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2.3.쇠날. 맑음. 들살이 첫날

조회 수 1014 추천 수 0 2006.02.06 17:18:00

2006.2.3.쇠날. 맑음. 들살이 첫날

<2006학년도 입학을 위한 가족들살이, 첫날>

바람이 아주 고약해졌습니다.
공동체식구들이 긴 설 나들이를 마치고 돌아왔고,
빠르게 발걸음이 오갑니다.
'2006학년도 입학을 위한 가족들살이' 첫날이지요.
일곱 가정이 입학과정의 마지막 고개를 넘고 있습니다.
('식구들살이'라 일컫지 않음은 아직 남아있는 고개가 있기 때문이었지요.
다시 풀자면 아직까지는 '가족'단위로 만나는 거란 뜻이겠습니다.)

우리는 흔히 자신이 듣고 싶은 얘기만 듣는 오류를 범하지요.
"언제 그런 말을 했어?"
시간이 흐른 후 더러 하게 되는 말입니다.
귀를 튀고 있어야 하는 시간이어야 할 것입니다.
"장밋빛 환상을 심어선 안돼."
물꼬가 가진, 물꼬가 살아가고자 하는 생에 대한 확신과 전망을
그 환상과 혼동하는 이들도 보았던 터입니다.
진실을 알아들을 수 있도록 잘 말하여야 할 테지요.
물꼬는 아이들 능력의 총량을 ('절대'를 붙일까 말까 고민함)키워줄 수 없습니다.
네, 물꼬는 못합니다.
그러니 우리 아이 잘난 걸 목표로 삼은 이는 그런 훈련이 필요한 곳에 가야지,
아이들을 '성공'의 길로 인도할 수 없는 물꼬에 보내서는 안됩니다.
(물론 이때의 성공은 중심화 된 이 세상의 흔한 논리지요.
물꼬는 물꼬식의 성공은 거둘 수 있겠지요.)
하지만 물꼬의 아이들은 자라 무수한 삶의 틈새처럼 직업의 틈새에서,
그 이름이 뭔지는 지금 몰라도,
자기 식의 자리를 얻고 살아갈 겝니다, 유쾌하게.
"저도 아이 하나를 키우고 있지요.
세 살부터 버스 기사가 된다 해요.
누가 대학을 가라고 했나, 일곱 살 때 어느 날 자기는 대학을 안갈 거랍디다.
어쨌든 아홉 살이 된 지금도 등산을 즐기는 버스 기사가 될 거랍니다."
언젠가 바뀌거나,
아님 버스 기사가 되겠지요.
뭐라도 되겠지요.
다만 스스로의 생에 자긍심을 가지고 평화롭게 살아가도록 돕는 일,
그게 겨우 물꼬가 줄 수 있는 교육목표점입니다.
그 삶이 다른 존재에게 어떤 의미일까,
어떤 관계망을 구축할까는 이곳에서의 정진의 세월이 보탬이 될 테지요.

누구는 물꼬의 이념이 좋아서 왔다데요.
'스스로를 살려
섬기고 나누는 소박한 삶
그리고
저 광활한 우주로 솟구쳐 오르는 나'
그런데 그 이념에 스스로 치여 나갔어요, 실망해서.
좋은 말 뭐라고 내걸진 못하나요.
이념을 받치는 건 나날이 일상을 살아내는 일이지요.
그 일이 힘들어 떠난다면 역시 그 이념도 떠날 수밖에요.
선생을 믿기 때문에 보낸다고도 했지요.
그런데 들어왔던 까닭이었던
바로 그 선생을 이제는 믿을 수 없어 떠난다고도 했습니다.
예,
가족들살이를 하고 있는 우리에게 남은 일은 두 가지겠습니다.
하나는 진짜로 여전히 내가 아이에게 무엇을 원하는가,
나아가 내가 어떻게 살기를 바라는가를 더욱 투명하게 들여다보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들의 이상을 구현해내는 그 일상의 일들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 이겠지요.

"글로도 썼고 면담도 했는데..."
왜 물꼬 학교식구(밥알)가 되려는가를 다시 물으며 '마주보기'를 하였습니다.
갈무리 자리에서 열택샘이 했던 얘기가 무척 기억에 남네요.
"초발심! 큰 마음을 내서, 큰 뜻을 내는 거니까 얼마나 에너지가 집중될까,
그런데 이 사람이 참 간사해서 또 하다보면 생각이 바뀌기도 하고...
나아가 자기 마음의 진위와는 상관없이
어떤 관성으로 엉뚱하게 다른 곳으로 그 강한 에너지가 힘을 발하며..."
좋은 열정의 시작이 관계 사이에서 어떻게 갈등을 만들어냈고
또 그것이 어떻게 뻗어 갔는가, 혹은 뻗어 갈 수 있는가에 대한 슬픈 통찰이겠습니다.
사흘의 들살이가 우리를 성장시키는 한 순간이 되길 깊이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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