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 계자 첫날, 2006.5.12.쇠날. 비

조회 수 1359 추천 수 0 2006.05.13 13:58:00

110 계자 첫날, 2006.5.12.쇠날. 비


< 2006 봄, 백열 번재 계절 자유학교
- 무논을 썰어 >


스물여덟에 깍두기 하나(여섯 살)를 더한 아이들과
열 넷의 어른들이 이 봄의 백열 번째 계자를 함께 합니다.
마을로 들어오는 버스에서 내린 아이들을
여기 상설 아이들이 맞았지요.
이번은 애들이 좀 굵습니다려.
꽤나 오랜만에 다른 계자와는 달리 6학년이 젤 많은 계자네요.
성큼 커버려 한참을 누군가 싶어 들여다보는 기태와 희수에다
승찬이의 서울 친구들이 우르르 왔습니다.
성빈이가 달려오네요.
"옥샘, 이거요!"
2천 1백원(나중에 다시 주머니를 뒤져 삼백원을 더 내놨지요)을 내밉니다.
"모금이예요."
물꼬살림에 보태 쓰라 합니다.
아마도 지난번 달골 아이들집을 지을 때
특별건축기금을 마련하던 그 얘긴 듯합니다.
이런 아이들이 물꼬를 긴 세월동안 살아남게 했고 키워왔다 싶더이다.

점심을 먹고 모인 2시, '큰모임'을 합니다.
공간과 이 곳의 시간에 대한 안내를 하며
계자의 전체 분위기를 짐작케 하는 시간이기도 하지요.
물꼬는 왜 스스로 가난을 선택했는가,
어떻게 땅을 살리고 건강한 먹거리를 먹고
그것을 다른 존재들과 어떻게 나누는가,
십수 년의 세월을 어찌 보냈고
앞으로 또 살아갈 많은 날을 어떻게 보내려 하는가도 나눕니다.
큰 아이들의 거침과 습이 되어버린 듣지 않음,
그리고 파릇파릇 솟는 다양함과 창의성 없음이
도대체 학교라는 게 무엇이어 멀쩡했던 아이들을 저리 만드는가 하고
비난의 꼬투리가 되고는 하는데
이번에 온 큰 아이들은 예년과 전혀 다른 분위기를 가지고 왔습니다.
이 시간을 아주 진지하게 열심히 들을 줄 아는 것만 보아도 그러하네요.

아이들은 덜 된 글집을 자신들의 손으로 마무리 합니다.
비워둔 겉표지 말입니다.
시내가 흐르는 영록이,
자신이 한 해 동안 연구해가고 있는 사슴벌레를 담은 령,
이곳에 온 설렘과 기쁨을 담은 효현,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나라 영국의 타워브릿지를 그린 연호,
좋아하는 풀과 나무를 그린 현빈,
그리고 동희는 나중에 살고 싶은 곳을 그렸습니다.
지원이 글집엔 자기랑 닮은 토끼가 살고,
차가 오가는 종훈이,
꽃 만발한 민이와 효민이,
세희는 여기 처음 와서 바람에 날리는 살구나무가 젤 인상깊었다 합니다.
문근이는 연필로 만화에 나오는 인물들을 한껏 담았고,
아름드리 사과나무를 그려놓은 명윤,
프랑스 파리 한 가운데를 담은 재혁,
산이 좋다는 신기,
자기랑 꼭 같은 사내아이를 그린 수빈,
강한 한국을 그려낸 상위와 힘있는 한국인을 그린 희수,
그리고 풀이 좋아 풀이 돋고 있는 나현이의 글집입니다.
류옥하다는 새 학년을 시작하며 심은 느티나무가
백 년의 세월을 견뎌낸 모습을 담았고,
예외 없이 졸라맨은 이번 계자에도 등장합니다.
승찬이가 가벼운 마음으로 그리자
정민이도 창욱이도 곁의 정우도 줄줄이 따라 그리고,
성빈이 같이 텅 비워둔 글집도 있습니다.
이은영엄마도 손을 번쩍 들고
대해리의 산과 곶감집을 담은 그림을 보여주었지요.
주애와 기태, 그리고 현승이는 뭘 그렸던가...
그런데 이런 시간에 보면 상설학교 아이들이 표가 난다지요.
솔직하고 담백하게 말을 참 잘한다 합니다.
이곳이 저들 안방이어서만은 아닐 겝니다.

