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은, 무서운 기세로 오를 때만 일인 게 아니다.

마를 때도, 스러질 때도 손발을 부른다.

간장집 마당 무성했던 풀을 미처 다 뽑거나 베지 못하고 겨울이 왔다.

이제 마른 풀을 정리한다.

 

어제 아침뜨락에 세울 작은 표지판 하나 만들었던 결로

오늘 두 개를 더 마련,

미궁 들머리에 있는 대나무기도처’, 그리고 지느러미길팻말을 그렸다.

꺼내놓은 물감들을 다시 넣기 전에.


교무실에서는 경기도의 한 고등학교에 메일을 보내다.

상담을 의뢰한 한 학생이

이곳에서 어떻게 일정을 보낼 것인지 계획한.

방에서 나오기를 원치 않는다 하니

이곳에 오는 것을 1차 목표로 삼기로.

11월 15일 물꼬가 동안거에 들어가기 전 다녀갈 수 있다면 최상일.

 

바람의 시절이 왔다.

대해리 바람다운 오늘이었다.

커다란 나무도 별 수 없이 풀처럼 흔들린다.

김훈의 글을 생각했다.

그리고 손을 멈췄다.

 

나무는 세대 안에 개체를 축적한다.(...) 식물학자들의 설명에 따르면,나무밑동에서 살아 있는 부분은 

지름의 10분의 1정도에 해당하는 바깥쪽이고, 그 안쪽은 대부분 생명의 기능을 소멸한 상태라고 한다

동심원의 중심부는 물기가 닿지 않아 무기물로 변해있고. 이 중심부는 나무가 사는 일에 간여하지 않는다

이 중심부는 무위와 적막의 나라인데 이 무위의 중심이 나무의 전 존재를 하늘을 향해 수직으로 버티어준다.

(...) 존재 전체가 수직으로 서지 못하면 나무는 죽는다. 무위는 존재의 뼈대이다. (...)

나무의 늙음은 낡음이나 쇠퇴가 아니라 완성이다. 이 완성은 적막한 무위이며 단단한 응축인 것인데 

하늘을 향해 곧게 서는 나무의 향일성은 이 중심의 무위에 기대고 있다.(...)

 

김훈의 나이테와 자전거’(<자전거여행>에서)를 읽기 10년 전

문화일보에서였던가 연재하던 기사를 읽었더랬다.

(‘김훈의 자전거여행에세이-풍경의 안쪽  (11) 광릉수목원 산림박물관에서

그때 '간여'라는 낱말을 사전에서 찾아보았던 기억이 난다, '관여'의 오타라고 생각하면서.

그는 형용사와 부사를 사용하지 않고 형용사와 부사의 문장을 만든다.

다시 10년 지나 같은 글을 읽는다.

나무처럼 글이 나이테를 지니고 있었다.

 

무위는 존재의 뼈대이다.

무위는 존재의 뼈대이다.

무위는 존재의 뼈대이다...

무위가 존재의 뼈대라.

무엇을 해서가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않음이 존재의 뼈대가 된다.

명상이 또한 그것이겠구나.

오늘은 '하지 않음'으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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