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 계자 이레째, 2006.1.8.해날. 아직도 꽁꽁 언 얼음과 눈

< 한껏맘껏이 이런 거구나 >

해날이라고 늦잠을 자기로 하였습니다.
그런 날은 꼭 일어나지 못하던 녀석들조차 일찍부터 재잘거린다지요.
오죽했음 비 내리는 날마다 에미 무덤이 떠내려갈까 우는
'청개구리' 얘기가 다 있을까요.
아침을 먹고는 먼지풀풀입니다.
한 주 동안의 먼지를 죄 털어내자 합니다.
아이들이 적으면 개별의 특수성이 도드라져
진행에 더 어려움을 겪기도 하는데,
이번 계자 아이들은 참 순합니다.
역시 고학년이 거의 없는 까닭이라고들 다시 끄덕이지요.
청소만 해도 그렇습니다.
어찌나 진지하게 잘 하던 지요.
착한 아이들입니다.
하기야, 도대체 누가 아이들에게 '나쁜 아이들'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애들이 굉장히 열심히 청소를 해요."
승호는 장갑을 끼고 솔로 빡빡 문지르며 해우소 구석구석을 누비더니
세면대까지 윤을 내고 있습디다.
윤빈과 종훈이도 짝 맞춰 친구 삼아 승호 움직임에 발맞추네요.
모둠방이며 저들 자는 방까지
오래도록 실속 있는(?) 대청소를 하였답니다.

아이들이 밥상에서 얘기를 합니다.
"나는 3층 살아."
"나는 지하 사는데..."
"지하가 어딨어?"
"있는데...
우리 위 층 아줌마가 빨래를 하면 더러운 물이 우리 집으로
뚝뚝 떨어져."
우리 어른들은 그런 얘기 잘 안하지요,
듣는 이도 하는 이도 그만 궁상맞아져버려서.
그래서 우리들의 남루한 일상이 그만 다 드러나 버리는 드라마나 영화는
시청률에 한계가 있다던 가요.
보지 않는답니다, 불편해서.
그런데 아이들의 세계에선 그렇지가 않습니다.
그냥 지하에 살면 지하에 사는 갑다,
부자면 부잔개비네,
뭐 그러고 말지요.
저 아이들의 세계...
그래서 그들 세계로 들어가는 길목에 선 교사라는 직업은
어떤 직업보다 행복할 수밖에요.

1시 40분, 특강이 있었습니다.
썰매 만들기.
김천의 정운오아빠가 등장하셨지요.
트럭의 짐칸엔 무슨 고물상에 준하는 물건들이,
게다 산소통까지 실려 있습니다.
"미리 만들어 봤는데..."
스키날에 의자를 얹은 모양의 썰매가 차에서 내려졌습니다.
미리 날이며 목재들이 웬만큼씩 손이 봐져 있었지요.
몇이 더 있더니만 학교를 한바퀴 돌고 갔더니
정민이 기홍이 동휘 한슬이만 남았습디다.
상범샘이 도움샘을 하고 있네요.
"이야!"
한슬이와 정민이가 못을 제법 박아요.
"뚝딱뚝딱의 보람이 여실히 드러났다."
다들 그랬지요.
썰매 둘이 그리 완성되었더랍니다.

한껏맘껏 보내는 하루입니다.
방에선 예진이와 수진이가 난롯가에서 오목을 두고 있었고
예지는 글집을 챙겨 뭔가를 기록하고 있네요.
가마솥방에선 곽보원엄마 도움으로 방석끈도 다시 꿰매져
의자마다 들쑥날쑥 있던 방석이 다 채워졌답니다.
열택샘은 빨래를 너는 일을 건너도 되었지요.
것도 박보원엄마가 챙겨 하고 계시네요.
간장집 작은 마당에선 햇살을 업고
창욱이와 하다가 바둑판으로 뭔가 새로운 놀이를 만들고 있습니다.
특강이 열린 책방 앞 건너엔 축구가 한창이었지요.
현애샘과 열택샘도 열심히 뛰고 있습니다.
"매력 있는 놈들이더라구요."
사력을 다해 뛰는데 대단하더랍니다.
"한껏맘껏이 이런 거구나..."
승호는 누리는 시간이 마냥 행복해서
축구골대 앞에서 그리 중얼거리고 있더라지요.
해지도록 아이들이 뛰고 있었답니다.

