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 계자 첫날, 2006.1.2.달날.맑음

조회 수 1270 추천 수 0 2006.01.03 14:13:00

108 계자 첫날, 2006.1.2.달날.맑음

<호숫가 나무 아래서 글집을 완성하다>

자정이 넘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야, 불빛이 전멸입니다.
이런 날이 다 오다니...
조금 여유로이 꾸려보자 늘 말은 해놓고
속틀(일정표)을 앞에 놓으면 또 욕심을 이기지 못해
늘 바리바리 싸는 짐처럼 요것조것 집어넣어 왔지요.
그런데 이번엔 식구 가운데 배가 부른 이도 있고 해서
더욱 시간 흐름에 마음을 쓰게 되었더이다.
계자 첫 밤이 이리 흘러갑니다요.

1994년 여름에 시작한 계자가 백여덟 번째를 맞습니다.
" 2005 겨울, 계절 자유학교
- 겨울밭에 마늘이 자란다 - 1"
코 수술을 하고 회복을 기다리는 승찬이가 올 수 없게 되었고,
김천 사는 신기가 응급실에 실려가 아직 못 오고 있으니
스물 아이와 열다섯의 어른(새끼일꾼 둘 포함)이 보름 일정을 시작합니다.
(아, 마지막 5박 6일은 몇 아이들이 또 들어와서 같이 지내지요)
역에서 기홍이네 아버지가 그랬다데요.
오는 날이든 가는 날이든 하루 정도는 주말로 잡지 그랬냐고.
그러게요, 산골 사니 워낙에 요일 개념이 없었던 게지요.
다음엔 꼭 그럴려 합니다.
"애들이 여기 익숙해요.
그래서 여기 살던 애들 같은, 처음 오는 애들도 자연스레 섞여서...
첫날이 아니라 한 달 정도는 해온 것 같은..."
현애샘만의 느낌이 아니랍니다.
게다 이번 계자는 상설학교 움직임을 많이 좇았더니
더욱 일상적인 움직인 같다지요.

뜻밖이라 합니다.
첫날 첫 시간을 '호숫가나무'로 맞아서.
볕 좋은 호숫가로 나가 커다란 느티나무 아래서
아주 긴 이야기를 하는 게지요.
물론 유리 슐레비츠의 그림책 하나로 시작합니다,
마치 호수에 나가 느티나무 아래 앉았는 것처럼.
지낸 시간들에 대해 충분히 흐름을 익히고
어른이 미리 짜 둔 속틀을 바꿔보기도 하고
자유학교 물꼬가 하는 생각에 대해서도 들여다봅니다.
그리고 계자동안 들고 다니는 자료집인 글집(마치 만들다 만 것 같은)을 완성했지요.
자기 색깔을 입히는 겁니다.
풀과 꽃을 담은 예진이,
큰 집에서 살고 싶다며 제목도 그리 쓰고 집을 그려 넣은 영환이,
'동물과 사람이 평화롭고 자유롭게 산다'고 쓴 동희,
차를 사랑하는 종훈이,
자연 환경이라고 쓰고 그림을 그린 주환이,
우주인들이 사는 나라를 가득 그려놓은 윤빈이,
얼마 전 간 경복궁이 인상 깊었노라는 류옥하다,
'맑은 것'이라 이름을 붙이고 노랗고 환한 종을 그려둔 승호,
그리고 기홍이는 한 편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사람들에게 핍박받던 지렁이가 용이 되어 그들을 혼내키는.
2006년 월드컵 축구 이기라는 바램을 담은 승현,
푸른바다가 펼쳐진 수진이의 글집,
고뇌하며 여백으로 남겨놓은 홍관,
'산들'을 곱게 써넣은 동휘,
분위기 어색하다 한 소리 들은 지구정복의 건창,
'떡국 먹어서 아홉 살이 되었어요'하며 떡국 먹는 창욱이가 든 그림,
하늘을 넣은 예지,
'용과 돼지가 함께 산다'는 정민,
즐거운 노래라는 제목으로 음표가 움직이는 한슬이의 글집,
넘들 따라 그렸다는 재화의 자연,
파스텔그림이 그저 신기해서 손바닥에 더 많이 그린 석현이였답니다.
그렇게도 아이들을 읽지요,
그림은 좋은 거울 하나가 되어줍니다.
자주 흘리고 다니는 글집이 이번 계자에선 좀 귀해질 라나요...

