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2.27.달날 / 잡지 '민들레'를 읽고

조회 수 1416 추천 수 0 2006.02.28 12:28:00
2006.2.27.달날 / 잡지 '민들레'를 읽고

가슴이 아린 일이 두 가지 있었습니다.
물꼬 계자를 거쳐 간 아이들 가운데
중고등학생이 되어 자원봉사를 오는 이들을 새끼일꾼이라 부르지요.
그 가운데 한 아이,
지난 겨울 계자를 하고 보내온 글이 있었는데,
엊그제 씌어진 그 글은
요즘 물꼬의 어지러운 일이 고스란히 그에게 미쳤을 파장을 읽게 하데요.
세상에...
맘이 아풉디다.
또 하나.
며칠 전 새 밥알이 전화를 받았습니다.
물꼬에 와 있을 때 받아서 곁에 있었던 식구들도 내용을 알아버렸다지요.
물꼬와 민들레 사이에 사적으로 얽힌 관계를 들먹이며
"그러니 민들레가 물꼬를 모르겠냐?"
입학을 말렸다 합니다
(적어도 10년도 더 된 그 사적 관계로
그따위 전화를 민들레로 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식구들이 오늘에야 그 얘기를,
그것도 제게 안하고 피해가려다 얼떨결에 나오게 되었지요.
물꼬를 지지하는 이들을 이렇게 어렵게 만들고 있구나,
침묵하는 게 정녕 옳은 길인지를 곰곰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오늘에야 문제의 잡지를 보았습니다.
교무실 책상에 아무렇게나 늘려있던 것을 집었지요.
"읽어봤나?"
"네."
밥알 식구 하나가 가져다 주었답니다.
"다 거짓말이더만..."
상범샘이 시큰둥하게 말합니다.
읽으며 여러 곳에서 여러 차례 웃었습니다, 어처구니 없어서.
"그래도 뭐가 있을 줄 알았다.
전에 말 많았던 홈페이지의 그 답글에 달렸던 이용훈씨 말대로
정말 내가, 우리가 깊이 돌아봐야할 일 같은 거."
"에이, 무슨... 나는 생각했던 대로더만.
그렇게 생각했으니 나갔지.
나간 부모들이 왜 나갔는지 이해하게 되데요.
자알 나갔지."
"진짜 기가 막히지?"
"수천만원의 빚을 갚기를 바랬다? 학교 재산이 오직 교장 앞으로 되어 있다?"
"응?"
"거기 있잖아요. 그거 우리가 연구년 나갈 때 집 지을 통장 옥샘이름으로 해둔 거..."
"그 말이야?"
"그런 걸 누가 알겠어요? 사무보던 사람이 왜곡해서 말한 거지."
"그가 있었던 게 반년이야?"
"무슨! 우리가 넉달 만에 들어왔는데..."
참 끝이 없습니다.
"나간 부모들한테 이제 정말 남은 정도 없다니까."
'그들과는 이제 더 말할 것도 없다' 하였습니다.
("볼 일 끝났으면 그대 가던 길이나 계속 가시지요.")
우리랑 살 사람들과 얘기하는 일로 바쁜 날들일 테지요.
그런데 식구들은 다른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습니다.
"정말 민들레랑 싸워야 되겠던데요.
그 왜 명예훼손 같은 문제요."
"명예훼손?"
"옥샘이 민들레에 대한 반박글을 쓰시고
우리 실무들이 조목조목 한동희씨 글의 거짓말에 대해 증거자료를 내밀지요?"
심정적인 것 다 빼고라도 구체적인 '사실'만 가지고 거짓을 밝히며
공식이 되었든 비공식이 되었든 항의 글을 보내자 합니다.
그리고
정말 민들레의 횡포에
법적인(비제도에서도 힘이 없으니 제도를 들먹인다?) 대응도 불사해야겠다고들 합니다.
밥알 한동희 님의 그 글도 모두 거짓이지만,
중요한 것은 나간 밥알님들은 그것을 진실이라고 알고 있다는 겁니다.
그건 결국 물꼬가 소통에 실패했다는 걸 말하며
나간 밥알들도 그렇겠지만,
학교 또한 책임감을 느끼며 깊이 반성하고 돌아보고 있다지요.