네 시쯤 정민이가 바람을 넣었지요,
썰매 타러 가자고.
"어제 현애샘은 한 번밖에 안 탔는데
선진샘은 현애샘보다 용기 있어요."
샘들 사이를 오가며 때로는 이간질로 때로는 뭐로
이득을 취하는 무서운 놈들 같으니라고...
선진샘이 정민, 기홍, 창욱, 류옥하다한테 붙들렸다데요.
장판 들고 포대자루 들고 비닐도 들고
동휘 석현 홍관 종훈 승호도 따라붙었답니다.
저들끼리 초급도 있고 중급도 있고 특급도 있습니다,
높이에 따라.
"같이 타요."
류옥하다가 선진샘을 붙잡고 타니 그 무게로 속도가 더해졌겠지요.
"저두 같이 타요."
팔짱끼고 누워서도 타고 엎드려서도 타고...
그러다 모든 애들이 한 데 뭉처 한 번에...
그런데 돌아올 녘 작은 사건이 하나 있었지요.
승호가 가마솥방 쪽으로 달려와 외쳤답니다.
"어른이 도와줘야 해요."
댓마(대나무마을, 학교 뒤)에서 학교로 올라오는 깔끄막에
종훈이가 가시덤불 같은 것에 걸려 오도 가도 못하고 있다는 겁니다.
계단 놔두고 꼭...
"종훈이가, 선생님 데리고 오래요."
저들끼리 끌어 댕겨도 밀어도 안되었던가 보지요.
"무서워요"
(아, 이건 녹음해서 들려줘야 하는데...)
썰매에서 돌아오던 선진샘이 밀고
위에서 정운오아빠가 당겨서 구했더랍니다.

장작불을 피웠지요.
정운오아빠, 금방 불을 붙이더랍니다.
아이들이 한껏 맘껏 누리고 있을 적
어른들이 불 피워 가을걷이 한 것들을 구워 멕이기로 하였더랬지요.
떡도 구워먹고
은행도 구워먹고
감자는 넣어놓고 그만 잊어버렸답디다.
숯덩이가 되어가는 우리들의 감자.
"참새 어떻게 잡는 지 알아?"
정운오아빠의 특강 2탄이었지요.
"말로만 하는 줄 알았는데..."
소쿠리며 준비하셨더라나요.
이거면 전국의 새들 다 잡을 수 있다 했나 봅니다.
"에에, 전국의 새들이 어딨어요?"
"어, 정말 있는데, 야, 광주까치 나와 봐."
한슬이가 핀잔을 주었다던가...
어쨌든 광주에서 온 우리의 홍관 선수가 나왔답니다.
전국에서 모인 아이들이니 지역별로 제 이름자를 달았겠지요.
이 진풍경을 그만 놓쳐버린 억울함이라니...
눈에 다래끼까지 일어나 안대를 하고는
(몸이 아주 전면전을 치루고 있다지요, 이 겨울.)
나도 한껏 맘껏이네 하며 방에 들어와 한풀 쉬고 나가니
아, 글쎄, 대해리 하늘 감자 굽는 냄새만 일 뿐이었지요.

저녁 밥상은 김천 사는 곽보원엄마가 준비하셨습니다.
"가마솥방샘도 한껏맘껏 시간 좀 써보라고..."
부탁을 드렸댔지요.
신기의 할머니가 준비를 해주셨다 합니다.
예, 물론 신기 좋아하는 걸루요, 묵이며 잡채며.
그 묵, 신기네 식구들이 주워 와서 쑨 거라지요.
맛나다고 먹고 또 먹으니 곁에서 누가 알려줍디다.
낮잠을 자고난 신기가 울었는데,
곽보원엄마 몇 차례나 그리 들먹이시더랍니다.
"그래서 부모들 오지마라 그러는 구나."
애들이 엄마 있음 더 서러워한다, 그런 말씀이셨겠지요.

문이 가벼워졌습니다.
우리는 그를 정가이버라 부르기로 하지요.
정운오아빠 말입니다.
정말 못 고치는 게 없습니다.
그런들 학교를 못 올 만치 멀리 살면 무슨 소용 있을 라구요.
곁에 사니 참말 좋은 이웃입니다요.
새 학년에 꼭 밥알식구가 되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낑낑대며 여는 문에 익숙했던 우리들,
아, 그만 문은 자르르 열리고
끊임없이 콰당 소리내며 닫히고 있다지요.

