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 계자 여는 날, 2010. 7.25.해날. 먼 하늘 먹구름

조회 수 1328 추천 수 0 2010.08.02 14:46:00

138 계자 여는 날, 2010. 7.25.해날. 먼 하늘 먹구름


‘2010 여름, 백서른아홉 번째 계절 자유학교’를 시작합니다
- 아껴서 듣고 싶은 초록 노래.
충청도 곳곳에 물난리가 났다는데,
여기는 말랐습니다.
고맙습니다.
‘오늘 아침에 비가 왔다. 아이들이 물꼬 들어오는 날인데, 날씨가 좋지 않아 살짝 걱정이 됐다. 하지만 옥쌤이 늘 하시던 말씀처럼, 거짓말처럼 먹구름이 가시고 해가 나기 시작했다. 감사했다. 항상 계자 때면 하늘이 아이들이 맘껏 뛰놀 수 있는 좋은 날을 마련해주니 말이다.’(새끼일꾼 인영의 하루 정리글 가운데서)

아이들이 들어오는 날이니 이러저러 부산했겠지요.
역으로 아이들 마중을 가고, 몇 가지 빠진 것들 장을 보고,
안에서는 맞이 준비로 먼지를 닦고 물건들을 가지런히 놓습니다.
미처 챙기지 못한 부분이 뒤늦게 눈에 들기도 하지요.
여자들의 잠자리로 쓰는 황토방 바닥에
붙여둔 광목이 자꾸만 일어납니다.
몇이 그걸 다급히 붙이고 있을 적이었는데요,
새끼일꾼 가람형님이 그랬습니다.
“왜 미리미리 안 해요?”
그러게요, 그러면 좋을 걸,
여기 일이 해도 해도 그렇게 줄을 늘어서있지요.
“그런데, 지금이 바로 ‘하는’ 지점이야.”
움직이는 그때가 해야 되는 지점 아니던가요.

아이들 마흔 둘, 일꾼 열여섯(새끼일꾼 5명 포함)이 함께 합니다.
‘... 아이들 걱정하는 할머니, 엄마, 아부지까지..... 이 아이들과 이번 계자를 함께 할 생각에 마음이 벅차올랐습니다.’
아이들 맞으러 간 선영샘은 하루 정리글에서 그리 쓰고 있었지요.
“아이들이 계절을 건너뛰며 또 훌쩍 자라 왔더라구요.”
새끼일꾼 연규형님이 그랬고,
새끼일꾼 인영형님은 “활기차서 학교 꽉 찬 느낌”이라 했습니다.
부산하고 어수선하다, 한편 조금은 불안도 스치다
아이들이 저어기 보이는 순간, 안도감이 듭니다.
물꼬에게, 또 제게, 아이들은 그런 존재랍니다.

낮밥을 먹은 아이들이 책방에 있거나
방에서 큰 동그라미를 그리고 수건돌리기를 하거나
마당 가를 천천히 돌거나
더러는 물꼬를 지키는 장순이와 쫄랑이랑 놀고 있습니다.
한편 우르르 마당으로 쏟아져 나온 또 다른 패들은 공을 차고 놀지요.
놀이조차도 놀고 싶은 아이들로부터 나오는 게 아니라
캠프라든지에서 준비하고 아이들을 기다리는 세상입니다,
저들이 심심하다 놀게 되는 게 놀이가 아니라.
그래서 물꼬는 놀거리를 마련해두고 아이들을 부르는 식이 아니라
그들이 찾고 생각한 놀이를 할 수 있도록 준비해주고 있답니다.
“학년은 나뉘어 있는데,
기량 차이는 있지만 상하관계가 없어요.
나이차 나는데도...”
그래요, 그래서 여기선 나이대를 섞은 모둠 단위를 둡니다.
동년배집단, 그건 때로 얼마나 잔인한지요.
그 나이가 수행해야 할 목표행동에 도달하지 못하면
가차 없이 모자라는 아이가 됩니다.
그건 통제를 위한 좋은 방편일 뿐이지요.
그런데 나이대를 섞어 꾸려놓으면 큰 아이가 작은 아이를,
혹은 좀 빠른 아이가 느린 아이를 돌보게 됩니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서로를 채운단 말이지요.

