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3.23.나무날. 맑음 / '두레상'

조회 수 1224 추천 수 0 2006.03.27 10:24:00

2006.3.23.나무날. 맑음 / '두레상'

대해리 모진 추위가 비로소 가셨나 봅니다.
고추장집 뒤란의 산수유도 꽃망울을 터뜨렸지요.

아이들은 배움방에서 콩과 콩나물을 견주었습니다.
콩나물은 무엇으로 자라는가,
영양소엔 어떤 변화가 있는가,
그것은 몸에 어떤 도움을 주는가를 살폈습니다.
"졸려?"
큰 녀석들이랑 주고받는 것이 너무나 신난 통에
그만 1학년 쪽을 놓치고 있었더니
고새 신기는 졸리운가 봅니다.
얼른 1학년들도 끌어들였지요.
정운오아빠가 유기농으로 잘 키운 쥐눈이콩을 알아봐주었고
아이들은 가마솥방으로 건너가 열심히 그 콩을 가렸습니다.
어린 날 외가에서 할머니랑 한 귀퉁이 턱이 빠진 낡은 나무상을 놓고
도란거리며 콩을 가렸던 풍경을 전해도 주었지요.
왜 썩은 콩이 한 알이라도 있으면 안 되는지를 알려주었더니
벌레 먹은 놈이 없나 눈에 불을 켰더랍니다.
"1급수에 해야 해요."
학교 동쪽 개울도 물이 맑기는 하나
저수지에 고였다 오는 물이라 아니 되고
우리 먹고 사는 수돗물 역시 산에서 오긴 하나
마을에서 한 번씩 소독을 하니 아니 되고
마을 앞 계곡물은 약친 논들이랑 이어지니 아니 되고...
그래서 달골까지, 달골 보다 더 너머까지 가서
아이들은 물을 길러 내렸습니다,
주전자로 물통으로 대야로.
"정성으로도 나겄다."
어른들이 한마디씩 보탰지요.

국선도샘 네 분이 오셨습니다.
새로 더해진 분이 여자샘인 분위기가 한 몫 거든 겐지
오늘은 마을 식구까지 올 사람이 다 모여 그런 겐지
아님 지난번에 해봤다고 그런 것인지
한껏 집중하며 합니다.
말 그대로 수련이데요.
"샘들이 다들 4학년이네요.
그러니까 저희가 최고 고급인력들과 수련을 하는 거지요?"
국선도학과가 출발한 지가 4년째니 최고의 샘들이 아니겠냐고
교수님께 물꼬의 영광이라 말씀드렸지요.

아이들은 돌아가며 샘도움꾼역을 하는데
오늘은 꼬래비로 1학년 종훈이 차례가 되었습니다.
"종훈아, 국선도샘들 나오시면 나 불러줘."
"저 분?""아니, 안에 계신 분들."
"모두 다?"
"응."
"네."
나뭇단을 한참 정리하고 있는데 종훈이가 불러댑니다.
"오옥새앰, 옥샘!"
저녁밥을 먹고는 나현이누나를 찾아서 이러저러 한 일을 전하라하였더니
찾다가는 그래도 잊지 않고 없다는 전갈을 해왔지요.
아이들이 이런 임무를 통해서도 성큼 큰다싶습니다.

포도밭에선 포도껍질을 다 벗겼고
감자밭은 갈아엎어져 고랑이 만들어졌지요.
표고목이 들어와 고래방 뒤곁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텃밭에선 호박 오이 토마토 수세미 가지 씨앗이 뿌려졌고
부추는 뿌리째 캐서 간장집 해우소 곁으로 옮겼습니다.
간장집 남새밭엔 지난 겨울 심은 마늘도
이제 쫑쫑 잘도 나고 있는데,
거기 아이들과 상추씨를 뿌릴 참입니다.
그 사이 사이 땅을 쓰는 거지요.

올 해 첫 '두레상'이 있었습니다.
아이고 어른이고 마을식구고 학교식구고 공동체식구고
물꼬라는 이름에 관계된 이는 다 모이는 자리지요.
'호숫가나무'부터 같이 시작해서 깊이 들여다보기를 한 뒤였습니다.
아이들은 달골에서 큰엄마가 해주는 아침밥을 극찬하고
(아무래도 어젯밤에 서로 짠 것 같다고 놀렸지요)
새로 시작한 공부며 바깥 공부의 재미도 전했지요.
말하기 어렵고 껄끄러운 것도 다 얘기가 되어 좋다는 곽보원엄마,
제자리로 물건을 갖다놓는 느낌이 들어 흐뭇하다는 정운오아빠,
애들 소리가 넘쳐 좋다는 젊은 할아버지,
아이들이 와서도 좋지만 어른들이 와서도 좋다며
이보다 뭘 더 바라냐, 행복하다는 열택샘,
아홉 번 뽀뽀하고 아홉 번 안아주는 아이들의 밤 시간의 아름다움을 전하는 큰 엄마,
기름 아끼느라 뜨거운 물도 아껴 썼는데
정작 예 와서는 펑펑 쓰며 사는, 이곳 삶의 즐거움을 전하는 박진숙엄마,
마음 써주는 이들이 있어서 힘이 된다는 김점곤 아빠,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어른들은 어른들대로
각자 편하게 자기 일상을 지내는 것 같애서 좋다는 이은영엄마였지요.
산오름을 한 아이들의 진흙 바지를 털며
아이들이 이랬으니 옥샘과 젊은 할아버지가 얼마나 힘이 들었겠냐,
바깥샘들이 무보수로 들어오는 줄 몰랐는데
샘들 교섭하느라 교무실에서 애썼겠다,
상범샘의 입을 통해 이금제엄마의 말도 전해졌지요.
젤 맏언니격인 이금제엄마는 서무일을 도우며
이곳에서 애쓰는 손길들을 큰 고마움으로 바라봐주고 계십니다.
농사부의 보고,
자전거관리에 대한 아이들의 의견,
아이들이 더 사이좋게 놀기 위해서 필요한 마음들,
같이 사는데 필요한 얘기들이 이어졌지요.
마을 반상회 같다고들 하였답니다.
재밌데요.
정작 어른들이 곤해 해서 대동놀이는 접었는데,
두레상이 자리가 잡히면 땅을 차고 오르는 새싹들의 느낌이 돌겠습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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