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3.10.쇠날.맑음 / 삼도봉 안부-화주봉(1,207m)-우두령

2006학년도 봄학기 시작을 기념하는 산오름이 있었습니다.
삼도봉 안부-화주봉(1,207m)-우두령으로 이어진
백두대간 소구간을 종주했지요.

아침 9시께에 느긋하게 정운오아빠 트럭을 얻어 타고
어른 둘 아이 아홉이 나갑니다.
흘목에서 물한쪽으로 막 돌려는데,
종훈이의 장화가 보였습니다.
"응?"
저걸 신고 산을 오른답니다.
"김점곤아빠가 괜찮다고..."
학교에 전화를 해서 운동화를 챙겨 달라 하고,
덕분에 류옥하다도 털신을 운동화로 갈아 신었지요.

10시가 다 돼서야 물한계곡 주차장을 벗어납니다.
낙엽송숲과 잣나무숲 사이를 거닐며
갈림길에서 삼도봉 쪽으로 길을 틀었지요.
앞 패는 2시간도 안돼 삼막골재에 닿아버렸더랍니다.
삼막골재에서 해인동쪽은 억새가 누워 이부자리처럼 푹신도 하여
다리쉼도 하고 해바라기도 하며 노래를 고래고래 부르기도 하였지요.
"촘백이 촘백이 서울 가는데 기차삯 2만원이 너무나 비싸서, 헤이..."
어깨도 덩실덩실입니다.
"자주 산에 가니까 이젠 이 길도 되게 수월해요."
선배들의 증언(?)이 있었네요.
종훈이가 젊은 할아버지랑 꼬래비로 오기는 해도 징징대지는 않습니다.
고 앞으로 정민이 창욱이 승찬이가 오고 있지요.
아이들이 저들끼리 다투지도 않습니다.
가끔 잘난 체를 하긴 하지만,
그야 애교구 말구요.
고개 너머는 김천의 해인동이고 오른편으로 1킬로미터쯤이면 삼도봉에 이릅니다.
아이들 이 걸음 속도라면
삼도봉을 올랐다 다시 물한계곡으로 내려가는 길이 아니라
왼쪽 종주길을 골라도 되겠지 싶었습니다.
왼편으로 밀목령 쪽을 가자하고 바로 곁 헬기장에서 점심을 먹습니다,
사진도 하나 찍고.
통 사람을 못 만나다가
극기훈련중이라는 김천의 경찰서에서 오신 분들을 만났지요.
삼막골재에서 그들은 삼도봉을 향해 오릅디다.
대단하네,
아이들을 향해 그런 한 마디 격려해줄 이가 아쉬웠는데,
고마웠습니다.

"1시네."
1,175m 암봉까지 흔히 종주대 걸음으로 2시간여 잡으니,
오늘 삼도봉을 향해 오르던 아이들 걸음과
그간 아이들과 다닌 경험을 더해 봐도
3시간을 조금 더 잡으면 큰 변수가 없는 한 가능할 듯합니다.
고만고만한 능선을 타고 가다 1,123.9m봉을 오른쪽으로 도니
심한 잡목숲 내리막이 한참을 이어지고 억새 무성한 길이 펼쳐집니다.
예전엔 길도 여럿이었겠으나
이제 재를 넘는 발길도 나무꾼도 거의 사라졌을 테니
길이라 부를 수 없을 만치 나무들은 엉켜 있습니다.
1,089.3m봉을 지나 오르막길이 한참입니다.
"어이!"
받는 소리가 없습니다.
"어이!"
다시 불러보지만 소리가 닿지 않습니다.
나현 류옥하다 령 동희에다 막 좇아온 신기까지는 덩어리를 이루었는데,
뒤가 끊어진 모양입니다.
정민이 승찬이 창욱이가 길을 헤매고 있지는 않을 려나 모르겠습니다.
워낙 종알거리는 녀석들이라지요.
그찮아도 길을 헷갈려하겠다 싶은 좀 조심스러운 길을 지났던 참입니다.
딴에는 표적을 해두었는데,
아무래도 내려가 봐얄 것 같습니다.
맨 마지막이야 젊은 할아버지랑 종훈이 일겝니다.
'두 패가 한 데 있으면 좋으련...'
앞 패들을 세워두고 좇아 내려갑니다.
"어이!"
방향을 틀었으니 소리가 봉을 넘지 못하지 싶습니다.
다시 한참을 돌아내려갑니다.
"어이!"
"어이!"
다행히 방향을 몰라 갈팡질팡하고 있던 다섯을 다 만납니다.

