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2.13.달날. 죙일 맑다 야삼경에 비 / 잠시 지난 두 해를 거슬러 오르다

새벽 2시를 기다린 비가 그예 후두둑거립니다.
마지막 겨울비쯤 되려나요.

공동체와 학교의 2006학년도(2006.3-2007.2) 한해살이를 결정하고
농사규모를 잡았습니다.
농사부에서 버섯을 좀 해보자며 그간 이런 저런 준비를 해왔는데
초기비용이 아무래도 부담입니다.
지금 이곳의 살림은 어떤 재정이든 목돈을 쓰기가 어려우니까요.
달골 아이들집으로 쏟아진 모든 힘이
적어도 한 해는 물꼬살림의 운신의 폭을 어렵게 할 듯합니다.
상범샘이 표고목 500주라도 할 수 있겠는지 재정을 다시 검토해보겠다 했습니다.
오는 '밥알 새 식구모임'에서 나눌 얘기도 정리를 좀 해봅니다.
며칠 전 잡지 민들레에서 온 메일에야 대응할 가치가 없다고 판단했더라도
새로운 식구들에겐 우리가 대답을 공유해야 한다며
조목조목 따져가며 문항을 다시 보았습니다,
우리 식구가 되려는 이들에게야 우리는 우리를 제대로 알려야 할 기회가 있어야겠다고,
이 산골서 같이 고생할 그들, 그들인 우리, 우리인 그들.

- '무엇보다 아쉬운 건 학교에서 내 아이가 어떻게 보내는지, 내 아이의 재능이 무엇이고
보완점이 무엇인지 내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간단한 문구만 올 뿐이었다.'는 부모님 생각
에 대한 의견은?
"아직도 왜 이렇게 화가 나냐?"
"그 엄마도 알고 있을 거예요, 자기 아이가 재능이 뭔지, 보완점이 뭔지.
늘 엄마들이 그랬어요, 이렇게 아이들 얘기를 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
"아냐, 이 말이 맞을 거야. 부모들은 못 들었어, 수없이 얘기 했어도 내 아이에 대해 듣고
싶은 말만을 듣기 때문에, 그런 말은 해주지 않으니까."

이렇게 짚으며 지겹다고, 이제 좀 고만하자고 하면서도
힘없는 이 식구들은 이렇게 마음을 풀고 있었습니다.
"야, 희정샘이 인터뷰를 할 걸 그랬다!"
유쾌하게들 웃으며 말입니다.

2006학년도엔 새로운 구조로 들어갑니다.
"그럼 부모들이 와 있으니까 아이들이 주말은 집에 가서 지내는 거야?"
"그거 좋겠네."
"야, 그러면 우리 주 5일 근무 되는 거야?"
"농사꾼이 주 5일이 어딨어?"
"흙날에 아이들이 뭘 배우러 나가거나 일이 있더라도 집에서 등교하면 되지."
"학교도 힘을 덜고!"
"부모들도 더 좋아할 걸요."
그간은 공부하고 먹고 자고 노는 모든 걸 학교에서 했거든요.
지난 두 해, 참 열심히 살았습니다.
"2004년엔 너무 끔찍했어. 주 7일 근무 24시간 근무였잖아. 미쳤지.
한 해 한 주 동안의 휴가 단 두 차례.
방학? 계자하며 다 보냈지."
너들 좋아서 그렇게 살았다 말한다면 정말 나쁘지요.
넘의 애들 데리고 살면서 긴장했고,
첫해였으므로 우리도 몰랐던 게 많았겠지요.
밥알들은 밥알들대로 학교 문 여는 날 잔치며 김장이며 모내기며 포도농사며
듣도 보도 못한 큰 일들을 해냈고
열택샘은 죽으라고 농사지었으며
희정샘은 죽으라고 밥을 했고
상범샘은 샘대로 씨름을 하며
저는 저대로 아이들을 데리고 자는 일까지 하는 가운데
(아이들 작은 기침에, 해우소 가는 문 소리에 하룻밤 두어 차례 깨는 건 기본이었지요)
우리는 지쳐가고 있었습니다, 보육과 교육을 동시에 하며.
아, 그 해 주마다 해날은 죙일 학교식구들 밥을 제가 했었군요.
나날을 살아가는 건 그런 거고
훌륭한 이념을 지탱하는 건 그 나날의 삶인 게지요.

