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 계자 열흘째, 2006.1.11.물날. 맑음

조회 수 1257 추천 수 0 2006.01.14 00:33:00

108 계자 열흘째, 2006.1.11.물날. 맑음

< 불행한 소식을 전하게 되어 유감입니다 >

아침 음악을 여유 있게 골라 놓았더니
한결 맑게 다가오는 아침입니다.
예지랑 종훈이랑 신기랑 음악에 맞춰 발로 춤도 추었지요.
저들은 죙일도 할 기센데,
역시 어른이 못 따라갑니다.

"앉지 마세요."
"왜?"
"반찬이 모자라."
"모자라면 내가 갖고 오께."
종훈이가 또 무슨 말을 보태더랍니다.
앞자리에서 상범샘이 밥 잘 먹고 있는데, 기어코 일으켜 세웠다지요.
알고 보니 옥샘 자리라고 찜해놨다는 겁니다.
절대 직접적으로 말 안하는 능구렁이 종훈이.

손풀기를 끝내고 손님맞이를 어찌할까 의논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 오늘 손풀기 시간은 마치 상설학교 아이들의 달날 아침처럼
귀도 닦이고 손톱도 깎였지요.
목욕탕에 갔을 적 하랬더니만 꼭 아니 한 놈들 있다지요.
그런 시간이면 그 아이에게만 하고픈 얘기들을 나누기 참 좋습니다.
특히 다른 이가 들어서 좋은 것도 없는
그 아이의 단점에 관한 거라면 더할 나위 없는 시간이지요.

'손님맞이' 채비를 합니다.
두 패로 나뉘어 두부과자를 만들고
단추를 꿰어 환영 목걸이를 만들자 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두 패를 나눌 수 있었겠어요,
모두가 두부과자에 들어가고플 텐데?
이러저러 어린 나이에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자, 일곱 살(여덟 살 되는) 종훈이와 신기부터!"
너무 너무 두부과자를 만들고픈 주환이,
무릎을 낮춰 나도 일곱 살이라고 걸어 나왔지요.
"그럼 나랑 똑같네."
종훈이가 얼른 받았습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친구 하자 그럴 거다, 뭐 이런 말이 들어있었겠지요.
"그래, 나와라, 그런 수모를 당하고 싶으면."
예, 주환이는 그만 뜻을 접어야 했답니다.
그리고 1학년 아이들까지 더해져
여섯이 가마솥방으로 보내졌지요.

"우리 여섯 명이니까 6총사네."
창욱이가 그랬습니다.
"6총사가 어딨어, 3총사지?"
빈입니다.
"그럼, 3총사 두 개 해."
깔끔하게 정리해주는 이웃들입니다.
쿠키 틀을 어떻게 하면 서로서로 싸우지 않고 잘 쓸까를 위해
길고 긴 토론이 있었다지요.
"하나 찍고 왼쪽으로 넘겨 줘."
류옥하다가 열심히 말했지만 아무도 호응을 안 해줬대요.
"찍고 가운데 놓고 또 찍고 싶으면 찍어요."
예지가 말하자 종훈이,
"그러면 싸워"
그랬답니다.
그런데 희정샘이 쿠키틀을 꺼내놨는데,
"아무렇게나 찍어."
하며 그 공들인 토론을 무색하게 만들어버렸다지요.

단추목걸이.
갖가지 모양, 갖가지 색깔, 갖가지 재료들로 이루어진 단추입니다.
아이들이 여러 무늬를 그리며 꿰는데
한 사람은 찾아 주고 다른 사람은 줄에 뀁니다.
목걸이, 정말 예뻤습니다.
"열심히 만들어 주어서 하고 다닐 줄 알았는데,
안 하고 다녀서 섭섭해요."
모둠 하루재기에서 누가 그러더라지요.
"여튼 활동을 시작하면 열심히 합니다."
정말 그래요.
퉁퉁거리더니 웬걸요,
단추목걸이를 만들기 위한 강좌도 열린교실에 개설해 달라는 겁니다.

