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 계자 아흐레째, 2006.1.10.불날. 맑음

조회 수 1569 추천 수 0 2006.01.11 14:01:00

108 계자 아흐레째, 2006.1.10.불날. 맑음

< 달걀찜과 닭튀김 >

"영화안아!"
아이들이 손풀기를 위해 모여 있었지요.
부러 큰 소리로 부릅니다.
"편지 왔어, 여자한테."
"우-"
애들이 아주 난리가 났겠지요.
영환이에게 편지를 건네자 모두 그를 둘러쌌습니다.
"희영이래."
며칠 전에 온 동생 희영이의 편지를 오늘 전해주며 장난을 칩니다.
그렇게 한바탕 웃을 때 대해리의 겨울 아침 햇살도 퍼지고 있었지요.

우리가락 이틀째를 맞습니다.
교실에서 고래방으로 다시 큰 마당으로
공간을 세 곳이나 옮겨가며 칩니다.
"어깨가 아팠는데도, 매고 하니까,
너무 재밌었어요."
주환이가 종일 신나합니다.
고래방에서는 발이 너무 시려 따끔거렸다고
추위를 많이 타는 것이 남 같지 않아 동희가 안쓰럽습니다.
얼어버린 물꼬의 징잡이 동희 대신
종훈이가 저만한 징을 낑낑대고 들고는 큰 마당으로 나옵니다.
태석샘이 함께 들어주었지요.
어머, 그런데 제법 박자를 맞춥니다, 잘 맞춰요.
영환이의 올 겨울도 반팔입니다.
건창이와 동휘, 지들은 볕 좋고 바람 없는 책방 현관 앞에 놓고 두들기다
결국 무리 안으로 들어오네요,
재밌어 뵈니까, 폼 나니까.
흥에 겨운 아이들을 보는 것도 어깨 들썩이게 했지요.
자진몰이로 미지기를 하는데,
여름 같은 열기가 다 일더이다.

모두 읍내나들이(사실은 면소재지) 갔지요.
25분여 버스를 타고 나갑니다.
목욕탕에선 스스로 때도 잘 밀더라지요.
종훈이는 어른같이 밀더랍니다.
샘들이 나올 땐 땀 좀 흘렸을 겠지요,
텔레비전에 빠진 애들 건져 올리느라.
요걸트로 하나씩 얻어먹었습니다.
우체국 들러 참으로 갖가지 모양의 봉투들도 보냈지요.
그런데 우체국에 들어간 아이들이 맨 먼저 한 게 뭘까요?
"우표 주세요!"
아니랍니다, 인터넷 앞으로 전력질주 하더라지요.
황간역에 올라가 전화도 했답니다.
승현이 재화가 한 번 더 하겠다고 해서 줄 선 아이들한테 원성을 샀고
윤빈이가 통화가 길어 뒤에 줄 선 아이들 애를 태웠습니다.
작은 애가 울면서 얘길 하고 있으니 뭐라 그러지도 못하고 말입니다
(그럴 땐 엄마가 알아채고 끊어주심 좋지요오).
다 못해서 정류장 앞에서 또 전화를 하는데
승호 정민이 동휘가 수신자부담으로 한다며,
애들이 그런 걸 다 알데요,
그런데 결국 아무도 못했다 합니다.
서로 이게 맞니 어쩌니 하는데,
버스가 와버렸겠지요.
그래서 학교까지 와서 전화가 이어졌던 게지요.
참, 선진샘이 면접이 있어
아이들 나들이 편에 나간 걸음으로 서울 갔습니다.
예서 보낸 진지한 날들이
샘이 하는 일에도 보탬이 크기를 바랍니다.

자장면을 먹으러 갔지요.
"이제야 씹는 맛이..."
재화 건창 동희는 자장면 그릇까지 발우공양 하고 돌아왔습니다.
버스 안에서 어르신들께 자리도 잘 양보하고
퍼질러 앉아 잘도 놀며들 왔답디다.
주환이가 종훈이에게 문제를 냈어요.
"꽃이 말야, 꽃이 겨울에(을) 어떻게 나는지 알아?"
지도 알아차렸나봐요.
"내가 너한테 문제를 내는 게 이상하다."
전혀 모르는 애한테 그랬다는 말이겠지요.
지가 그냥 가르쳐주더래요.
그런데 버스 안에서 종훈이가 주환이처럼 기홍이한테 문제를 냈다네요.
"점심에는 네 발 낮에 세 발 저녁에 두 발인 게 뭐게?"
그래도 의미가 전달은 되었나 보지요.
기홍이가 얼릉 대답했습니다.
"사람!"
"땡!"
왠지 모르지만 창문이래요.
"창문이 있어. 그런데 하나가 깨졌어, 세 개지?
또 깨졌어. 두 개지?"
뭔 말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그런 게 있나 봅니다.
그런데 말 다 끝내더니 안 되는 그 목을 뒤로 틀며 그러더래요.
"바로 이거 아니겠어!"
우리는 다들 걔네 아빠가 그러는 걸 거라고 짐작하며 웃었지요.

