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 계자 여드레째, 2006.1.9.달날. 녹아드는 언 땅

조회 수 1318 추천 수 0 2006.01.10 17:11:00

108 계자 여드레째, 2006.1.9.달날. 녹아드는 언 땅

< 닭 네 마리 >

아침 일곱 시면 이제 훤합니다.
젊은 할아버지는 새벽부터 달골을 한 번 둘러보고 내려오셨지요.
"봄이 오고 있나..."
학교 큰 마당에는 얼어있던 눈이 녹아 질척입니다.

"동휘야!"
그러면 주머니에서 티벳의 전통 악기 하나를 꺼냅니다.
해 건지기 하던 이튿날부터 동휘가 맡게 된 임무지요.
저가 알아서 챙겼다가
명상을 시작하려고 앉아 부르면
가만히 다가와 제 앞에 내려놓습니다.

우리가락을 익혔습니다.
판굿을 해보자 하였지요.
"벌써 매고 칠 수 있어요?"
기본 가락만 익히고 아이들을 바로 일으켜 세웠습니다.
지난 여름 물꼬에서 품앗이 논두렁을 위해 마련했던
'종합선물세트 1 - 풍물특강'의 이동철샘으로부터 배운 거지요.
걸음걸이도 어른이라면 모를까, 따로 가르칠 필요가 없습니다.
치면서 걷다보면
어느새 몸과 악기가 맞는 편한 지점을 저도 모르게 찾을 테니까요.
"돌아다니며 치니까 장단도 헷갈리고..."
한슬이가 아주 곤란하다는 얼굴로 그랬지요.
아이들이 흥에 겨워서 쳐댑니다.
신기는 장구를 맬 엄두가 안 나는지 쳐다만 보고 있으니
한 녀석이 그럽디다.
"처음 왔으니까..."
너그럽게 봐 준다, 뭐 그런 뜻이겠지요.
동휘와 석현이가 또 슬쩍 뒤로 뺍니다, 이 상습범들...
그런 가운데도 배움방과 복도를 돌며
모두가, 정말 모두가 신이 났습니다.
건창이, 어쩜 저리 밝을까요,
세상이 다 보름달이 되는 그의 정신없는 장구 채놀음에
우리들의 흥은 교실을 넘고 학교를 넘고...

오늘 보글보글에선 4색 수제비를 만들었습니다.
당근 수제비 김 통밀, 색깔마다 샘들이 먼저 앉았으니
역시 아이들 저들 가고픈 곳에 끼여 반죽을 시작합니다.
"무지 짰어요."
현애샘네는 국물이 무지 짰다고 원성이 쏟아집니다.
혀가 따가울 만치였다나요.
"어째 그러도록 짠 줄을 몰라?"
"원래 그런 맛인가 하고..."
홍관이는 아주 크게 투덜거렸다 합니다.
"이걸 사람 먹으라고 주는 거야?"
그런데 그때까지 맛없다던 그 모둠의 재화,
맛있다며 한 그릇 더 달라고 하고,
"떡은 맛있잖아."
"물 부어 먹으면 돼."
"밥 말아 먹으니깐 괜찮아."
위로와 위안이 시작되었지요.
"아이들한테 그런 거 배우고 싶어요."
그런 아이들이 현애샘한테는 좋은 배움이었다 했습니다.
"그래도 홍관이는 보글보글할 때 다시는 제 모둠에 안 올거 같애요."
지영샘네가 아주 맛이 있었다지요.
"선진샘이 낸 맛이에요."
한데모임에서 지영샘이 그러자 주환이,
"아이, 우리 것도 좀 해(맛봐)주지..."
벌떡 일어나 선진샘한테 외쳤지요.

