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5.4.나무날. 맑음

조회 수 1140 추천 수 0 2006.05.09 17:04:00

2006.5.4.나무날. 맑음

두레상이 있었습니다.
젊은 할아버지는 류옥하다네 외가에서 온 철망으로
하늘이 훤했던 닭장에 안정망을 드리우셨다합니다.
아이들은 상상아지트에서 집을 꾸미며 노는 한 주의 즐거움이 컸다지요.
병마가 다녀가 텅 비었던 달골의 허전함,
효소도 담고 나물도 뜯고 모종도 심는 가마솥방의 즐거움,
트랙터가 와 일손을 덜게 된 농사부의 기쁨도 전해졌습니다.
마을에서 물꼬 감자가 젤 잘자란다고들 한다하고
논에선 둑을 정비한다든가로 모심을 준비가 한창이라지요.
두레상형식에도 변화가 생겼답니다.
1, 3주는 그대로 지금처럼,
2, 4주는 두레상 뒤 어른들끼리 따로 모임을 갖기로 합니다.

지난 4월 28일 쇠날,
아이들을 집으로 보내놓고 밀려드는 통증을 감당 못해
한 밤 응급실에 실려갔지요.
물날 밤부터 심하게 앓았으나
아이들과 하는 시간이 있으니 버팅겨주던 몸이
집이 먼 아이도 집을 다녀오는, '학교 비우는 주말'(달마다 마지막주)을 맞아
그만 무너져버렸던 겁니다.
먹는 게 부실했다거나 체력이 약해졌다는 것만이 다가 아니었겠다 싶었지요.
일련의 갈등과도 어쩜 무관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싶데요,
적당한 선이었으면 깊은 자성과 자숙으로 이어져 성장의 좋은 기회였겠으나
또, 다른 생각을 토론하는 거라면 즐겁기도 하였겠으나
인신공격과 차마 어른으로서 썼다고 볼 수 없는 글들을 대하며,
그리고 물꼬 간판을 내리겠다는 메일이나 가만두지 않겠다는 협박 전화까지 받으며
정녕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는가 하는 가눌 수 없는 슬픔으로
인간 존재에 대한 커다란 연민을 가눌 길 없어
그만 쓰러지고 말았던 건 아닌가 하는.
트랙터랑 학교에 필요한 짐을 시골집에서 가져오는 길로 다시 병원으로 실려가
닷새를 병실에서 보내고 왔지요.
출산을 빼고는 꼭 12년 만에 들어가 본 병원이었네요.

대해리로 돌아왔더니
시카고에서 남편이, 일산에서 벗이, 그리고 곡성에서 스승님이 보내신 글월이 맞았습니다.
물꼬는 마을식구들과 공동체식구들 그리고 아이들이 잘 지키고 있었지요.
요새 같은 때(구조)가 아니라면 어찌 며칠을 학기 가운데 비울 수가 있었을 지요.

"뭘 얼마나 한다고 움직여 일구고 만들어가는 삶이 공부인 옥샘보다 낫기야 하겠냐만
그 마음이, 그 열정이 어떤 것인지 알고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은 나로서는 대견한 일이다.
그러니 너와 함께 맞은 서른 아홉이 이렇게 값진 것이 아니겠니.
스물 아홉 무섭게 오더니 서른 아홉 아무렇지도 않게 와서 내심 서운하더라.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
내가 그리도 소망하던 마흔은 무엇을 해도 당당할 수 있는 나이였다.
그런 마흔을 또 너와 함께 맞을 생각을 하니 얼마나 기쁘냐?

굳이 너의 입을 빌어서가 아니라
네가 하고 있는 일의 진실성과 네 의지의 투명성과 네 행보의 미더움이
그리고 이제껏 보아왔던 네 눈빛의 투지가
네가 가진 희망과 네가 갈 길을 말해 준다.
그것이 너의 힘이라는 생각이다.
내리막길이 있으면 오르막길이 있다.
오르려는 힘을 가진 사람에게 내리막길은 쉬어가며 생각하는 공간일 뿐
그 어떤 의미로도 좌절될 상황은 아니겠지.
물론 좌절할 사람도 아니란 걸 알지만 힘내라.
나는 언제나 네 편이다.
언제나 네 편일 수 있는 것은 너의 힘을 잘 알기 때문이지.
건강조심하고 다시 맞는 마흔의 5월에는 더 기쁜 일이 많도록 서로 노력하자.
행복해야 한다, 사랑해."

벗의 글월이 따뜻한 아랫목이었더이다.
사람 때문에 죽었으나 사람 때문에 또 사는 게지요.
물꼬도 누군가의 언덕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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