아이들이 허얘서 큰 대문을 들어섭니다.
윗도리에 튀긴 자국으로 역시 자장면 먹었구나 싶습니다.
입가에 자국을 남기기도 했네요.
"영환아, 전화 했니?"
"안 해도 돼요."
전화 못하고 들어온 정민 수진 예진 예지 기홍이가 교무실로 들어섭니다.
"나는 엄마 걱정 안 해요."
"기홍아, 네가 문제가 아니고 니네 엄마가 상태가 안 좋으시댄다."
기홍이는 여기가 참말 좋다거든요, 아무도 잔소리 안한다고.
한 녀석씩 전화를 하는 사이
우리들이 함께 하는 수다가 참말 좋았습니다.
"야, 니네 엄마는 지금 외식 중이실 거다, 으, 저 화려한 식탁..."
"동생이 너 보내놓고 정말 신이 났을 걸."
약도 올립니다.
"샘은 몇 살이에요?"
"쉰여덟, 아니 한 살 더 먹었으니까 쉰아홉."
"어, 우리 엄마보다 적네. 그런데 더 젊은 보이세요."
"그래? 애들하고 있으니까 그런 모양이네."
"이거 예뿌다."
"내가 만들었지."
"이런 것도 만들줄 아세요?"
"응, 우리는 교장 뽑을 때 그거 누가 잘 만드나로 뽑거든."
어느새 무엇이 진담이고 농담인지 경계가 없어져버립니다.
그렇게 얘기를 나누고 있는 시간을 너도 즐기고 나도 즐기는 거지요.

홍관이와 재화가 진행을 맡은 한데모입니다.
종훈이가 맨 먼저 손을 번쩍 들지요.
"짜장면이 마시섰써요!"
"탕이 하나 밖에 없어서 아쉬웠어요."
건창입니다.
"아니 시골 면소재지 목욕탕에 탕이 하나면 됐지, 내 참..."
"엄마 목소리를 오랜만에 들어서 그런지 감동적이었어요."
승현입니다.
윤빈이도 덧붙입니다.
"엄마 목소리에 눈물 났어요."
"괜히 전화했어요, 하고 나니까 더 보고 싶어."
주환이입니다.
"손님맞이를 어떡하면 좋을까요?"
내일 들어올 여덟의 친구들을 위해
우리가 무엇을 나눌 수 있을까 의논합니다.
풍물이랑 그림자극을 보여주자 합니다.
"낼 아침에 의논하죠?"
승호지요.
"더하실 말씀 없으십니까?"
"없어요."
얼릉 대답해버리는 기홍입니다.
다들 대동놀이를 기다리는 게지요.

대동놀이를 배움방에서 한다 하니 저 실망하는 목소리들,
그러나, 여기라고 환호성을 못 지를 것도 없지요.
모래판이 만들어지고 씨름선수들이 등장합니다.
무기는 엉덩이!
"이 패는?"
"달걀찜!"
준비라도 했는 양 말 떨어지기가 무섭습니다.
"자, 그럼 이 패는?"
"닭튀김!"
유달리 고기타령을 많이 하는 이번 계자 아이들이라지요.
"봐라, 저 몸들을. (안그렇겠는지)"
샘들이 고개 끄덕였답니다.
종훈이 저 용쓰는 표정 좀 보셔요.
동희랑 하다랑 윤빈이는 시작하자마자 밀려버립니다.
홍관이가 천하장사급이네요.
홍관이에게 몇 차례 밀린 달걀찜패,
"우리가 이름이 나뿐가 봐. 소갈비!"
말할 때 밀렸다고 억울해진 건창이도 눈물바람,
더 나서질 못해서 아쉬워 우는 주환이,
대동놀이에선 아주 목숨들을 건다지요.
밤새도록도 하겠습디다.
마지막으로 닭튀김패의 재화와 석현,
그리고 소갈비패의 종훈이와 영환이가 결승전을 치릅니다.
역시 이름 잘 지어야 합니다.
소갈비가 이겼답니다, 닭튀김에.