우리 소리, 우리 가락을 합니다.
봄이니 봄타령도 읊고
낼 모내기에 같이 부를 농부가 앞소리도 익혀봅니다.
이른 아침부터 부산하게 움직였던 터라
흐린날의 따땃한 아랫목은 졸음을 부를 만한 하건만,
그리고 더러 시들해라 삐딱하게 앉은 6학년이 있을 법도 하련만,
웬걸요, 어찌나들 열심히 부르던 지요.
"고맙더구나. 너무 신나게 불러줘서 앞에서 아주 신명이 났더란다."
마치고 나가는 세희며 효현이며 6학년들의 등에다 그랬지요.
"되게 재밌었는데..."
"너무나 잘하셔서..."
감기가 깊어 소리가 엉망이라 안타까워도 했더니
도로 지들이 샘이 소리를 잘 하더라며 위로를 다 해왔지요.
구미에서 같이 온 현승이 문근이 수빈이도 이 시대 고학년 같지 않게
충분히 이곳의 느리고 크지 않은 움직임을 잘 누리고 있답니다.

점심을 먹고 아이들은 큰 마당에 쏟아져나와 땅을 한 덩이씩 차지하고 놉니다.
자전거도 타고 개랑 놀기도 하고 농구도 하데요.
영화상영을 준비하던 이들도 섞여 축구도 한 판 합니다,
마치 이것도 준비된 영화의 한 장면이기라도 한 양.

보글보글.
저녁을 아이들 손으로 잔치처럼 곳곳에서 음식을 해서 나눠 먹습니다.
나현이랑 효민이 류옥하다 조민은 화전을 부친다며
정운오아빠를 좇아 나가 먹을 수 있는 꽃을 찾다 쑥을 한 움큼 뜯어 돌아 왔지요.
하다랑 민이는 동그랗게 만들고 효민이는 납작하게 누르고
나현이는 거기다 쑥을 올리고 선진샘은 그걸 구웠습니다.
"공장 같애요."
바깥에서 영화상영을 준비하고 있던 사람들은
쫄깃쫄깃 맛난 그게 도대체 뭐냐고 여러 번 이름을 물어왔지요.
쑥 향이 입안 가득 고여 흐린 하늘을 가셨더이다.

호떡을 부쳐내고 있는 이들은
현빈이 성빈이 문근이 신기 정민이 재혁입니다.
후라이팬 하나로 시간 참 많이 들여 구워내는데
갈수록 크기가 자꾸 커집디다.

종훈 동희 령이가 들어간 부침개에선
상설 아이들이라 그런지 승현샘이 그러던데 걸림이 없이 아주 수월했다지요.
과정 안에서 자신의 역할을 물으며 잘도 움직이더랍니다.
효현이랑 주애는 미나리가 들어간 부침개가 정말 맛있다고
몇 번을 좇아왔지요.
"아직 안됐어요? 언제 더 먹을 수 있어요?"
승현샘은 부침개를 부치던 아이들뿐 아니라
노닥거리던 수제비와 떡볶이 애들까지 불러다 앉혀놓고
갈무리글을 지휘하고 있데요.
오랜 품앗이들의 이런 적절한 역할들이 전체 진행을 순조롭게 한다지요.

지원 주애 효현 세희 희수, 6학년들이 우르르 들어간 곳은 수제비입니다.
"오빠!"
쉬지 않고 열심히 반죽을 해준 희수에게 여자 아이들이 불러준 이름자지요.
"색이 좀 달라요."
"우리밀 밀가루거든."
자랑스런 이금제엄마의 설명으로
아이들은 물꼬의 삶 또 한 켠을 이해합니다.