군데군데 바위들을 지나며 오르는 길입니다.
"어, 호랑나비다!"
봄의 전령을 예서 만났지요.
우리들에게 봄이 전해주는 행운의 선물이라며 모두 기뻐했습니다.
1,175m암봉에 닿습니다.
마음이 바쁩니다.
맨 끝의 젊은 할아버지까지 오니 네 시간이 훨 더 걸린 시간입니다.
여기까지 두 시간이 걸린다 했는데, 우리가 무려 두 배가 넘었다,
그렇다면 화주봉까지 40여분, 다시 화주봉에서 우두령까지 1시간을 잡는데,
이대로라면 서두르더라도 세 시간여는 잡아야 한다,
게다 어두워지면 시간이 더 걸릴 거다...
아이들에게 상황을 설명합니다.
정민이랑 창욱이도 이제야 위기감이 좀 드는 모양입디다.
바쁠 것 없는 종훈이도 이제 알아듣는다 합니다.

그런데, 오늘 최대의 고비가 바로 다음 순간에 기다리고 있었지요.
암봉을 남동쪽으로 내려서는 길이 뚝 떨어지는 암릉이거든요,
다행히 밧줄이 있긴 하지만
여간 두려운 길이 아니랍니다.
용케 아이들은 서로를 격려하며 내려오는데,
우리의 종훈 선수, 그만 울어버리며 못 온다 합니다.
여기서 지체하면 정말 우리 모두 위험해지는데 말입니다.
목이 터져라 윽박도 지르고 얼르고 달래보지만
아이는 꿈쩍도 않고 젊은 할아버지는 난감해라 하고 있습니다.
"삼촌, 애들을 안전한 데로 데려다 놓고 올게요."
600m쯤 걸어오다 아이들을 앞에 보내고 돌아섭니다.
"여기서부터는 길이 외길이고 그리 위험하지 않다.
지금 걸음이면 저기 보이는 화주봉 바로 아래 닿을 거다.
6시까지만 걸어가서 멈춰있어라, 모두 같이 움직여야 한다."
창욱이와 류옥하다가 걱정으로 눈물 글썽이는 걸 뒤로 하고 돌아갑니다.
아직도 절벽위에선 종훈이가 아예 보이지 않는 곳에 몸을 숨기고 있고
젊은 할아버지는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습니다.
이런 말 저런 말을 다 골라 던지고서야
종훈이가 결심이 선 모양입니다.
젊은 할아버지랑 줄을 타고 내려옵니다.
"자, 이 발!"
"잘 허네. 다시 저 쪽 발!"
"다시 이 쪽 발!"
젊은 할아버지의 안내 말을 한 마디씩 곱씹으며 종훈이가 내려옵니다.
마침내 종훈이가 다 내려왔고,
이미 이 암봉에서 40여분이나 지체했으니 우리는 달려다시피 길을 탑니다.
"삼촌, 외길이니 곧장 오시면 돼요.
혹 길이 갈라지더라도 위쪽 방향으로 오세요."
먼저 달려 나가 기다리는 아이들에게로 갑니다.
시계는 6시를 지나 있었지요.
"어이!"
소리가 닿지 않습니다.
아마도 길이 꺾여 있어 그렇겠지요.
다시 한참을 달려가 소리를 칩니다.
"와아!"
아이들의 함성이 들립니다,
무사히 오는구나 하는 안도겠지요.