아이들이 계절학교 올 때 준비물 가운데는 밑반찬이란 게 있습니다.
아이가 잘 먹는 반찬으로 굳이 엄마 손을 빌어 좀 싸 달라하지요.
오래 먹어온 어머니의 음식솜씨는
먼 나라를 가서도 가슴 시리게 하는 조국의 모든 얼굴이기까지 합디다.
오늘 싸온 반찬 가운데 김이 나왔습니다.
"아무래도 우리 엄마 김인 것 같애. 느낌이 그래."
"나도 김을 한 상자(?) 가져왔는데..."
빈이와 한슬이가 서로 제 김이라 하였지요.
둘의 김이 이어 나왔는데...
동휘도 제 반찬을 오래 기다렸습니다.
"쥐포 언제 나와요? 우리가 못 먹고 가는 수도 있어요?"
너무 맛있어서 아빠가 쓰러졌다 합니다.
부모님으로선 귀찮겠으나
정말 좋은 준비물이란 생각을 오늘도 했더랍니다.

샘들 하루재기로 하루를 닫지요.
"애들 집에 가고픈 3대요인이 뭔 줄 아세요?"
"고기!"
"게임!"
"텔레비전!"
"학원은 절대 싫어하고!"
금새 알아맞혀버립니다.
해마다 똑같습니다.
"삶이 다 똑같은 것 같애요."
그러게 말입니다.
고기에 대해선 야채식단이 집집이 늘어도
학교 급식에서 고기반찬이 차지하는 비율이 큰 게 아닌가
짐작해보았더랍니다.
사실 고기 요리, 참 만만하니까요.
"저녁 시간 현애샘을 괴롭히는(장난치는) 아이들 보며 고맙다는 생각이..."
어떨 때 예쁘게 말하지 않는 재화지만
열택샘은 오늘 현애샘과 몸으로 뒹굴고 있는 그와 석현이를 보며
시험 쳐놓고 심적 부담이 클 현애샘을
잠시라도 그것으로부터 잊게 하는 게 아닌가 싶더랍니다.
"살아가는 게 그런 게 아닌가, 관계가..."

계자 가운데 있어도 학교로서는 일상이 이어지지요.
더구나 공동체를 이루고 사니
이곳 사람들로서는 일상적 삶이 고스란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계자가 굴러가는 동일한 시간에
학교가, 또 공동체가 해야 할 일들도 같이 굴러가지요.
달골 아이들집을 짓느라 뭘 받고 났더니
이편에서도 해야 할 의무도 늘었습니다.
얼굴 비칠 데가 많아졌지요.
오늘도 전화 통화를 몇 군데와 하며, 문득 스스로 억압이 느껴졌더랍니다.
자주독립, 그래서 중요했던가 보다, 새삼스러웠지요.
그간 이 산골 살며 세상의 관계에 더 느슨했던 것도
자립적 삶 덕이 아니었던가 싶습디다.
홀로 살 수 있는 힘,
아이들에게 이 산골에서 깊이 키워주고픈 큰 까닭 하나지요.
그것이 자유의 거대한 바탕이기 때문입니다.

눈에 문제가 좀 생겼는데, 금새 가라앉았습니다.
주로 몸이 스스로 회복할 수 있게 기다리는데,
눈 같은 경우는 빨리 안과를 찾지요.
이번에도 나갈 짬이 없어 자가 진단 뒤 생약을 하루저녁 먹고 갔는데
오늘 저녁 안대를 뗄 수가 있었답니다.
초기 진압이 필요한 것을 잘 가려야겠습니다.

"어른 노릇 하기가..."
어르신들이 자주 그러셨지요.
가난한 자식한테 뭘 더 주지 해도
넉넉한 자식 마음이 또 그렇지가 않다 합니다.
그래서 고향 다녀가는 자식들,
눈에 보이는 짐 보따리는 같은 크기로 싸 주고
살째기 가난한 살림 보태준다지요.
선생노릇도 다르지 않겠습니다.
칭찬이 한 아이를 북돋을 수 있겠으나
다른 아이들 편에서 보면 불편을 낳을 수도 있을 테지요.
물론 한 아이가 받는 칭찬에 모두가 같이 손뼉 칠 수 있는 품성을 길러주는 것도
교사의 커다란 몫이겠지만.
또한, 칭찬이 행위의 동력이어선 아니 되겠지요.
그게 진리니까, 그게 삶의 자세니까 독려하는 것임을 알려야 할 테지요.
칭찬, 참으로 잘 써야할 물건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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