'그림엽서' 시간이 있었습니다.
물꼬에 단추만큼 많은 종이이지요.
인쇄업을 하는 물꼬 밥알식구 가운데 한 분이
어데서 종이 조각만 있어도 찜했다 들고 오신 것들입니다.
아이들은 거침없이 만들지요.
입체 카드에 오리고 붙이고...
저학년이라서 더 잘했을지도 모릅니다.
벌써 초등 고학년만 돼도 미술은
잘하는 아이들의 전유물이 되어있기 일쑤거든요.
또 한소리 하고 맙니다.
"아니, 도대체 우리는 아이들 학교를 왜 보내는 거야?"
한슬이는 먼저 떠난 내영샘한테 전해달라고 엽서를 내밀었습니다.
가는 샘까지 챙겼네요.
참 정이 많은 아이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기홍 선수,
엽서보다는 운동장 가에 있는 썰매가 더 눈이 갑니다.
"되게 잘 미끄러져요."
"엄마 안보고 싶어?"
"안보고 싶어요."
어머님, 왜 그러셨대요?(농담인 줄 아시지요?)
그 순간 그 잘난 썰매에 온 마음이 가서 부모가 무슨 소용이었을 라구요.
거의 한시간 여를 끌고 다니다 들어왔데요.
서울 놈은(종훈이) 자기집 주소를 외워 부르고 있고
김천놈(신기)은 주소가 뭐냐 묻고 있습니다.
"저는 갈비 얘기만 썼어요, 안에도"
정민입니다.
아이들 고기타령이 시작되었지요.
어느 해 오래된 계자 식구 승찬이가 계자기간에 집에다 보낸 편지를,
그 집 부엌 냉장고에 붙은 걸 앞에서 읽은 적 있습니다.
계자에 다녀오던 샘들이 저녁을 그 댁에서 대접 받았더랬지요.
"집에 가서 하고(먹고) 싶은 것
1. 초코파이 한 상자
2. 게임
..."
지금은 잊었지만, 세 번째는 고기쯤 되었으려나요?

"부모님께 편지가 잘 보내 졌음 좋겠습니다."
아이들이 한데모임에서 그랬습니다.
"우리께 통과가 잘 갔으면(됐으면)..."
승현이가 일어나자,
"작년에도 (그렇게 형편없이 주소를 썼지만) 잘 갔습니다."
재화의 증언이 있었지요.
아, 이 재화 오늘 하루재기에서 사회도 보았다는데,
"하루 하루 얼마나 다른 데요."
샘들의 칭찬이 쏟아졌지요.

썰매 타러갔습니다.
그런데 승호가 종훈이를 치게 됐데요.
미끄러져내려오다 그랬겠는데, 종훈이가 울었겠지요.
벌칙으로 장판 정리해서 들고 오라 하였답니다.
그런데 정말 약속을 지켜 애들 떠난 썰매장의 장판을 죄 챙겨
다 안고 왔더라지요.
넘들 얼음판을 누빌 때 교실에 남은 아이들도 꼭 몇 있습니다.
신기랑 윤빈이는 안간다는데, 무섭다는데,
왜인가 잘 살펴봐야겠습니다.
윤빈이는 체력이 좀 떨어져있는 듯하고
신기는?
그런데 우리 주환이가 웬일이랍니까?
발이 아프다고 축구 안해야지 안해야지 하고도 또 하면서...
다 갈라져서 온 발, 밤마다 약도 잘 바르건만
워낙에 뛰고 또 뛰니 말짱한 날이 없다마다요.
며칠 전 숨꼬방에 방이 어떤가 살피러 갔더니
주환이가 약을 바르고 있었더랍니다.
"어, 세상에, 그게 뭐야? "
곁에 있던 샘한테 다그치듯 물었지요.
"집에서부터 그래 왔어요."
"그래? 그럼 ,되얏다."
그래도 또 멀쩡해서 밤마다 약은 또 잘 바릅디다요.