잡지 민들레!
저녁부터 이튿날 동틀 때까지 나간 부모들과도 이야기를 나누었고
이미 서로 글을 조율까지 끝내놓고
편집 마감 임박해서야 형평성을 위해서라며
그 부모글도 아니고 우리 학교랑 맞지도 않는 문항을 보내왔었지요.
"사실 확인 차원에서 몇 가지 묻고자 한다."
했던 그들이 물어온 것은 다른 방향의 글이었고
그 문항들이 말도 안 된다 여겼던 물꼬는 그래서 침묵하겠다 하였더이다.
민들레가 사실을 알고 싶었다면 '그 글 내용에 대한 사실' 확인을 해야 했을 것이며,
물꼬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이 있었다면
그렇게 애써서 한 좌담처럼 물꼬와도 얘기를 나눠야했을 것입니다.
그 문항만 하더라도 만약 물꼬를 알고자 하는 순수한 의도에서 나온 것이었다면
물꼬는 민들레가 만드는 이 앞의 현황자료 설문처럼
충실하게 답변을 하였을 것이나
그것이 건강하지 못하게 떠난 부모들과의 연대 속에 나온 것이어
같이 진흙탕을 만들지 않고자 대답을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민들레는
"이 글은 저희가 참고만 하고,
물꼬 부모님과 옥선생님 인터뷰 글을 다음호 민들레(1-2월호)에 함께"
싣는다는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 문항에 대한 인터뷰가 내용의 전부인 줄 알았던 거지요.
이건 사적인 감정이 아닌가(정녕 왜 그러는 걸까요?) 의심케 하며
이것은 그간 민들레가 물꼬를 대해왔던 저간의 일들과도 연관이 있지요.
민들레 식구는
94년 12월의 '한겨레 21' 기사를 보고 물꼬를 처음 찾았으며
95년 세 번째 계자, 네 번째 계자,
그리고 96년 여덟 번째 계자에도 얼굴을 비춘 적이 있고,
97년 일본의 키노쿠니 사람들이 와서 했던 물꼬의 작은 행사를 통해
여러 대안학교 인맥들과도 연결고리를 만들었던 민들레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물꼬의 존재를 익히 알아왔음에도
줄기차게 살아가는 물꼬의 행적을 무슨 까닭에선지는 모르나 애써 외면해왔습니다
(그 당시 누가 대안학교가 가능하다 하였습니까).
준비하다 도중하차하고 마는 숱한 대안학교의 전례들을 잘도 알면서
십년의 소중한 꿈으로 학교 문을 열던 날 취재는 고사하고
축하 인사 한 마디를 해준 바가 없으며,
그런데도 마치 민들레가 물꼬를 잘 알고 있는 듯 편집실은 이리 쓰고 있었습니다.
"그분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저희가 알고 있던 것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물꼬가 다른 대안학교와 다른 산골공동체배움터의 의미를 알았다면
그런 문항을 보내지도 않았을 테지요.
다시 말하면 아는 바가 거의 없었다는,
그것도 떠난 부모시각에 편중된 질문서를.
'무상교육'이라는 문구 정도나 이해했을 까요?
게다 새로 출발하는 새로운 학교들에서조차
몇 신문사의 기자들이 굳이 물꼬를 취재하자고 연락을 하며
"다른 학교에 전화 하니까
그래도 물꼬가 오래 되었다고, 물꼬를 만나야되지 않겠냐고..."
그렇게 말해왔음에도
정작 새로운 학교들을 위한 정보를 담는 잡지라면서
물꼬의 존재와 노력을 애써서 폄하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사례도 없었겠지요.
1999년 물꼬는
(세상에, 기록에 어두운 물꼬 컴퓨터에 당시의 글이 남아있지 뭡니까)
민들레에 이런 항의 글을 보낸 적이 있지요
(물론 물꼬는 그때와 생각이 달라진 것도, 사정이 달라진 것도 있을 테지요).