새 얼굴들이 왔습니다.
남자 다섯, 여자 셋이 왔지요.
그래서 남은 5박 6일은 아이가 모두 스물아홉입니다.
먼저 와 있던 아이들이 버스정류장까지 나가서
오는 이들을 맞았습니다.
정근이도 오고 경표도 오고 지혜도 오고
처음 보는 제우 도훈 정우 채리가 왔지요.
"너는 누구야? 도훈이가 너구나. 어서 와."
그러고 다른 얼굴을 찾아 고개 돌리는데,
"장석현이요."
석현 선수가 낼름 제 이름을 읊습니다.
그다워 또 웃는다지요.
아이들과 대문을 들어섭니다.
제 곁에 종훈이가 손을 잡고 그 곁으로 석현이,
그 줄 끝에 경표가 걷고 있었지요.
종훈이가 무슨 말인가를 해서 석현이가 막 대답을 해주었는데,
곁의 경표가 물었습니다.
"니 동생이가?"
"아니."
"그런데 꼭 닮았다."
저엉말 닮았다니까요.
주환이까지 있으면 똥글이 삼형제,
기홍이까지 있으면 오동통 사형제?

점심을 먹고 모두 모였습니다.
새로 온 아이들에게 있던 아이들이 목걸이를 걸어주었습니다,
비행장에서 내리면 꽃목걸이를 걸어주는 하와이언들처럼.
참 곱게도 만들었데요,
애썼겠더라구요.
다른 아이들은 옆방으로 건너가 공연할 그림자극을 연습하고
여덟의 아이들은 잠깐 안내말을 들었지요.
옷들을 꺼내 이름들도 썼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하지요,
분명 양말짝에까지 이름을 써 달라 했건만...
우리나라 사람들 정말 말 안 듣습니다!
뭘 해오라 안내하면 그리 하지 않는 이의 수가 너무 많아요.
"옥샘, 지난 여름에도 그걸로 분노하셨는데..."
샘들 하루재기에서 다른 샘들이 그랬지요.
정우와 채리는 요일별로 옷이 어찌나 많은지요.
"계절학교, 캠프 같은 것 처음 온 걸까?"
"아니요, 많이 다녀봤어요."
"그런데 왜 옷장을 통째로 옮겨온 거야?"
놀리자, 또 놀리는 줄 알아 한바탕들 웃습니다.
아이들은 글집부터 완성했습니다.
성탄이 주요 주제입니다.
채리는 루돌프를, 경표는 산타를, 도훈이도 놀래는 산타,
그리고 정근이는 외계인 산타입니다.
은하가 금방 사귄 채리와 자기 얼굴을 그려 넣었고,
정우는 하얀 구름이 떠다니는 하늘을,
지혜는 바람이 부는 기분 좋은 봄날 같은 풍경을,
제우는 무슨 게임에 나오는 캐릭터(애들은 다 알던데...)를 그렸지요.

고래방에서 그림자극 두 편이 무대에 올려졌습니다.
예뿌지요, 처음 보는 어른들은
영락없이 정말 이쁘다고 입을 다물지 못하지요.
아이들도 다르지 않습니다.
늦게 합류한 친구들을 위한 작은 선물입니다.
그런데 승호가 다른 모둠 공연 때
지나치게 큰 목소리로 관객석에 앉아
눈총을 좀 받았지요.
하는 것보다 보는 것에 대한 예의에 대해
더 많은 얘기가 필요하겠습니다.

재화가 극이 끝나고 모두 모여 다음 안내를 들을 때
시비 걸듯 하는 '반응' 땜에 잠깐 한 소리 들었습니다.
"어, 왜요?"
그렇게 반응해서 벌도 서고 매도 맞았더래요, 학교에서.
"여긴 그러지 않아."
다만 우리 다르게 반응하는 법을 생각해 보자 합니다.
익힐 수 있을 겝니다.
그가 문제가 아니라 다만 몸에 붙은 반응이 문제니까.
혼낼 일도 아니고 벌을 세울 것도 아니고
다른 반응을 열심히 가르쳐야지요, 뭐.