일을 하러 나갑니다.
교실을 나무보일러로 데우니
나무 먹는 하마인 뒤란의 아궁이에 장작을 쌓아도 쌓아도 훌러덩 비겠지요.
"초반에 힘을 너무 많이 빼는 거 아냐?"
"우리, 날이 많아."
젊은 할아버지는 한 둘만 올려주려는데
아이들은 소리칩니다, 샘들이 말려보지만.
"하나 더 줘요."
팔이 아프다는 여자샘들한테 석현이가 멀리서 그래요.
"나 줘요, 나 줘요."
그러다 기어이 사고도 나지요.
정민이가 나무를 들고 가다 장독대 곁을 지났더랍니다.
"나무가 깨졌어요."
나무 부스러기가 항아리뚜껑 예제 흩어져있었겠지요.
곁에서 한 샘이 묻습니다.
"그런데, 이건 뭐야?"
"어, 근데 왜 항아리 조각이 있지?"
항아리가 뚜껑 하나를 잃었던 게지요.
수민이형의 소개를 받고 처음 새끼일꾼으로 같이 온 유리형은
빈 글집을 받고 무엇을 그릴까 망설이다
나중에 예서 든 느낌을 옮기겠다 하였지요.
밤, 그가 처음 이곳을 찾는 여느 사람들처럼 또 덧붙입디다.
지금도 좋지만 너무 늦게 왔다고,
초등학교 유치원 때 왔어야 했다고.
"배울 게 너무 많아요."
"억울하지?
나는 첨 왔을 때 너무 너무 속상했는데, 내가 어릴 때는 이런 곳이 왜 없었냐고."
한 마디씩 보태주었지요.

"아이들 오는 날이라고 따뜻한 갑네요."
젊은 할아버지 말씀처럼 날 푹하니
아이들은 운동장으로 쏟아져 공을 찼습니다.
남자샘들도 붙어 신이 났지요.

저녁 설거지는 자원봉사로 이루어졌습니다.
동휘 동희 정민 윤빈 재화 승호가 손 번쩍 들었지요.
정작 한 이는 동희 재화 승호였지만,
모두 마음을 내는 게 멋있었답니다.
그렇더라도 동휘 재화 승호는 시끄러워죽겠다는 핀잔을 피할 길 없다지요.

한데모임을 하러 배움방으로 아이들이 모이고 있었습니다.
먼저 와 있던 이들은 숨바꼭질을 하였지요.
그런데 커튼만 들치면 다 있습니다.
오목을 하고 있다 뒤늦게 좇아간 석현,
상 밑에 숨는다 들어갔는데,
아, 그만 배가 걸려 바둥바둥...

아이들이 닮았습니다.
주환이랑 기홍이가 형제 같고
석현이와 종훈이가 꼭 형제 같습니다.
둘과 둘은 또 사촌 같으지요.
"석현아, 니 동생 같다."
사람들이 종훈이를 보며 석현이에게 그랬지요.
"이름이 뭐야?"
예쁘게 웃으며 석현이가 종훈이에게 물었다지요.
나란히 앉았을 적 재화가 너는 글씨도 모르냐, 종훈이에게 핀잔을 주니
석현이가 얼릉 그랬다고도 합디다.
"그래도 귀엽잖아."
석현이의 종훈이 돌봄이 얼마나 유지되려나요.

한데모임에선 노래와 손말도 익히고
대동놀이로 시간은 옮아가 떠들썩한 놀이와 소리 없는 놀이로 잘 놀았지요.
옛적부터 아이들이 마을 공터를 차지하고 놀던 놀이가
늘 계자 첫날 대동놀이였는데,
다른 놀이를 한 것도 아주 오랜만이네요.
"한번만 더요, 딱 한 번만!"
"우리에겐 날이 많아."
며칠의 무기가 되겠습니다.

"미리모임 할 때 오는 아이들 이름 보고 지난번에 걔가 그랬지,
그런 얘기가 나올 때마다 소외됐었는데,
고등학교 때 새끼일꾼으로 못 오다 지난 여름 오고 이번에 오니
이제 그런 얘기를 같이 할 수 있는 거예요."
가마솥방 난롯가, 어른하루재기에서 소외를 극복한 소희샘이 기쁨을 전합니다.
"다른 데 캠프들은 주로 새로운 아이들로 이루어지잖아요.
그런데 여기는 오던 아이들이 계속 많이 오니까
샘들이 '아이들이 자랐다'고 하는 말이 실감이 나더라구요.
그래서 샘들도 오고 또 오나 봐요."
현애샘도 결국 또 오는 기쁨이네요.
정말, 얼굴 익은 아이가 열다섯이나 됩니다.
"마냥 아이 같은 얼굴이더니 이제 사춘기로 접어든 표정이더라구요."
성큼성큼 자라는 그네를 보지요.
이 아이들의 삶에 관여할 수 있는 영광을
오늘부터 열닷새나 이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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