화주봉에서 젊은 할아버지까지 모두 만납니다.
"저기 봐라, 달이지?"
다행히도 날이 맑으니 달빛이 좋겠습니다.
하기야 흐렸다면 우린 삼도봉만 오르는 정도의 길을 골랐겠지요.
상현달을 지나 보름을 향해 가는 달입니다.
달빛을 탈 수 있을 겝니다.
별이 나오니 방향도 뚜렷하겠지요.
남동쪽으로 길을 잡아 나갈 겁니다.
"이제부터는 앞과 뒤가 너무 벌어지면 안 된다."
잠시 주춤하며 달빛이 더 내리기를, 어둠에 눈이 더 익기를 기다립니다.
"출발!"
북극성이 너무나 뚜렷해서 등에 업고 잘 갈 수 있게 해줍니다.
다행히 길을 따라 눈이 쌓여있어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어!"
그런데, 뭔가 이상한 예감이 들었지요.
달빛에 쌓인 눈들이 반사되면서 길이 수상쩍어진 겁니다.
눈만 따라 가고 있다는 생각이 퍼뜩 든 게지요.
그게 길이라는 보장이 없는 건데 말입니다.
어쩜 오늘 최대의 위기가 될지도 모르겠다 싶었지요.
"길이 아니야!"
아이들을 세워놓고 아래 일대를 헤맵니다.
가지에 긁히고 나무에 걸려 넘어지고 쓰러진 나뭇가지에 발이 빠지면서
후딱후딱 일어나 걷고 걷습니다.
제 숨소리에 제가 놀라고 제 숨소리에 제가 쫓기며 애가 끓었습니다.
겨우 길을 찾아 다시 아이들과 가까운 쪽으로 거슬러 오르며
저어기 섰는 아이들을 부르는데,
왜 이렇게 늘 힘든 길을 가는가,
문득 설움이 다 밀려들었더랍니다.
좀 전의 상황이 아주 위험했으며,
결국 산에서 미적거리는 일이
모두를 얼마나 위험하게 만들 수 있는지를,
자기 몸을 간수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한마디 읊지요.
"우는 건 문제를 아무것도 해결해주지 않아."
잘 우는 창욱이는 울음을 그치고,
종알거리던 정민이도 말을 그치고 나아갑니다.
다들 앞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마음 쓰지 않게 해주고 있었지요.
다행히 급한 내리막도 오르막도 없는 길입니다.
남동쪽으로 주욱 내려오다 왼쪽으로 꺾어질 즈음이었지요.
"헬기장이다!"
이제 서서히 고도가 낮아질 겝니다.
그래도 아직 40여분은 가야 우두령을 만납니다.
길도 선명하여 수월합니다.
양쪽 아래로 저 멀리 간간이 보이는 마을 불빛의 균형이 이어지니
틀림없이 우리는 능선을 잘 타고 가고 있는 거지요.
"저기다!"
기다리던 우두령의 불빛을 그예 만납니다.
김점곤아빠와 정운오아빠가 우리 편을 향해 막 오르고 있었지요.
시계는 막 8시를 넘고 있었습니다.
"옥샘, 고생하였어요."
큰놈이라고 인사하며 트럭 짐칸에 오르는 승찬이었지요.

우리들에게 오늘의 산오름은 또 무엇이었을까요?
"엄마, 너무 무리하게 코스를 잡은 거 아니예요?
그냥 삼도봉이면 봉우리 하나 올랐다가 다시 내려오고 해야 하는데,
선배들은 할 수 있지만 아무래도 새로 들어온 애들한테는..."
류옥하다의 평가입니다.
"할 만하겠다 싶으니 또 했지."
종훈이,
그 아이 바위산을 내려오며 유치원의 세계에서 초등의 세계로 성큼 넘지 않았을까,
그 순간 그 결심을 하기가 쉬웠을까,
아래가 도저히 보이지 않고
4-50미터 절벽 아래서 어른이 소리 소리 지른다,
얼마나 겁이 났을까,
그런데 그 아이 결국 해냈지요.
함께 걷는 다른 이들을 위해서도 각자가 해야 할 일이 어떤 것인지를
생각해보는 귀한 시간이기도 했겠습니다.
우리 모두 우리 생의 어느 단계를 한발 짝 지나지 않았을 지요.
비가 온다던 예보였는데, 비가 와도 오르겠다던 산이었지요,
다사롭고 환했던 하루였습니다.
늘처럼 하늘이 도왔더라지요.

트럭 짐칸에 모두 몸을 실어 드러누워 별을 보기도 하고
고래고래 노래를 부르기도 하였습니다,
춥다며 서로 끌어안기도 하고.
어느새 푹 쓰러지는 녀석들,
마치 전쟁터에서 돌아온 병사들처럼 말입니다.
어려운 길을 이리 돕는 아이들이 있다면, 이 아이들과 함께라면,
아, 나도 좋은 선생이 될 수 있겄다,
마음 얼마나 푹하던 지요.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참, 지금 민주지산(삼도봉일대)은 5월 15일까지 입산을 통제하고 있답니다.
우리 동네 산이라는 핑계로,
손에 불을 일으킬 물건이 없다고
꾸역꾸역 우기며 올랐더라지요.
넘들은 당연, 안됩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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