모두 우리들의 썰매장(물론 눈이 오면 눈썰매장이지요)에 갔습니다.
환영식인 셈인가...
"놀래 넘어지실 걸요."
"여기서부터 눈을 감아야 해요."
"이제 뜨게 해도 되잖을까?"
"아니야, 아니야, 더 가야 돼."
"이제 떠요. 샘, 끝내주죠?"
처음 지영샘을 데리고 썰매장을 간 아이들이 그랬다지요.
아이들의 사랑을 온통 받는 그 썰매장입니다.
반은 수로고 반은 길인 경사진 그 곳에서 우리는
그냥 날아댕겼지요.
그런데, 승현이가 눈썹 꼬리 쪽 아래가 쬐끔 찢어졌습니다,
꿰맬 정도는 아니고.
어제는 손을 긁히더니...
"승현이 데려 가얄 것 같아요."
피가 나는데 그래도 타고 싶다지요.
피 한 번 쓰윽 닦아주고 타라 그랬습니다.
이미 난 상처를 어쩝니까요.
태석샘과 상범샘 현애샘이
장판을 잘라 끈을 맬 수 있는 구멍까지 뚫어 부리나케 왔습니다.
"초고속예요."
안되겠습디다, 그건 눈썰매장용이에요.
이런 얼음판에선 그대로 조 아래까지 튕겨나가겠습디다.
상황을 좀 정리해보았지요.
올라가는 패가 내려오는 패들에 뒤엉켜 함께 뒹굴려 오기도 합니다.
그래서 올라가는 길을 따로 정하고,
또 아래 위험한 쪽에선
샘 둘이 진을 치고 아이들을 받아줍니다.
애써 가져온 것이긴 하나 장판을 치우고
차라리 몸으로 타자 합니다.
눈 부라리며 찾은 덕에
넘의 집 밭에서 버린 비료포대를 둘이나 건졌지요.
거기 짚을 넣어 돌려가며 타기도 합니다.
너무 젖은 아이들은 먼저 가는 현애샘 편에 부치기도 했지요.

돌아오던 길,
종훈이가 예지랑 지영샘이랑 비밀 얘기가 있다고
뒤에 오던 우리들을 먼저 가라 하였습니다.
"이제 얘기해."
추운 지영샘은 자꾸 재촉하는데 종훈이가 그럽니다.
"상범샘 없어질 때까지요."
젊은 할아버지랑 태석샘이랑 상범샘이랑 한참을 걸어오다 돌아보니
아까 그 자리에서 여직 비밀 얘기 중입디다.
그런데 사람을 잘 골라야지,
지영샘이 벌써 다 퍼뜨렸지롱.
비밀 하나.
"신기는 키가 작아요."
비밀 둘.
대해리 저녁 버스가 지나가며 매연을 뿜었는데
신기가 뒤에 있었던 모양이지요.
"왜 나한테 연기를 뿜고 가는 거야?"
신기가 소리쳤답니다.
그래서 신기를 불러 연기가 아니고 매연이라고 말해줄라 그랬는데
신기가 아무리 불러도 대답 않고 가더라지요.
"그래서 '바보', 이렇게 속으로 생각했어요."
비밀 셋.
또 신기 이야기입니다.
둘이 같이 오줌을 눴대요.
그런데 신기가 고추를 다 드러내고 누더라나요.
"야, 고추 다 보여."
"야, 너는 고추 없나?"
속으로 '미친놈'하고 생각했답니다.
아이쿠, 글쎄 세 가지나 되었더래요.
"아무래도 신기를 의식하는 거예요."
샘들이 다들 그랬지요.
왜냐면 신기란 놈 또한 보통이 아니거든요.
"샘, 정말 사람은 오래 사궈 봐야 해요.
쟤 정말 말 많이 해요."
다른 형아들이 고개 절래절래 흔들었댑니다.