2004년 첫 해, 아이들과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 그랬습니다.
놀고 먹고 우리들이 여태 살아왔던 방식을 털어내면서
이곳에서 만들 새 삶의 방식을 넣기 위한 준비를 하겠다 그랬지요.
아무렴 어디 놀기만 했을 라구요.
진리를 탐구해나가는 즐거운 길이었더라지요.
그런데 실제 사는 일이 너무나 힘겨웠던 공동체식구들은
그게 자칫 서로에 대한 미움으로 발전하는 것에 속수무책이었더랍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우리를 멈추게 하고 끊임없이 화해시켰지요.
워낙 과묵하고 흔들리지 않는 모습으로 사신 젊은 할아버지가
그땐 우리 식구들의 큰 축이기도 하였습니다, 지금도 그러하지만.
애들 데리고 살면서 우리식의 문화를 만들고
일하며 배우고 익히며 아이들과 얼마나 흥겨웠던 지요.
그것이 미는 힘으로 그 해를 살았더랍니다.
그땐 밥알들의 큰 지지도 있었지요.
끊임없이 변화된 아이들에 대해 침이 마르도록 얘기했고,
차츰 이 공동체 안에서 뛰어가는 아이들에 비해
이 곳 삶과 동떨어진 밥알들의 느린 발걸음이 초조함을 부르기도 했더이다.

쓰고 있으니 두 해 물꼬 삶을 돌아보는 글이 되고 있네요.
2005학년도가 왔지요.
차츰 들어왔던 마음과 머무는 마음이 벌어지기 시작했을 게고
시작했던 마음과 실제 살아가는 마음이 벌어지기도 했겠지요,
일찍이 어르신들이 갈 때 맘 다르고 올 때 맘 다른 거라고 하던.
고백하자면, 에미 애비 멀쩡히 있는 아이들을 데리고
뭐 하러 이 짓을 하고 있는 건가 수시로 되묻기도 했지만
그래도 물꼬에겐 그 아이들이 이 우주의 대표성을 가진 아이였기에
(우리가 만나는 아이는 어떤 아이여도 되기에)
우리 작업의 의미를 새길 수 있었을 겝니다.
차츰 밥알 1기의 태생적 한계(멀리서 아이를 보내는)가 심각하게 드러나는데,
게다 식구 둘을 연구년을 주어 공부를 내보내면서
밥알들한테 부엌일을 맡아 달라 부탁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현실적으로 그게 너무 큰 부담이었다는 겁니다.
삶의 터전은 다른 곳인데 예 와서 뚝 잘라 한 주를 살면 그는 또 얼마나 힘들 지요.
게다 부엌일을 하는 이와 하지 않는 이 사이의 갈등을 그들끼리가 아니라
물꼬가 설득해내면서 화살도 물꼬가 받게 됩니다
(누군가 미움을 받아줄 대상이 인간은 늘 있어야 한다?).
그러는 가운데 물꼬로서도 이제 길을 분명히 하고 있었지요.
"지역중심! 먼 곳에서 오는 건 이미 반 생태적 행위다!"
밥알들에게 아이들이 없는 상태의 학교는 우리 학교가 아니라 넘의 학교인 걸 보며,
"방학 때는 애들 없으니까...",
삶터를 같이 하지 않는 부모들과 공동체성을 갖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깨달아갑니다
(학교가 존재하고 있어야 아이도 그 학교를 다닐 텐데 말입니다).
그렇게 시작했던 2005학년도는
부엌을 중심으로 만들어내는 얘기들이 문제를 일으키기도 합니다.
"그래도 나라도 있었으면 조심스러움이라도 있었을 텐데,
엄마들끼리 있는 얘기 없는 얘기 하면서..."
희정샘 말대로 그래요, 그랬을 지도 모르지요.
어쨌든 그 시기부터 논쟁거리는 문제의 본질을 잡지 못하고 감정에 휘말립니다.
급기야 언성이 오르내리기도 하며 9월 네 학부모가 아이들을 데려가게 되었지요.
워낙에 초등학교만 보내려했던 가정(이건 사실 입학 결격 사유지요)이 있었는가 하면,
아이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게 부모랑 학교가 달랐던 가정,
바깥에서 하는 것 다 하고 여기서 하는 것까지 안아가려는 과도한 욕심(역시 결격사유),
공동체에 대한 대단한 환상으로 와서 가지게 된 실망,
그리고 교사를 믿을 수 없어 나간다며 갔습니다.
나가면서 한 아버지가 그랬다지요,
엄마들 학교에 자주 오게 하면 안 된다고.
"학교가 밥알들을 아무 일없이 불렀나요,
가르치느라 사느라 바쁜 이곳, 정녕 학교를 함께 짊어질 마음이 아니었던가요,
그럴수록 더욱 밥알들을 학교에 와서 이 가뿐 일상을 보게 해야 한다 생각합니다."
상범샘이 답변했다지요.

