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3.8.물날. 맑음.

조회 수 1027 추천 수 0 2006.03.09 09:13:00

2006.3.8.물날. 맑음.

아침 햇살이 마을에서 가장 먼저 닿는 곳이니
몸도 그리 빨리 깨어나나 봅디다.
아침을 먹은 아이들이 8시에 달골 햇발동을 나서서 학교로 옵니다.
저녁을 먹고는 큰엄마랑 다시 달골로 올라
7시에 한데모임을 거기서 하지요.

몸풀기와 명상으로 이루어진 해건지기를 하고
9시에 배움방을 시작합니다.
이번 주는 내내 학교와 학기 설명회,
그리고 학기 준비를 하고 있네요.

아침을 열며 한 사흘 별방에서 일어난 일을 들먹입니다.
"너는 되고 너는 안 되고 그렇게 가르는 마음들이 있다던데..."
마음에 그런 게 있었냐 물었더니
령이가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사이좋게, 평화롭게!"
우리가 그리 늘 이뤄가고자 하는 바람이니 애써보자 하였지요.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래도 너무나 소란했던 옛 시간들에 견주면
희안하게 이번 학기는 꽤나 오래 함께 이곳에서 흐름을 익힌 듯한 아이들입니다.
어제도 오늘도 해건지기에서
침묵이 하나도 어색하지 않았거든요.
물론 어제 정민이가 한 소리를 듣긴 했으나
또 오늘은 창욱이가 사납게 군 일도 있으나
아주 아주 잠깐의 시간일 뿐이었지요.
큰엄마가 '준비된 아이들'이란 표현을 쓰던데,
그러게요.

스스로공부,
한 해 동안 아이들이 각자 저 홀로 연구해나가는 시간이
주에 한 차례 있습니다.
개인연구과제라면 이해가 더 쉬우려나요.
물꼬 선배들이야 이미 생각했던 바가 있었겠지요.
"저는 지난해에 이어 자동차에 대해서 계속 공부할래요."
버스기사가 꿈인 류옥하다입니다.
"저는 대해리에서 나는 들꽃을 알아볼 게요.
우리가 사는 곳에 대해 잘 알아보고 싶어서요."
"어, 누나, 내가 재작년에 그거 했잖아,"
류옥하다가 나현이에게 제 스스로공부스케치북을 찾아다 참고하라 줍니다,
그게 말이지요, 얼마나 도움이 되긴 할라나 모를 일이지만.
작년에 대해리에서 만날 수 있는 곤충을 연구하던 령이는
사슴벌레에 대해 더 구체적으로 알아보고 싶다 합니다.
무엇을 어떻게 공부했던가를 들려주는 선배들의 얘기를 듣더니
새 기수인 3기들도 제 연구주제를 정했나 봅니다.
"저는 새를 해볼게요."
승찬이네요.
동희는 강아지를, 정민이는 대해리에서 볼 수 있는 곤충을,
종훈이는 꽃을, 신기는 대해리의 나무를 연구한답니다.
창욱이는 오늘도 생각이 너무 멉니다.
"포도 어때?"
우리가 키우는 것이니 연구해볼만 하지 않을까 싶었지요.
"나 포도 좋아하는데..."
그렇게 동의를 표하데요.
무엇을 어떻게 연구해나갈 건지 가늠도 해보고
스케치북에 그림도 하나 그려넣는데,
정민이는 종이가 터져나갈 듯이 곤충 두 마리를 그렸고
창욱이는 뵈지 않을 정도로 포도를 자그많게 그려놓았습니다.
정민이는 과도하게 크고
창욱이는 과소하게 작습니다.
고스란히 그 아이들의 마음을 드러내놓았다 싶데요.
정민이는 조금 작아져도 좋겠다,
창욱이는 더 커지면 좋겠다,
그런 생각들을 했지요.

오늘 아이들은 마을도 한 바퀴 돌았습니다.
"모두 같이 다닐 것!"
길을 따라 집집이 어떻게 이어지고
길은 어디에서 어디로 이어졌는가,
빈집은 어데고 어떤 이가 살고 있는가,
작은 지도를 하나 만들어들 돌아왔지요.

저녁 밥상에 나현이랑 마주 앉았습니다.
"저랑 하다만 빼고 전부 말로 일해요."
"나는 말하면서도 해."
령이의 항변입니다.
"이건요, 상범샘한테 비밀인데요, 일을 하다가 힘들면요,
밭에 거름 쌓아둔 것 있거든요, 그 뒤에 가서 쉬다가 와요."
정민입니다.
그래도 그 고랑의 포도나무를 다 벗겼더라데요.
아, 입으로도 일이 되는 물꼬 아이들이랍니다요.
올 해도 아이들이랑 무지무지 행복할 테지요.
새로 같이 살 게 된 어른들과는 또 어떠려나 모르겠지만,
것도 나아지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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