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2.12.해날. 맑음 / 답 메일

조회 수 1364 추천 수 0 2006.02.13 12:44:00

2006.2.12.해날. 맑음

학교로 돌아왔습니다.
서울 나들이갔던 상범샘네도 들어왔지요.
어제부터 와 있던 품앗이 승현이삼촌에다
출장길에 들린 논두렁 박주훈님도 같이 저녁밥상에 앉았습니다.
"아이구, 이제 사람 사는 곳 같네."
희정샘네에서 온 부추김치에
류옥하다 외할머니 싸 보낸 오곡찰밥과 김밥, 나물이 놓였지요.
"학교로 들어오는데, 민들레에서 전화를 두 번이나 했데요. 빨리 보고 답변을 해달라고..."
"나도 어제 봤다."
"무슨 일 있어요?"
영문 모르는 사람들이 물어왔지요.
"일고의 가치도 없더만..."
메일을 읽은 상범샘이 말합니다.
"출력해서 다들 보여 주지?"
프린트를 해와 잡지사에서 보내온 메일을 모두 읽게 되었지요.
"제대로 취재를 하던가, 이게 뭐야?
개교하는 날을 축하해주길 했어, 우리 소리에 귀를 기울이길 했어?"
"이미 균형을 잃고 있는 듯하네요."
돌려 읽고는 어처구니 없어들 합니다.
"진짜 화 나죠? 정말 왜 그냐?"
열택샘은 겨울 계자동안 우리들을 웃음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그 유행어로
기가 차서 웃고 맙니다.
"이건 고스란히 자신의 미성숙을 드러내는 거지..."
"더한 일이 벌어졌어도 2년 동안 애 키워주어 고맙다 해야는 거 아냐?"
"다른 가정은 몰라도 이 가정이 그러면 안 되지."
"긴 말 할 것 없어요."
"이러지 말자, 이건 같이 진흙탕을 만드는 거야."
하기야 우리끼리 무슨 말을 못하겠는 지요.
"다른 가정은 몰라도 이 가정이 가장 혜택 받은 거 아니냐?
이거, 13번 말야, 뭐? 이런 데도 2년 동안 아이를 보냈다? 그 엄마가?"
희정샘도 열이 잔뜩 났습니다.
"맞벌이부부에게 너무 과중한? 그래서 한 게 뭔데?
1년 반은 학교를 설득하면서 지냈고 이제 더는 안 되니까 결국 나가놓고."
그러나 정작 환장할 노릇은, 그가 적어도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만약 그렇다면 정말 나쁜 사람이겠지요.
그는 무상교육이며에 그렇게 이해했고, 그에게는 그게 진실이었으며,
그래서 물꼬를 떠났을 겝니다.

그러는 사이 잡지사에선 전화가 두 차례나 더 왔습니다.
"오늘 답변을 주는 거랑 내일 주는 거랑 뭐가 다르죠?"
전화를 받은 상범샘 얼굴에 짜증이 뱁니다.
결국 마감 시간 때문이라는 답을 얻지요.
"무슨 오해요?
전화 받고 이미 한 달 동안 정리 다해놓고 우리에겐 왜 이제야 묻습니까?"
그 밥에 그 나물인 거지요.
"야, 이거 인제 민들레랑 물꼬 싸움이 되는 거야?"
재밌겠습니다.
그런 잡지를 운영하자면 어렵겠지요,
진실을 가리는 혜안도 있어야겠고.
"인터뷰는 안 돼. 결국 자기들 식으로 정리할 거니까."
한마디를 하더라도 글로 주자고들 합니다.
도로 물어야 한다는 주장도 하지요.
"당신이 생각하는 기초학습이 뭐냐?"
"중산층 이상이라? 그런데 왜 가장 가난한 가정이 남았지?"
"재정 공개? 지난 12월에 나온 얘기?
아니 이 글대로라면 이미 지난 2년 동안 그런 얘기 했다는 거 아냐?"
"부모 참여의무가 과다해? 다른 학교에 대해서는 좀 아시는지?"
(물꼬는 이번 신입가정들에게 그런 것 좀 알아오라는 숙제를 다 내게 되었더랍니다)
"계절학교를 해서 돈이 충분하다?"
서울에서 댓 평짜리 사무실 한 해만 꾸리며 살아보라지요.
10년 동안 우리는 살아남았고,
그렇게 꿈을 이루었으며,
그 세월 아이들을 줄기차게 만나며 훈련받았고,
이 땅의 많은 교육적 과정이 얼마나 허위인지를 확인하고 필요 없는 걸 버리며 보냈으며,
그래서 이 산골에서 삶에 대한 다른 전망과 확신을 가지고
불 때고 농사지으며 이리 살 수 있었더이다!

