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2.2.나무날. 맑음

조회 수 1021 추천 수 0 2006.02.06 17:17:00

2006.2.2.나무날. 맑음

민건협에서 다녀갔습니다.
달골 아이들집과 강당을 설계했고,
지난 여름엔
뒤란 우물이며 고래방 그림자벽화,
소나무아래 토토로집이며 닭장을 지어주었더라지요.
공사 진행을 확인하고 몇 곳 촬영을 위해 오셨더랍니다.
집 짓는 이들이 최대한 설계자와 건축주의 생각을 잘 반영하려 애쓴 흔적들을 훑으며
서로 공사업자 선정을 잘했노라 했지요.
정의훈 부장님이랑 이승삼 현장소장님이 애 많이 쓰셨더랍니다.

저녁이 되자 바람이 아주 매워졌습니다.
한동안 추워질 모양입니다.
닭장으로 가는 작은 깔끄막에서 그만 미끄러져
얼굴은 긁히고 안경은 찌그러졌지요,
어깨를 쓰지 않으려 애쓴 게 더 험한 꼴이 되어버렸습니다.
우리 생에도 얼마나 많은 언덕배기가 있었을 지요.
더러 미끄러지는 날도 있었을 겝니다.
자신의 부주의기도 하겠고 물기 많은 땅 조건 때문이거나
누군가 등을 떠밀어 그렇게도 되었겠지요.
다른 길이 있다면 돌아서 갈 수도 있을 것이고
그 길 밖에 길이 없을 땐 그예 그 언덕으로 갈 겝니다.
다만 어떻게든 나날이 '살아가'는 거지요,
'먹고 사는 일의 엄중함'(공선옥의 글에서)으로.
'감사합니다, 이 아름다운 새해를 제게 주셔서,
이 아름다운 날을 눈 뜨고 깨어있게 해주셔서...'

이 정화의 날들에 함께 하기에
<크래쉬>(2004년, 폴 해기스 감독)는 모자라지 않은 영화라지요.
다양한 국가와 그에 못잖은 여러 가지 피부색깔의 사람들이 모여 사는 LA를 배경으로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서로 얽히며 보내는 36시간동안의 이야기입니다.
누구는 '묘하게 화해를 그린' 영화라고도 하데요.
<모래와 안개의 집> <몬스터 볼> <21그램>처럼
인종 계급적으로 서로 다른 미국인 사이의 관계에 대한 영화라 하지만
서로 다른 존재들 사이의 관계에 관한 훌륭한 영화라는 표현이 더 맞을 겁니다.
물론 중국으로 통칭되는(사실은 한국인이었다!) 아시안에 대한 묘한 비하,
절대 일본인으로 보이게는 않는 배려(?)로 심기가 불편하지만
영화가 주는 메시지에 견주면 못 봐줄 것도 없지요.
어떤 이는 미국영화 역사상 가장 터프한 대사들로 가득한 영화라고 꼽길 주저치 않았고
감독 스스로는 이 영화가 인종문제라기보다
9.11사태 이후 '타자와의 접촉'에 대해 신경증과 불신의 골이 깊어진
미국사회에 대한 이야기라 했습니다.
범죄자도 아닌데 흑인 부부의 차를 세우고

남편이 보는 앞에서 아내한테 성희롱하는 나이든 경관
(관객은 정말 참을 수 없이 분노가 일지요).
그 일을 목격한 그의 젊은 파트너는 기어이 짝을 바꿔 달라 상관에게 요구합니다.
그런데 바로 그 나이든 경관이 앞의 흑인 아내를 사고 난 차에서 구해냅니다.
"너는 안돼!"
소리치는 여자를 설득해내고
그 여자의 허벅지가 드러난 치마를 끌어내려주면서 말입니다,
치마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던 파렴치한 이.
젊은 경관은 여전히 정의롭습니다,
분노한 흑인 남편을 신뢰로서 위기에서 구하기도 하며.
그런데 한 시간을 넘게 길에서 차를 얻어 타려했으나
끝내 타지 못한 흑인 청년을 태워주는데,
그만 실수로 쏘게 되지요.
시체는 언덕 아래로 던져지고 차는 불태워집니다.
"세상을 다 아는 것 같지? 그래 어디 살아봐!"
나이든 경관이 젊은 경관이랑 짝이 바뀌었들 때 비아냥거리던 대사가 이러했던가요.