승찬 기태 현승 상위 명윤이는 떡볶이를 만들고 있습니다.
"수습 좀 해야겠다."
샘이 잠시 자리를 비우고 있었고
아이들은 뭔가 맛이 모자란다며 자꾸 국물을 떠먹으며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지요.
"소금!"
"고춧가루!"
"고추장도 더 있어야겠네."
한 마디 한 마디를 따라서 합창 하더니
치웠던 양념들을 또 뽀르르 달려가 들고 옵디다.
"만약 이걸로도 안 되면 원판불변의 법칙처럼
원래 맛이 그런 거다 하는 거야."
그런데 그런 일이야 어디 있을 라구요,
간만 아주 형편없이 맞으면 저들 손으로 한 게 무엇인들 맛이 없겠는지요.

감자핏자에는 수빈 영록 연호 창욱이가 들어가 있습니다.
호떡에 갔던 수빈이는 그 방이 정원을 넘겼다 하니
기꺼이 자기가 사람이 적은 곳으로 옮겨가 주었지요.
감자를 채칼에 밀고 양파를 썰고 피망을 썰고...

"비 와요."
"네에?"
이런, 저녁밥을 먹고 있는데 기어이 빗방울 떨어진다는 소식입니다.
'문화연대'에서 영사기를 가져와 영화를 보여준다던 시간이지요.
물꼬에서 날씨 때문에 행사에 어려웠던 경험은 거의 없었는데...
봄밤, 더덕향도 넘어오고 산 것들의 움직임이 들려주는 소리를 들으며
푹하게 영화를 보겠다던 계획이었는데...
"길은 두 개밖에 없지 뭐, 영화를 보든가, 말든가."
아이들과 반짝한데모임까지 해서 어찌할까를 논의했고
(몸에 약간의 불편함이 있어 다른 사람의 이해가 필요한 두 아이 때문에도
아이들과 자리를 한 번 해야했거든요.
신경계통 약을 먹는 아이들에게
적어도 이곳에선 그 약을 먹지 않고 지낼 수 있게 하려지요,
우리 편차고 그런 약을 멕일 순 없다 싶은 데다
행동을 막을 정도면 얼만 독할까 싶어.)
고생하며 준비한 이들을 위해,
또 다른 경험을 위해,
이런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으니 보자는데 모두 손을 들었지요.
"창대비가 쏟아져도 영화를 어떻게든 보여주시고
저희는 소나기가 쏟아져도 어떻게든 볼 준비를 할게요."
탑차에 마련된 무대에서 물꼬 상설 아이들의 작은 공연이 있었고
(뱃노래를 부르는 마지막은 정말 압권이었다고 탄성들을 질렀지요),
노래동아리 두 어른이 준비한 포크송을 듣다
드디어 스크린을 향해 앉았습니다.
광화문에서 보는 월드컵경기가 바로 저런 스크린으로 보는 걸 걸요.
'아빠가 필요해'라는 10분짜리 단편영화도 보고
요즘 상영중인 '마이캡틴 김대출'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영화상영을 준비하던 과정이 또 한 편의 영화였지요.
스크린 끝자락을 열 한명의 어른이 아래를 다 움켜쥐면
서서히 바람이 들어가며 스크린이 섰습니다.
영화 하나 보여주러 뭐 저렇게 많은 이가 왔나 싶었는데
놀러온 게 아니더라니까요.
"어!"
"우와!"
우리는 한 번씩 창 앞으로 달려가 소리를 질렀지요.
탑차도 한 구경거리 했습니다.
의자며 그 안에서 쏟아져나온 짐들,
그리고 그것이 움직이는 무대가 되는 과정,
영화를 무지 사랑해서 도대체 일이 안 잡히더라며
김천서 일찌감치 건너온 정운오아빠의 서성거림도 바람잡이 역할을 톡톡히 해주었지요.
이슬비가 내리는 속에 동네 어르신들은 대문을 나서다 다시 들어가셨고
겨우 댓마에서 할머니 한 분 건너오셨으며
상주의 귀농이웃가족이 넘어왔고
그리고는 모다 우리식구들과 영화상영 뒷배들이었지요.
영동에서 상촌에서 온다던 이들은
야외무대라 하였으니 이 비에 취소됐다 생각했을 게 틀림없습니다.
노오란 비웃을 모두 입고 앉았고
영화가 깊어갈 때 따끈한 모과차와 함께 따스한 자주빛 모포도 나왔습니다.
마지막까지 보는 아이들이 놀랍습디다,
고학년들의 투덜거림이 나올 만도 하련만.
"너무 감동적이었어요."
가마솥방을 들어서며 아이들이 그랬지요.
어쩜 비 때문에 감동이 더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영화 밖에서도 영화 안에서도 비가 내리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우리는 더 깊이 영화가 그려주는 마지막의 진한 느낌을
이슬비에 젖어가는 옷처럼 마음에 적셨는지도...
젊은 할아버지는 아이들이 혹여 감기라도 들까
방에 불을 무지무지 지펴놓으셨더랍니다.

