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4.15.흙날. 흐림

조회 수 1277 추천 수 0 2006.04.18 12:14:00

2006.4.15.흙날. 흐림

아침에 상문이 아저씨네 아줌마를 만났습니다.
"곁에 살아도 얼굴도 잘 못 봐. 한참만이죠?"
"좋은 데 올라가서 사니까 그렇지."
"어디요. 애들 마중 갔다 오는 길예요. 저는 고대로 사택에 사는데..."
"그럼 누구 좋으라고 저 좋은 집을 지었어?"
이렇게 나가야 얼굴이나 볼까,
학교 안에 있음 몇 주를 어른들 얼굴 한 차례 못 마주치고 산답니다.

아이들과 만들다만 귀틀집 하나 큰 마당가에 있었습니다.
지난해 여름 민건협 여름캠프에서 한 꼭지로 지붕을 이기도 했었지요.
허나 그 지붕 그만 내려앉아 다시 비며 눈이며 다 들어차고 있었는데
어제부터 정운오아빠가 지붕을 올렸습니다,
이곳 저곳 나무들 죄 끌어와.
하자 하면 하는 그가 놀랍습니다.
거기에 김상철아빠 김정희엄마 홍정희엄마 김호성아빠가
짚으로 이엉을 엮고 계셨지요.
맨 꼭대기에 항아리를 엎어 마무리를 하였답니다.
학교 본관 건물 지붕 쪽 페인트칠도 하였습니다,
희정샘이랑 이광열아빠 이은영엄마 김점곤아빠가 함께.
나현이도 한 몫 합니다.
대문에선 정운오아빠가 간판자리를 용접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이 모이고 일이 되어가는 양에 입이 절로 벌어지지요.
돈이 있어야 일이 되는 시대에
돈 없이도 이루어지는 기적을 날마다 체험하며 사는 이곳입니다.

아침부터 여러 어르신 몇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산사모임을 같이 하는 어른들이 모이는 인터넷 안의 방에다
두 돌잔치 소식을 전했지요.
시끄러운 일을 겪고 있어 민망하기 한없으나
그 일은 그 일이고 사는 일은 또 사는 일 아니겠냐며
그간 도와주신 여러 마음들에 먼 후일이 되기 전 고마움도 전하고
작은 잔치에 모시고픈 마음도 담아 글을 하나 엊저녁 올렸더라지요.
어려운 시간에 대해 따뜻한 격려들을 해오셨습니다.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했으니 '학연'이 있을 리 없고
한 곳에 오래 살아보지 못했으니 '지연'도 약하고
집안이 대수롭지 않으니 '혈연'이 힘일 리도 없는 이가
이래서 또 살아지나 봅디다.

품앗이였다가 이제는 논두렁이 된 후배 정창원님이 다녀갔습니다.
"너같이 게으른 녀석이 예 올려면 잠깨나 설쳤겠는데..."
경부선을 타고 지난다지만
이 골짝 들어왔다 나가려면 것도 참 일이지요.
어수선한 시간들에
문득 찾아가 힘이나 돋우자 하였던가 봅니다.
여러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든 힘을 보태주고파들 합니다.
고맙습니다.

오후엔 문건을 하나 붙들고 있었습니다.
물꼬에 여러모로 마음을 써주었던 이가 부탁한 것입니다.
물꼬의 나날이 얼마나 빠듯한지 알면서
요새 한 잡지사와의 문제로 번거로운 줄도 알면서
그래도 여기 밖에 해줄 데가 없어 부탁하였을 그 마음을 잘 알기에
기쁘고 즐거웠습니다,
우리도 논두렁의 한 분께 할 수 있는 일이 있습디다.

달골 현장소장님이 가방 하나 달랑 가지고 오시더니
또 그 가방 하나 실어 가십니다.
가방 하나의 무게로 살아야지 하는 우리네 삶을 그대로 보여주셨고,
시끄러웠던 물꼬의 시간에 고스란히 함께 하셔서
지혜를 나눠주셨더이다.
여름을 끝에 달고 오셨다가 봄이 한창인 때 떠나시네요.
건축주가 하나도 마음 쓰이지 않게
어쩜 그리 야물게 구석구석 일을 해주셨던 지요.
좋은 건축업주를 만난 것만큼이나 소장님 또한 물꼬의 큰 복이었습니다.
그간 정말 정말 애쓰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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