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3.6.달날. 화사한 / "첫걸음 예(禮)"

조회 수 1217 추천 수 0 2006.03.07 17:24:00

2006.3.6.달날. 화사한 / "첫걸음 예(禮)"

낮 10시 30분, 첫걸음 예(禮)가 있었습니다.
입학식과 개강식인 셈이지요.
물꼬생활 3년째로 들어가는, 영양에서 농사짓고 분재하는 이의 아들, 딸인
6학년 나현이와 5학년 령이,
공동체에서 살아온 2학년 류옥하다,
어머니가 공동체 식구가 된 6학년 승찬이,
어머니가 마을 식구가 되고 아버지가 내년에 귀농을 해오는 4학년 동희,
역시 어머니가 마을 식구가 된, 경기도의 한 대안학교를 다녔던 3학년 정민이,
할머니와 안양에서 살다 온 2학년 창욱이,
귀농해서 이사를 내려온 가정의 1학년 종훈이,
15년 유기농을 해온, 김천과 이 마을 두 곳에서 농사짓는 가정의 1학년 신기,
이렇게 아홉이 2006학년도에 함께 합니다.

'여는 마당'으로는 길놀이가 있었습니다.
'첫걸음예'라고 쓰인 깃발을 앞세우고
학교 대문을 나서는데
또 처음 문을 열던 그 때처럼 눈시울이 붉어지더이다.
경로당 앞에서 한바탕 놀고 돌고개 가는 길 느티나무 아래를 지나
마을 안쪽 길을 악기들을 울러메고 치면서 돌았습니다.
"뭐 하는 기라, 동네 시끄럽게?"
무슨 일이냐는 애정 어린 한마디를
섰던 이장댁할머니랑 회장댁할머니가 던지십니다.
"애들 이번 봄학기 시작한다구요..."
한권사할머니 호호할머니 이모할머니 남씨네할머니, 신씨할아버지,...
동네 여럿 어르신들이 어깨춤을 추시는 걸
그냥 지나기 섭섭하여 경로당 앞에서 또 놀고는
학교 큰 마당으로 들어와
태극진도 만들고 방울진도 만들다 미지기도 하였지요.

'너른 마당'으로 넘어가 배움방에 모였습니다.
어른들이 학기 시작하는 아이들에게 덕담을 던졌고
나현이와 하다가 1학년 신기와 종훈이에게 손수건도 달아주었습니다.
선배들이 만든 작은 젓가락 꼬치도 나눠먹었지요.
선배들 셋의 학교 안내도 있었습니다.
통합교육, 무상교육, 손말을 한 꼭지씩 맡아 나름대로 설명한 뒤
후배들을 위한 당부도 있었네요.
자유학교라고 언제나 좋은 것만 할 수 없다는 령,
스스로 양말도 빨고 산오름을 할 때도 제 몸을 건사할 수 있어야 한다는 하다,
그리고 일을 하는 동안 일이 되게 즐겁게 하자는 나현이의 말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왜 농사를 짓는가?"도 물꼬 선배들이 들려주었지요.
밥값 하려고, 우리 공동체가 먹고 살기 위해서,
일을 통해 사람답게 사는 법을 배우려고 농사를 짓는다 했습니다.
선후배의 만남, 형아우의 만남이 끝나고
어른들이 축하하는 노래를 불러주었습니다.
"우리 살아가는 동안에 할 일이 또 하나 있지..."
여자 어른들이 먼저 나와서 부르기 시작했고
"아아 영원히 변치 않을 우리들의 사랑으로..."
하는 대목에는 남자 어른들이 걸어나와 같이 불렀지요.
"비디오를 찍어라."
우스개들을 던지며도 참 진지하고 따뜻한 자리였더랍니다.

다음은 밖으로 나갔습니다.
삽자루도 하이얀 종이를 둘러놓으니 대단한 의식 같았지요.
대문 한 쪽으로 느티나무 한 그루를 모두 모여 심고
사진도 같이 찍었습니다.
저 나무가 아이들과 자랄 것입니다.
그 나무가 자라 아이들의 아이들을 볼 날도 오겠지요.

이제 아이들은 어른들이 준비한 선물을 찾으러 떠났습니다.
"찾아도 좋고,
만약 찾지 못한다면 훗날 누군가를 기쁘게 하겠지요?"
'모두가 함께 떠날 것!'이라는 조건대로 같이들 몰려다니더이다.
"책방에서 아이들 책 가운데 가장 두꺼운 책을 찾아라!"
안내를 따라 책방에 들어간 아이들은 곧 외쳤습니다.
"찾았다, 찾았다, 보물지도를 찾았다!"
우르르 학교 뒤란 보일러실로 좇아갑니다.
어른들은 통로 너머 큰 유리창으로 아이들이 휘익휘익 지나가는 양을
재미나게 구경하고 섰지요.
다시 아이들은 우물로 갔고 대문의 솟대쪽으로 움직이더니
마지막으로 모래놀이터에 나타났습니다.
"어딨어?"
"파라고 적혀있어."
"이거다!"
그 안에는 내일 낮 12시 30분에 선물을 교환할 수 있는 쪽지가 들어있었더랍니다.
정운오아빠의 작품이었지요.

'닫는 마당'으로 들밥을 먹기로 하였습니다.
평상에서 아이들이 주먹밥을 다져 김가루에 굴려주면
어른들이 받아먹었지요.
후식으로는 달고나를 만들었습니다.
1기 밥알들이 '학교 문 여는 잔치'에 쓰라고 장만해주셨던 것을
이적지 이리 잘 쓰고 있답니다.
떠난 이들이 이렇게 오래 우리들 마음 언저리를 돌 겝니다.
어디서든 건강하시길, 행복하시길,
그리고 좋은 자리에서 다시 만나길 바랍니다.

유쾌하고 소박하고 진지했던
2006학년도의 첫걸음 예(禮)였더랍니다.
날도 참말 화사하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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