영화 한편에 겨울밤이 깊어갑니다.
"물꼬가 꿈꾸는 세상이 여기 있어요."
"총이 뭔지도 모르고..."
대뜸 승호가 받았지요.
행복해요,
따뜻해요,
활짝 웃어요,
소박해요,
친절해요,
가난해요,
그래도 행복해요,
사랑해요,...
아이들이 영화에서 읽은 물꼬,
또 물꼬가 꿈꾸는 세상에 대한 한마디들이었습니다.
"그토록 보고 싶었던 영화를 대도시에서도 아니고
텔레비전도 없는 이곳에 와서 볼 줄을 정말 상상도 못했어요."
현애샘도 지영샘도 처음 본 거라 합니다.
"영화 느낌 좋았어요.
애들 앞에 싸악 누워있고, 는 애도 있고,
한마디씩 툭툭,
그러다 지들끼리 싸우기도 하고..."
재밌어라 하는 샘이 있는가 하면
"다시는 애들하고 이 영화 안 봐."
좋은 영화 베려놨다고 아쉬워하는 샘도 있었지요.
그런데 영화 막바지, 어서는 제게 종훈 왈,
"옥샘엄마, 대동놀이 언제 해요, 안 해요?"
근 두 시간을 대동놀이를 기다린 종훈이었던 것입니다요.
"무서워요."
총소리가 나면 우리의 종훈이는
머리는 제 쪽으로 들이밀고 엉덩이는 밖으로 높이 들어
마치 만화에 나오는 귀여운 꼬마돼지를 만들어 보이고 있었지요.
물꼬 영화관에서 상영한 영화 제목요?
"웰컴 투 동막골!"
그래서 상범샘은 영화 시작 전
물꼬 상설학교 아이들이 만들어 대문에 켜놓았던
호박등불 사진을 먼저 보여주었지요.
"웰컴 투 물꼬!"

"한 주가 지나서 편안해져서 좋아요,
들 봤을 때 이름이 안 헷갈려서도 좋고."
현애샘이 어른들 하루재기에서 그랬지요.
태석샘은 학교에 볼일이 있어 점심차로 나갔다
낼 저녁차도 들어올 테고,
오늘 저녁답엔 품앗이 정지영샘이 들어왔습니다.
씩씩한 그가 와서 신선해졌다지요.
"꼬맹이들이 살갑게 대해서... 썰매 타러 가자고 약속도 하고,
이런 옷이 있어야 하는데, 신발은 어떤 걸 신어야 하느냐면요 하며
준비물도 꼼꼼히 챙겨주고..."
그런데 처음 우리 아이들을 보며 '통통하다'생각했다 합디다.
죄 그렇잖아요,
기홍이 석현 종훈 주환...

아이들이 제 방들 청소를 할 때
류옥하다는 간장집으로 올라왔습니다, 저가 자는 집이니.
방바닥에서 등을 떼지 못하고 있는데
엄마 안마부터 하더니 청소를 하기 시작합니다.
겨우내 젊은 할아버지가 머물고 계신 옆방까지
이불을 끌어내 먼지를 털고 닦습니다.
이 아이의 수발로 이 겨울이 더 수월타지요.
어제 '먼 산' 오름에서 신발 탓에 더 어려웠음을 알았던 그는
낮엔 쉼터 포도밭, 차가 나뒹굴었던 곳까지 가서
차에 있었던 엄마의 등산화 한 짝을 찾기 위해 수색작전을 펴고 돌아왔습니다,
이 차가운 날씨에 북풍을 맞받으며.
참 든든합니다.
아이 하나도 큰 몫을 하는 산골살이라지요.

장학금을 신청하는 한 품앗이샘을 위한 추천서를 썼습니다.
석 장에 걸쳐 그에 대한 생각과 그가 한 활동들을 기록하였지요.
물꼬 도움샘으로 벌써 3년차입니다.
오랜 품앗이고 논두렁들처럼 그렇게 5년이 되고 7년이 되고 십년이 되겠지요.
물꼬가 해줄 수 있는 일이 있어 기뻤습니다.
그를 통해 많이 배운 시간이었지요.
다시 그와 보낸 날들을 돌아보니, 고맙고 또 고맙습니다.
또한 품앗이샘들 모두가 그러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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