이곳에서 지내는 데는
‘자유’라는 말이면 지내는 방법을 다 안 셈입니다.
그런데 그 자유가 어떤 자유인가가 또 문제겠네요.
배려가 있는 자유!
사이좋은 자유!
정인이는 자기의 글집 표지에 어떤 게 배려인지를 그림으로 그려놓았습니다.
한 아이가 아파 누워 있는데
그 곁을 다른 친구들이 조용히 멀찍이 지나가고 있었지요.
온통 길쭉길쭉해서 모델이라 불리는 해온,
“거짓말인 줄 알면서도 그것이 선의란 걸 알 때, 동조해주는 것.”
배려를 그리 규정하기도 했더랍니다.
이곳에서 우리는 그렇게 서로 지내게 될 것입니다, 언제나 그래왔듯.

원준이 사는 동네에 서캐 창궐 했다 합니다.
이 말이지요.
알을 하나라도 달고 왔다면 큰일입니다, 이렇게 모여 있으니.
전화를 드리고 머리를 자를 수 있도록 허락을 받습니다.
물꼬 미용실 개장입니다.
감나무 아래로 아이들이 나와 원준이를 둘러치고
한 마디씩 말을 보태줍니다.
한 마을에 사는 동무들 같앴지요.
미용실까지 갖춘 계절학교, 그러고 보니 참 멋집니다.
의자를 치우자 참았던 소나기 시원하게 쏟아지데요.

“이가 흔들려요.”
“그래, 우리 치과도 있어.”
교무실은 아주 종합병원이라지요.
“탈골? 그런 것도 다 한다.”
“소아과는요?”
“당연히 있지.”
“성형외과는요?”
“있다! 마음을 닦아 얼굴에 그 빛이 흐르게 하니 예쁘지잖아.
게다 열심히 움직이게 해서 날씬하게 만들지.”
열이 나는 미래는 내과를 왔네요.
몸을 뉘고 열을 삼키도록 두부를 처리하여 이마에 얹어줍니다.

물에 갔지요.
들일 데 없어 둘러쳐놓은 산 아래 계곡 펼쳐져 있습니다.
다글거리는 바람의 나뭇잎처럼
아이들은 말이 콩당거리듯 움직임도 그러합니다.
저런 아이들이 도대체 도시에서 어찌 살았더란 말인가요.
‘물놀이를 가서.. 그저 마냥 즐거웠고, 신이 났습니다. 처음엔 서로 어색해서 말도 못 붙였지만 어느새 서로 빠뜨리고 빠지고 웃고, 모두들 정말이지 터울 없이 잘 어울린 것 같아 기쁩니다.
오늘 하루 정말 최고였고, 내일이 기대됩니다. 내일은 오늘만큼, 어쩌면 가까워진 만큼 오늘보다 더 신나는 하루가 되겠죠?’(새끼일꾼 도언형님의 하루 정리글에서)
샘들은 눈 부릅뜨고 아이들이 바위에 부딪히기라도 할까
호밀밭의 파수꾼(재롬 데이비드 샐린저)들이 되었습니다.
‘...재이인가 진이인가 신발끈이 끊어져 안아 가달라고 부탁해서 안았는데, 물속은 미끄럽고 하기에 가슴을 많이 졸였는데 다행히 물속을 무사히 나와서 안도했어요, 이 일이 가장 기억에 남았어요.’(새끼일꾼 경록형님의 하루 정리글 가운데서)
돌아오는 길, 계윤이는 길가 풀이며 나무며 이름들을 잘도 읊었습니다.
“초록색깔 이불 같아요.”
지은이는 논을 보며 그리 감탄했네요.
돌아온 아이들의 저녁 밥상은 밥이 푹푹 파였답니다.
싹싹 긁어먹은 이가 어디 진이 재이이기만 했을까요.

저녁답, ‘한데모임’에 둘러앉아 노래가 번져갑니다.
노래집을 펼쳐놓지만 글씨를 모르면 또 어떻던가요.
“내가 알려줄게.”
자누처럼 곁에서 그리 선창해주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아, 모임 전 다 같이 창밖을 보았다지요, 노을이 지고 있었습니다.
그 앞에서 새끼일꾼 연규형님은 마음이 편안하고 행복했다했고,
빨래방에서 빨래를 널고 있던 찬일샘,
노랫소리가 울려 퍼지는데, 하늘은 높고 산 속 작은 학교는 아담도 하고,
아름다움으로 서럽더라던가요.