------------------
보내는 곳 : 자유학교 물꼬(02-763-8024, 5)
받는 곳 : 민들레 편집실

안녕하십니까. 자유학교 물꼬입니다.

민들레 6호(1999년 11월-12월)>를 이제야 읽었습니다. 격월간지로보다 단행본으로 더
잘 읽혀서일까요.
열심히 일하시는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저희 하는 일을 뒤돌아보게도 하구요. 잘 읽
었습니다. 겨울 일정 광고 실어주신 것도 고맙구요.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그런데요, <이제 부모들이 학교를 만들자>를 읽고 저희에 대해 좀 다르게 알고 계신 것
이 있는 것 같아 이렇게 글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1. 저희의 정식 명칭은 "자유학교 물꼬"입니다. "자유학교를 준비하는 모임 물꼬"는
1994년부터 1997년 12월까지 쓰던 이름입니다(민들레 6호 본문 21쪽에는 "자유학교를
준비하는 물꼬"라고 되어 있습니다). 제도교육으로의 진입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 아
닌 이상, 이미 '학교'여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명칭이 달라진 까닭입니다.
글이 실리기 전에 지금 저희의 생각이나 변화에 대해 미리 확인을 해 주셨으면 좋았을
텐데요. 물꼬는 늘 조금씩 달라지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2. 저희는 '초중등교육법상의 설립요건을 갖춘' 학교를 만들려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애초
에 관심을 두지 않던 부분입니다. 저희는 공교육이라는 큰 틀 안에서 조금 다른 학교를
만들려는 것이 아니라 공교육과는 상관없이, 그저 또 하나의 학교를 만들려는 것입니다.

3. 위의 얘기와 연관이 있겠는데요, 저희가 만들고 싶은 학교는 많은 학생이나 그럴듯한
건물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그저 부엌을 중심에 둔 작은 집, 아이들과 함께 살아갈
작은 집이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전국에서 모여드는 많은 아이들이 아니라 우리 아이들
몇몇으로부터 시작하려 합니다. 두레일꾼과 품앗이일꾼들의 아이들, 또 그 동네 아이들
이요. 지금도 우리 안에서 자라는 아이가 있고, 아이를 키우는 학부모도 두레일꾼으로
함께 일을 하고 계십니다. 본문 가운데 인가받지 않은 작은 학교의 예로 든 '크롱라라'는
저희도 많은 모범으로 삼고 있는 곳입니다.
또 저희는 어른들의 손이 잘 닿지 않는 곳에 있는 아이들도 .함께 하려 합니다. 지금도
저희 계절학교에는 고아원 아이들이 함께하고 있구요, 그 아이들을 두레일꾼들이 입양해
서 새로운 학교에서 함께 살아가려 합니다.

4. 저희가 아직도 '준비중'인 가장 큰 이유는 우리가 하려는 일이 또 하나의 '엘리트 교
육'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저희는 스스로 생산수단을 갖추려고 합니다. 지역
안에서 지역 사람들과 함께 하는 일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학부모의 경제적 부담은 최소
로 줄이려고 합니다. 보통학교에 아이를 보내는 비용보다 결코 많이 들어가지 않을 것입
니다.
저희도 물론 돈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럴듯한 학교 틀을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
라 몸이 불편한 아이들도 아무런 문제 없이 생활할 수 있게 하려는 생각 때문입니다. 휠
체어를 탄 아이, 눈이 보이지 않는 아이, 목발을 짚은 아이도 좀더 편하게 생활할 수 있
는 시설만은 꼭 갖추고 싶습니다. 이런 것들을 하기 위해서 저희는 10년이라는 시간을
'준비'하겠다고 처음 시작할 때 약속했습니다.