아이들이 노래를 불렀지요, 통닭 먹고 싶다고.
한의원을 다녀오며 잠시 고민을 했지요.
내일 읍내나들이에서도 바깥음식을 먹는데...
"제가 지금 어디 갔다 오는 줄 아셔요?
물꼬에는 키우는 닭이 많지요.
오늘 젊은 할아버지가 그 닭을 네 마리나 꺼내주셨어요."
그 닭은 닭을 잡는 집에 갔다가
다시 튀김집으로 갔다가
닭 강정으로 손에 들려 온 게지요.
"시골에서 먹는 치킨이 더 맛있어요."
목소리 큰, 그래서 벌써 숴버린 재화입니다.
한데모임에서 승현이도 손을 번쩍 들었지요.
"어젯밤 옥샘한테 우리들이 통닭 먹고 싶다고 하니까,
넉넉하지 않아 한 조각씩 밖에 못 먹어도 괜찮냐 그랬는데,
괜찮다고 하니까 그렇다면 한 번 생각해보자 하셨는데..."
안 잊고 챙겨줘서 고맙다 합니다.
그 마음이 더 고맙지요.
그때 창욱이가 외칩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많았어요."
한 조각 밖에 못먹을지 모른다 해놨으니...
"밥노래가 그렇게 힘차게 들릴 수 있다는 게..."
아이들 저 행복한 얼굴들 좀 보셔요!

오늘 한데모임은 종훈이와 동휘가 진행을 했습니다.
읍내나들이 갈 때 동희가 목욕 못할까봐 걱정들이 많았지요.
"오늘 보건소를 다녀왔는데, 잘 나았다고 해서 좋았어요."
당장 물에 들어가도 되겠냐 물어왔겠지요.
들어가라 했습니다.
탕에서 수영만 말라 했지요.

대동놀이 갑니다.
"오늘은 고래방에서..."
"고래방에서..."
그렇게 바램을 담은 눈으로 쳐다볼 때
고래방으로 갑니다 하면 지붕이 들썩하도록 환호성들을 지르지요.
배고픈 여우들이 어슬렁거리는 속에 필사적으로 닭들을 지키기도 하고
누군가 바둑이와 떠난 새벽 눈길을 더듬어
우리는 짝을 바꿔가며 춤도 췄지요.
그리고 북유럽 음악에 맞춰 몸으로 겨울물결도 만들었습니다.

하루재기 끝나고 비행기가 날았습니다.
아이들이 어릴 적 주로 아버지들이 아이들 태워주는 다리 비행기 말입니다.
류옥하다가 선진샘네 비행기를 타다 내렸는데,
석현이가 애들 밀치고 지 가슴에 선진샘 발을 딱 붙이면서...
기홍이도 줄을 서더랍니다.
"좋아, 너도 해봐. 석현이도 했어."
모두 무사히 착륙했지요.

샘들 하루재기,
어제 나갔는데, 맘이 편치 않았다는 태석샘입니다.
"아니, 도대에 누가 그 맘을 불편케 했어?"
안에 있는 우리는 괜찮다는데
맡은 바 있으니 마음이 내내 쓰였나 봅니다,
고맙습니다.
"지난 주엔 하루가 에피소드로 딱딱 기억이 났는데,
날이 가니까 이제 섞여버려요,
애들이랑 어울려 있으니 이제 같이 잊어버려..."
이제 할말도 없다는 현애샘입니다.
그래놓고도 이리 몇 줄 기록을 남겼던데요.
"한슬이와 석현이가 싸웠는데 엎드려 울던 한슬이가 반죽 뜯어 넣는 것을 시작하니깐 쓱, 일어나서 아무렇지 않게 같이 했습니다. 가끔 별일 아닌 것을 괜히 달래면서 크게 만드는 것은 아닌가 생각했는데..."
지나친 관심과 배려(?)가 외려 일을 만들기도 한다는 거지요!
어른의 덕목 가운데 '속아주는' 것만큼이나 '모른 척 하기'도
손꼽을 덕목이겠습니다.

불가에서 아이들 얘기를 하고 있는 샘들이 정말 예—Ÿ니다.
초임샘들한테 정말 좋은 공부의 자리란 생각을 하지요.
물꼬는 물꼬대로 바깥 샘들로부터 또 얼마나 배우는데요.
모다 고맙습니다,
이 아름다운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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