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3.11-12.흙-해날. 맑음

조회 수 1228 추천 수 0 2006.03.14 13:21:00

2006.3.11-12.흙-해날. 맑음

달도 좋고 별도 좋은 짱짱한 날인데
눈싸라기 날리는 해날의 한밤입니다.

집이 먼 창욱이와 령이 나현이, 그리고 승찬이는 달골 햇발동에 머물고
마을 아이들 정민이 신기 종훈이 동희 류옥하다는 집으로 간 주말이지요.
물꼬 상설 3기가 이렇게 첫 주를 보냈습니다.
주말에 학교를 비우는 구조가 처음 만들어진 거지요.
물론 아이들은 학교 마당에 와서 놉니다,
집과 집들을 떠돌며 놀기도 하고.
신기네 닭장 짓는 일도 돕고
돌창 들고 단소를 칼 삼아 원시 부족싸움도 하고
팽이 시합에 구슬치기에 타잔놀이,
바람 따라 날리는 나뭇잎을 따라 밟기 놀이도 하고
것도 시시해지자 방으로들 들어가 경매놀이에
텔레비전 놀이도 했다지요.
광고도 방송하고 기자가 나와 뉴스도 전하고 드라마도 만들더니
큰엄마를 불러내 요리특강 프로그램도 방영했답니다.
책에 있는 그림을 옮기기도 하다
이제 말놀이를 했는데
모든 문장 끝에 '요'자 붙이기놀이였지요.
정민이는 '정만'이로
무대체질 정민이 동생 효민이는 '쇼만'이라 불리고
나현이는 '못생긴 나비'로
동희는 아기공룡 둘리의 '희동'이로
신기는 '정말 신기해'로
종훈이는 킹콩으로, 승찬이는 이승만으로 부르면서 말입니다.

본격적으로 농사철이 시작되기 전
집안 어르신들을 뵙고 온다 열택샘은 대구를 다녀왔고
식구들은 청소도 하고 쉬기도 하며 보냈다네요.
지금, 달빛 좇아 곽보원엄마네 마실을 다녀왔습니다.
지난 쇠날 산을 올랐다 느지막히 와서
부랴부랴 아궁이를 좇아갔는데,
젊은 할아버지도 같이 올랐던 터라 불씨가 없겠다 했지요,
어 웬걸요, 아궁이가 따닷한 겁니다,
식구 가운데는 누구도 불을 땐 이가 없다는데.
알고 보니 정운오아빠가 내려와 불을 지펴두었던 겁니다.
인사도 할 겸 곳감집에 올랐던 거지요.
떠난 이든 남은 이든 서로에게 이런 시간들이 있었을 것인데
상한 마음으로 그 아름다운 기억을 다 버렸구나 싶어 새삼 안타깝기도 하고,
함께 고생 하다 떠난 이들에게 고마움이 새록새록한 밤이더이다.
마을로 들어온 식구들(새 학부모들)의 오늘 같은 온정을
더 많이 기억 해야겠다 다짐한 밤이지요.

달마다 한 차례 있는 직지모임에 다녀왔지요.
방에서 밤을 꼴딱 새며 같이 공부한 목조건축에다
여러 사는 이야기들이 이어달리기를 하는 자리를 떠나
장작불 앞에서 큰 스님과 날이 밝도록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일본의 한 고승의 일화를 전하시데요.

결혼도 하지 않은 처자가 아이를 배자
그 부모가 기가 막혀 하며 아비가 누구냐 물었겠지요.
그 처자는 모든 이들로부터 존경받는 고승을 팔면
이 위기를 넘길까 하고
아비가 그 고승이라 하였답니다.
부모가 태어난 아이를 고승에게 던지며
마구 욕설을 퍼부었겠지요.
"아, 쏘오데스까"
그런가요, 할 뿐이더랍니다.
세월이 흘러 그 처자가 부모에게 사실을 고백했는데
그예 그 부모는 고승에게 달려가 사죄하며 아이를 받았더라지요.
"아, 쏘오데스까."
고승은 역시 '그렇습니까?' 하더라나요.

잡지 민들레랑 명예훼손 건으로 송사에 말릴 일을 앞두고
그게 정말 최선일까, 살자고 하는 일이 맞을까 깊이 생각하고 있는 제게
스님은 대뜸 그리 물으셨습니다.
"견딜 수 있겠습니까?"
가만히 있는 것이 가장 지름길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지름길이 맞다시는 거지요.
그런데 문제는 정작 당사자인 제가 그 어려운 길을 걸을 수 있겠느냐
묻고 계셨던 겁니다.
"그런데 스님, 저는 고승이 아니잖아요."
견딤이라...
무얼 견딜까요,
선의의 사람들이 물꼬의 삶을 지지하며 내 준 후원금을 갈취했다는데,
선한 사람들이 보태준 노동을 착취했다는데,
멀쩡한 아이가 이곳에서
동무들과 날카롭게 대립하고 다투고 시비를 가리는 아이로 바뀌었다는데,
필요할 때마다 대출을 했다는데,
수천만 원을 빚을 갚기를 바랐다는데...
그래도 나은 길이라면 또 그리 가야겠지요.
이번 주 물날 저녁의 공동체식구모임에서 제 마음이 어디로 흐르고 있는지,
시간이 지나며 식구들 마음은 또 어디로 흐르고 있는지,
가만히 그 시간을 기다립니다.
"한번 도전해보지요, 뭐."
스님은 일어서는 제 등에 그리 붙이셨지요.
큰 걸음으로 걸어가라는 말씀일 겝니다.
큰 보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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