달골에선 문화연대 사람들의 평가가 늦도록 있었고
가마솥방에선 계자어른들의 갈무리가 이어졌네요.
어른모임을 마치고 1시께야 달골에 올라
오늘 행사에 대한 생각을 나누기도 하고
물꼬 이야기도 전했습니다(아, '씨네 21' 산하의 무가지 'Me'의 기자도 있었지요).
앞으로도 영화상영과 공연들을 함께 해보자 마음을 모았지요.
가난한 산골의 작은 학교가 또 귀한 연을 맺습니다.

이번 계자에는
풍물을 하는, 제도학교에 교사로 있는 선배의 아이와 그 이웃들도 왔습니다.
전라도 강진에서는
15년도 더 전에
대중조직운동단체에서 같이 활동했던 적이 있는 동료의 아이들도 왔지요.
세월이 흐르고 나이를 먹고 아이들이 자라
그 아이들을 통해 이렇게 서로가 만납니다.
사는 일이 고맙지요.

느꺼운 시간입니다.
지난해 섣달 지독하게도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적
겨울 계자에서 만난 아이들이 확 힘을 끌어올려주더니
다시 지독하게 슬펐던 봄을 보낸 이 즈음
이번 계자가 비로소 온 몸에 봄바람을 실어 주는구나 싶데요.
어디서 저 보물들은 이 지구상으로 온 걸까요...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
956 2006.5.26.쇠날. 가끔 해 구름에 가리우고 / 백두대간 15소구간 옥영경 2006-05-27 1745
955 2006.5.25.나무날. 해 숨기도 하고 옥영경 2006-05-27 1491
954 2006.5.24.물날.맑음 / 봄밤의 밤낚시 옥영경 2006-05-25 1567
953 2006.5.23.불날. 맑음 옥영경 2006-05-25 1358
952 2006.5.22.달날. 비 옥영경 2006-05-25 1386
951 2006.5.20-21. 흙-달날 / 밥알모임 옥영경 2006-05-25 1397
950 2006.5.19.쇠날 / 110 계자, 못다 한 갈무리 옥영경 2006-05-25 1395
949 2006.5.19.쇠날. 비 옥영경 2006-05-22 1503
948 2006.5.18.나무날. 맑음 옥영경 2006-05-22 1297
947 2006.5.17.물날. 맑음 옥영경 2006-05-19 1289
946 2006.5.16.불날. 맑음 옥영경 2006-05-19 1320
945 2006.5.15.달날. 맑음 옥영경 2006-05-17 1299
944 110 계자 닫는 날, 2006.5.14.해날. 갬 옥영경 2006-05-17 1554
943 110 계자 이튿날, 2006.5.13.흙날. 갬 옥영경 2006-05-14 1450
» 110 계자 첫날, 2006.5.12.쇠날. 비 옥영경 2006-05-13 1359
941 2006.5.11.나무날 / 110 계자 미리모임 옥영경 2006-05-13 1293
940 2006.5.11.나무날. 흐림 옥영경 2006-05-13 1266
939 2006.5.10.물날. 비 옥영경 2006-05-11 1157
938 2006.5.9.불날. 흐릿 옥영경 2006-05-11 1196
937 2006.5.8.달날. 흐림 옥영경 2006-05-11 1243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