찬찬히 다시 읽어봅니다.
아하, 그래요, 소통에는 우리 분명 실패했습니다!
그건 이미 '물꼬에선 요새'에서도 여러 차례 밝힌바 있지요, 새삼스러울 것도 없이.
'무엇보다 아쉬운 건 학교에서 내 아이가 어떻게 보내는지, 내 아이의 재능이 무엇이고 보완점이 무엇인지 내가 알 수가 없다는 점이다. 간단한 문구만 올 뿐이었다.'
"에라이, 나쁜 사람아..."
그러게요,
우리가 밥을 먹으며 날밤을 새며 했던 아이들에 대한 수다는 다 뭐지요?
아이들을 다른 학교에도 보내봤을 텐데, 이곳만큼 아이들 얘기를 전해 들었다구요?
"그 부모한테 물꼬를 나가서 아이 어디 보냈나 물어보라 그러지?
그리고 사립학교 셋 보내는
그 반에 반에 반만치라도 긴장하며 도리를 하며 물꼬에 아이 보냈나 물어보지?
부모 룰루랄라 하라고 물꼬가 애들 데리고 그 고생을 했어?"
말이야 산더미지요.
화가 끝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랍니까.
도대체 본질은 무엇일까요?
그 부모는 왜 그런 전화를 했을까요?
좋은 길을 찾아갔으면 잘 살면 되지 않을 지요.
그래도 함께 애쓴 세월이었는데 꼭 이런 식이어야 하는 걸까요?
그렇다면 그간 물꼬에 얼굴도 비치지 않던 민들레는
왜 기를 쓰고 이 글을 실으려고 하지요?
대안교육의 진실에 근접하려고?
(산골공동체배움터 물꼬가 언제 대안교육이라 말한 적 있던가요,
말하기 좋아하는 이들이 어느 날 붙여준 거지요)
그렇다면 그 부모들한테 귀기울인만큼 물꼬를 이해하려고 애써야 할 겝니다.
최소한 그런 잡지라면 조율과 조정의 기능을 해야 할 테니까요.
균형 말입니다.
자, 그렇다면 물꼬는 왜 화가 났지요?
2년 동안 부모가 마음 놓고 둘이나(첨엔 셋) 맡긴 아이 애써서 잘 키워놓고
이런 댓가를 받는 건 너무 형편없으니까요.
아이구, 할말이 없습니다요.

결국 이런 편지를 보내게 되었지요,
2년동안 아이들 정말 사랑했다는 말에 그것만큼은 인정하노라던,
떠나며 김준호아빠가 남겨준 마지막 인사를 진심이라 믿고 싶어 하면서.

-------------

민들레 조영은님께.

좋은 일로 만났더라면...
깊이 안타깝습니다.

평화에 이르는 길은 역시 평화여야 한다,
평화는 과정이라는 생각을 많이 하던 지난해였습니다.
과정 안에서 그리 걷지 못했던 우리들의 미성숙에 부끄럽습니다.
그대에게가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 우리의 그늘이 되어준 이들에게,
그 누구보다 우리 아이들에게.

보내주신 글 읽었지요.
이건, 진흙탕입니다.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 정말이지 할 말이 없습니다."
저희 식구들이 그대 글에 대해 한 대답이라지요.
부모들은 물꼬에 원하는 게 있어 왔고,
그게 없어서 떠났습니다,
더구나 아이들과의 문제도 아니고.
그대의 질문에는 문제의 본질이 들어있지 않았습니다.

아이들 방에 땔 나무를 비탈길에서 져오던 학교 아저씨,
부엌에서 아이들의 건강과 씨름하던 가마솥방샘,
없는 살림을 꾸려나간 교무행정서무샘,
고단한 농사일 틈틈이 아이들과 온몸으로 뒹굴던 농사샘,
제 모자람으로
저희 공동체 식구들의 아이들을 위한 고생과 노력, 훌륭함까지 보람 없이 만들어,
'뼈'가 아픕니다.
무엇보다 품앗이일꾼(자원봉사자)과 논두렁(후원회원)들의 손발공양을
무색하게 만들어 한없이 죄송합니다.

우리는 이 산골에서 '먹고 사는 일의 엄중함'(공선옥님의 글에서)으로
나날이 살아갈 뿐입니다.

새해,
그대에게도 푹한 날 많으소서.

2006년 2월 12일 해날
자유학교 물꼬 옥영경 드림


외려 고마울 일입니다.
가슴 밑바닥에 자갈들이 서걱거리던 시간은
우리를 영적으로 성장시켰을 것입니다.
물꼬에서 하는 배움도 더욱 명백해졌지요.
적어도 나간 부모들도 이것에 시비 걸지는 못할 것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물꼬는 정말 피터지게 싸우려들지도 모르겠네요.
"아이들을 하늘처럼 섬기겠습니다,
우리는 덜 가르칠 것입니다,
다만 그네들이 올곧은 길을 가도록,
자신의 삶의 길을 찾도록,
자긍심을 가지고 살아나가도록 도울 것입니다."
학문을 닦는 것 못지않게 일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렇게 농사짓고 일하면서 사람 도리하고 살고저 해왔고,
그리 살아갈 것입니다.
학교 이념을 아주 천천히 읊어봅니다, 처음처럼.
"스스로를 살려
섬기고 나누는 소박한 삶
그리고
저 광활한 우주로 솟구쳐 오르는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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