한데모임 진행자를 어제 뽑아놓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그냥 제가 할까요?"
"저 형 하라 그래요."
영환이가 불려나왔습니다.
"혼자서 해요? 그래도 한 사람 붙여주세요."
동휘가 가서 배경이 되어주었지요.
"옥샘이 아침에 좋은 소식이라고,
신기와 종훈이가 사이좋다는 얘기를 하셨잖아요?"
그런데 오늘 신기와 종훈이가 싸운 '불행한' 소식을
주환이가 전하게 되어 유감이라 합니다.
아니, 아침에 모든 아이들 다 있는 데서 자랑스레 아름다운 소식을 전했건만...
"우리는 서로 잘 도와주기로 했어요.
"그래서 무서울 때도 같이 가 주기로 했어요."
"어제 화장실 갈 때도 제가 따뜻하라고 신은 신발(덧버선), 종훈이가 들고 있었어요."
그리고 저는 종훈이 공 들고 있었어요."
종훈이와 신기 말도 그대로 옮겨서 좀 배워라고 얘기해줬건만...
오늘 무슨 심통으로 둘이 서로 틱틱거려 안논답니다요.
"제가 눈썰매 탈 때 류옥하다 뒤에 탔다가
빠져 나올려고 하다가, 그럴 려고 한 게 아닌데, 포대를 빼서..."
홍관이 류옥하다한테 공식적으로 사과를 합니다.
멋있습니다
그만 멋쩍어진 류옥하다...
홍관이와 재화는 단추목걸이 갖고 싶다고 일어섰습니다.
"나도 늦게 올 걸(그래서 목걸이 받을 걸)..."

대동놀이에서 오늘도 씨름판이 벌어졌지요.
닭씨름판은 고래방이었답니다.
숟가락패랑 젓가락패가 기를 쓰고 합니다.
그런데 열택샘과 상범샘, 아주 사람 잡을 듯이 붙더니
기어이 상범샘이 넘어지는 열택샘한테 부딪혀 코피가 났습니다.
"애들이 다칠 것 대신 다친 게야.
어른이니 다행이지."
그래도 코뼈가 비뚤어진 정도니
낼은 병원에 가야겠지요.
여튼 참 별의별 구색을 다 갖춥니다요.

"오늘 애들이 좀 달떴지요?"
"마침 그 얘기 하고 있었어요,
오늘이 다른 날 세배는 힘들다고."
서서히 본성들이 드러난다?
아이들 정말 시끄럽데요, 손님 왔다 그랬겠지요.
게다 온 녀석들도 만만찮은 걸요.
소리 지를 일 없는 이곳에서
나누는 얘기가 안 들릴 만치 시끄러워 옆방에 달려가 냅다 언성을 다 높였습니다.
게다 오늘은 유달리 많이 싸우더라지요, 날궂이도 아니고.
승현이랑 창욱이, 또 승현이랑 석현이, 건창이랑 창욱이,
재화는 상대를 두루두루 바꿔가며, 홍관이는 또 누구랑...
우리 창욱이, 입이 거칠다 합니다, 그것도 어른들처럼.
속이 상합니다.
승호는 또 입이 조옴 걸어야지요.
홍관이는 정말 다른 말을 잘 몰라서 거친 말을 쓸 때가 더러 있습니다.
"그럴 땐 너무, 매우, 아주, 심하게, 그런 말들로 바꿔보자."
"아, 그렇구나."
또 금방 고치지요.
엊저녁 샘들 하루재기에서 아이들이 저들끼리 욕들을 많이 한다길래
오늘 당장 아침모임에서 욕에 대한 말을 나누었건만
너무나 일상적으로 아이들의 세계에서 쓰이고 있는 말들이니
예서도 낯선 곳이라는 긴장이 떨어지기 시작할 즈음부터
툭툭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우리 사는 세상의 반영일 테지요.
눈에 대한 표현이 50여개나 되는 알래스카처럼
이 땅의 고운 형용사들로 얘기 나누고 싶습니다.

거의 날마다 오줌을 싸는 아이가 있습니다.
그게 아이들과의 관계에서 문제가 되지는 않습니다.
이곳이니까요, 물꼬니까요.
그런데 날마다 나오는 몇 장씩의 이불 빨래가 수월찮지요.
아이들이 집 떠나, 또 아주 불편한 산골에서,
또 정신없이 놀아 노곤함으로
더러 지도를 그리는 경우는 있지만
이 아이는 집에서도 자주 싼다 했습니다.
그의 부모님이 야속했지요. 얘기를 해줄 수도 있었으련..

아이쿠, 소란도 했던 하루가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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