 후문입니다.

잘생긴 만두네는
승엽 기환 최정민 대호 승수 준오 성준 진웅 준홍 기완 정욱이가 들어갔습니다.
열심히 만들고 잘 정리했다 합니다.
여유롭더라지요.
흠씬 취한 자유였다지요.

정환 예슬 동연 예슬린 가은 혜원 세훈 한슬 종훈 정우는
귀여운 만두를 빚었습니다.
만두피네 영업부들이 모는 차가 하도 덜덜거려 샘이 정신이 좀 없었다지만
아이들이야 그런가부다 하고 잘도 빚더라지요.

똑똑한 만두는
채영 구식 은기 형진 지수 호연 규연 지은 민지가 빚고 있습니다.
채영이가 기름을 붓고 적절한 시간에 물과 후라이팬을 잘 관리했다지요.
규식이는 또 샘이 익은 것을 빼면
안 익은 것을 후라이팬에 넣어서 빨리 일을 진행할 수 있게 도왔다 합니다.
“이건 미스코리아 만두야!”
지은이가 민지가 그럴싸하게
똑똑한 데다 예쁘고 귀엽고 잘생긴 만두를 내놨다나요.
은기 현진 지수 호연 규연이 같은 작은 이들은
즐겁게 조물락거리며 빚었다네요.
“제 움직임이 여유로우면 아이들과 더욱 더 교감하고 재미를 나눌 수 있는 것 같다.”
샘이 그러데요.

만두피는 고학년들이 밀었습니다.
350여개의 만두를 찌고 굽고 끓였다 하니
그 피를 다 민 거지요.
정우 정민이 태관이 주연이 성재 재화 성수 보민 여정민이가
그리고 새끼일꾼 하림이형과 소연이형이 와서
보민이 여정민이 주연이가 아무래도 손이 야물었지요.
재화 성수 류옥하다가 영업부를 만들어 뛰었습니다.
“시장조사 좀 하고 와라.”
“만두피가 너무 두껍다는 데요.”
얼마나 요란했을 라나요.
“이제 다른 데로 이사를 좀 해도 되나요?”
“해고다.”
그래서 몇은 만두를 빚으러도 갑니다.
참 유쾌하고 자유로운 시간들이었지요.
의리를 만두패들, 만두피 식구들을 먼저 멕이러 보내기도 하였네요.

‘끼리끼리’가 이어졌습니다.
주르르 교실들이 불려나오다
이곳에서 할 수 있는 걸 하자는 얘기로 모아져
어떤 건 폐지되거나 통합되더니
가닥이 잡혀 교실이 열렸지요.
“그건 집에 가서 해요.”
그림놀이와 이야기마당과 노래방과 흙놀이는 그래서 폐지된 방이고,
매듭, 옷감물들이기, 고기잡이, 편지, 놀잇감만들기, 집짓기, 식물도감, 책갈피,
운동교실(폐지됐다 이곳만큼 맘껏 재밌게 달릴 수 있는 곳이 없다는 간곡한 부탁으로 부활), 한땀두땀이 남았습니다.
폐지론에 살아남았던 옷감물들이기와 식물도감, 집짓기는
결국 신청자가 없어 폐강이 됐지요.
집짓기는 지은 민지 예지 지원이 수강신청은 했으나
다른 방으로 옮겨가버렸답니다.
샘들을 많이 찾지 않고 스스로 하려고들 하는 아이들을 보며
여기서 보낸 ‘스스로’공부가 헛되지 않았다 뿌듯하였지요.

예슬린, 가은 혜원 보민 대호가 매듭을 엮습니다.
정우 기완 주연 민지 지은 은기 정환 재화 한슬 세훈 준홍 규식이는
운동장을 아주 다지고 다녔고,
다온 은비 지윤 여정민이는 바늘로 땀을 뜨고 있었지요.
지은 예지 예슬 채영 동연 류옥하다가 예쁜 들꽃을 주워와 책갈피를 만들고
기환 최정민 형진 지수는 활을 만들고 있네요.
기환이가 샘 노릇을 제법 했습니다.
아직도 영 몸이 개운치않은 최정민이를 잘도 챙겼지요.
편지에는 승수와 성준이 달랑 둘이 들어갔는데
또 그 사연이 있었네요.
승수는, 축구는 하고 싶고 친구로서 의리는 있어야 겠고
결국 창틀에 앉아서 편지를 쓰며 축구를 열심히 구경하데요.
두 마리 토끼를 다 잘도 잡은 승수였답니다.
나중에는 나가서 축구를 하였지만 말입니다.
모두 모인 자리에서 말도 많아 우리들을 방해하기도 했지만
정말 멋진 승수였답니다.
아, 성준이, 아토피가 심한 그에게
모두 피부 좋아졌다(예 와서) 덕담이 무성했지요.
고기잡이를 노래노래 하던 정록이들은
(성수 정록 진웅 성재 상현 태관 정욱 준홍 준오 규연 종훈 한슬 호연 승엽)
새끼일꾼 하림이 소연이를 앞세우고 계곡에 나가
열일곱의 고기를 수확하였습니다.
고기를 모는 이들이 잘 못한 아쉬움도 남았지만,
그래도 수영도 하고 물가에서 장풍도 뿌리다
발이 닿지 않는 검은 계곡도 갔다지요.
정록이가 이따만한 고기가 있다하여 몰려갔는데
아주 쬐끔한 것이었다고 비난들도 해댔지요.
“정록이형은 낚시꾼이 될 기질이 다분해서 그렇습니다.
낚시꾼들은 손바닥만한 고기도 팔뚝만한 거라 소리치거든요.”
한데모임에서 분위기를 바꿔주었지요.
소연이형은 평소 말을 잘하지 않던 남자 아이들과
더 많이 친해질 수 있었던 좋은 시간이었다데요.