5. 교사와 학부모는 정말로 그렇게 다른 사람들일까요?
교사도 아이를 낳고 기릅니다. 교사도 지금, 또는 언젠가는 학부모가 됩니다.
마찬가지로 학부모도 교사입니다. 어른은 모두 교사라고 저희는 생각합니다.
아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10년간 저희가 만나온 아이들이 이제는 자기들끼리 모임을
가지며 좋은 어른으로 자라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물꼬와 함께 꿈을 키워온 이
아이들이 언젠가는 교사가 되고, 학부모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사가 중심이 되어 세우는 학교'와 '학부모가 스스로 세우는 학교'의 구분은
무의미합니다. 지금 저희 안에서는 이미 그런 경계는 없습니다.

6. 지금의 현실에서, 이른바 '대안학교'에 아이를 보내는 부모들과 가정학교를 하고 있는
부모들, 어느 쪽이 더 엘리트인지요. 사실은 모두 거기서 거기일 겁니다. 민들레는 가정
학교를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더 쉽게 시작하게 하려고 애쓰고 계실 거고, 저희도 그렇습
니다.

교육의 새로운 형태를 제안하고 계신 민들레 여러분의 노력에 큰 박수를 보냅니다. 그러
나, 다른 부분에 이러저러한 '한계'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아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여
러 노력들 가운데 하나로 제시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민들레가 뿌리를 잘 내려, 새로운 교육을 꿈꾸는 많은 이들에게 길잡이 노릇을 하고 있
는 걸로 압니다. 그렇기 때문에 민들레에 실리는 글 한 줄의 영향도 그만큼 크겠지요.
저희는 자유학교 물꼬가 많은 이들에게 알려지기를 희망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오해 없
이 잘 알려지기를 바랍니다.
처음 약속대로, 저희는 2004년에 자유학교를 시작할 겁니다. 그때까지 계속 준비하고,
계속 아이들을 만날 것입니다. 민들레도 내내 좋은 동지로 함께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
다.
애쓰시기 바랍니다.

2000년 2월 22일
자유학교 물꼬
두레일꾼 신상범, 김경옥
----------------------

또 민들레는 통권 30호 2003년 11-12월호에서
초등 대안학교 현황(물꼬가 초등대안도 아닐 뿐더러)을 다루면서
편집실은 이리 쓰고 있었습니다.
"...각 주제별로 문항을 만들어 현재 운영중인 곳 13곳과 준비중인 3곳, 지금은 운영하지 않는 2곳에 보내서 15곳으로부터 응답을 받았다. 내년에 문을 여는 자유학교 물꼬와 아직 외부에 알려지기를 원치 않는 춘천의 하늘새싹자람터는 공개되어 있는 자료와 홈페이지를 바탕으로 표 안에 간략하게 정리했다...."
왜 우리는 문항에서 제외(물꼬는 홈페이지 관리를 제 때 못하고 사니까)되었느냐
민들레의 대표하게 그 일로 항의를 했을 때
"김경옥(민들레 편집실)씨,
물꼬에는 그 설문지 안 보냈나?"
전화기 너머에서 들었던 소리랍니다.
이런 일들도 물꼬를 업수히 여긴 처사라 생각되며,
이번 일만 해도 그렇습니다.
민들레는 결코 물꼬에 이번호의 문제의 글에 대한 사실 확인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랬다면 그리 실을 수 없었겠지요.
더구나 어느 새 밥알의 말대로
"김희동샘을 비판하는 글은 고스란히 김희동샘한테 보이고
실어도 되겠냐 묻기까지..."
했다는데, 이런 어긋난 형평성은 또 어딨답니까.
이건 물꼬 '흠집 내기'를 넘어 '물꼬 죽이기'겠습니다.
민들레는 물꼬를 지지해왔던 소박한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혔으며,
그래서 물꼬는
어떤 식으로든 민들레라는 '대안교육권력'의 횡포에 맞서기로 결정하였답니다,
방식이 어떠해야 될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이것이 물꼬같이 힘없는 곳에도 손발을 보태는 선한 이들에 대한 예의이며
물꼬같이 허물 많은 곳에 제 살림을 나누는 논두렁(후원회원)에 대해
우리가 그나마 자존심을 지켜줄 수 있는 길이라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다만 평화는 과정 속에 있다 생각하는 우리들에게
이 방식이 정말 옳은 길인가를 묻고 또 묻는 어려움이 남았다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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