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2.15.물날. 비였다가 눈이었다가

조회 수 1200 추천 수 0 2006.02.16 13:04:00

2006.2.15.물날. 비였다가 눈이었다가

달골 포도밭에 가지치기를 시작했습니다.
어떤 이는 가을걷이 끝내고 치고
어떤 이는 겨우내 치기도 하는데,
대보름 지나 한 해 농사가 시작되는 것에 맞춘 셈이 되었네요.

농협조합원 간담회가 있었습니다.
농협이 출자금을 가지고 살림을 어떻게 살았는가를 보고하는 자리지요.
마을 어르신들이 경로당에 다 모이는 자리이니
농협식구들뿐 아니라 도의원, 정당에서도 나오셨데요.
"어째 교장선생님은 외국 다녀왔어?"
한참 만에 동네 어르신들을 뵙습니다.
못해도 두어 차례는 하던 마을잔치를 이 겨울은 쉰 데다
밤낮으로 앓는 등을 방바닥에 붙이고 마실도 한 번 못나갔더랬지요.
게다 엊그제 대보름 달집사르기도 올해는 쌓인 눈 때문에 못했으니...
그 사이 마을엔 별별 일이 다 있습니다.
홀로 남은 인숙이네 할머니는 처음으로 서울 가서 설을 쇠셨다네요.
역귀성이란 게 이 마을에도 늘어나고 있다지요.
96년 가을,
처음 물꼬가 계절학교를 위해 5년 동안 문을 닫았던 학교를 쓸 때부터
이곳에 뿌리내리는데 큰 힘이 돼 주신 마을 어르신들이 많으십니다.
관행농을 하는 이들이 유기농에 대해 그렇듯
요새 세상에 젊은 것들이 농사지으러 들어오는 것도 이상하고
아이들도 바보 만들려는지 일을 시키질 않나 텔레비전도 안보여주고,
사람들이 들어와 사니 북적거려 좋다고도 하시지만
이해되지 않음으로 만들어지는 소문이(특히 할머니들) 터무니 없을 때도 있지요.
그래도 얼마나 고맙고 순한 분들이신지요.
"한 쪽 귀로 듣고 한 쪽 귀로 흘려.
남의 동네 들어와 살면 그랴."
그 소문들을 안타까워하시는 송희할머니며 한권사님이며 호호 할머니도 계시고,
말도 안 되는 어르신들 처사엔 같이 분노하며 확 받아버리라 조언(?)하는 분도 계십니다.
귀농한 선배들한테
바깥에서 들어왔기 때문에 벌어지는 억울한 일들을 하소연이라도 할라치면
"얘기 들어보면 그래도 너들은 자리 잡았네."
라고들 하셨지요.
10년을 살아도 이방인이라는데...
옛 이장님은 이 낯선 곳에 우리를 정붙이게 했던,
어떤 분보다 큰 도움이셨지요,
오늘은 웬일인지 뵈질 않으십니다.
어데 불편한 건 아니실지...
"무 좀 갖다 먹어요."
소사 할머니는 올 해도 무를 나눠주시겠답니다.
"설에 세배도 못 갔어요."
영 서로 맞지 않는(?) 어르신이 한 분 계신데,
학교랑 몇 차례 다툼도 있었지요,
그래도 인사를 건네고 안부를 묻습니다.
얼굴 맞대고 산다는 건 그런 거지요.
떠나버리면 그만인 것과는 그래서 다릅니다.
우리는 한 마을에서 한 수돗물 먹으며 살 사람들이니까요.
꼴도 보기 싫어도, 죽자 사자 싸워도,
함께 살면서 어떻게든 공존하는 법을 터득하며 사이좋은 길을 찾아갑니다.

따르는 어르신 한 분이 글을 보내오셨습니다.
사실은 제게만이 아니라 특정다수에게 보내시는 메일이지요.
"데이비드 리즈먼은 〈고독한 군중〉에서 사회구조와 관련하여 인간을 세 유형으로 나누고 있습니다.
첫째는 농경시대의 전통지향형으로서 어떻게 행동할지를 과거로부터 배우는 유형이며, 둘째는 현대 산업시대의 타자지향형으로서 항상 외부 상황과 타자의 시선을 의식하여 이에 따르는 유형이며, 셋째는 내면지향형으로서 자신의 삶과 운명에 대해 자기성찰적 의식을 갖고 내면에 귀 기울이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유형입니다.
두말할 것도 없이 리즈먼은 내면지향형으로 살 것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리즈먼을 우연히 만나고 내면지향을 곱씹었던 젊은 시절이 아련히 떠오릅니다. ..."
오늘 그 분은 우리 자신의 삶과 운명에 대해
'깊이 성찰하며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에 따라 행동하며 살라' 하십니다.

자그만 냉장고 하나를 한 논두렁분이 새로 사서 보내주셨습니다.
간장집에 있던 오래된 냉장고도 수명을 다해 실려 나갔던 참에
약재를 넣어둘 작은 냉장고가 궁했더라지요.
지난번에 다녀가며 그 빈자리를 눈여겨보셨던 모양입디다.
그 그늘들을 생각하겠습니다.
그만 다 손을 놓고 싶은 순간이 혹여 있을 때라도
잎이 무성한 그늘이 우리를 살리고 있음을 얼른 알아차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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