이 소란하기 짝이 없는 녀석들도
별빛이 쏟아져내리는 산골 밤의 장작 앞에서는 고요합니다.
호연이와 규연이가 여전히 재잘댔지만
그것도 밤에도 울어대는 ‘들 것’들의 소리마냥 구색이었지요.
“승현샘과 여러 샘들 재밌게 놀아줘서 고마웠고 샘들한테 말 안 들어 미안했어요.”
승현샘만 쫄랑대며 따르던 한슬이도
이제 다른 샘들의 존재를 느끼고 있습니다.
“몇 번 오니까 샘들도 낯도 익고 옥샘과 승현샘이 잘 놀아줘서...”
기환이 역시도 골목대장 승현샘을 좇더니
다른 샘들 이름을 들먹이는 걸 잊지않는,
큰 아이가 되었습니다.
“파리에도 이제 익숙하고...”
예슬린이네요.
성재도 한마디 합니다.
“상현이 형이랑 태관이 형이 잘 놀아줘서 고맙고...”
한데모임을 하는 자리에선 끊임없이 재잘거리던 두 형아도
또 그렇게 형 노릇으로 동생들을 유쾌하게 해주었던 것입니다.
다 제 몫을 찾아가는 이곳이랍니다.
“다른 데서 보지 못하는 외국인들 봐서 좋았고...”
혜원이며 여럿이 IYC랑 함께 하는 즐거움도 빼놓지 않고 말했지요.

샘들 얘기도 긴 밤입니다.
처음에 자꾸 묻는 아이들 보며
놀 줄도 모르고 깜량도 없는 이 시대 아이들이 자라 어른이 되면
다음 세대는 어떻게 될까,
이 세대들이 부모가 된다면 노는 문화도 없고
사회가 답답할 것 같다는 승현샘,
오늘 날짜가 언제냐도 모르게 빨리 가더라는 소연이형님,
사고 없이 잔잔하게 흘러가는 것 보며도
비도 안 오고 하늘이 돕는 듯하여 신기했다는 이은영엄마,
계자 함께 해서 반가워진 얼굴들, 모두 고맙다, 감사하다는 홍정희엄마,
다음에 꼭 다시 와야겠다(그래서 이 느낌들을 더 풍성이 하고 싶다?)는 하림이 형님,
애들이랑 마주 앉아서 떠드는 재미가 컸다는 김은숙엄마,
나눔 시간(IYC 송별)이 소박하고 따뜻하고 좋더라는 상범샘
(예, 우리들은 정말 그들과 짧은 시간에도 정이 들어버렸던 것입니다),
모두 모두 소중하고 사랑스런 날들이었지요.
“내일 집에 간다라고 생각하니 여기에 더 물고 싶다,,,라는 생각이 문득문득 든다.
한데모임 전 아이들하고 신나게 놀았다. 그동안 잘못해주고 못 놀아준 것을..
모두 놀아주진 못했지만 그래도 내가 미안함을 덜을 수 있을 만큼 놀아준 것 같다.
일주일이란 시간이 지나고 집에 간단 소리를 했을 때 시원섭섭하면서 눈물이 글썽...
늘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요번 백열두 번째 계자도 정말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 같다.
다음번엔 아이들에게 정말 잘해줘야지.”
소연이형님은 그리 쓰고 있었네요.


늦게 훤한 달이 올랐더이다.
달빛이 곱기도 한 밤이었지요.
그 빛이 너무 밝으니 별들이 저 만치 물렀겠지요.
빛나는 이들은 그렇습니다.
문득 내가 모자라는 사람이어서 고마웠습니다.
채워지지 않은 사람이어서 고마웠습니다.
지혜가 없으니 지혜로운 이가 다가오고
힘이 없으니 힘 있는 이들이 다가와서 힘이 됩니다.
고맙고 고마운 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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