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 다른 삶을 꿈꾸시나요? (2005.10)

조회 수 1307 추천 수 0 2005.12.28 12:26:00

< 다른 길을 가는 법 >


가끔 여름 같은 햇살이 다녀가기도 하는 가을입니다.
무고하신지요?

젊은 날 뜨겁게 확신하며 자신의 삶을 걸었던 큰 뜻이 누군들 없었을 까요.
"대단하세요."
더러 물꼬를 찾아오는, 특히 기사를 쓰는 양반들은 얘기 끝머리 께 꼭 그리들 말합니다.
물꼬가 살았던 긴긴 시간에 대한 찬사고
얼어 죽지 않고 살아준 것에 대한 진보적 사회구성원으로서의 감사쯤 되겠지요.
'대단한 신념!'
그래요, 저 역시 그런 줄 알았습니다.
생을 나름대로 뜻한 대로 살려면
그 삶에 대한 나름의 신념, 그것도 절대적인 확신이 필요한 거라구,
그리 목소리를 높인 날도 없지 않았을 겝니다.
꺾이지 않을 전사처럼 나아가야는 줄 알았겠지요.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이미 존재하건만 나를 끊임없이 증명해야 하는 곳,
생명의 연관 고리를 잃어버린 데다 순환되지 않는 삶,
지구 전체적으로 늘어난 생산력에도 여전히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기막힌 삶,
나날이 전 세계가 '중심화' 되어 가는 속에
나름대로 저항하려 애쓰며 살았지요.
무엇보다 지독한 서글픔은
진정 '살아 숨쉬는 것이 갖는 경이'가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무슨 대단한 깃발을 세우며 만주벌판 달리던 투사처럼 살겠다는 게 아니라
다만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렇게 사는 삶이 견딜 수 없으니 어떻게 하나요?
다른 길을 본 거지요.
뭐 그리 대단한 길이 아니어도 되었던 겁니다.
그냥 그 길이 아닌 길을 걸어간 게지요.
아하,
'그게 아니니까' 갔던 겁니다.
오랫동안 그렇다고 자신조차 착각했지만….

헐렁해졌습니다.
생에 별반 다른 길이 없다는 정도의 확신만으로 충분하단 걸 그만 알아챈 게지요.
커다란 확신이 아니어도 자기 가치관을 실현해나갈 수 있습니다.
꼭 끼던 옷을 벗고 나니 어찌나 자유롭던지요.
뛸 수도 있었고 날 수도 있었으며
쭈그려 앉아 모래성도 한참 쌓을 수 있었지요.
이런 순간들을 자-유-롭-다 하나요?

그렇다면 그 설렁설렁하다는 확신은 어느 정도의 범주여야 할까요?
봄 하늘 벚꽃 아래서
가을 하늘 은행잎 아래서
우리는 그 계절의 절정을 만나고는 하지요.
우리 생 또한 타오르는 담쟁이넝쿨이 그린 가을의 절정 같은 순간들이 있을 테지요,
마치 그날을 위해 살아온 듯한.
그러나, 우리 삶을 이루는 대부분의 날들은
나날의 소소한 즐거움이 채우지 않던 가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현재 살고 있는 자신의 삶에 대한 확신의 근거가 될 수 있잖을 지요.
깨문 입술에 핏자국 남기는 결심으로 우리가 행복을 얻을 수 있는 건 정말 아닌듯합니다.
어제도 무언가를 어마어마한 에너지로 결심했을지 모르지요.
헌데 그런 신념 아니어도 다른 길을 넉넉히 걸어갈 수 있더라니까요.

사랑하는 그대, 혹 다른 삶을 꿈꾸지만 머뭇거리고 계신가요?
"이 산이 아닌 갑다."
그러면 다른 산을 오르면 되지요.
그 산이 아니므로 다른 산을 오르는 겁니다.
자, 신발 끈을 다시 묶고 가볍게 새 산을 오르는데 우리 동무되면 어떨지요….

(20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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