누군들 착하게 살고 싶지 않을까요.
그러나 세상은, 정황이 우리를 슬프게 하는 거지요.
분노가 솟구치게 만들었던 그니는
한편 정의를 구현하는 이가 되기도 하고
건강한 한 젊은이는 범죄자가 됩니다.
누가 선인이고 누가 악인일 수 있을까요.
또한 악인이었던 그에게는 악인일 수밖에 없었던 배경이 깔려있었지요.
우리가, 이 하찮은 우리 존재가 도대체 무어라 말을 할 수 있을 지요...
두어 군데 번역이 조금 거슬리기도 하고
정작 우리말이 안 되네 싶어 슬쩍 이는 짜증도
그만 그 영화가 전해주는 선물 앞에선 아무것도 아니게 됩니다.
세상은 이제 이해되기 시작하며
인간에 대한 깊은 분노 역시 슬금슬금 꼬리를 감춰주려 하지요.
아,
영화의 정말이지 아름다운 한 장면,
다섯 살 딸아이를 둔 멋진 아버지가 나옵니다.
요정에게 선물 받은(다른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걸고 있으면 총알이 피해가는 목도리를 아이에게 선물하지요.
훗날 아이가 자라 아이가 생기고 그 아이 자라 다섯 살이 될 때
그 목걸이를 전해주라 합니다.
정말루요, 아이는 총에 맞았는데 상처 하나 없어요, 살았어요!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
896 2006.3.28.불날. 눈발 옥영경 2006-03-31 1151
895 2006.3.27.달날. 맑음 옥영경 2006-03-31 1062
894 2006.3.26.해날. 맑음 옥영경 2006-03-31 1030
893 2006.3.24-5.쇠-흙날. 맑음. 떼 뜨러 가다 옥영경 2006-03-27 1470
892 2006.3.23.쇠날. 맑음 옥영경 2006-03-27 1124
891 2006.3.23.나무날. 맑음 / '두레상' 옥영경 2006-03-27 1222
890 2006.3.22.물날. 황사 옥영경 2006-03-24 1049
889 2006.3.21.불날. 맑음 옥영경 2006-03-24 1095
888 2006.3.20.달날. 맑음 옥영경 2006-03-23 1042
887 2006.3.18-9.흙-해날. 3기 첫 밥알모임 옥영경 2006-03-23 1039
886 2006.3.17.쇠날. 맑음 / 으아악, 쇠날! 옥영경 2006-03-23 1201
885 2006.3.16.나무날. 눈 옥영경 2006-03-17 1146
884 2006.3.15.물날. 맑음 옥영경 2006-03-17 927
883 2006.3.14.불날. 천지에 눈 쌓인 맑은 아침 옥영경 2006-03-17 1141
882 2006.3.13.달날. 눈보라 사이 햇살이 오다가다 옥영경 2006-03-14 1028
881 2006.3.11-12.흙-해날. 맑음 옥영경 2006-03-14 1228
880 2006.3.10.쇠날.맑음 / 삼도봉 안부-화주봉(1,207m)-우두령 옥영경 2006-03-11 1250
879 2006.3.9.나무날. 흐릿 / 조릿대집 집들이 옥영경 2006-03-11 1270
878 2006.3.8.물날. 맑음. 옥영경 2006-03-09 1026
877 2006.3.7.불날. 맑음 / 대해리 산불 옥영경 2006-03-09 1181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