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4.13.나무날. 안개비

조회 수 1127 추천 수 0 2006.04.15 09:41:00

2006.4.13.나무날. 안개비

아침부터 김점곤아빠와 열택샘이 안개비가 오락가락하는 속에
학교 마당에 흉물스럽던 폐콘을 치웠습니다.
아이들은 콩밭을 돌았지요.
열십자로 갈라지며 나오려는 자리들을 확인했답니다.
배움방 안에선 콩 종류들을 익히고
여러 콩들 사진도 들여다보며
자라는 과정을 전체적으로 익혔지요.
"아하!"
어느 지점에서 콩나물과 콩으로 나눠지는지도 더 확실하게 알았다네요.
하나씩 차례로 앞으로 나와 배움방공책을 같이 꼼꼼이 넘기는데,
령이가 이리 쓰고 있었습니다.
"콩나물이 짧은 게 10센티미터 정도여서도 좋고
제일 긴 게 25센티미터여서도 좋았다."
이래서도 좋고 저래서도 좋답니다.
좋자고 하면 다 좋은 거지요.
즐겁자 하면 다 즐거운 거지요.
행복하게 사는 길이겠습니다.

아이들이 오늘도 이어지는 봄비에 일을 못하나 했는데
김점곤아빠가 멋있게 표지판을 만들어오셨네요.
달골 가는 길에 세울 것과 마을 앞 삼거리에서 학교 들어오는 곳에 세울 것입니다.
아이들이 두 패로 나뉘어 아크릴로 색을 칠했지요.
엄마들은 놀이방에서 현수막을 만드는 일에 붙었습니다.
"물꼬가 십년을 그렇게 살았어요."
물꼬가 상설학교를 열기 전 계절학교를 하는 세월동안도
그렇게 품앗이일꾼들이 현수막을 만들었댔습니다.
상설학교를 열고는 그럴 짬이 없더니
궁한 살림이 우리 몸을 더 쓰게 하는 요즘이지요.

호숫가나무.
"나눔이 무엇입니까?"
그리 물었습니다.
누군들 모르나요.
그러나 정말 무엇인가 또 따져보는 거지요.
그리고 내가 가진 것에서 무엇을 나눠볼 수 있나를 살펴보는 겁니다.
"지금 나이가 마흔인 아저씨가 예순이 되어서 다른 사람을 도와주겠다는데,
꼭 그 나이가 되어야만 나눌 수 있을까요?"
"먼저 예순이었던 사람이 지금 마흔인 사람을 도와주고..."
놀라웠습니다.
아이들이 어느새 제도를 들먹이고 있었으니까요.
마흔인 사람이 지금 나누는 것도 중요하다,
허나 먼저 예순이었던 이가 그 마흔을 돕고
그 마흔은 예순이 되면 다른 마흔을 도우면 된답디다.
그리고 그걸 또 꼭 받은 이에게로 갚는 게 아니더라도
다른 누군가에게 주면 그게 나눔이라 하데요.

정운오아빠가 실어온 유기농사과와 참외를 먹으며
반상회처럼 두레상이 이어졌습니다.
"주말에 친정식구들이 와서 고기를 구워먹으며 아이들도 불렀는데,
답례로 노래하나 하랬더니 춘향가 한 대목을 부르더라구요.
그런데 어느 한 사람 까먹지 않고 다 하는 게 자랑스러웠어요."
곽보원엄마입니다.
함께 사는 따뜻함을 많이 느낄 수 있는 한 주였다는 달골 큰엄마의 얘기도 있었지요.
지난 주말 트럭 뒤에 타고 물고기 잡으러 간 아이들의 보고와
개구리들을 관찰한 얘기도 더해졌습니다.
역시 지난 주말의 발야구의 즐거움이 말로까지 이어졌지요.
"주말마다 합시다!"
여섯 살 아이에서부터 어른까지 죄 모여
다 같이 놀 수 있는 규칙을 만들었던 유쾌함이 이 시간까지도 이어진 겁니다.
나쁜 일이든 좋은 일이든 이리 꼬리를 물며 우리의 나날이 가고 있습니다.
지난 주에 나온 이야기들 점검도 있었지요.
자전거 주차대가 만들어졌으나 질퍽거린다 하니
아이들이 자갈을 깐다합니다.
모래놀이터를 더 높이면 어떻겠냐 아이들이 바라니
어른들은 모래를 퍼다 주겠다고 했지요.
대동놀이도 두레상도 마을식구들이 돌아가며 진행을 하는 게 어떠냐 해서
다음 두레상은 이은영엄마가, 다음 대동놀이는 정운오아빠가 맡았습니다.
"이번 해날 저녁 온 식구들 벚꽃 아래로 밤나들이 가자, 도시락 싸서."
짬을 내보자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의 대동놀이,
달리기에 닭싸움에 용을 썼지요.
"왜 이렇게 짧아요?."
"잘 밤에 너무 힘을 많이 썼잖아."

나날에 즐거움을 더하며 살아가는 일,
이 산골에서 우리들이 살아가려는 방식(?)이지요.
시간은 얼마나 큰 힘이던가요.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을 겪고도
이 산골 작은 공동체살이의 소박한 기쁨으로 기운을 돋우며 살아갑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sort 조회 수
916 2006.4.17.달날. 맑음 옥영경 2006-04-21 1162
915 2006.4.15-6.흙-해날. 밥알모임 옥영경 2006-04-18 1325
914 2006.4.15.흙날. 흐림 옥영경 2006-04-18 1271
» 2006.4.13.나무날. 안개비 옥영경 2006-04-15 1127
912 2006.4.14.쇠날. 맑음 옥영경 2006-04-15 1250
911 2006.4.12.물날. 맑음 옥영경 2006-04-15 1055
910 2006.4.11.불날. 저녁에 갠 비 옥영경 2006-04-15 1292
909 2006.4.10.달날. 비 옥영경 2006-04-11 1212
908 2006.4.9.해날. 밤, 그예 비 쏟아지다 옥영경 2006-04-11 1371
907 2006.4.8.흙날. 황사로 뒤덮인 옥영경 2006-04-10 1149
906 2006.4.7.쇠날. 맑음 옥영경 2006-04-10 1155
905 2006.4.6.나무날. 흐린 것도 아닌 것이 옥영경 2006-04-10 1292
904 2006.4.5.물날. 축축한 아침이더니 햇살 두터워지다 옥영경 2006-04-06 1566
903 2006.4.4.불날. 비 옥영경 2006-04-05 1152
902 2006.4.3.달날. 봄 햇살 옥영경 2006-04-04 1111
901 2006.4.2.해날. 구름이랑 해가 번갈아 옥영경 2006-04-04 1079
900 2006.3.31.쇠날.맑음 옥영경 2006-04-04 1046
899 2006.4.1.흙날. 비 옥영경 2006-04-04 1050
898 2006.3.30.나무날. 맑음 옥영경 2006-03-31 1137
897 2006.3.29.물날. 맑음 옥영경 2006-03-31 1134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