춤명상으로 하루를 마무리 짓습니다.
준비 움직임을 할 때 우리 주용이의 저 자세 좀 보셔요.
허리 반듯하게 펴고 가부좌를 틀고 앉았네요.
음악에 우리 몸을 맡기고 훨훨 움직입니다.
아이들이라고 근심이 없던가요.
훌훌 털고 하늘 기운 땅기운 나무기운들 몸 안으로 불러들입니다.
“잘 자고 잘 일어나서 신명나게 잘 놀아보자.”
첫날, 대동놀이 없이 자보긴 처음인가 봅니다.
아쉬워하는 아이들에게 더 가뿐한 몸으로 아침을 열고
비로소 숲 속 생활을 시작하게 될 거라 기대케 했지요.

읽어주는 이야기를 들으며 아이들이 잠에 들고
샘들은 가마솥방에 모여 하루를 갈무리합니다.
처음 온 품앗이 찬일샘이 그럽니다.
“물꼬를 거쳐 간 아이들이 일꾼으로 다시 물꼬를 만들어가는 일꾼이 되어 이곳을 찾는 모습이 몹시 인상적입니다.”
‘...정식 새끼일꾼으로서 처음 맞이하는 계자인 만큼 기대 못지않게 심리적 부담도 많이 들었다. 항상 꿈꾸고 생각해왔던 일꾼으로서의 계자인데, 사실 힘들었다. 내가 새끼일꾼으로서의 몫을 잘 해낼 수 있고, 아이들이 여기서 자유롭게 뛰놀 수 있는 자리를 잘 치우고, 마련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지 않아서였다. 내 마음을 기꺼이 내어 정말 더럽게(?), 굳은 일 마다하지 않고 물꼬에서 또 다른 역할-쌤-을 맡아 나를 내놓는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알게 된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다른 품앗이, 청소년인 새끼일꾼들이 일반 봉사자들보다 더 대단해보이고 그냥 존경스러웠다.’(새끼일꾼 인영)
‘...이런 짧은 시간에 이렇게 많은 추억을 만든 것이 신기하고 이때까지 날 중 가장 많이 웃었던 날인 것 같아서 좋았어요.’(새끼일꾼 경록)
“이제 연규샘으로 라인이 형성되는...”
새끼일꾼들의 대장노릇을 하는 아람형님이 오지 못한은 계자,
연규에게로 그 역할이 자연스레 넘어가고 있는 걸 보며 서현샘은 이렇게 말했지요.
‘처음 본 아이들에게 말을 꺼내니 정말 난 내가 내 스스로 멋져보였다.’(세아샘)
자원봉사를 통해 자기 변화 역시 겪어가는 일꾼들입니다.
“책으로만 봤던 삶을 3차원 현실로 직접 보니...”
처음 온 현아샘은 무엇을 봤던 걸까요?
대안교육이며 녹색평론이며 대안 삶에 대한 관심으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그리 살려고 준비한다는 그입니다.
‘...계자에 참가했던 분의 경험담도 듣고, 홈페이지에서 글도 읽고 사진도 봤는데 말이나 글을 3차원 현실로 직접 보니 또 달랐다. 아이들과 함께 일정을 채워가는 여백의 시간표, 가벼이 내려놓고 하는 춤명상, ‘하지마라’고 막아놓기 보다는 가능하면 자유를 주되 서로 간에 배려할 수 있도록 돕는 교육(?)방식!
모든 것이 기존의 틀, 관념을 깨고 기존 교육제도와 관습을 하나 하나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우리말을 사용하려는 노력이 인상적이었다. 일정표는 ‘속틀’, 일요일은 ‘해날’, 창고는 ‘곳간’, 지도는 ‘땅그림’ 등... 외래어가 범람하는 도시에 살다가 예쁜 우리말을 접하니 오히려 낯설지만 반가웠다. 그리고.. 난 참 부끄러웠다. 깊은 성찰이나 고민 없이 제도교육이 정해준 길을, 내면의 목소리보다는 다른 사람과 사회가 원하는 기준을 따르며 지난 이십육 년을 살아와서일까?
이제는 아무리 어려워도 내 안의 목소리가 들려주는 길을 따라 나만의 인생시계에 따라 천천히 살고 싶고, 이곳에서 모든 사람들로부터 가르침을 받고 싶다.
인디언들은 나이를 먹는 걸 축하하는 게 아니라 나아지는 걸 축하한다고 한다. 한걸음 나아지자!’(현아샘의 하루정리글에서)
그가 말했습니다, 애들이 부럽다고,
어렸을 때 이런 곳을 알았으면 자신의 삶이 훨씬 달라졌을 거라고.

엿새밖에 되지 않는 날이나 진한 밀도로
마흔 둘의 우리 아이들처럼 함께 하는 어른들 역시 좋은 성장의 시간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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