어이했든 희망의 2006학년도입니다.
공동체식구들이 숨통을 트게 생겼습니다.
남아서 고생하는 식구들 때문에 공식출장이어도 마음이 불편해하며 나갔더랍니다.
이제 교사도 내용 좀 채우고
애들 무슨 일 생기잖을까 걱정 없이 나가고,
피로를 달고 살지 않게 푸욱 쉬어줄 수도 있고
집안 대소사에도 얼굴 비치고
좋은 이웃들 놀러도 오라 그러고...
다른 건 몰라도 여전히 아이들과는 행복한 나날일 것입니다.
그렇지 아니한 때는 없었으니까요.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
896 2006.3.28.불날. 눈발 옥영경 2006-03-31 1149
895 2006.3.27.달날. 맑음 옥영경 2006-03-31 1062
894 2006.3.26.해날. 맑음 옥영경 2006-03-31 1030
893 2006.3.24-5.쇠-흙날. 맑음. 떼 뜨러 가다 옥영경 2006-03-27 1468
892 2006.3.23.쇠날. 맑음 옥영경 2006-03-27 1124
891 2006.3.23.나무날. 맑음 / '두레상' 옥영경 2006-03-27 1221
890 2006.3.22.물날. 황사 옥영경 2006-03-24 1048
889 2006.3.21.불날. 맑음 옥영경 2006-03-24 1094
888 2006.3.20.달날. 맑음 옥영경 2006-03-23 1041
887 2006.3.18-9.흙-해날. 3기 첫 밥알모임 옥영경 2006-03-23 1038
886 2006.3.17.쇠날. 맑음 / 으아악, 쇠날! 옥영경 2006-03-23 1201
885 2006.3.16.나무날. 눈 옥영경 2006-03-17 1146
884 2006.3.15.물날. 맑음 옥영경 2006-03-17 927
883 2006.3.14.불날. 천지에 눈 쌓인 맑은 아침 옥영경 2006-03-17 1141
882 2006.3.13.달날. 눈보라 사이 햇살이 오다가다 옥영경 2006-03-14 1028
881 2006.3.11-12.흙-해날. 맑음 옥영경 2006-03-14 1227
880 2006.3.10.쇠날.맑음 / 삼도봉 안부-화주봉(1,207m)-우두령 옥영경 2006-03-11 1250
879 2006.3.9.나무날. 흐릿 / 조릿대집 집들이 옥영경 2006-03-11 1270
878 2006.3.8.물날. 맑음. 옥영경 2006-03-09 1026
877 2006.3.7.불날. 맑음 / 대해리 산불 옥영경 2006-03-09 1181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